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남준의 인생과 예술을 최초로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가 12월 6일 개봉한다.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모두가 자신의 채널을 갖는’ 현재를 예견한 20세기 최초의 디지털 크리에이터 백남준의 삶을 빠짐없이 기록한다. 한국계 미국인 아만다 김 감독이 5년에 걸쳐 제작하고, 배우 스티븐 연이 총괄 프로듀서를 맡아 화제에 올랐다. 특히 스티븐 연은 백남준의 글을 백남준으로서 낭독하는 감동적인 내레이션을 더하면서 그를 향한 애틋한 초상을 그려 낸다.
12월에는 영원히 기억될 매혹적인 아티스트들의 삶을 그린 영화가 연이어 개봉할 예정이다.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에 이어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다큐멘터리 <힐마 아프 클린트 – 미래를 위한 그림>,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등 아티스트의 인생과 예술을 담은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예술가는 기존의 질서에 반기를 들고, 세상에 변화를 불러왔다. 그런 그들의 곁에는 언제나 그들의 심연과 같은 세계를 알아보고, 영원히 기억하는 이들이 있어 주었다. 우리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었던 존재, 예술가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소개한다.
〈자크 드미의 세계〉 (1995)

영화계 대표 커플 자크 드미와 아녜스 바르다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자 각자의 작품을 가장 잘 알아보는 든든한 관객이었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은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 온 남편 자크 드미 감독의 천진난만한 영화 세계를 탐구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바르다가 드미의 삶을 재구성해 픽션과 실제 영상을 혼합해서 만든 영화 <낭트의 자코>(1991)가 드미의 어린 시절에 바치는 헌사였다면, <자크 드미의 세계>(L'univers de Jacques Demy)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영화를 탐구해 온 그에게 전하는 존경과 깊은 사랑이 담겨 있다.

<자크 드미의 세계>는 드미가 <롤라>(1961)를 만든 초기부터 <쓰리 플레이스 포 26>(1988)에 이르는 후기까지 그의 작품 활동을 모두 아우른다. 영화에는 감독이 <쉘부르의 우산>(1964)을 만들 당시 그의 집념을 엿볼 수 있는 비하인드도 담겨 있다. 드미는 <쉘부르의 우산>으로 ‘오페라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쉽고 단순한 노래가 영화 전체에 흐르고,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로 이어지는 영화를 원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드미와 함께 <롤라>(1961)를 작업한 프로듀서 조르주 드 보르가드는 그의 생각을 들은 후,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좋은 이야기지만 컬러는 놔두고 흑백으로 싸게, 또 음악으로 말고 보통 대사로.” 드미는 드 보르가드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고, 그의 신념을 알아본 다른 제작자를 만나 <쉘부르의 우산>을 완성했다. 아내인 바르다에게는 한없이 다정하지만, 작품을 만들 때만큼은 타협하지 않았던 그의 고집스러운 면모를 알 수 있다. 자크 드미에게 영화는 “춤추고 노래하는 아주 황홀한 것”이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여기 있다〉 (2012)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여기 있다>(Marina Abramovic: The Artist Is Present)는 행위예술의 대모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생애와 예술 세계를 소개한다. 영화는 그녀가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특별 회고전을 앞두고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마리나는 회고전에 참여하는 젊은 아티스트들을 불러 함께 합숙하며 내면을 다지는 시간을 갖는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그들을 지도하는 마리나의 리더십을 드러냄과 동시에 연인 울라이(Ulay)와 함께 지금보다 더 대안적인 예술 행위를 선보였던 그녀의 젊은 시절을 보여준다.
행위 예술을 시작한 초기, 그녀가 줄곧 들었던 말은 “이것이 왜 예술인가”다. 그녀는 신체를 매체로 활용해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형태의 예술을 선보였다. 사람들은 그녀의 예술을 이해하지 않았고, 정신병으로 간주하며 예술의 범주에서 밀어냈다. 영화는 초기에 그녀에게 던져진 의문을 말끔히 제거한다. 신체적 고통을 수행하는 퍼포먼스, 자신의 내부에 있는 에너지를 밖으로 끌어내는 퍼포먼스, 연인 울라이와 에너지를 교류하는 ‘관계 연작’ 시리즈, 종교의식을 연상시키는 영적인 퍼포먼스까지 그녀가 걸어온 거대한 시간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마리나는 퍼포먼스를 수행하는 동안 마모되고, 굴절되며 그 자체로 예술이 되어갔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2023)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작곡가 엔니오 모리꼬네의 삶과 음악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시네마 천국>, <말레나>에서 모리꼬네의 음악과 함께 잊지 못할 명장면을 만든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그의 이야기를 전한다. 영화는 엔니오 모리꼬네가 대중에게 기억되기까지의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영화 음악이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시기, 그럼에도 영화 음악을 고집했던 그의 초창기부터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서부극 <헤이트풀 8>에서 수십 년 만에 아카데미 음악상을 거머쥘 때까지 그가 걸어온 지난한 삶의 행적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초기 모리꼬네는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의 거장이자 영혼의 파트너인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 음악을 작곡했다. 그의 서부극 음악은 전통적인 서부영화 음악과는 달리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특히 <황야의 무법자>(1964)와 <옛날 옛적 서부에서>(1968)의 음악은 당시 사용하기 꺼리던 휘파람, 전기 기타, 하모니카, 총소리 등의 소리를 활용하여 영화의 분위기와 인물의 감정을 표현했다. 이후에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 <미션>(1986), <언터처블>(1987) 등에서 그의 음악이 휘감는 명장면을 탄생시키며 400여 편의 영화음악을 남겼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한평생 영화 음악을 사랑한 그의 삶과 음악에 대한 깊은 존경과 애정을 한껏 드러낸다.
〈살바도르 달리: 불멸을 찾아서〉 (2023)

단연코 살바도르 달리는 가장 유명한 초현실주의자다. 메마른 사막에 놓인 흐물거리는 시계가 인상적인 그의 작품 <기억의 지속>은 20세기 미술사에 족적을 남긴 그림이자 초현실주의의 상징이다. 더불어 달리는 파리와 뉴욕의 예술가와 대중의 마음을 동시에 사로잡은 팝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영화 <살바도르 달리 : 불멸을 찾아서>는 시대를 초월해서 살아 숨 쉬는 예술가 달리의 삶을 담백하게 조명한다. 달리가 자신의 예술관을 처음으로 정립한 시기부터 가족과 멀어진 뒤 방황의 시간, 파리 초현실주의자들과의 만남, 평생을 함께한 뮤즈인 갈라와의 사랑, 황혼기에 접어든 후 맞이한 그의 죽음까지. 영화는 스페인의 한 소년이 불멸의 천재가 되어가는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투사한다.
그리고 영화는 달리 미술관의 방대한 아카이브를 적절하게 맥락화해 전달한다. 달리를 담은 빛바랜 사진과 그를 말하는 내레이션은 한 조각씩 맞추어지며 그의 초상을 완성한다. 특히 달리를 재연한 가상의 내레이터는 그의 내밀한 생각과 감정을 전하며, 관객과 예술가의 거리를 더욱 좁힌다. 재연된 달리의 내레이션은 마치 그가 직접 써 내려간 자서전을 펼쳐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영화에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명상적이고 고뇌하는 달리의 그림자도 보인다. 그의 삶을 면밀히 들여다본 영화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달리의 예술적 불멸을 다시 증명한다.
씨네플레이 추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