
<맹룡과강>(1972)으로 배우 뿐 아니라 직접 감독으로 연출에까지 손을 댄 이소룡은 쉬지않고 빠르게 자신의 다음 행보를 이어나갔습니다. <말로우>(1969)의 악역이나 <그린 호넷>(1966~1967) 시리즈의 주인공을 보조하는 사이드킥 케이토 정도 말고는 헐리우드의 변방을 맴돌며 오랜 무명시절을 겪어야 했던 그는 물이 들어왔을 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업적을 쌓아야 한다는 조바심으로 자기 자신을 혹독하게 밀어붙여 차기작 <사망적유희>의 초반 액션신 촬영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이쯤이면 짐작되시겠지만 <사망적유희>는 이소룡 본인의 이른 죽음으로 끝내 완성되지 못했고, 원래의 구상이었다면 오프닝이었을 액션을 엔딩으로 순서를 바꾼 채, 대역배우를 동원하고 실제 이소룡의 장례식을 촬영한 푸티지까지 붙여가며 난도질하듯 만든 희대의 괴작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보게 된 <사망유희>(1978)입니다.
(이 말고도 이소룡이 초안을 짰지만 다른 데로 넘어가 망가져 버린 컬트 괴작이 더 있으니 바로 <서클 오브 아이언>(1978)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의 주연은 이소룡 원안인 드라마 ‘쿵푸’ 시리즈의 주연을 꿰찬, 그리고 훗날 <킬 빌 Vol.2>(2004)에서 빌을 연기하게 되는 데이빗 캐러딘입니다.)
그런데 마침 정창화 감독의 <죽음의 다섯 손가락>(1972)이 미국 박스오피스를 석권하며 아시아 액션영화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고, 워너브라더스에서 이소룡의 소속사인 추문회의 골든하베스트와 접촉하면서 007 시리즈의 바탕에 쿵푸 액션을 결합한 액션 활극의 제안이 들어오게 됩니다. 헐리우드에서 냉대받다가 고향에 돌아와서 스타가 된 이소룡의 입장에서는 이 기획이 다시 헐리우드로 입성하는 화려한 복귀의 발판이 되리라 여겨졌고, 그래서 <사망적유희>의 촬영을 잠정 중단한 채 새로운 작품으로 발길을 옮기게 됩니다. ‘피와 철’(Blood and Steel)이라는 가제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이소룡 본인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Enter the Dragon’이라는 영문제목을 갖게 되었고, 85만 달러라는 초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용쟁호투>(1973)는 전 세계적으로 4억 달러를 거두는 대흥행을 기록하며 이소룡의 명성을 불멸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정작 이소룡 본인은 영화 개봉 3주전에 세상을 떠나면서 그 결실을 보지 못했고, 영국 개봉 당시 런던의 극장에서는 이소룡 사망의 뉴스에 관객들이 숙연히 추모를 표하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용쟁호투>에서 이소룡의 모습이 문화권에 끼친 영향력은 지금도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단적인 예로 격투게임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2’부터 참전한 절권도 캐릭터 페이롱은 누가봐도 이소룡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고, 마찬가지인 ‘철권’ 시리즈의 마셜 로우가 쓰는 기술 중에는 <용쟁호투>에서 점프해 짓밟음으로서 오하라의 숨통을 끊는 명장면의 오마주가 있습니다.)


1. 화질
<용쟁호투> 4K UHD Blu-ray는 영화 개봉 50주년을 기념하는 시점에서 새롭게 재작업한 별도의 디지털 마스터에 기반해 만들어졌습니다. 35mm 오리지널 카메라 네거티브(영화 촬영 단계에서 가장 먼저 나온 필름 원본)로 다시 돌아가 4K 스캐닝한 데이터를 갖고 복원작업을 거친 50주년 기념판 본편은 4K UHD Blu-ray에 수록되어 있고, 반면 동봉된 2K 해상도의 일반 Blu-ray는 2013년 발매되었던 40주년 기념판 Blu-ray와 내용이 완전히 동일합니다.(모든 부가영상 자료는 바로 이 Blu-ray 디스크 쪽에만 들어있습니다.) 이전 Blu-ray 판본에 수록된 영상도 영화 촬영지의 과거와 현재, 이소룡 무술의 근간이 된 영춘권에 관한 해설, 30분의 메이킹과 1시간 30분 분량의 이소룡의 삶에 대한 다큐멘터리 등, 굉장히 풍성한 분량에 알찬 구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제작진의 입장에서도 그 이상의 서플먼트는 필요 없다는 판단이 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번 <용쟁호투> UHD의 특별한 점은 1973년 개봉 당시의 극장판(99분)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 2007년 이후 출시된 이 영화 DVD와 Blu-ray의 모든 판본은 3분 30초가량이 더 긴 스페셜 에디션(엄밀히 말하자면 홍콩 개봉 버전으로 102분)으로만 나왔고, 그래서 아마도 요즘 많은 분들은 스페셜 에디션 버전이 더 친숙하실 것입니다. 두 판본의 차이는 일단 크게는 이소룡이 오프닝에서의 스파링 대련 이후(이때 상대역은 바로 젊은 시절의 홍금보로 이소룡은 <용쟁호투>를 마친 이후, <사망적유희>와는 별개로 그와 같이 할 다음 작품의 약속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소림사 주지승과의 선문답스러운 대화 장면의 유무입니다. 이 장면으로 인해 악당 한이 소림사 출신임이 밝혀지며 극중 이소룡의 파견 동기가 미국 정부 뿐 아니라 그의 스승에 의한 것이라는 식으로 더욱 강화됩니다. 참고로 이 추가 장면에서 이소룡의 목소리는 이소룡 전문 저술가 존 리틀의 성대모사 더빙입니다. 홍콩 현지 개봉에선 전체가 광동어 녹음이었기 때문.

(악역 ‘한’을 연기한 석견은 <영웅본색>(1986)의 원작인 1967년 작품의 악당 역이기도 했고, 나중엔 <영웅본색 3>(1989)에도 출연합니다. 묘하게도 실제 생활에서는 이소룡과 매우 절친한 사이였는데, 그럴 법도 한 게 이소룡의 아버지 이해천과는 절친한 선후배 관계였기 때문. <용쟁호투> 촬영 당시 몸 상태에 한계가 오고 있음을 직감했는지 이소룡은 석견에게 “아저씨, 아무래도 제가 아저씨보다 먼저 갈 것 같아요”라 털어놓기도 했다고 전합니다. 그래서인가 <용쟁호투>를 보면 이전의 다른 출연작에 비해 유독 이소룡의 얼굴빛의 납빛처럼 어두워져있는 걸 관찰할 수 있습니다.)


스페셜 에디션에서 2분 58초 정도 길어진 이 장면 외에도 극장판과의 차이는 두 군데 더 있습니다. 일단 오프닝의 스파링이 끝난 이후 다음 컷으로 넘어가기까지의 순간이 아주 미세하게 약간 길고, (<상하이에서 온 여인>(1947)에서 영감을 얻은) 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클라이막스의 거울방 격투신에서도 스페셜에디션에서는 스승의 가르침을 보이스 오버로 떠올리는 장면이 극장판에서는 스승의 목소리 없이 주위를 둘러보는 모습이 담긴 컷으로 짧게 처리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극장판과 스페셜 에디션의 차이를 설명하는 이유는 바로 이 점이 <용쟁호투> UHD의 만듦새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보통 한 편의 영화에 각기 다른 판본이 있을 경우에는 심리스 브랜칭(Seamless Branching)이라 하여, 한 장의 디스크에 영화 전체를 수록하고는, 어떤 판본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챕터의 일부가 빠지거나 더해지는 식으로 재생되도록 하는 기법을 적용합니다. 예를 들어 감독판을 수록한 디스크에서 그보다 짧은 극장판을 선택하면 추가, 확장된 장면을 제외한 채 재생되고, 감독판을 고르면 전체를 볼 수 있는 식인데, 문제는 심리스 브랜칭을 적용하려면 각 판본이 시퀀스 단위로 깔끔하게 끊어져서 챕터를 더하거나 빼기에 적합한 편집의 구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경우로 3개 판본을 한 장에 동시 수록한 <미지와의 조우>(1977), <킹덤 오브 헤븐>(2005) 감독판, <아바타>(2009) 확장판 Blu-ray 등이 있는데, 이와는 달리 자잘하고 미세한 차이가 잡혀 있거나 연출 자체가 달라 챕터별 분할이 용이하지 않은 형태일 경우는 근래엔 <군함도>(2017) Blu-ray가 극장판과 감독판을 별개의 디스크에 담은 것처럼 아예 판본별로 따로 나누기도 합니다.


문제는 <용쟁호투> UHD의 경우, 극장판과 스페셜 에디션 두 판본을 심리스 브랜칭도, 별도의 디스크 분할도 없이 한 장의 디스크에 몰아넣다는 점. 때문에 100기가 트리플레이어 디스크 용량 중 총 86기가 용량을 본편에 할애했는데 이중 102분 스페셜에디션에 43.46기가, 99분 극장판에는 40.65기가로 두 판본에 각기 절반가량, 동등한 수준의 용량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평균 비트레이트는 스페셜 에디션 기준 44mbps 선에 그칩니다.(동봉된 2K Blu-ray는 스페셜에디션만 수록한 채 29.95mbps) 사실 평균 비트레이트 수치만 보면 4K 영상을 구현하기에 그리 나쁘지 않은 수준이긴 한데 재생난이도가 높은 일부 밤 장면의 경우에는 다소 부족한 감이 있는 용량 할당과 낮은 비트레이트의 가변 폭이 약간의 장애로 작용해서 (필자와 같이 예민한 감상자의 입장과 재생 환경에서는) 압축 부작용에 따른 미세한 암부 계조의 바스러짐과 뭉개짐이 엿보입니다. 분명 화질 평가하는 입장에서 눈에 불 켜듯 신경 쓰고 봐야 짚이는 미세한 결함이고 전체적인 감상 경험에 큰 지장을 주는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비슷한 시기에 출시한 <엑소시스트>(1973) UHD는 극장판과 감독판을 두 판본을 별도의 디스크에 각각 따로 수록해 최선의 퀄리티를 지향한 바 있는 워너의 물리매체 정책을 생각하면 일관성이 떨어지고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
(어두운 장면에서 화질상의 결함인 압축 부작용이 살짝 드러나는 장면 중 하나인 이소룡의 지하 잠입신. 이때 이소룡이 뱀을 낚아채는 장면은 여러 테이크 반복되었는데, 계속 얻어맞는데 성이 난 뱀이 이소룡을 물어버리는 사고가 터졌습니다. 다행히 촬영 전에 독샘의 독을 빼두어 큰 탈은 없었다고.)

이러한 기술 스펙상의 아쉬움과는 별개로 <용쟁호투> UHD의 실감상 경험은 꽤나 만족스럽습니다. 40주년 기념판 Blu-ray와 비교해 체감되는 개선점이 바로 눈에 들어오는 편인데, 우선 이전 판보다 보여주는 화면의 정보량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디지털 복원 마스터를 만들면서 필름의 스캔 범위를 이전보다 넓게 변경해 잡은 덕에 프레임 상하좌우 전체적으로 보이는 영역이 꽤 넓어졌고, 주로 상단과 좌우의 정보량이 크게 늘었는데 보통 고전필름영화는 세월이 지남에 따라 필름 테두리부터 진행되는 열화로 인해 뒤로 갈수록 스캔범위를 좁게 잡는 경향이 있는 걸 생각하면 2013년 때는 필요 이상으로 조심한 나머지 스캔 범위를 과도하게 좁게 잡은 우를 범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덕분에 화면의 스케일이 커져 답답한 감이 있던 이전보다 시원시원한 와이드 스크린의 감각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이전 판본 대비 UHD의 가장 큰 장점. 특히 이소룡과 젊은 시절의 홍금보가 대련하는 장면의 프레임 상단을 보면 산의 능선이 잘려서 보이지 않는, 즉, 스카이라인이 낮게 잡힌 걸로 오인될 여지가 있는 40주년 Blu-ray와 탁 트인 시야를 보여주는 50주년 UHD의 차이가 바로 실감됩니다.




그 말고도 <용쟁호투> UHD 영상의 달라진 점은 1. 새로운 HDR 그레이딩(평균 휘도 216니트, HDR 10, 돌비비전 미수록)에 힘입어 전반적으로 화면의 밝기가 Blu-ray 대비해 올라간 편이라 묻히는 감이 있던 영상의 디테일이 좀 더 눈에 캐치하기 쉽게 되었고, 2. 화면 전반에 깔리던 황사가 낀 듯하던 적황색조의 인위적인 컬러 필터링 처리를 걷어내, 보다 실제 필름을 보는 것과 같은, 한결 화사하고 현실적인 색감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출시 당시 기준으로는 굉장한 향상을 보여준 40주년 Blu-ray였지만, 그로부터 10년이 더 지난 지금 시점에서 보면 여러모로 남아있던 아쉬운 면면들을 대폭 개선하고 보완한 점이 두드러집니다. 다만 밝기감이 올라간 게 반드시 순기능만을 갖는 건 아닌 게 오늘날의 명성과는 달리 촬영 당시의 워너브라더스가 <용쟁호투>를 저렴히 찍을 수 있는 B급 영화 취급을 했던 면이 있었고(따라서 필름의 관리, 보관 상태가 썩 좋은 건 아니었던), 반세기 세월의 연식을 먹은 필름이다보니 열화가 심한 부분(예컨대 존 색슨의 첫 등장과 액션신)에서는 손상된 필름의 다이나믹스를 억지로 끌어올린 부작용으로 그레인의 일부가 노이즈화되어 튀는 화질상의 문제를 안고 있기도 합니다.

전반적으로 <용쟁호투> UHD는 확연히 좋아 보입니다. 분명 영화는 오늘날의 디지털 카메라 촬영작과 같이 눈부시고 현대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않지만, 그리고 또한 최선의 수록 형태라 보기엔 스펙상의 아쉬움이 많이 남는 구성이긴 하지만, 질감의 세밀한 디테일과 컬러의 선명함, 필름 그레인의 조밀함 등, 시각적 표현의 밀도가 이전의 Blu-ray 릴리스에 비해 눈에 띄게 향상되고 개선되었습니다. 이건 반세기를 걸쳐 사람들의 기억에 대중문화의 상징적 존재로 자리잡아 거듭 회자되는 액션 영화의 고전에 대한 최선의 재현입니다.


(여담으로 ‘한’의 섬에 들어가는 배를 타고 가는 도중, 선상에서 시비가 걸린 무술가를 쪽배에 태워 골탕먹이는 장면은 이소룡이 평소 숙독하곤 했던 일본 검술가들의 이야기 모음집에서 차용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원전은 일본 고류 검술 카시마신토류(鹿島新當流)의 창시자이자 검성으로 추앙받는 츠카하라 보쿠덴(塚原卜伝 : 1489~1571)의 것으로,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던 도중 결투를 청하는 상대를 호수 한 가운데 작은 섬에 버려두고 배를 다시 출발시킨데서 나왔습니다. 이때 비겁하다고 비난하는 상대에게 보쿠덴이 대꾸한 말은 “싸우지 않고도 이긴다. 이것이 바로 나의 무수승류(無手勝流)!”였다고.)
2. 음향
이전의 40주년 기념판 Blu-ray가 영화 원본의 모노 사운드(이 모노 채널은 크라이테리언의 ‘이소룡 히트작 모음집’(Bruce Lee, His Greatest Hits) Blu-ray 세트의 <용쟁호투> 디스크에 PCM 1채널 사운드로 실려 있습니다.)를 DTS-HD MA 5.1채널로 리믹싱 했던데에 이어, 50주년 UHD는 차세대 이머시브 사운드인 돌비 애트모스로 사운드를 다시 매만져 실었습니다. ‘돌비 애트모스’하면 <아바타 – 물의 길>(2022)이나 <탑 건 – 매버릭>(2022) UHD 등의 (일반 가정환경에서 얼마나 있는 그대로의 사운드 재현이 가능한가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전방위에서 포위해오는 듯 조여오는 압도적인 중저음과 그 안에 올올이 살아나있는, 피사체 이동과 맥을 같이 하는 사운드 방향의 정위감을 떠올리실 수 있는데, 역시나 70년대 영화의 모노 사운드가 오리지널이다보니 그런 최신식 멀티사운드의 깔끔함과 박진감 같은 건 결코 기대할 수 없습니다.


다만 수록 컨테이너만 대충 돌비 애트모스로 바뀐(별도의 프로세싱을 걸지 않는 이런 경우는 도리어 음질이 후퇴한 걸로 체감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 아니라 여러모로 사운드에 조정을 가해 순수음질적인 차원에서의 장점이 적잖이 있습니다. 원래 리어와 오버헤드 사운드가 없는 원본 소스의 한계 안에서 가능한 인위적이지 않으면서도 멀티채널을 능숙히 활용하는 고전영화 사운드 믹싱은 만나기 드문데, <용쟁호투> UHD는 주로 전방의 3채널을 집중적으로 활용하면서도 여타의 채널에도 제 역할을 할애해 몰입감 있는 사운드 환경을 조성하고자 노력한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중음역대에서 랄로 쉬프린의 울려 퍼지는 사운드트랙을 선명히 전달하고, 타격이나 군중들의 환호 소리, 유리가 깨지는 파열음 같이 촉각을 자극하는 효과음에서 측면과 후면의 리어로 소리가 이동하는가 하면, 지하 동굴에서도 머리 위에서 울리는 잔향을 주는 등, 원본의 핵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나름 멀티채널의 재미를 주고자 공을 들여놓았습니다.
때로는 이런 효과의 풍부함 때문에 (멀티채널을 따로 할애하지 않는 사운드 기기 환경에 따라서는) 종종 대사 음향이 묻힌다는 감을 받을 수 있지만 대체로 전방 사운드를 집중적으로 살려놓은 만큼 대사의 전달력은 충실한 편. 40주년판 Blu-ray의 5.1채널과 대비해서 간간이 튀던 노이즈 상당수를 잡아 사운드의 순도를 높인 점 또한 긍정적인 면면입니다. 그리고 DTS-HD MA 2채널을 같이 수록해 놓았는데, 이 트랙은 모노를 2채널 서라운드로 해놓았을 뿐, 앞서 언급한 크라이테리언판의 PCM 1채널과 근본적으로 같은 사운드입니다. 1973년 당시의 극장에서 본 관객의 체감을 느끼고 싶다면 이 쪽으로 들어보는 방법도 추천할만합니다.


3. 마치며
비디오와 LD에서 DVD와 Blu-ray를 거쳐 4K UHD Blu-ray에 이르기까지, 물리매체가 세대를 바꿔가며 진일보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새로운 판본으로 선보이는 단골격인 영화들이 있습니다. <용쟁호투> 역시 그중의 하나로 연연히 맥을 이어오고 있고 (35mm 필름의 해상력은 디지털로 환산하면 4~6K 해상도가 최대치이므로) 마침내 사실상의 마지막 물리매체 세대가 될 UHD까지 왔습니다. 이토록 긴 생명력은 영화 자체의 매력뿐만 아니라, 영화인인 동시에 무술가이자 철학자였던 이소룡 개인의, 밤하늘의 허공을 가르는 불꽃놀이처럼 짧지만 강렬한 삶과 그가 남긴 유산이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추모의 염을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팬으로서 <용쟁호투> UHD를 한 장쯤 갖춰놓는 일은 결코 그 의미가 작지 않을 것입니다.
조재휘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