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영화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악령에 씐 금발 소녀나 퇴마하러 온 신부님 등 대다수의 한국인에게는 다소 낯선 정서다. 기독교, 천주교가 익숙한 서구권과 달리, 한국인은 한국인만의 정서가 분명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오컬트 영화는 같은 오컬트 장르여도 관객에게 공포를 전달하는 지점이 서양 오컬트 영화와 다르다. 1981년에 개봉한 <깊은 밤 갑자기>를 시작으로 이번에 개봉하는 <파묘>까지. 한국 오컬트 영화의 계보를 추적해보며 이 장르만의 독특한 정서를 소개하고자 한다.
깊은 밤 갑자기

1981년에 개봉한 <깊은 밤 갑자기>는 한이나 처녀 귀신, 구미호 같은 한국 고전 공포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던 요소가 등장하지 않는 제대로 된 한국 오컬트 영화의 시작으로 꼽힌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에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남편이 어느 날 19살 어린 소녀를 식모로 집에 데리고 오면서 아내가 식모와 남편의 관계를 의심하며 극의 긴장감을 끌어간다. 망상으로 미쳐가는 아내 선희(김영애)의 모습이 주요 공포 요소지만, 이에 ‘뒤틀린 토착신앙'까지 추가해 <깊은 밤 갑자기>만의 기이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식모 미옥(이기선)의 어머니는 무당으로, 미옥은 어머니가 남긴 목각인형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믿고 한시도 떼어놓지 않는다.

영화팬들 사이에서 <깊은 밤 갑자기>가 한국 고전 공포영화의 수작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두 여자의 관계를 ‘성녀'와 ‘악녀', 뻔한 권선징악의 문법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잘못한 사람이 귀신에게 벌받는 내용이 일반적이었던 과거 한국 공포영화와 달리, <깊은 밤 갑자기>는 가정의 침입자에 해당하는 미옥에게 악한 이미지를 씌우지 않는다. 어머니를 잃은 백치 같은 어린 소녀이자, 불길한 목각인형을 지닌 무당의 딸이라는 상반된 이미지가 동시에 존재한다. 관객은 끝까지 그가 남편을 유혹하여 집안의 안주인 자리를 차지하려 했는지, 아니면 모든 게 아내의 망상인지 알 수 없다. 불확실함은 확실한 불행보다 관객을 불쾌하게 만든다.
불신지옥

<건축학개론>(2012)을 연출한 이용주 감독의 데뷔작, <불신지옥>은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1999), <장화, 홍련>(2003), <알 포인트>(2004) 뒤를 잇는 21세기 한국 공포 영화 대표작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깜짝 놀라게 만드는 요소 없이 오로지 배우의 연기와 연출 만으로 긴장감을 유지한다. 서울에서 혼자 사는 희진(남상미)은 어느 날 광신도 엄마(김보연)와 함께 살던 동생 소진(심은경)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고향으로 내려온다. 단순 가출인 줄 알았으나, 소진의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죽어 나가고, 엄마는 아랑곳 않고 기도에만 매달린다.

엄마는 예수의 재림을 믿는 광신도로, 소진의 주변 사람들은 소진에게 신이 들렸다고 믿는 무속신앙 광신도로 나오는데, 영화는 두 종교의 차이를 굳이 두지 않는다. 오히려 대립, 우위의 구도가 아닌 종교 상관없이 광적인 믿음이 가져오는 지옥을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영화는 끊임없이 ‘신내림', ‘부활'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시작부터 결말까지 단 한 번도 우리가 흔히 아는 귀신은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서구권의 오컬트 영화에서 핵심이 되는 ‘엑소시즘'은 <불신지옥>에서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오히려 아파트가 갖고 있는 특유의 폐쇄성과 불신, 그리고 그 속에 있는 가정의 붕괴가 영화의 공포 요소다. 거기에 심은경의 신들린 연기는 정말로 ‘신들린' 것처럼 보여 영화의 기이한 에너지를 더한다.
곡성

<검은 사제들>(2015)의 장재현 감독이 한국 오컬트 영화의 계보를 잇는다면, 나홍진 감독은 한국 오컬트 영화의 새로운 계보를 만들었다. “뭣이 중헌디"라는 명대사를 남긴 <곡성>은 악의 정체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살인, 자살, 화재 등 끊임없이 불행이 발생하지만 그 이유를 명확하게 짚기 어렵다. 산에서 훈도시만 입고 돌아다니는 일본 외지인(구니무라 준)이 나타나면서 곡성에 이상한 일이 생기는 것 같다, 라는 불분명한 소문밖에 기댈 곳이 없다. 누구나 자신에게 불행이 닥치면 ‘명백한 이유'를 찾고자 한다. 나홍진 감독은 “피해자가 어떤 이유 때문에 피해를 입는 건가. 범죄자를 길에서 우연히 만난 게 이유일 수는 없지 않나. 그 원인을 찾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이야기가 현실에 국한될 수 없었다"라며 <곡성>을 만들 게 된 계기를 밝혔다.

영화는 수상쩍은 냄새만 풍기다 무속인 일광(황정민)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오컬트 장르로 전환된다. 종구(곽도원)는 딸에게 사건의 피해자들과 동일한 두드러기 증상이 발현되자, 무속인과 가톨릭 부제에게 도움을 구하고 다니는데 어던 종교에서도 사건을 해결해주진 못한다. 영화는 관객에게 어떠한 것도 명확하게 전달하지 않는다. 영화관에 나와, 관객들이 서로 나름의 해석을 주고받으며 ‘아마도 이럴 것’이라고 말하며 <곡성>의 대략적인 형체를 잡아가는 것에 가깝다. 대표적인 장면이 일광과 외지인이 굿판을 벌이는 장면이다. 서로에게 살을 날리는 것처럼 편집되어 있지만, 사실은 종구의 딸에게 살을 날리는 장면일 수도 있다는 해석이 있다. 영화의 키 카피인 “현혹되지 마라”는 말은 <곡성>을 보기 전, 관객이 다짐해야 할 말일 수도 있다.
사바하

장재현 감독은 <검은 사제들>부터 이번에 개봉한 <파묘>까지 오컬트 불모지인 한국에서 오컬트 영화의 맥을 잇고 있다. <검은 사제들>은 한국의 가톨릭 신부가 빙의된 악령을 퇴치하기 위해 구마의식을 치르는 이야기로, 국내에선 다소 생소한 가톨릭 엑소시즘 장르다. “강동원이 장르다"라는 말과 함께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팬층을 쌓은 이 시리즈는 4년 뒤, <사바하>로 더 단단해진 서사와 장르적 이해를 갖추어 나타났다. <사바하> 신흥 종교 비리를 찾아내는 박웅재 목사(이정재)가 사슴동산이라는 새로운 종교 단체를 조사하다 여중생의 미스터리한 죽음과 조우하게 되고, 비밀을 풀어나가는 이야기로, 오컬트 공포 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추리극의 내러티브를 따라가는 독특한 매력의 작품이다.

<검은 사제들>이 서구식 오컬트 장르를 잘 재현한 경우라면, <사바하>는 오컬트 장르를 한국인에게 맞춰 변주까지 해냈다. 기독교와 불교, 그리고 토속신앙이 한데 섞이면서 불교의 탱화 앞에 서있는 목사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그 이질감이 주는 그로테스크함은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분위기다. 영화에는 여러 종교적 상징물이 등장하는데, 재밌는 점은 이를 기독교 모티브로 보느냐, 불교 모티브로 보느냐에 따라 상징물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극 중에서 ‘뱀' 모티브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천주교에서 뱀은 사탄이자 타락을 상징한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석가모니를 나쁜 것으로부터 보호하는 존재이자, 아직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고행자를 의미한다. 영화는 모티브에 중첩된 이미지를 심어주어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넓혀놓았고, 이는 한국 대중들에게 '오컬트 = 장재현'이라는 공식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파묘

장재현 감독의 세 번째 오컬트 영화, <파묘>의 기세가 심상찮다. 3일 만에 100만 관객을 모으며, 7일 만에 올해 개봉 한국영화 중 최초로 300만 고지에 올랐다. <파묘>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그리고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영화로,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은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집안의 장손을 만나 조상의 묘 이장을 권하면서 시작된다.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이 합류하여 악지에 묻힌 묘를 이장하는데, 그 과정에서 ‘험한 것'이 나온다.

장재현 감독의 이전 작들에서 유독 힘을 못쓰던 무당이 주인공인 작품으로, 특히 김고은의 무당 연기가 일품이다. 김고은은 무당 연기를 위해 무당 고춘자에게 춤사위와 무당의 몸짓을 배웠다. 최민식 배우는 그런 김고은의 연기를 보고 “걱정이 되었다. 이러다가 배우도 하고 무당도 하고 투잡을 뛰는 거 아닐지.(웃음)”라고 말하며 극찬했다. <파묘>는 이전 작들과 비교했을 때 파묘, 굿 등 한국적 색채를 강화한 한편, 항일 키워드를 영화 곳곳에 배치하여 3월 1일을 겨냥한 항일영화로의 정체성도 갖췄다. 다소 민족주의적 영화로 빠질 수 있는 기로에서 완급조절을 하여 재미도, 의미도 챙긴 영화. 오늘 콘텐츠의 주제였던 ‘한국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정서를 담은 한국 오컬트 영화'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