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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민용근 감독의 ‘데뷔의 순간’, 씨네플레이와 한국영화감독조합의 〈한국영화, 감독〉 인터뷰

김지연기자
민용근 감독
민용근 감독

감독들의 머릿속이 궁금하다! 2024년을 힘차게 열며, 네이버 영화 컨텐츠 공식 파트너사인 ‘씨네플레이’와 ‘한국영화감독조합’(DGK)이 함께 진행한 영화감독 인터뷰 시리즈 <한국영화, 감독>이 드디어 시작됩니다. 매주 씨네플레이 네이버TV(tv.naver.com/cineplay)와 네이버 연예면 메인 ‘최신 영화 소식’을 통해,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에 한 감독당 1부와 2부로 나누어 우선 공개된 뒤, 씨네플레이 유튜브에서 그 다음 주 월요일에 1부와 2부를 묶은 합본 영상 1편이 공개됩니다. 그중에서도 매번 씨네플레이의 두 명의 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한 감독들이 장편 데뷔작을 내놓기까지의 이야기만을 담은 ‘데뷔의 순간’은 글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장편 데뷔작 <혜화, 동>(2010)으로 호평을 받고, 10여 년이 지나 데뷔작의 주연배우와 결혼까지 이룬 민용근 감독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진행: 씨네플레이 주성철 편집장, 김지연 기자)

 


민용근 감독과의 인터뷰 현장
민용근 감독과의 인터뷰 현장

씨네플레이

네이버 영화 콘텐츠 공식 파트너사인 씨네플레이가 한국영화감독조합과 함께 ‘한국영화, 감독’이라는 인터뷰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영화 <혜화,동>(2010), <소울메이트>(2021) 등을 연출하신 민용근 감독님을 모셨습니다. 오래전 한국영화감독조합에서 조합 소속 감독들의 데뷔 직전 청춘의 이야기만 담은 「데뷔의 순간」이라는 책을 낸 적 있는데요. 오늘 이 자리에서는 감독님의 데뷔의 순간을 비롯해, 영화인으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려 합니다.

 

민용근

안녕하세요. 민용근입니다. 「데뷔의 순간」 책은 저도 집에 있습니다!

 

민용근 감독
민용근 감독

씨네플레이

사실 다른 감독님들 인터뷰를 쭉 진행하면서도 느낀 것은, 의외로 영화과 출신 감독님이 별로 안 계시다는 점이었어요. 그런데 민용근 감독님은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이시죠. 그래서 굉장히 오래전부터, 마치 <기생충>의 대사처럼 다 계획이 있으셨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민용근

연극영화과를 나왔다고 해서, 영화에 대해서 더 전문적으로 알게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학교보다는 선후배하고 영화를 찍으면서 현장에서 배우는 것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선배들이 어떤 식으로 영화를 대하는가, 그리고 어떤 식으로 현장에서 이렇게 촬영을 하는가 그런 데에서 많이 배웠었고. 그리고 오히려 저는 사회에 나와서 다른 일들을 좀 많이 했었는데, 그런 일을 했던 것들이 오히려 영화하는 데 더 많이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씨네플레이

그래도 학과를 연극영화과를 선택하신 거면, 학창 시절 때부터 영화를 좋아하셨을 것 같은데요.

 

민용근

아마 제 세대의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경로를 통해서 영화에 관심을 가졌을 거 같은데요. 가장 크게는 두 가지였던 것 같아요. 하나는 MBC FM <정은임의 영화음악>인데, 일주일에 한 번씩 정성일 평론가님이 나오셨어요. 주술과도 같은 그 목소리에 홀렸던 것 같아요. 제가 그때, 집에 비디오 데크도 없었고,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이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 라디오를 일주일에 한 번씩 들으면서 영화를 상상했던 것 같아요. 키에슬로프스키가 어떻고,라며 되게 어려운 이름들이 나오면 또 뭔가 마음이 고양이 되잖아요. 그런 마음들로, 영화에 대한 시각들이 생겼던 것 같아요.

또 하나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 구회영 작가의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인데요.

 

씨네플레이

현재 한국영상자료원 원장이신 김홍준 감독님이 ‘구회영’이라는 필명으로 발간하신 책이죠.

 

민용근

네. 그래서 그 두 가지 덕분에 영화라는 것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막상 영화과를 들어갈 때는, 정작 영화를 본 건 아무것도 없는데 듣고 읽은 영화들이 머릿속에 있었던 거죠. 한국 80년대 영화들이나, ‘세계 영화 100선’처럼. 영화과 지원 전에는 주변에 전혀 얘기하고 있지 않다가, 고3 첫 번째 모의고사 때 연극영화과를 지원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주변 사람들은 황당한 반응이었죠. 담임 선생님은 소위 ‘딴따라’라는, 아주 예전의 시각으로 연극영화과를 바라보시고 저를 외면하셨어요. 그렇게 해서 연극영화과에 가게 됐죠.

 

김용균 감독의 〈와니와 준하〉
김용균 감독의 〈와니와 준하〉

씨네플레이

박찬옥 감독의 단편 <느린 여름>(1998)의 조감독으로, 김용균 감독의 영화 <와니와 준하>(2001)의 메이킹으로 참여하셨죠. 모두 청년필름의 작품인데요. 영화제작소 청년에 한양대 분들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영화제작소 청년의 작품에 참여하게 된 건가요?

 

민용근

청년필름은 제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 '영화제작소 청년'이었고, 신림동에 사무실이 하나 있었는데요. 저는 학교를 다니면서 주류는 아니었던 거 같아요. 아웃사이더처럼 지냈는데, 마침 그때 박찬옥 감독님도 학교를 떠도시는 분이었는데, 어떻게 하다가 친하게 됐어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도요. 또, 그때 저희 학교는 2학년이 되면 한 학기에 한 편을 필름으로 작업해야 했어요. 그래서 2학년을 마치니까 단편 영화 두 편이 나오게 된 거죠. 그런데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는데, 어느 겨울날 영화제작소 청년에서 필름을 들고 한번 오라고 했어요. 그곳에는 저와 학교를 같이 다닌 분은 박찬옥 감독님 외에는 없었고, 정지우 감독님(<해피엔드>(1999) <은교>(2012) 등)이나 김용균 감독님(<와니와 준하>(2001) <분홍신>(2005) 등)과 같은 대선배님들이 계셨죠. 임필성 감독님(<남극일기>(2005) <마담 뺑덕>(2012) 등)도 계셨었어요. 그때 영사기로 제 필름을 걸어서 상영회를 했죠.

 

씨네플레이

감독님의 영화를 선배 영화인들 앞에서 처음 상영했을 때,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었나요?

 

민용근

선배님들이 되게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거기서 제 영화를 틀었던 게 정말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어요. 저는 영광이었죠. 어떤 말을 해주셨는지가 정확히 기억나는 건 아닌데, 그냥 그 공간에서 제가 만든 영화를 틀고, 말로만 듣던 전설적인 선배님들이 영화를 보고 좋은 말을 해주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크게 다가왔어요. 그 후에도 영화를 하게 되는데 많은 영향을 줬죠.

 

박찬옥 감독의〈느린 여름〉
박찬옥 감독의〈느린 여름〉

씨네플레이

<느린 여름>의 조감독으로 참여하게 된 사연도 궁금합니다.

 

민용근

제가 <느린 여름>의 조감독으로 참여하게 된 계기는, 박찬옥 감독님이 단편을 찍어야 되는 시기가 왔는데, 제가 찬옥 누나랑 얘기를 하다가 제 고3 시절의 이야기를 했어요. 수능이 100일 남은 날 학교를 갔는데, 100일 기념이라고 여름방학 보충수업도 없어서 제가 그날 정말 친하지 않은 친구와 단둘이서만 학교에 남게 된 거예요. 그 친구는 어떤 가정사가 있는데요. 멀게만 느껴졌던 친구랑 같이 시장 골목도 다니고, 같이 노래방도 가고 하며 하루를 보내게 됐어요. 그 얘기를 찬옥 누나에게 했더니 그걸로 시나리오를 발전시켜 주셨고, 저도 자연스럽게 조감독으로 참여를 하게 됐었죠. <느린 여름>의 원래 제목은 ‘백일주’ 였어요.

 

〈도둑소년〉
〈도둑소년〉

씨네플레이

민용근 감독님의 단편 <주말>(1996)이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이 되고, <도둑소년>(2006)이라는 단편은 제29회 클레르몽페랑 국제단편영화제에 초청을 받아서 많은 주목을 받았어요. <도둑소년>은 한쪽 눈에 커다란 점이 있는 한 중학생이 돈과 생필품을 도둑질하는 이야기인데요. 감독님이 <도둑소년>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민용근

제가 졸업작품 <봄>(1998)을 영화제작소 청년에 계신 분들과 함께 찍고 4학년 1학기를 마친 후에 군대를 갔다가, 제대해보니까 2000년 12월이었어요. 그때 막 6mm 카메라가 보급되어서 굉장히 밀착해서 찍는 프로그램들이 생겨나는 시점이었는데, KBS <병원 24시>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극영화가 시시해지고, ‘저 현장에 내가 있어야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장기적으로는 극영화를 하고 싶지만, 그 과정에서 다큐멘터리를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TV 다큐멘터리를 하게 됐죠. 주변 분들은 제가 당연히 영화를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요.

원래 하고 싶었던 <병원 24시>는 아니지만, <현장르포 제3지대>라는 다큐멘터리를 하게 됐어요. 우리 사회의 제3지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프로그램이었는데, 2년은 조연출을 하고, 2년은 연출을 했죠. 그때 했던 일 중의 하나가 계속 아이템을 찾는 일이었어요. 6주에 한 번씩 60분짜리 다큐를 만들어야 하니까. 그래서, 신문의 사회면을 자주 봤는데, 그때 경기도 이천에 사는 한 중학교 3학년 소년이 돌아가신 어머니와 6개월 넘게 동거를 했다는 기사가 실렸어요. 이 사건으로 인해 사회적인 파장이 일어서 이웃에 대한 사회적인 무관심이나, 복지의 사각지대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는데요. 그중에서도 저에게 기억에 남는 것은, 그 소년의 이웃집 아주머니가 인터뷰를 한 기사였어요. “이 아이가 동네 뒷산에 올라가서 자주 혼자 멍하니 있는 것을 봤다”라며. 그래서, 저는 그때 그 소년의 얼굴이 되게 궁금했어요. 어떤 마음으로 소년이 뒷산에 올라가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를 바라봤을까, 하고요.

그러다가 다큐멘터리를 4년 하고 그만두고, 다른 회사에 다녔거든요. 그때도 계속 영화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품고 있어서, 주변에는 알리지 않고 시나리오를 썼어요. 그러다 회사 업무 시간에 거짓말을 하고, 홍릉에 있는 영화진흥위원회에 가서 지원을 했어요. 그러다가 잊고 있었는데, (영진위에서) 면접 보러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영진위의 지원을 받고, 코닥 단편영화제의 지원을 받아서 <도둑소년> 촬영을 하게 됐어요.

 

〈도둑소년〉
〈도둑소년〉

씨네플레이

<도둑소년>의 주인공은 눈에 큰 점이 있어요. 그 모습이 비주얼적으로 특이한데, 이 소년의 이미지는 어떻게 떠올리게 되신 건가요.

 

민용근

중학교 때 제 짝이 있었어요. 그 짝이 외모적으로 조금 독특했는데, 눈의 위아래에 큰 점이 있었어요. 눈을 뜨면 점이 두 개인데, 눈을 감으면 하나가 되는. 저는 그 친구의 모습이 좀 슬퍼 보였던 거 같아요. 친구들이 그걸 놀리지는 않는데, 그 점을 안고 평생을 살아가야 되는 거니까. 그 친구가 그걸 빼려고 병원에 간 적이 있었대요. 근데 그 점을 빼려면 안구까지 건드려야 되는 굉장히 큰 수술인 거예요. 그 친구가 가정 형편이 넉넉지도 않았는데, ‘아마도 수술은 못 할 것 같아’라는 말을 듣는 순간에 제가 너무 슬퍼졌어요. 그래서 제 중학교 때 친구의 이미지와, 기사에서 제가 봤던 소년의 이미지가 결합되어서 <도둑소년>이 나오게 되었어요. 실화를 베이스로 한 영화이긴 하지만, 저의 경험이 더해지기도 했어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쯤, 도벽이 약간 있어가지고. (웃음) 초등학교 때 한 번 걸려서 굉장히 크게 혼났던 적이 있어요. <도둑소년>을 만들면서 그때의 제 모습도 떠올랐던 것 같아요. (도벽이 있었을 즈음에) 저희 어머니가 식당 일을 하게 되어서, 제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아마도 도둑질로) 비어있는 그 무언가를 뭔가 이렇게 좀 채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제가 나중에 그때 왜 그랬을까, 떠올려봤을 때 ‘뭔가를 훔친다’는 건 물질적인 욕심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마음에 있는 결핍을 다른 방식으로 채우고 있는 행위이지 않을까 싶은 거예요. 그래서 세 가지 모티브(이천의 중학생, 자신의 어렸을 때 친구, 도벽이 있던 자신)가 같이 결합이 돼서 영화가 만들어졌던 것 같아요.

주성철 편집장
주성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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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다 보니까 또 궁금해지는 게, 감독님은 방송 다큐멘터리 작업을 오래 하셨잖아요. 그런데 극영화나 픽션은 다 가짜고, 다큐멘터리야말로 영상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감독님께서도 20대 때 그런 생각을 하신 건지 궁금해요.

 

민용근

제가 <병원 24시>에 끌리게 된 이유가 있는데요. 거기서 부모님 없이, 지적장애가 있는 형과 함께 사는 동생의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어요. 동생은 형한테 싫은 소리 한번 안 하고, 되게 착한 동생이었어요. 그런데 프로그램의 마지막에, 형이 발작을 하면서 자꾸 밖으로 나가겠다고 하는데, 동생이 형을 마당에서 말리다 한 번 폭발하는 장면이 있어요. 동생이 형의 멱살을 잡고. 벽으로 밀어붙이고 거기 때리기 직전까지 가는 그런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카메라 뒤에서 손이 하나가 나오더라고요. 그러더니 “00아, 이러지 마, 이러지 마. 형이잖아. 이러지 마”라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영화를 볼 때는 규칙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 창이 깨지고, 어떤 손이 나오고 목소리가 나오면서 PD가 사건에 개입하게 되는데, 저는 그때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이 굉장히 강하게 인식이 되더라고요. ‘다큐멘터리만이 진실이야’라는 명제가 아니라, “내가 카메라를 들고 그 현장에 있어야겠다”라고 하는 이상한 사명감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은 방송 다큐멘터리 작업은 시간에 쫓기는 작업이기도 하고, 시청률을 신경 안 쓸 수가 없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이게 오로지 다큐적인 사명감만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생기는 묘한 순간들이 굉장히 많았었어요.

씨네플레이

묘한 순간이라 하면요?

민용근

한번은 안산의 원곡동 이주노동자를 찍었어요. 제가 찍었던 가족은 방글라데시 가족이었는데, 아버지, 어머니, 딸 한 명이 한국에 있고, 방글라데시에 막내딸이 있어요. 그러니까 어머니 아버지는 막내딸이 자라나는 걸 못 보고 한국에서 생활하시는 거죠. 그런데 사전 취재를 할 때 들은 정보로는, 어머니가 일주일에 한 번씩 막내딸이랑 통화를 하는데, 전화할 때마다 우신다는 거예요. 저는 그래서 다큐에 그 모습을 담아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촬영 기간 내내 전화 시도를 했는데 쉽게 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저희 작가님이, 방송을 한 3일 앞두고 구성상 그 장면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며 조연출인 저에게 꼭 담아오라고 하셨어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어머니의 눈물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제가 촬영을 가서, 방글라데시 가족들이랑 저녁을 먹고 설명을 드렸죠. 그런데, 하필 그날이 축구 한일전 하는 날이었고, 우리나라가 이겨서 분위기가 너무 밝아진 거예요. 그러다 막내딸과 기적적으로 통화 연결을 하니, 막내딸과 눈물 없이 통화를 마치신 거죠. 저는 그래서 낙담에 빠져 있는데, 9살 꼬마 아이 ‘라부’가 엄마가 동생 사진만 보면 운다며, 갑자기 앨범을 가져와서 엄마에게 줬어요. 저는 그게 무슨 소용이 있나, 전화를 하며 우는 게 아닌데,라고 생각하던 찰나, 어머니가 앨범을 보시다가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제가 그 순간에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어머니 손에 전화기를 들려 드렸어요. 어머니는 전화기를 받자마자 전화 연결이 안 된 전화기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말을 하시면서 막 계속 우시는 거예요. 저는 지금 이 상황이 이게 이래도 되나, 싶으면서도 결국에 그 장면을 이렇게 어쨌건 담아냈는데요. 지하철을 타고 안산에서부터 오는데 되게 이상한, 여러 가지 감정이 들더라고요. ‘이건 분명히 진실은 아닌데, 그럼 그 눈물은 눈물도 진실이 아닐까? 그 감정도 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다큐라고 하는 것과 그리고 극 영화라고 하는 것의 경계가 뭘까’라는 생각들이 되게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다큐도 현실에 널려져 있는 무규칙한 일상을 찍은 후에 규칙성을 만들어서 구성을 하기 때문에, 여기에는 극영화적인 논리가 들어가거든요. 편집을 할 때는 소스를 가지고 극적인 구성들을 만들어내요. 근데 또 막상 저희가 극영화를 찍을 때는 조금 더 ‘현실'처럼, 다큐처럼, 현실에 있는 무언가를 담아내려고 하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다큐멘터리는 극영화를 계속 바라보고 있고, 극영화는 다큐멘터리를 바라보고 있고. (두 가지가) 극단에 서 있다고는 하지만 두 가지 것들이 서로 그리워하기도 하고, 닮아 있기도 하고. 그런 묘한 느낌들이 들었던 것 같아요.

 

〈혜화,동〉 
〈혜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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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 <혜화,동>도 그렇게 다큐멘터리를 하다, 유기견을 구조하는 한 여성으로부터 소재를 얻으신 걸로 알고 있어요. <혜화,동>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상을 시작하게 된 영화인지 궁금합니다.

 

민용근

<현장르포 제3지대>에서 조연출을 할 때, ‘집 잃은 개를 돌봅니다’라는 제목으로 유기견을 구조하는 한 단체를 취재했어요. 그 단체를 이끄는 대표님이 여자분이셨는데, 본인의 생업은 두 번째로 놓고 오로지 개를 구조하고, 입양 보내는 일을 열심히 하시는 거예요. 한번은 그 프로그램을 찍던 중에, 탈장된 개가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어요. 그래서 통로에 잠복하면서 굉장히 많은 작전을 펼쳤는데, 개를 잡는 데에는 실패했어요. 그러다가 다른 단체 회원들은 다 생업 때문에 돌아가고, 어느 날 밤에 대표님이 차에 혼자 남아서 그 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그 탈장된 개가 나타난 거죠. 근데 그 개는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사람들을 되게 경계했어요. 대표님은 개를 구조해서 치료를 해줘야 되겠다는 마음이어서, 개를 잡으려고 온갖 추적극을 벌였는데도 그날 결국 개를 놓쳤어요. 그리고 차에 들어오셔서 막 펑펑 우셨어요. 나는 그 친구를 도와주려고 하는 건데, 그 친구는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저는 그분이 우는 얼굴에서 그분에게 어떤 사연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버려진 개를 구조하지 못한 걸 자책하고, 한탄하는 감정 안에는 그분의 과거 상처가 있지 않을까, 그게 개한테 투영이 된 건 아닐까 하고 상상했어요. 그분의 실제 삶과는 별개로요.

그러다가 다큐를 그만두고 새로운 회사를 다녔는데, 회사가 너무 편하더라고요. 근무 조건도 너무 좋고 복지도 좋고. 근데 이렇게 계속 살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이렇게 살다 보면 영화를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회사를 2년 다닌 후 사표를 내고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실업급여가 끊어지기 전에 시나리오를 써야겠다’ 마음을 먹었어요. 쓰고 싶은 스토리가 있지는 않았고, 그때의 그 여성분의 얼굴의 이미지, 그리고 저 혼자 상상한 사연들에 살을 붙여나가면서 <혜화,동>을 만들었어요.

 

〈혜화,동〉 
〈혜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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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혜화,동>을 다시 보면 되게 새로운 게, 유연석 배우의 20대 시절을 볼 수 있다는 점이에요. 유연석 배우가 ‘한수’ 역을 맡아서 굉장히 찌질한 청년으로 나오죠. ‘혜화’ 역의 유다인 배우도 그렇고, ‘한수’ 역의 유연석 배우도 그렇고 역할에 어울리는 배우들은 어떻게 캐스팅하게 된 건가요?

 

민용근

캐스팅 기간이 꽤 오래 걸렸어요. 주인공 ‘혜화’라는 여성이 굉장히 중요해서, 많은 배우분들을 만났었는데 찾지는 못했었어요. 프리프로덕션 중에도 구하지 못하다가, 저희 조감독님이 유다인 배우와 단편을 같이 찍었었다며 한번 만나보라고 해주셨어요. 당시 유다인 배우를 드라마에서 봐서 얼굴은 알고 있었는데, (제가 생각하는 혜화와) 다른 결이라고 생각해서 고려하고 있지는 않았었거든요. 그래서 큰 기대를 가지지 않고 일요일 저녁에 사무실에서 만났었어요. 근데 처음 만났는데, 말의 리액션이 너무 느린 거예요. 누군가가 질문을 하면, 보통 생각을 하더라도 한 3~4초 있다가 대답하잖아요. 그런데 (유다인 배우는) 답변이 나올 때가 됐는데, 혹시 못 들은 게 아닐까 싶어서 보면 뭔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고. 그리고 한참 뒤에 어떤 대답을 굉장히 간결하게 하는데, 그게 되게 직구로 들어오는 느낌이었어요. 우리가 그냥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를 할 때 텀이 생기면, 그 텀을 못 견뎌서 말을 하는데 (유다인 배우는) 그거 아랑곳 없이 그냥 혼자의 시간을 굉장히 오랫동안 갖더라고요. 그러면서 한마디 한마디 꺼내고, 자기가 연기하면서 겪었던 어떤 경험을 얘기하는데 뭐랄까, ‘혜화’ 같았어요.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저는 배우가 얼마나 연기 경험이 많고 얼마나 연기를 능숙하게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저는 그 사람이 얼마큼 역할과 닮아 있는지가 되게 중요하거든요. 근데 당연히 그 당시 유다인 배우는 연기를 시작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었고, 연기 경험이 많지는 않아서 그게 우려되기는 했었지만 이 사람이 갖고 있는 성품이라든지, 혼자 생각할 때 눈동자를 굴리는 눈빛에 되게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얼굴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 하는 사람끼리 한번 잘 해보자는 마음으로 신인 배우와 함께 하게 됐었죠.

유연석 배우는 제가 옴니버스 영화 <원나잇 스탠드>(2010)를 할 때 주연을 맡았던 장리우 배우가 추천해줬어요. 그때 유연석 배우는 <올드보이>(2003)에 출연을 했던 상태고, 군대 제대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예요. 저는 <혜화,동> 속 ‘한수’가 거짓말을 하는데, 눈빛이 진실돼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유연석 배우를 보니까 되게 확장성이 좋은 배우라고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뭐든 다 진실을 말하는 거 같은 그 얼굴이 좋았어요. 실제로는 유연석 배우가 한수처럼 찌질하지 않고, 성실하고 스마트해요. 그런데 (그렇게 한수와 자신의 다른 부분을) 연기적인 부분으로 잘 해내더라고요. 또 유다인 배우와 동갑이기도 해서 잘 어울리겠다 싶어 두 명을 캐스팅했죠.

 

〈혜화,동〉 의 '혜화' 역 유다인 배우
〈혜화,동〉 의 '혜화' 역 유다인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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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지금의 아내, 유다인 배우와의 인연이 시작된 건가요. (웃음)

 

민용근

사실은 <혜화,동>을 찍을 때는 그런 개인적인 관계가 전혀 아니었어요. 오히려 촬영할 때는 (유다인 배우가) 말수도 없고 해서, 제가 좀 어려워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촬영이 끝나고 편집을 하던 기간에 전화를 하며 조금 가까워졌어요. 그때 제가 ‘이 사람이 나에게 마음이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었고, 그래서 그 마음에 대해서 물어봤지만 거절을 당했죠. 그 상태에서 개봉 활동도 하고 그랬는데, 관계가 어색해지지 않았어요. 그렇게 1년에 한 번, 2년에 한 번 보면서 10년을 지냈죠. 그러다 제가 <소울메이트> 시나리오를 쓸 때였는데, (유다인 배우가) 전화해서 예전에는 속 얘기도 많이 했는데, 요새는 너무 멀어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그 마음은 제가 갖고 있었거든요. 왜냐하면 유연석 배우도 연기적으로 왕성해지고, 유다인 배우도 막 활동을 하는데 저만 오랫동안 영화를 못 찍고 있고, 혼자 막 이렇게 쭈구리가 되어 있는 느낌이 있고, 뭐 그런 어떤 마음도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요. 그날 통화를 좀 오래 했었어요. 이례적으로. 그러면서 저도 한 10년 동안 말하지 못했던 얘기들도 많이 하게 되고 서로 감정이 편해진 상황에서 갑자기 (유다인 배우가) ‘서로 이렇게 결혼 안 하고 있다가 좀 시간이 지나서 둘이 아무도 없으면 결혼할까?’ 이러더라고요. 그러다가 결혼을 하게 됐죠.

 

민용근 감독의 최근작 〈소울메이트〉(2021)
민용근 감독의 최근작 〈소울메이트〉(2021)

씨네플레이

민용근 감독님은 특이한 이력이, 장편 데뷔작 <혜화, 동>을 만든 이후 다시 영화과 대학원에 가셨다는 건데요. 앞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유다인과 유연석 배우가 왕성하게 활동하는데 비해, 장편영화를 내지 못해서 조급해지셨을 것도 같아요. 이 10년의 시간을 공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 시간 동안, 영상과 관련된 일을 모두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려고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민용근

특히 장편을 한 편 만든 영화감독에게 두 번째 장편이 없으면 그 기간은 마치 비어있는 시간처럼 보이기도 해요. 중간에 진지하게 다큐멘터리 연출에 대해서도 고민을 했었고, 케이블 채널의 PD로 일하면서 프로그램 만드는 일도 했었고, 학교 강의를 하면서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했었고요. 그런데도 나는 '언젠간 계속 저기(영화) 가야 돼’, 혹은 ‘저기로 다시 갈 거야’라는 마음이 항상 있었어요. 다큐를 할 때도 ‘나는 나중에 극영화를 꼭 하고 싶다’, 회사 면접을 볼 때도 ‘저는 오래 다니지는 않을 거고 영화를 나중에 할 거다’라고 말했어요. 결과와는 다르게, 극영화를 만드는 거를 되게 그리워했었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마음은 한 번도 변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는 특히 영화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본질에 끌리는 것 같아요. 사실, 스토리라고 하는 서사의 영역은 사실 다른 예술 장르들도 많이 있긴 하잖아요. 물론 그것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긴 하지만, 감독이 이미지와 사운드를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느냐, 그리고 거기서 느껴지는 찰나의 순간의 감정들, 그런 것들이 영화적인 감흥으로 다가올 때 설레는 마음이 들어요.

 

김지연 기자
김지연 기자

씨네플레이

오늘 민용근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데뷔작 <혜화, 동>에 얽힌 이야기도 굉장히 재미있었고 감독님이 차분하게 말씀은 하시지만 핵심을 짚어내는 얘기들이 많아서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인의 삶이라고 하는 것이 되게 좀 힘들고 고달프고,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당신이 영화를 꿈꾸고 있는 사람이라면 영화계로 와라!’라고 얘기해 주실 수 있나요?

 

민용근

인생에서 중요한 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만큼 행복한 삶은 없는 것 같거든요. 저는 정말 10년 동안 장편을 못 만들다가 최근에 촬영을 하면서, 그 촬영장에 가는 시간들이 괴롭지만 사실 한편으로 너무 행복했어요. 지금도 너무 행복하고, 내가 다른 쪽으로 빠지지 않고 다시 이 일로 돌고 돌고 돌아서 다시 이 일로 오게 된 게 너무나 다행이다 싶어요. 그 이유는 그냥 단 하나인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행복하니까. 그리고 행복하게 사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