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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명화] 산후도우미 없었으면 어쩔뻔 〈툴리〉

씨네플레이

부부가 함께 영화를 봅니다. 멜로물을 보며 연애 시절을 떠올리고, 육아물을 보며 훗날을 걱정합니다. 공포물은 뜸했던 스킨십을 나누게 하는 좋은 핑곗거리이고, 액션물은 부부 싸움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학습서입니다. 똑같은 영화를 봐도 남편과 아내는 생각하는 게 다릅니다. 좋아하는 장르도 다르기 때문에 영화 편식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편집자 주-


 

8월 6일. 그러니까 한 달여 전 우리 부부의 2세가 태어났다. 끔벅대는 눈, 오물대는 입. 꼼지락대는 손과 발. 내 뱃속에서 이렇게 귀여운 아기가 나왔다니! 2세 앞 객관성을 상실해 버리는 고슴도치 맘의 탄생이랄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다는 표현이 100% 와닿는 요즘이다.

 

조캉스 끝내고 나니 실전 육아 시작

 

하지만 이러한 마음은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첫날 조금 무너졌다. 대신 육아 선배들의 말들이 번뜩 생각났다. ‘뱃속에 있을 때가 좋을 때다.’

 

고상하게 조캉스(조리원+바캉스)를 즐길 때에는 귓등으로 들었던 조언들. 귀여운 아가를 두고 '아니 무슨 실례되는 말을' 싶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고 바로 실감했다. 하. 조리원에서는 그렇게 순한 아기가 집에 와서는 왜 이렇게 우는 거야. 아기야. 너 진짜 왜 그러니!

 

〈툴리〉의 마를로는 삼남매를 케어해야 한다.
〈툴리〉의 마를로는 삼남매를 케어해야 한다.

 

영화 <툴리>에도 아기가 운다. 하지만 여기는 한 명이 아니다. 갓 태어나서 밤낮없이 울어대는 막내를 필두로 신발 하나 제대로 못 찾는 첫째 딸. 남들과 조금 다른 둘째 아들까지 애를 먹인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무관심한 남편. 아이들이 울어대도 별 반응이 없다. 자신 외엔 아무 관심도 없어 매일 밤 게임에 빠져사는 남편. 그야말로 남의 편이 따로 없다. 이에 여자 주인공이자 삼남매의 엄마 마를로(샤를리즈 테론)는 나 홀로 육아 전쟁에 지쳐간다. 혼자 새벽에 깨서 신생아를 돌보고, 낮에는 초등학생 딸과 유치원생 아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다. 게다가 집안일까지 하다 보면 하루가 순삭. 녹초가 되어 있는 마를로에게 아이들은 비수를 꽂는다.

 

“엄마 몸이 왜 그래?” 출산으로 인해 축 처지고 부푸른 뱃살. 언제 다듬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푸석푸석한 머리. 관리할 틈은커녕 잠잘 시간도 없어 온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울고 싶지만 육아에 지쳐 그럴 힘도 남아있지 않다.

 

마를로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일지 모르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마를로보다 악조건이 있다. 바로 첫아이라는 것.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미안하다는 유명한 광고 카피도 있지 않는가. 그렇다. 부모가 처음인 우리 부부는 작고 작은 존재 앞에서 쩔쩔매고 있다.

 

똥을 쌌길래 엉덩이를 씻기고 다시 기저귀를 채워놨더니 바로 똥을 싸 버리는 소화력. 먹자마자 왜 또 밥을 달라는 건지. 배탈이라도 나는 건 아닐까 전전긍긍. 자는 것 같길래 침대에 조심스레 눕혔더니 응애~ 등 센서가 발동. 저녁엔 또 얼마나 용을 쓰는지. 끙끙 앓는 소리에 어디 아파서 그러나 싶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우리의 구원자. 그가 나타났다.

 

몸이 스무 개라도 모자란 마를로를 위해 그녀의 오빠는 야간 보모 고용을 권유한다. 아이는 엄마가 돌봐야 한다고 철썩같이 믿어왔던 마를로는 고민한다. 하지만 결국 오빠의 말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야간 보모 툴리(맥켄지 데이비스)가 마를로의 집으로 오게 된다.

 

툴리는 마치 자신의 가족처럼 삼남매를 돌봐 준다. 오자마자 마를로에게 “자러 가라”는 말을 한다. 육아에 지친 마를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수면이었던 것. 그리고 툴리는 능숙하게 아이들을 돌봐주고 청소까지 한다. 아이를 돌보는 것이 그녀의 직업이지만, 그녀는 마를로의 짐까지 덜어주려 노력한다. 빨래도 돌리고, 주방에서 음식도 만든다. 아이들과 마를로를 위해 맛있는 컵케이크까지 구워 낸다. 그녀는 그렇게 마를로에 생활에 스며든다.

 

조리원에서 나온 당일. 그 지옥 같은 하루가 끝이나자 우리 부부의 집에도 산후 관리사가 왔다. 처음에는 낯선 이가 우리 집에 온다는 것이 불편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산후관리사를 신청하지 않는 지인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산후관리사가 오고 나서 모든 걱정은 단숨에 사라졌다. 산후관리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임산부나 혹 아이를 가질 여성이라면 나의 말을 명심하기 바란다) 다시 한번 말한다. 산후관리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나의 툴리, 그러니까 나의 관리사님도 오시자마자 나를 침실로 밀어 넣었다. “산모님. 제가 있는 동안은 푹 쉬세요. 무조건 쉬셔야 해요.”

 

〈툴리〉 툴리는 삼남매뿐만 아니라 마를렌까지 돌본다.
〈툴리〉 툴리는 삼남매뿐만 아니라 마를렌까지 돌본다.

아이만이 아니에요, 당신을 돌보러 왔어요

 

관리사님은 9시에 오셔서 6시에 퇴근을 하신다. 새벽 내내 아기 밥을 주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잔 나에게 관리사님은 한줄기 빛과 같다. 관리사님이 출근을 하시면 나는 곧장 침실로 들어간다. 푹 자고 나면 관리사님이 차려주시는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힘을 내서 관리사님과 이야기도 하고 아이에 대해 상담도 한다. 관리사님이 없었다면 나는 누구와 대화를 하고, 누구와 밥을 먹고, 누구와 아이에 관해 이야기를 했을 것인가. 남편의 퇴근만 기다리며 아기가 울 때 같이 따라 울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툴리〉
〈툴리〉

 

내 밥을 챙기고, 내 건강을 챙기고, 내 수면시간을 챙기고. 아이뿐만이 아니라 관리사님은 나의 보모이기도 한 것이다. 아기에 대해 갖는 걱정들에 관해서도 정말 진심으로 공감해준다. ‘우리 아기는 왜 이렇게 용을 쓸까요’라는 말에 ‘용쓰는 애기들이 더 잘 크더라’라고 답해줬고 ‘우리 아기 건강하게 잘 클 수 있겠죠’라는 쓸데없는 걱정에도 ‘우리 oo이는 뭐든 다 일등으로 잘 할 것 같아요’라며 다정한 말로 다독여줬다.

 

마를로에게 툴리도 보모 그 이상이었다. 20대 툴리는 마를로에게 생기를 전해줬다. 하루 종일 아이와 있다 보면 원시인이 되는 기분이라고 말하는 마를로에게 툴리는 엄마가 아닌 여자로서의 삶을 알려준다. 마를로를 데리고 외출을 하기도, 아이를 돌보는 힘듦 이외의 세상을 알려주기도 한다. 마를로는 그렇게 툴리를 통해 회복한다.


갓 태어난 아기만큼이나

갓 시작한 엄마에도 누군가가 필요해요

 

영화 후반부 마를로는 사고를 당하게 되고, 그 때문에 병원을 찾게 된다. 하지만 병원에서 듣게 된 말은 가히 충격적. 의사는 마를로의 남편에게 마를로가 과로와 수면 부족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남편은 의아하다. 야간 보모의 도움 덕분에 잠도 자고 상태가 나아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 하지만 의사의 말이 맞았다. 툴리는 마를로의 결혼 전 성(미국은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따라감)이자 마를로가 만들어낸 환상이었던 것. 툴리가 했던 일들은 마를로가 해내고 있었고, 그래서 과로 증세와 수면 부족 증세가 나타났던 것이다.

 

이게 웬 스릴러 같은 전개냐 싶지만 아기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으로 눈물이 났던 순간이기도 하다. 아기를 키워보니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영역이 꽤나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왜 우는지, 왜 칭얼대는지, 왜 안 자는지. 말을 못 하는 아기를 데리고 씨름하다보면 멘탈이 와르르 무너지기 마련이다. 이유를 찾으려고 해도 도무지 찾을 수 없는 것들이 다반사. 마녀시간이라는 말도 있다. 초저녁시간에 몇 분 혹은 몇 시간 동안 칭얼대다가, 짜증 내다가, 악을 쓰고 울다가. 계속 안아달라고만 하는 것이 마녀시간인데 이 시간은 해답이 없다는 것이 모두의 대답. 그저 견디면 지나간다는 것이 겪어 본 이들의 조언. 이런 시기에 누군가가 옆에 있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이 툴리가 아니었을까.

 

툴리가 다녀간 후 역시 같은 일상이 반복된다. 하지만 그 속에서 마를로의 집은 평안을 얻는다. 남편은 게임 대신 셋째 아이를 돌봐주기 시작했고, 둘째 아들의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좋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육아가 힘들지만 행복한 얼굴로 음식을 만들고 남편과 교감하는 장면으로 영화 <툴리>는 막을 내린다.

 

영화 <툴리>는 막이 내렸지만, 우리 부부의 육아는 서막이 열렸다. (이 글을 쓰는 기준으로) 산후관리사는 내일이 마지막 출근. 우리 부부는 이제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육아를 해야 한다. 아. 물론 남편이 출근한 시간은 오롯이 나 혼자 감내해야 할 부분일 터. 우리의 툴리가 떠난 나날들은 과연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물론 산후관리사님이 단단하게 다져주신 덕분에, 내 멘탈은 그래도 버틸 힘이 있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갈 것인가. 두렵고 또 두려운 밤이 지나간다.

영화는 결말이라도 있지

육아의 끝은 보이지도 않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