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기사 카테고리

Movie & Entertainment Magazine from KOREA
>영화

물지 않아요(?) 생긴 것과 달리 성실하고 상냥하다는 열일 배우

성찬얼기자
명예의 거리 행사 당시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윌렘 대포 (사진 출처=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공식 SNS)
명예의 거리 행사 당시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윌렘 대포 (사진 출처=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공식 SNS)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또 한 명의 명배우가 이름을 새겨 넣었다. 윌렘 대포는 현지 기준 1월 8일, 공식적인 행사를 통해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헌액됐다. 한국 관객들에게도 그린 고블린 등 여러 캐릭터의 얼굴로 유명한 그. 이번 헌액을 축하하며 그에 대한 소소한 사실들을 모아본다.


소처럼 일하는 배우

〈리브 앤 다이〉
〈리브 앤 다이〉
〈예수의 마지막 유혹〉(왼쪽),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
〈예수의 마지막 유혹〉(왼쪽),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
〈고흐, 영원의 문에서〉
〈고흐, 영원의 문에서〉

 

1980년 데뷔한 윌렘 대포는 올해로 데뷔 44주년을 맞이했다. 그런데 그의 장편 출연작을 세보면 169개라고 한다. 물론 아직 공개 전인 차기작,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등등을 포함한 수치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단순 수치로만 계산한다면 한 해에 3편 이상 출연했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출연작이 많았던 해는 2009년과 2014년. 2009년엔 <안티 크라이스트> <페어웰> <마이 선, 마이 선, 왓 해브 예 던> <데이브레이커스>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목소리 출연) <틴에이지 뱀파이어> 6편에 출연했다. 2014년은 <모스트 원티드 맨>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배드 컨트리> <안녕, 헤이즐> <파졸리니> <존 윅> 6편에 출연했다. 그리고 이 최다 출연작 연도에 2023년도 포함하게 됐다. <인사이드> <애스터로이드 시티> <가여운 것들> <파이널리 던>(Finalmente l'alba) <펫 숍 데이즈> <곤조 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영어더빙판 목소리 출연)까지 선보였다.


80년대의 아이콘, 2000년대의 아이콘

반전 영화의 아이콘 같은 〈플래툰〉 포스터. 이 사내가 바로 윌렘 대포.
반전 영화의 아이콘 같은 〈플래툰〉 포스터. 이 사내가 바로 윌렘 대포.
의외로(?) 사람 좋은 일라이어스로 명연을 펼쳤다.
의외로(?) 사람 좋은 일라이어스로 명연을 펼쳤다.

 

그 많은 작품 중 정말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된 영화들도 있다. 먼저 1987년 영화 <플래툰>이다. 아마 이 영화를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저 상징적인 포스터를 못 본 사람은 거의 없을 터. 저 포스터에서 하늘을 향해 두 팔 뻗고 있는 사내가 바로 윌렘 대포다. <플래툰>은 베트남전에 참전한 크리스 테일러(찰리 쉰)가 부대 내 갈등과 베트남전의 비인간적인 전장에서 변해가는 내용이다. 크리스의 부대는 폭력적인 반스 하사(톰 베린저)와 다소 온화한 일라이어스 분대장 간의 알력 다툼이 존재한다. 윌렘 대포는 (지금의 이미지와 달리) 일라이어스 분대장을 맡아 전장 한가운데에서도 인간성을 지키는 캐릭터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포스터의 장면은 상당히 비극적인 순간을 포착하는데, 윌렘 대포의 일라이어스가 보여준 인간미 때문에 그 비극은 배가된다.

〈스파이더맨〉 속 노먼 오스본과 그린 고블린의 대립
〈스파이더맨〉 속 노먼 오스본과 그린 고블린의 대립

 

윌렘 대포의 두 번째 아이코닉한 작품이라면 역시 <스파이더맨>일 것이다. 머리는 좋지만 너무나도 평범한 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가 유전자 거미에 물려 슈퍼히어로로 거듭나는 이 영화에서 윌렘 대포는 대기업 오스본 기업의 회장 노먼 오스본을 연기한다. 오스본은 기업의 성과를 거두고자 스스로 임상실험을 감행하고 그 부작용으로 빌런 '그린 고블린'이 되고 만다. 윌렘 대포는 인망 있는 사업가 노먼 오스본과 파괴적인 테러리스트 그린 고블린 모두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스파이더맨 첫 실사 영화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이 공로를 인정받듯 20년 후, 스파이더맨 멀티버스를 그린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도 같은 캐릭터로 캐스팅됐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연기를 펼쳐 명실상부 스파이더맨의 아치 에너미다운 아우라를 뽐내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피터 파커가 평생 인간혐오에 걸려도 이상하지 않은.
피터 파커가 평생 인간혐오에 걸려도 이상하지 않은.

평생 조커 0순위

뭐든 맡으면 제대로 소화하는 연기력과 특유의 강렬한 외모 덕분에 어떤 캐릭터는 실사화 얘기가 나올 때마다 윌렘 대포가 1순위로 뽑히곤 하다. 바로 DC코믹스의 대표 빌런 캐릭터 조커다. 부리부리한 눈빛과 커다란 입, 어딘가 광기 서린 그의 표정은 '모 영화에 조커가 나온다더라'라는 소문만 나면 가장 먼저 호명되는 이유 중 하나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1989년 영화 <배트맨> 제작 당시 잭 니콜슨과 함께 후보 중 한 명이었다니 아직까지 기회가 안 온 것이 신기할 지경. 실제로 검색엔진에 'willem dafoe joker'라고만 검색해도 팬메이드 이미지가 한가득 쏟아지니, 모르는 사람이면 연기한 적 있다고 속을지도 모르겠다.

William Gray(왼쪽), NML6의 조커 팬메이드 이미지
William Gray(왼쪽), NML6의 조커 팬메이드 이미지
윌렘 대포 조커 팬메이드 이미지. 이 정도면 캐스팅 담당자의 직무유기가 아닌가 싶다.
윌렘 대포 조커 팬메이드 이미지. 이 정도면 캐스팅 담당자의 직무유기가 아닌가 싶다.

 

실제로 그는 조커 관련 질문을 많이 받는데 한 번은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에 출연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봤단다. 그는 진짜 조커(호아킨 피닉스)가 아니라 조커를 너무 신봉한 나머지 그의 '짭'이 되는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다고. 참고로 유튜브 영상 중 'Willem Dafoe as Joker'라는 제목의 윌렘 대포 영상이 있는데, 이는 사실 '틈'에 대한 일종의 우화를 읊는 영상(Willem Dafoe in "Mind the Gap")을 변형한 영상이다.

심지어 생성형 AI '미드저니'마저 완벽하게 구현하는 윌렘 대포판 조커.
심지어 생성형 AI '미드저니'마저 완벽하게 구현하는 윌렘 대포판 조커.

데뷔작 때 짤린 사연

이런 윌렘 대포도 데뷔작을 촬영할 당시 사연은 화려하다. 촬영 도중 해고됐기 때문. 윌렘 대포는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대작 <천국의 문>으로 처음 할리우드에 입성했다. <천국의 문> 오디션은 특이한 조건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영어 연기와 타국어 연기를 준비해야 했던 것. 윌렘 대포는 친구에게 부탁해 네덜란드어 연설문을 '소리 나는 대로' 적어달라고 부탁했고, 그걸 달달 외워 오디션에 합격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외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이 들통났는데, 그래도 촬영장에는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럼 언제 해고됐냐고? 촬영장에서 스태프가 한 농담에 웃었다가 감독한테 걸려서 해고됐다. 마이클 치미노 감독이 대포가 오디션에서 속였던 걸 기억하고 눈여겨보고 있다가 해고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이런 사연으로 정작 제대로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한 <천국의 문>이 여전히 그의 데뷔작으로 기록돼있다.

그래도 서양팬들이 기어코 그의 〈천국의 문〉 출연장면을 찾아내긴 했다.
그래도 서양팬들이 기어코 그의 〈천국의 문〉 출연장면을 찾아내긴 했다.

드라큘라에서 드라큘라로

〈노스페라투〉(1922, 왼쪽) 막스 쉬렉을 연기하는 〈뱀파이어의 그림자〉의 윌렘 대포
〈노스페라투〉(1922, 왼쪽) 막스 쉬렉을 연기하는 〈뱀파이어의 그림자〉의 윌렘 대포

 

그의 대표 캐릭터이자 차기작 관련해 뱀파이어로 마지막을 장식해보자. 윌렘 대포는 2000년 <뱀파이어의 그림자>라는 영화에서 맥스 슈렉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세계 최초 뱀파이어 영화라 불리는 <노스페라투>(1922)를 만든 F. W. 무르나우와 주연 배우 막스 쉬렉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렇다고 전기 영화는 아닌데, “막스 쉬렉이 실제로 뱀파이어였다면”이란 상상력을 가미한 작품이기 때문. 국내엔 정식 개봉하지 않아 덜 알려진 작품이지만, 윌렘 대포가 <플래툰> 이후 처음으로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로 지명되는 등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뺄 수 없는 이정표다(특히 뱀파이어를 연기한 배우가 후보가 된 최초의 사례라고).

〈노스페라투〉(2024)에선 뱀파이어가 아니지만…
〈노스페라투〉(2024)에선 뱀파이어가 아니지만…

 

그리고 이 작품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는 영화로 윌렘 대포는 돌아온다. 2024년 개봉 예정작 <노스페라투>(2024)는 1922년작의 리메이크로, 로버트 에거스가 연출한다. 그래도 이번 영화에서는 뱀파이어가 아니라 앨빈 교수(Albin Eberhart Von Franz)를 연기한다고 한다. 공개된 스틸컷을 보면 이번 영화에서도 광기를 내뿜을 것으로 보이니, 아쉬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