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OTT 시리즈의 역사를 쓴 작품이 등장했다. 넷플릭스 <성난 사람들>이다. 이 작품은 제8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3관왕, 제29회 크리틱스초이스어워즈에서 4관왕을 차지했다. 그뿐만 아니라 미 방송계 최고 권위의 시상식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작품상과 남녀 주연상을 포함해 8관왕을 차지했다. 한국계 감독 이성진이 연출을 맡고 스티븐 연, 앨리 웡 등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계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지난해 선보인 가장 활기차고 놀라우며 통찰력을 가진 작품 중 하나
뉴욕타임스 TV 평론가 제임스 포니워지크
뉴욕타임스 TV 부문 수석 평론가 제임스 포니워지크는 <성난 사람들>에 대해 극찬하며 스토리의 예측 불가능성과 복잡성, 작품의 흡입력 등을 높게 샀다. 지난 4월 공개 이후 여전히 국내외 비평가들과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성난 사람들>의 이성진 감독과 배우를 화상 기자간담회로 만나보았다.

<성난 사람들>이 제75회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8관왕을 차지했다. 수상을 예상했나.
스티븐 연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수상하기를 희망했을 뿐이다. 작품에 대한 반응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작품을 만드는 과정 중에 제작진 모두가 이야기에 깊게 관여하며 서로의 생각을 충분히 공유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성난 사람들>의 이야기에 자신이 있었다.
이성진 예술은 자기 의심과 고삐 풀린 나르시시즘의 교집합에서 탄생한다. 나 역시 때로는 <성난 사람들>에 대해 의심을 품기도 하고, 때로는 알 수 없는 자신감에 차기도 한다. 이를 반복하던 와중 에미상을 수상했고 기쁜 마음이 가장 컸다. 수상 소감에서 최대한 많은 분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려 했다. 내 인생에 영향을 준 수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골든 글로브, 크리틱스초이스, 에미상까지 연이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수상 소감은 미리 준비했나.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스티븐 연 할 말을 준비하지는 않았지만 혹시나 올 영광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머릿속을 샅샅이 뒤지려고 했다.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감사한 순간이 언제인지에 대해 깊게 생각한다. 생각이 많아서 스트레스이다. (웃음) 막상 수상 소감을 말할 때가 되면 입에서 나오는대로 말을 할 뿐이다.

<성난 사람들>은 실제 이성진 감독이 난폭 운전을 목격한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이성진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상대 차량이 흰색의 SUV였다는 정도이다. 당시 그는 일진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스티븐 연 그건 감독님의 추측일 뿐이지 않나.(웃음)
이성진 그렇다. 당시에는 불쾌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운전자에 감사하다. 그가 난폭 운전을 하지 않았다면 <성난 사람들> 역시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삶이라는 것은 아름답고도 희한하다. 그것이 우리 작품의 정체성이다.
감독과 배우 등 제작진들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협력해서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 대해 설명해달라.
스티븐 연 앨리 웡(에이미 역), 이성진 감독뿐 아니라 다양한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민자로서 비슷한 형태의 삶이 많았다. 개개인의 구체적인 사건을 작품에 담으려고 하기보다는 우선 <성난 사람들>만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제작진 모두가 인물의 진실성을 담아내는 것을 우선으로 했다.
한국계 이민 2세대인 대니 역을 맡았다. 유독 어려운 캐릭터였다고 하는데 어떤 점이 힘들었나.
스티븐 연 지금까지 배우로서 나는 통제력을 가졌다. 아무리 무기력한 캐릭터를 맡았다고 해도 배우인 나는 선택권이 있었다. 그러나 대니는 그렇게 연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캐릭터에 그대로 녹아들어야 했다. 대니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수치심이 집약된 인물이다. 자기 통제력이 없고 무력함을 느낀다. 나도 스스로 무력하다고 느낄 때가 있기 때문에 대니에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하는 불안함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주변에서 ‘대니를 포기하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어 큰 힘을 얻었다.

작품을 통해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성진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지는 않았다. 그저 우리 내면의 어둠을 조명하고 싶었다. 서로의 어두운 면을 바라보며 비로소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리고자 했다. 작품을 만들기 전 정해져 있던 것은 난폭운전으로 시작하는 것과 서로 유대하며 끝난다는 것뿐이었다. 그 과정을 그리는 데 있어 최대한 진실되고자 노력했다. 작품의 메시지는 받아들이는 시청자들에 달렸다. <성난 사람들>을 시청하신 분들이 캐릭터를 통해 자기 자신을 보았기 때문에 좋아해 주시는 것이 아닐까 싶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과 그 주인공 송강호에 버금가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젊은 배우이자 이민 2세대 배우로서 이러한 성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스티븐 연 칭찬해 주시는 의도는 감사하지만 감히 송강호 배우와는 비교할 수 없다. 이성진 감독과 서로의 영화계 영웅과 같은 존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공통적으로 송강호 배우를 꼽는다. 연기자로서의 나 자신을 평가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사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연기를 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리고 보다 더 나 자신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었다.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는 것에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힘든 시기를 견뎌낸 과거의 자신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스티븐 연 과거의 나를 만난다면 ‘마음 편히 먹으라’ 말할 것이다.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 응원하고 싶다.
이성진 나 역시 ‘괜찮다’고 위로할 것이다. 지난날의 나는 코앞에 닥친 일을 해결하느라 과정을 즐기는 법을 잊었다. 운이 좋게 가까운 친구들과 일할 수 있게 되었고 내가 길을 잃을 때마다 그들이 나를 현실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