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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 다큐는 미래 세대 위한 연서 … 1세대 조경가의 친숙한 작품들에서 위로받길” 〈땅에 쓰는 시〉 정다운 감독

씨네플레이

내 앞의 아름다움, 나는 그곳을 거니네

내 뒤의 아름다움, 나는 그곳을 거니네

내 위의 아름다움, 나는 그곳을 거니네

내 밑의 아름다움, 나는 그곳을 거니네

아름다움의 자취를 좇아, 나는 그곳을 거니네

아름다움과 함께 영원히, 온통 나는 둘러싸이네

내가 나이가 들어도, 나는 그곳을 거니네

여전히 움직이면서, 나는 그곳을 거니네

나는 여전히 아름다움의 자취 위를 맴돌리니

그리고 다시 살리라,

나는 그곳을 거니네

나의 노랫말은 여전히 아름다움을 향하네

-나바호 족의 노래

 

도심 속 선물과도 같은 선유도공원부터 국내 최초의 생태공원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과거와 현재를 잇는 경춘선 숲길까지…. 우리 곁을 지키는 아름다운 정원을 탄생시키며 한국적 경관의 미래를 그리는 1세대 조경가 정영선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땅에 쓰는 시>(감독 정다운)가 4월 17일 관객을 만난다.

정영선 조경가는 1973년 처음 설립된 서울대 환경대학원 조경학과 1기 졸업생이자 한국 1호 국토개발기술사(조경)를 획득한 최초의 여성 기술사다. 현재도 열정적으로 활동 중인 그는 한국인 최초로 2023년 조경계 최고 영예상으로 불리는 세계조경가협회(IFLA) ‘제프리 젤리코상’을 수상했다.

언론시사회 이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정영선 조경가는 “‘조경’이라는 것은 주변 경관과 맞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관은) 옛날 선비들이 가장 중요시했던 담 너머의 흐르는 물이나 산을 바라보는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지 정원 안에 다양한 것들을 심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기본 정신은 옛 선비들로부터 시작해서 사찰을 가거나 정자에 앉는 등 자연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느끼고, 시를 읊고, 어떤 도를 닦을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좋은 정신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그것을 전파하자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시간’이나 ‘계절’이라는 개념은 조경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새벽과 이른 아침, 오전과 오후 그리고 석양과 달밤이 다르듯이 변하는 시간과 자연의 변화는 사람들에게 어떤 순간의 감동이나 자연과 대화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자연을 다스린다는 생각보다 자연과 더불어서 사는 정신을 가진다면 우리가 자연을 조금 더 존중하는 입장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의 끊임없는 변화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땅에 쓰는 시>는 정영선 조경가의 손길이 닿은 친숙한 장소들을 충실히 담아낸다. 특히 공간이 간직한 특성과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 주변 환경까지 고려한 그의 작품관은 ‘공원’의 개념을 확장시키며 더욱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일례로 생태학자를 초빙하고 김수영 시인의 ‘풀’을 낭독하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국내 최초의 생태공원 ‘여의도 샛강생태공원’(1997), 기존의 정수 시설을 그대로 살린 국내 최초의 재활용생태공원 ‘선유도공원’(2002), 왕성한 생명력으로 환자와 마음이 힘든 가족들 그리고 지친 의료진까지 넉넉하게 품어주는 ‘서울아산병원’(2007) 등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땅에 쓰는 시>는 다큐멘터리스트 정다운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이다. <이타미 준의 바다>(2019),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2022) 등 웰메이드 건축 다큐멘터리를 배출해온 정다운 감독은 신작 <땅에 쓰는 시>에서 모두를 위한 정원을 만들어온 조경가 정영선의 땅을 향한 철학과 내일의 숲을 위한 진심을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자연과 공간의 관계성 안에서 사람들에게 좋은 공간을 전달해 주기 위한 조경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라고 말하는 정다운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다운 감독. (사진 제공=영화사 진진)

영화 잘 봤습니다. 한국 조경의 진수까지는 아니더라도 비밀을 엿본 듯한 느낌입니다. 개봉 앞두고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너무 심한 표현이라고 하실 수도 있지만, 정말 영혼을 갈아 넣어서 만들었습니다. 다큐멘터리의 숙명이 있어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감독의 시선, 관점으로 주제의식까지 치열하게 고민해서 전달해야 한다는. 정영선 선생님께 누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습니다. 조금이라도 잘못 표현하면 관객들이 정영선 선생님을 오해하게 되니까요. 좋은 공간을 다니며 작업해서 좋겠다는 분들이 있었는데, 첫날만 좋아요. 다음날부터는 모든 것이 작업과 연결되니 한순간도 편하지 못했죠.

부담감, 압박감이 꽤 많았던 것처럼 들립니다.

제가 정영선 선생님 작품들로 위로를 받고 자랐기에, 이 영화를 볼 관객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감정을 전하고 싶었어요. 지금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 너무 치열하잖아요. 이 좁은 한국 시스템에서 불살라서 살아요. 예술은 위안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이타미 준 선생님도 그러셨어요. “지저분하고 더럽고 슬픈 것이 너무 많은 세상이지만, 그래도 더 좋은 게 많은 게 세상이다. 그 부분을 봐라.” 이타미 준 선생님 영화 때도 그랬고, 이번 정영선 선생님도 마찬가진데요. 그분들이 가진 훌륭한 것들에 제 소망을 투영해 만든 영화라 설렘보다는 약간 결기 같은 걸 품고 있는 심정입니다. 잘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고요. 사실 정영선 선생님이나 자연이나 모두 너무 어마어마한 존재다 보니 (작품을) 만들면서 그 간극에 늘 좌절하죠.

그래도 우리 경관과 조경의 소중함을 이번 영화로 정말 제대로 알리고 싶어요. 우리는 우리의 좋은 전통을 인정하지 않고 평가절하, 무시하는 경향이 커요. 종종 외국에서 공부하고 오신 분들이 서양 스타일을 그대로 한국에 이식하던 시절이 꽤 길었던 것 같은데요. 그리고 우리 경관의 아름다움을 개발 논리에 의해 무시했던 부분도 크고요. 우리의 것을 기본에 두고 그 위에서 더 나아가는 아름다움을 지향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영선 선생님의 철학과 뜻이 미래세대에 잘 전달되면 좋겠습니다. 다큐멘터리스트로 제 주제 의식 역시 ‘미래 세대에 대한 연서’입니다.

<땅에 쓰는 시>는 지난해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선보였죠. 20년 영화제 역사에서 개막작으로는 첫 국내 작품이었고요. 지금 버전과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제프리젤리코상 받으신 게 작년 10월이어서 직접 가서 촬영했어요. 한라산 겨울씬을 찍은 부분도 들어갔고, 후반작업을 좀 다시 했어요. 엔딩도 조금 달라졌고요.

〈땅에 쓰는 시〉스틸컷
〈땅에 쓰는 시〉스틸컷

 

수상 장면을 마지막이 아니라 중간에 넣었어도 괜찮았을 것 같더라고요.

정말 고민이 많았던 지점이죠. 이번이 세 번째 영화인데 원래 제 스타일도 아니었고요. 그런데 영화가 정영선 조경가의 사계절,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시간성 흐름 구조가 있었기에, 그걸 흐트러뜨리는 건 아니다 싶었어요. 수상 장면을 통해서 한국적 경관으로도 전 세계에 통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의미를 담았습니다. 사실 상 받는 것이 뭐가 중요한가요? 이 사람이 어떤 의미 있는 작업을 해서, 다음 세대에 그의 철학과 족적을 넘겨주는가가 주제잖아요. 우리는 오히려 우리 전통적인 한국적 경관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는데, 그래서 제발 공공기관에서 조경을 담당하는 분들에게 이렇게 해도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다, 제발 우리 것을 제대로 봐달라는 이야기를 작정하고 하려고 그렇게 영화 후반부에 넣었습니다. 기자님은 우드랜드 묘지 장면은 어떻게 보셨나요?

처음엔 우드랜드인지 몰랐죠. 그저 정영선 조경가가 작업한 공간 중 하나인가 했는데, 아니더라고요.

거기가 스톡홀름에 있는 우드랜드에요. 꼭 묘지 장면을 넣고 싶었어요.

왜 묘지 장면을 보여주고 싶으셨어요?

사실 조경가들이 가장 원하는 프로젝트 중 하나가 묘지래요. 산자들을 가장 크게 위로해줄 공간이 사실 묘지공원이잖아요. 망자를 보낸 슬픔, 황망함 이후 그들을 위로하는 공간이어야 하기에, 건축가는 물론 조경가에게는 꿈의 프로젝트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공공기관에서 묘지를 조경가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지 않다더라고요. 현충원 같은 대규모가 아니라면요. 요즘은 대부분 사설업체에서 진행해요. 이런 사설업체들은 경관을 고려하기보다 조금이라도 필지를 늘리는 것이 목표잖아요. 사실 정영선 선생님 고객 중에 기업 회장님들이 많아요. 좋은 프로젝트를 많이 하셨는데, 프라이빗한 공간이라 찍을 수는 없었습니다.(웃음)

오프닝 시퀀스에 나오는 나바호족의 시가 참 마음에 와닿더라고요.

데이비드 로텐버그의 「자연의 예술가들」이라는 책에 나오는 시예요. 서구가 인디언이라고 명명했지만, 원주민들의 삶 자체가 자연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문화잖아요. 자연은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선생님은 “생동하는 녹색일 때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세요. 겨울의 자연도, 봄의 자연도 모두 아름답다고요. 한순간도 아름답지 않은 순간이 없다는 것이 나바호족 노래에 기본적으로 담겨 있어요.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정영선 선생님이 시인이시고, 또 시를 정말 사랑하세요. 좋은 시를 만나면 모으시더라고요. 일정 분량이 모이면 엮어서 지인이나 고객들에게 선물하세요. 그 시집 이름이 「땅에 쓰는 시」이기도 합니다.

〈땅에 쓰는 시〉스틸컷
〈땅에 쓰는 시〉스틸컷

오프닝 시퀀스에서 아이가 뛰노는 장면도 좋고, 선유도공원도 좋고, 시가 함께 녹아 있어서 좋더라고요.

모든 것이 은유입니다. 미장센이고요. 아이가 공룡 티셔츠 입은 것도 은유에요. 예전에는 정수장이었던 공간이 공원으로 바뀐 시간, 아이가 품고 있는 우주라는 시간성, 이 모든 것이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표현되고 그것이 바로 나바호족의 노래에 담기는 거죠. 아까 ‘땅에 쓰는 시’ 이야기를 좀 더 부연하면, 선생님의 철학이기도 합니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우리 산하를 설명하실 때면 늘 대동여지도를 보여주세요. 그 시절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김정호가 이 국토와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도 제작을 시작한 거잖아요. 사람과 자연을 동시에 사랑하는 마음으로 평생 지도를 만들었으니, 지도 자체에 대한 아름다움도 있고, 만든 마음에 대한 아름다움도 있죠. 그 모든 것이 선생님 철학과 통하고 있어요. 오프닝 시퀀스 마지막 부분에 대동여지도를 잘 보면 선생님께서 작업한 곳들이 기표로 표현돼요. 마치 꽃이 피듯이요. 우리 땅을 매만지는 선생님의 사랑의 손길이라는 메타포죠. 단지 땅에 꽃과 나무를 심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심는 사람이라는 의미죠.

영화의 시작은 언제인가요?

2019년에 시작했으니 5년 동안 작업한 셈이네요.

정영선 조경가는 언제 처음 만나셨어요?

다른 작업을 하다가 2018년에 만났어요. 선생님 존재를 안 건 아주 오래됐죠. 제가 사랑하는 공간이 모두에 선생님의 손길이 묻어 있었으니까요.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전라도 함평 출신인데, 어릴 때 강화도 옆에 교동도라는 곳에 이사를 갔어요. 섬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타워팰리스 앞으로 나옵니다. 다른 나라에 온 것처럼 어마어마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어요. 가뜩이나 공간에 민감한 사람인데, 경관이 완전히 바뀌니 카오스였거든요.

그때 양재천이 저를 지켜줬어요. 선생님 작품이었죠. 또 제가 영화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할 때 예술의전당에 가서 살았어요. 그것도 선생님 작품이고요. 제주도 남자를 만나 결혼했는데, 첫 추억이 제주도 오설록 티뮤지엄이었어요. 역시 선생님 작품이었고요. 제가 태교를 했고 아이들과 늘 놀러다니는선유도공원을 비롯해 다산생태공원, 경춘선 숲길, 올림픽공원 등등 다 선생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게 없었죠. 서울에서만 작업하신 게 아니니 저 같은 ‘정영선 키즈’가 전국에 있겠죠?(웃음)

〈땅에 쓰는 시〉스틸컷
〈땅에 쓰는 시〉스틸컷

드디어 정영선 조경가를 만나셨는데, 첫인상은 어땠나요?

와, 이렇게 매력적일 수가! 다큐멘터리는 인물이잖아요. 저는 70대 후반의 선생님을 처음 뵀는데, 최고의 자리에 있는 그분의 유머러스함, 호방함, 스타일에 정말 매력을 느꼈습니다.

영화로 찍겠다고 하니 뭐라고 하시던가요?

정말 싫어하셨죠.(웃음) 당신이 기자 출신이기도 해서 그런지 굉장히 예민한 편이세요. 매체 인터뷰도 잘 안 하셔서 관련 자료가 은근히 적더라고요. 심지어 다큐멘터리는 카메라로 찍고, 화면에 나와야 하는 거니까 더 거절하셨죠.

어떻게 설득하셨어요?

다큐멘터리스트는 그런 게 숙명이죠. 매번 도망 다니시는데, 무기가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선생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한국 조경의 미래와 우리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선생님의 철학을 전달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그렇게 설득했습니다.

올해 초에 <어른 김장하> 김현지 PD와 김주완 기자를 인터뷰했는데, 김장하 선생님 역시 계속 거절하셨더라고요. 그런데 카메라가 끈질기게 따라다니니까, 어느 순간 포기하시면서 조건을 거셨대요. “절대 자신을 우상화해서는 안 된다”라는 조건요.

저도 그 영화 넋을 놓고 봤습니다. 다큐멘터리는 인물이 매우 중요한데, 그런 캐릭터는 그저 보여주기만 해도 전달이 되니까요. 저희도 그렇게 계속 말씀드렸죠. 심지어 영화 못 찍는 감독도 아니라고 어필하면서요.(웃음)

 

 

영화를 보면 정영선 조경가의 작업은 화려하지 않더라고요. 똑같은 높이의 나무, 꽃을 심는 공공기관의 조경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조경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더라고요.

영화를 통해 건축과 공간을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탐구하면서 자연의 요소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조경’이라는 분야가 얼마나 강력하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인지하게 됐어요. 대중들은 대부분 공간을 생각할 때 건축이라는 규모적 형태 혹은 화려한 디자인을 중요시하고 그것에 끌리는 경향이 있죠. 그런데 자연과 공간의 관계성 안에서 생각해 볼 때 사람들에게 더 좋은 공간을 전달해 주기 위해 ‘조경’이라는 분야, ‘조경가’라는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정영선 조경가와 함께 보낸 시간이 행복했을 거 같아요. 기억나는 에피소드나 혹시 담고 싶었지만 못 담았던 장면이 있다면요?

워낙 카메라를 싫어하셨기에 못 찍은 부분이 많죠. 제 원칙 중 하나가 절대 카메라를 함부로 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카메라를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권력 구도가 생겨요. 자신의 이야기도 아니니까 정말 가능할 때 카메라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생님께 특히 감동받은 부분이 있죠. 꽃이나 나무를 보면서 환호, 탄성, 감동의 소리를 하실 때예요. “아이 예뻐라”라고 숨길 수 없이 표정이 바뀌더라고요. 이런 감동적인 순간들은 요청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정영선 선생님이 늘 생에 대해 감사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소녀처럼 감사하는 분이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죠. 영화 후반부에 ‘다큐의 신’이 보내준 것 같은 기적적인 순간도 영화에 있으니 꼭 극장에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웃음)

 

(위에서부터)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선유도공원, 서울아산병원, 경춘선숲길. (사진 제공=영화사 진진)
(위에서부터)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선유도공원, 서울아산병원, 경춘선숲길. (사진 제공=영화사 진진)

<이타미 준의 바다>,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에 이어 세 번째 다큐멘터리입니다. 다큐멘터리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시대성, 시대 의식 이야기를 많이들 하시죠. 그런데 저에게 다큐멘터리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미래세대에게 바치는 연서입니다. 저 역시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할 때 극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제가 건축과 공간에 예민해서 미장센을 제 영화에서 주요한 방식으로 채택했기에 영국 캠브리지영상대학원으로 떠났습니다. 건축과 공간성을 내 작품에서 어떻게 더 잘 쓸까를 공부한 시간이었어요. 그러다가 제주도 남자를 만나서 이타미 준 선생님의 건축물들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됐어요. 현대건축물 중에 이렇게 공간과 경관을 존중하면서 낮은 자세로, 또 방향은 사람들을 포근히 안아주는 공간이 있을까? 이타미 준 선생님은 사람이 괴로운 존재라는 걸 아셨고, 그 존재를 따뜻하게 위로하는 작업을 했던 분이란 걸 알게 됐죠. 충격과 감동이었습니다.

용기를 못 내다가 시간이 지나고 신문에서 선생님 부고를 봤어요. 더 늦기 전에 선생님 이야기를 하겠다고 따님을 찾아간 것이 <이타미 준의 바다>로 나온 거죠.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역시 더 좋은 도시, 생태도시라는 철학을 전하고 싶었고요. 이번 <땅에 쓰는 시> 역시 정영선 선생님이 걸었던 산책길을 우리가 걸어가는 여정입니다. 마치 이타미 준 선생님의 따님이 그 정신을 이어받은 것처럼요. 우리 아이들을 위해 더 좋은 공간, 건축물이 생겨나고 공공건축이 바뀌면 좋겠어요. 저의 예술 방식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나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할 따름이죠. 물론 어렵고 고통스럽지만요.

드론같이 좋은 장비도 보편화되면서 다큐멘터리 질이 점점 높아져요. 다큐멘터리가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물론 멋진 드론샷이 많죠. 하지만 저는 기술적인 건 전혀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정말 중요한 건 자세죠. 어떤 자세로 자연을, 건축물을, 이 사람을 바라보고 어떤 앵글로 담을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타미 준 선생님은 따님에게 “건축은 손으로 그리는 거고 그 결과물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위한 작품이 되는 거다. 자신의 손으로 그리는 그것이 타인의 인생 공간을 짓는 설계도가 되는 거니까 손을 가진 자신 자체가 아름다운 사람이 돼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그렇게 하지 못하지만, 제 영화의 시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어떻게 보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조금 더 아름다운 모습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기술적인 부분은 그다음이죠.

 

돌아 보니 얼추 3년 터울로 영화를 찍고 계시네요. 차기작은 2027년에 나오려나요?(웃음)

실제로 2027년에 나올 예정인 작품도 있고요. 그전에 나올 것도 있습니다. <고건축 프로젝트>(가제)는 TV나 OTT 플랫폼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최대한 빨리 작업하려고 해요. 속초의 꽃화가로 불리는 김종학 선생님 이야기도 있어요. 속초와 설악산, 꽃, 나무, 생명 등 자연을 예술로 보여주는 영화가 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볼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국 경관이라는 것, 우리의 자연적 요소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찌 보면 우리 삶의 중요한 요소가 되는지를 정영선 선생님의 시선과 목소리를 통해 잘 전달됐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하지만 최대한 열심히 담았으니 극장에서 보시고 따뜻한 위로를 받는 2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윤상민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