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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명화] 임산부와 남편, 꼭 함께 보세요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

성찬얼기자

부부가 함께 영화를 봅니다. 멜로물을 보며 연애 시절을 떠올리고, 육아물을 보며 훗날을 걱정합니다. 공포물은 뜸했던 스킨십을 나누게 하는 좋은 핑곗거리이고, 액션물은 부부 싸움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학습서입니다. 똑같은 영화를 봐도 남편과 아내는 생각하는 게 다릅니다. 좋아하는 장르도 다르기 때문에 영화 편식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편집자 주-


거두절미하고 말하겠다. 우리 부부에게 2세가 찾아왔다. 임신을 하고 보니 안정기라 느껴지는 시기가 없었다. 미루고 또 미루다 배불뚝이가 되고서야 수줍게 고백한다. 사실 지인들에게도 100% '임밍아웃'하지 못했다. 씨네플레이 독자들이 먼저 알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게 생겼다. “임신했어”라는 말이 부끄러워서이니 지인들은 서운해도 조금만 참아주길.

 

어느덧 임신 8개월 차. 나름 순탄한 임신 생활을 지나고 있다. 그 흔한 입덧도 2주 만에 짧고 약하게 지나갔고, 만삭이 가까워가지만 허리 통증도 딱히 없다. 철분제 부작용, 방광염, 두통, 간지러움... 임신 by 임신이라고 하는 개개인별 특이 증상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남편에게 자주 내뱉는 말이 있다. 힘든 시기를 보내는 임산부들이 보면 기가 찰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자기가 임산부의 고통을 알아?

독자분들께 임신을 고백합니다. 임신을 하고보니 임신을 다룬 영화가 보고 싶었습니다.
독자분들께 임신을 고백합니다. 임신을 하고보니 임신을 다룬 영화가 보고 싶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 속 한 장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 속 한 장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에서는 그 일이 일어난다. 상상만 해오던 그 일. 바로 남성의 임신이다. 히야마 켄타로(사이토 타쿠미)는 광고 회사에 근무 중인 일도 잘하고 야망 있는 캐릭터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몸이 좋지 않음을 느끼고 병원을 찾아 정밀 검사를 받는다. 그리고 충격적인 진단을 받게 되는데, 다름아닌 임신 판정이다.

엄마가 될 사람은 프리랜서 작가인 세토 아키(우에노 주리). 갑자기 찾아온 아기인 만큼 켄타로는 낙태부터 생각한다. 하지만 산부인과에서는 파트너의 동의를 얻어야 중절 수술이 가능하다는 말을 한다. 켄타로는 머리가 어질하다. 내가 임신이라니. (드라마상 설정은 남성도 낮은 확률로 임신이 가능하다는 배경)

게다가 심한 입덧까지 시작된다. 호르몬 변화로 갈수록 수염은 덥수룩해지고 감정은 이랬다저랬다 널뛰기를 한다. 이러한 변화는 회사 일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회사 프로젝트 업무에 지장을 주게 되며 라이벌에게 업무까지 뺏기게 된다. 회사 에이스 켄타로는 졸지에 하찮은 잡일만 도맡아 하는 처지로 전락해 버렸다. 이 모든 것이 임신을 안 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겪어보지 않으면 공감하지 못할 일

대개 요즘 남편들은 와이프의 몸의 변화나 감정의 변화에 대해 잘 알고 또 잘 공감한다. 짧다면 짧겠지만 10개월이라는 임신 기간 동안 와이프를 옆에서 봐온다면 자연스레 습득되는 지식일 테다. ‘입덧이 이렇게 힘들구나’ ‘몸이 무거워지면 자는 것도 힘들구나’ ‘튼살 때문에 우는 와이프를 보니 마음이 아프구나’ ‘임신에는 별의별 증상이 다 있구나’ ‘우리 와이프 참 대단하구나’.

임산부 체험을 해 본 남편. 요즘은 남자들도 '아주 잠깐이나마' 임신을 경험해 볼 수 있는 통로가 있답니다. 물론 저걸 차고 2개월 정도는 일상생활을 해야 제대로 느낄 테지만 말이죠.
임산부 체험을 해 본 남편. 요즘은 남자들도 '아주 잠깐이나마' 임신을 경험해 볼 수 있는 통로가 있답니다. 물론 저걸 차고 2개월 정도는 일상생활을 해야 제대로 느낄 테지만 말이죠.

 

하지만 와이프의 사회적 변화에 대해서는 놓치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그랬다. 앞서 말했지만 매우 순탄한 임신 과정을 지나온 나다. 하지만 회사에서 겪는 문제는 또 다른 문제다. 육아 휴직을 말하기까지의 어려움. 임신으로 인해 배제된다는 불안감. 휴직 후 복직에 대한 두려움.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꽤나 큰 스트레스였다.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 또한 30대가 상승기대. 사회초년생 20대가 적응하느라 그저 바빴다면 30대는 회사에서 서서히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시기다: 하지만 남성과 다르게 여성은 그 시기에 임신을 해야 한다. 물론 '해야 한다'는 말이 필수라는 말은 아니다. 또한 기혼자에 한해서, 딩크족이 아니라는 전제 하의 이야기다. 커리어를 위해 임신을 미루다 보면 노산이 돼 버리기 일쑤. 노산은 아닌 것 같아 임신을 선택해버리면 '경력 단절'이라는 무서운 단어를 마주하게 된다.

물론 남편에게도 이러한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아까워” “일에 대한 욕심이 너무 큰 걸까” “복직하면 지금처럼 일 못하겠지”. 남편도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다. 원한다면 아이 없이 사는 것도 괜찮다는 위로도 전해왔다. 그럼에도 회사 내에서 겪는 사소한 기류나 감정까지는 남편이 알지 못한다. 설명한다고 해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것들은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른다. 정말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 속 한 장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 속 한 장면.

하지만 켄타로는 이러한 세세한 것들을 ‘직접’ 경험하게 된다. 육아 파파가 회식자리에서 일찍 빠지는 것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보내기도 했던 그는, 자신이 마주한 현실에 새로운 감정에 휩싸인다. 임신을 하자 미묘하게 달라진 상사의 분위기. 이왕 가졌으니 잘 키워보라는 동료들의 영혼 없는 한마디. 회사 내에서 미묘하게 달라져 있는 자신의 위치. 회사 에이스였던 켄타로는 결국 임신이 자신의 발목을 잡는다 생각한다.

 

켄타로는 해피엔딩, 그럼 나는?

임신중절까지 생각했던 켄타로는 의외의 곳에서 돌파구를 찾는다. 자신의 불편한 경험을 바탕으로 남성 임부복, 수유, 요실금 패드, 임산부 표식 등의 정보를 교환하는 카페를 만든 것. 이는 몇 안 되는 소수의 남성 임산부들에게 큰 호응을 얻는다. 뿐만 아니라 켄타로는 회사 프로젝트의 홍보 모델까지 자처하고 나선다. 임신 때문에 설 자리가 사라졌던 켄타로는, 임신 덕분에 설 자리가 생겼다. 그렇게 켄타로는 승승장구한다. 심지어 남성 임산부의 대명사로까지 등극하게 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 속 한 장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 속 한 장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 속 한 장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 속 한 장면.

 

그렇다면 여성은? 드라마 설정상 남자도 아기를 가질 수 있다라는 배경이지만, 이는 그리 흔하지 않은 일로 다뤄진다. 즉 드라마에서 남성의 임신은 특별한 일로 치부된다는 것. 하지만 현실 속 여성의 임신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순리로 여겨지고 있다. 내가 있는 것도 엄마가 나를 임신했기 때문. 나를 낳아준 엄마가 있는 것도 할머니가 임신을 했기 때문. 설정 자체가 다르다 보니 드라마에서 켄타로는 현실 속 여성과는 달리 ‘살 길’이 마련됐다.

하지만 여성은?

출산과 육아에 대한 비장한 각오를 밝히는 켄타로에게 여자 동료들은 말한다. “여자들은 진작부터 그러고 살았어” 이들의 말처럼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은 여성들의 희생과 헌신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여 왔던 세상을 향해 또렷한 어조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