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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으로 돌아올 예정! 〈반지의 제왕〉, 헬름 협곡의 전설

씨네플레이
영화 〈반지의 제왕〉
영화 〈반지의 제왕〉

 

2001년 첫 편이 개봉되었을 때 솔직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전설이 된 작가의 전설 같은 작품, 이 시대 모든 판타지의 원조격 작품, 화려한 캐치프레이즈들이 홍보 문구로 쏟아져 나왔기에 봐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지만, 러닝타임이 무려 178분이었기 때문이다. 아침 9시에 시작해도 영화 끝나면 정오다! 남의 이야기를 가만히 앉아 구경하는 것도 3시간 걸리면 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은 좀 다른 영화였다. 이야기라기보다는 세계에 가깝다. 영화를 보고 원작 소설까지 공들여 읽고 나면(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지간해서는 '톨키니스트'(톨킨 팬덤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 혹은 그 비슷한 것이 되지 않고는 못 배긴다. 거기에는 어떤 사건이나 삶이 아니라 현실 세계와 전혀 다른 듯 꽤나 닮아 있는, 어떤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톨키니스트인 감독 피터 잭슨이 이 영화의 연출을 맡게 된 데에는 아마 이런 연유가 있었을 것이다.

〈반지의 제왕〉 삼부작, 〈호빗〉 삼부작을 완성한 피터 잭슨 감독
〈반지의 제왕〉 삼부작, 〈호빗〉 삼부작을 완성한 피터 잭슨 감독

시리즈가 너무도 성공했고, 잘 만들어졌기에 이어가는 게 더 쉽지 않았던 영화가 바로 <반지의 제왕> 3부작이다. 오랜만에 이 IP에 새로운 작품이 추가된다. 실사 영화는 아니지만,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 깊은 전투로 꼽히는 '헬름 협곡 전투'의 과거 이야기를 다룬 애니메이션 무비가 올 12월 13일에 스크린을 통해 공개될 예정. 톨키니스트들에게는 오랜만의 스크린 개봉작을, 그리고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에서 헬름 협곡 전투의 그 처절함을 기억하는 관객들에게는 로한 왕국의 또 다른 이야기를 엿볼 기회다.


지원군이 도착할 때 뿔나팔 소리가 울린다!

로한의 왕 헬름 해머핸드
로한의 왕 헬름 해머핸드

반지전쟁의 역사적인 전투 현장인 헬름 협곡에는, 협곡의 명칭이기도 한 로한 1왕조의 왕 '헬름'과 관련된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건 바로 뿔나팔 소리가 들리면 지원군이 도착한다는 것.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에서도 이 전설은 언급되는데, 로한의 왕 세오덴이 자포자기하자 아라곤이 함께 로한을 위해 싸우자고 설득한다. 패배감에 찌들어 있던 세오덴이 다시금 뿔나팔 소리를 울려퍼지게 하겠다 선언하고, 그의 말대로 나팔 소리가 성을 메운 순간 로한의 기마부대 '로히림'은 다시 진격한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아라곤과 함께 동트는 아침을 맞아 밖으로 달려나가고, 웅장한 뿔나팔 소리가 울려퍼지며, 간달프가 햇빛과 함께 돌아오는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에오메르의 로히림은 장창으로 무장한 오크 군대를 격파했고 불행과 절망 속에서 다시 일어난 세오덴은 헬름의 이름을 딴 협곡에서 다시 헬름처럼 일어난 셈이었다.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

 

애니메이션이 다루게 될 이야기는 바로, 영화에서 세오덴을 다시금 일으켜 세웠던 전설적인 로한의 왕 헬름의 최후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은 2001년 영화 시점, 즉 '반지 전쟁' 시점으로부터 무려 250년 전의 이야기인 프리퀄 시리즈이며 로히림 전쟁과 그 주역이었던 '헬름'이 주인공이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는 전설 속 영웅으로 남아 있는 헬름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그려지는 셈. 워낙 비극적인 이야기이기에 벌써부터 각오를 좀 해둬야 할 것 같긴 하지만, '무쇠 주먹' 헬름의 모습을 보게 될 게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다.


주먹이 부른 대참사...? 헬름 협곡의 전설, 로히림 전쟁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 헬름 협곡 아트워크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 헬름 협곡 아트워크

 

헬름은 원래 협곡 요새에서 살고 있지는 않았다. 로한 왕국의 9대 왕이었던 헬름은 당시 던랜드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었는데, 어느 날 로한의 왕족이라고 주장하는 던랜드인(?!) 프레카가 찾아와 헬름의 딸을 며느리로 달라고 한다. 헬름은 영 맘에 안 들었는지 모욕적인 언사(뚱뚱하다고 했다)를 서슴지 않으며 거절했으나 프레카는 말을 들어먹지 않았고, 결국 따로 불러서 맨주먹을 한 방 날렸는데 프레카가 죽어버리고 말았다.

프레카의 아들인 울프는 이를 복수하기 위해 4년 후 로한에 쳐들어온다. 마침 우호국도 전쟁 중이었던지라 헬름은 수도를 버리고 요새로 퇴각해야 했다. 보급로가 끊기고 기아와 추위에 고통받던 헬름은, 수도에 남기고 온 장남의 사망과 견디다 못해 눈보라 속으로 나간 차남의 실종까지 겪자 절망감에 빠지고 만다. 하지만 슬픔 속에서도 헬름은 방벽 위에서 홀로 뿔나팔을 불며 싸웠고, 선 채로 죽고 만다.

이번 애니메이션 콘셉트 아트에서도 헬름의 죽음이 묘사됐다.
이번 애니메이션 콘셉트 아트에서도 헬름의 죽음이 묘사됐다.

 

사람들은 끝까지 용맹하게 싸운 헬름을 기리기 위해 나팔산성 요새의 입구에 헬름의 동상을 세웠으며, '뿔나팔 소리가 들리면 지원군이 도착할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기 시작한다. 영화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의 헬름 협곡 전투에서 나팔산성 앞에 서 있는 동상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며, 세오덴이 뿔나빨 소리를 울리자마자 간달프의 지원군이 도착해 협곡의 전설대로 승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으로 돌아오는 '반지의 제왕'

애니메이터 Eddie Sharam이 그린 〈반지의 제왕〉 단편 애니메이션
애니메이터 Eddie Sharam이 그린 〈반지의 제왕〉 단편 애니메이션

 

사실 <반지의 제왕>은 원작이 워낙 오래된 만큼, 1978년과 1980년에 이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적이 있었다. 3부작 중 1부와 2부까지만 다루었지만 전반적으로 귀여운 모습의 반지 원정대(특히 골룸이 귀엽다)를 볼 수 있는데, 아무래도 아동용으로 제작되어서인 듯하다. 지금 와서 보기에는 현대인의 눈에 그리 흡족하지는 않겠지만, 나름대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으로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기도 했다.

물론 이때의 애니메이션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일 것인데, 제작 발표 초창기에 공개된 콘셉트 아트만 봐도 기존의 애니메이션보다는 실사영화 쪽에 더 가까운 중세 판타지풍의 임팩트 있는 전쟁을 사실감 있는 화풍으로 그려낼 듯하다.

〈반지의 제왕: 로히림의 전쟁〉 콘셉트 아트
〈반지의 제왕: 로히림의 전쟁〉 콘셉트 아트

 

영화화 이후로도 근 10년 만에 스크린에서 개봉하는 작품이 공개되는 것이니 '톨키니스트'들에게는 오랜만에 들려온 희소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당초 올해 4월로 개봉일을 일찍이 확정했던 것과 달리 최근 올해 12월로 개봉을 연기했지만... 영화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2023년 미국 배우조합의 파업 문제 때문이었으니 걱정할 만한 일은 아닐 듯.


영화 〈반지의 제왕〉 삼부작
영화 〈반지의 제왕〉 삼부작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그 시절 가장 강력한 프랜차이즈였다. 2001년 시리즈의 첫 편을 시작으로 2003년 마지막 작품인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까지 3편 모두가 흥행 성공은 물론이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11개 부문 수상을 거머쥐는 등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인상적인 캐릭터인 '골룸'은 그대로 문화적 코드가 되어 방송에서 소재로 사용되기도 했고, 지금도 인터넷 등지에서 쓰일 정도로 유명해졌다. 높은 고층건물에 LED 조명이 켜지면 '사우론의 탑'이라고 하는 농담도 그때부터였고, 잘생긴 엘프 남성 캐릭터를 레골라스라고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영화나 원작을 몰라도 골룸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
영화나 원작을 몰라도 골룸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

 

원작자인 톨킨은 본인이 쓴 장대한 이야기를 실사영화로 구현하는 건 택도 없는 일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원작의 명성에 비하면 상당한 헐값에 판권을 팔아 넘겼다고 한다. 왠지 소싯적 마블 코믹스 생각이 나긴 하는데.... 1973년에 사망한 톨킨으로서는 당시의 영화 제작 기술로는 중간계와 반지 전쟁을 제대로 그려내는 게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것 같다. 뭐, 70년대 초반의 감각으로 현대의 CG와 모션 캡처를 떠올리기는 어려웠을 테니까.

어쨌든 이 판권을 토대로 2001년 <반지의 제왕> 시리즈 세 편이 개봉했고, 이후 시리즈의 성공과 호평에 힘입어 톨킨의 다른 작품도 실사화 요청이 있어 <호빗> 시리즈가 2012년부터 세 편이 개봉하게 된다. 톨킨은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톨킨의 작품에 이래저래 관여를 많이 했던 아들 크리스토퍼는 영화에 대해 대놓고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피터 잭슨이 유명한 '톨키니스트'라는 것과는 별개로, 미디어믹스의 멀티플레이는 사람마다 관점이 다른 법이려나.

그 시절 <반지의 제왕>이 보여준 그 쇼킹함, 그걸 다시 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다시금 '톨키니스트'를 양산할 수 있는 IP로 거듭날 수 있게, 이 애니메이션 영화가 꽤 볼만한 콘텐츠가 되어주길 바라본다. 그런 의미에서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오랜만에, 정말 큰 맘 먹고 한 번쯤은 정주행 해 봐야 할지… 적어도 2편의 전투 씬만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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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호빗〉 삼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