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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명화] 사기를 당했을 땐 〈시민덕희〉처럼

김지연기자

부부가 함께 영화를 봅니다. 멜로물을 보며 연애 시절을 떠올리고, 육아물을 보며 훗날을 걱정합니다. 공포물은 뜸했던 스킨십을 나누게 하는 좋은 핑곗거리이고, 액션물은 부부 싸움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학습서입니다. 똑같은 영화를 봐도 남편과 아내는 생각하는 게 다릅니다. 좋아하는 장르도 다르기 때문에 영화 편식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편집자 주-

 


남편은 가구를 제작하는 자영업자다. 싱크대나 붙박이장 등 각종 가구를 실측하고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의뢰가 들어오면 계약서를 쓰고, 실측을 한 뒤 가구를 짜서 넣어주면 의뢰인이 돈을 보내주는 것이 일반적 순서. 하지만 우리의 사고로는 도무지 이해 안 되는 손님도 있다. 가구를 짜서 보냈는데 4개월 동안 돈을 주지 않은 한 손님에 대한 이야기다. 이놈은(사기꾼에게 존칭을 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4개월 동안 “돈 준다” “돈 준다” 말만 하다 결국에는 남편 번호를 차단하고 잠수를 타기에 이르렀다.

 

사기당한 사람이 '을'이 되는 기가 막힌 사연

 

“준다” “준다” 말만 하고 돈을 주지 않은 데에는 여태껏 그렇게 살아왔음에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아서 일 것이다. 인테리어 업자인 이놈(손님)에게 당한 게 남편이 처음이 아니었을 거란 말. 구두로 계약하고 후불제로 대금을 치르는 업계의 관행을 이용해 왔을 테고, 돈을 받는 과정이 힘든다는 걸 아는 피해자들 또한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라고 생각해왔을 테다. 어찌 됐든 전자 후자 모두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을이 되는 기가 막힌 상황이고 피해를 당했지만 누구 하나 도와주는 이 없는 가여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홀로 나서기에는 법은 어렵고 법원이나 경찰서나 검찰청의 문턱은 높디높기만 하다.

 

〈시민덕희〉​
〈시민덕희〉​

영화 <시민덕희>의 덕희(라미란)도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잃는다. 돈이 필요한 절박한 마음을 이용한 보이스피싱 범죄 때문이다.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덕희는 가게가 불에 타 버려 급하게 대출 상품을 알아보다가 은행원 손 대리를 알게 된다. 하지만 손대리는 보이스피싱범. 그렇게 덕희는 손대리에게 보이스피싱을 당해 3200만 원을 날리게 됐다.

 

〈시민덕희〉의 덕희
〈시민덕희〉의 덕희
〈시민덕희〉의 '손대리'
〈시민덕희〉의 '손대리'

덕희에게 3200만 원은 포기할 수 없는 돈이다. 이 돈이 없으면 당장 거리에 나앉게 된다. 게다가 덕희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두 아이까지 있는데 거처를 잃은 덕희는 아이들을 공장에서 재우다 아동 학대 의심 신고까지 당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덕희를 도와주는 사람은 없다. 직접 은행에도 찾아가고 경찰서에도 찾아가지만 보이스피싱범은 찾기 힘들다는 말만 듣게 된다. 제대로 된 보상 방법은커녕 수사 진척 상황도 듣지 못한다. 경찰이 덕희에게 하는 말은 단 하나다. “다른 사건 처리하느라 바쁩니다. 다음에 오세요.”

〈시민덕희〉
〈시민덕희〉

 

다 필요 없고! 우리가 잡는다

 

그 와중에 덕희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중국 상하이에서 집단 조직범죄에 가담하고 있는 손대리다. 실상은 중국에 고액 알바라는 말에 중국에 갔다가 납치를 당하고 감금 당하고 착취까지 당하고 있는 살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피해자 중 한 명이다. 손대리는 탈출을 하기 위해 덕희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제일 돈을 빨리 보냈다는 이유로 실행력, 추진력이 좋다며 덕희에게 몰래몰래 제보를 해온 것이다. 자신을 구출해주면 돈도 찾을 수 있을 거란 말과 함께. 하지만 자신의 돈을 앗아간 손대리의 말을 덕희는 믿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덕희는 어떻게든 절박한 상황. 돈을 돌려받고 나쁜 놈들을 혼내 주기 위해 덕희는 결국 두 팔 걷고 나선다.

 

〈시민덕희〉
〈시민덕희〉

그렇게 보이스피싱 총책을 잡기 위해 덕희는 상하이로 간다. 잠복근무를 하며, 변장도 해서 드디어 손대리를 발견한다. 손대리를 통해 증거 사진을 받게 되고, 이를 경찰에게 보내자 그제야 공권력은 움직인다. 하지만 경찰이 상하이로 오기 전에 총책은 도망가버리는데 이에 덕희는 경찰을 기다리고만 있지 않는다. 위험천만하지만 총책을 쫓고 쫓는다. 그러다 공항에서 총책을 맞닥뜨리며 맞아 죽기 직전까지 가게 된다. 하지만 덕희는 총책을 놓치지 않는다. 총책의 여권까지 씹어 먹으며 그의 도주를 막는다. 그리고 그제야 도착한 경찰. 덕희는 그렇게 제힘으로 보이스피싱 일당을 검거한다.

남편도 증거를 모으기 시작했다. 4개월간 대금을 주지 않고 질질 끌었던 내역을 수집했다. 통화 목록과 문자 내역, 그리고 물건을 만들어 보냈다는 견적서와 여러 정황들. 그 증거를 들고 경찰서로 향했다. 거기에는 아내인 나도 따라나섰다. 고소장 작성은 나의 몫. 기자 짬밥으로 쌓인 필력으로 고소장도 깔끔하게 작성했다. 그리고 그 고소장은 수사과로 넘어갔고, 수사관의 판단 아래 사기죄. 즉 형사 사건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수사관의 전화에 돈 떼먹은 놈(?)은 며칠이 지나지 않아 입금 해왔다. 4개월간 질질 끌며 차단까지 박아 놓고는 수사관 전화 한 통에 날름 입금을 해버리다니. 참 허탈했다. 돈을 받았으니 고소를 취하하라는데 4개월간 멍든 가슴은 도통 취하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찌 됐든 피해금을 찾았고 고소까지 가지 않고 해결돼 가뿐한 마음도 들었다. 그날 우리 부부는 축배를 들었다.

 

남편에게 아내가 있듯

덕희에겐 가족 같은 친구들이 있지

〈시민덕희〉
〈시민덕희〉
〈시민덕희〉
〈시민덕희〉

덕희에게도 조력자가 있다. 바로 세탁소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다. 동료들은 상하이까지 함께 따라나서며 덕희를 돕는다. 그중에서도 상하이에서 온 조선족 동료가 단연 히든카드다. 상하이에 거주하는 동료의 동생까지 합세하여 보이스피싱 검거에 큰 공을 세운다.

물론 오롯이 제힘으로 보이스피싱 일당을 잡은 덕희와 우리 부부는 비교할 바가 못된다. 수사과로 넘어가도 하세월이라는 다른 고소 후기들을 들어볼 때 우리 부부는 나름의 운빨로 수사가 빠르게 진행됐고 돈도 빠르게 돌려받았기 때문. 모두가 외면한 덕희와는 차별점이 있다.

하지만 돈을 떼먹은 놈을 잡았다는 것은 매한가지가 아닐까.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도 꼭 닮았다. 덕희는 그렇게 3500만 원을 찾았고, 우리 부부도 300만 원가량을 찾게 됐다.

크레딧이 올라가고 <시민 덕희>는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됐음을 알리는 설명이 띄워지는데 애초 보이스피싱범 검거 시 내걸렸던 억대 포상금이 덕희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는 후일담도 전해진다. 정확한 이유는 나오지 않지만 덕희에게 또 어떤 답답함이 직면됐음을 알려주는 대목이기도 하다.(*이후 실제 주인공 김성자씨는 2024년 8월경 경찰청이 아닌 국민권익위원회의 포상금을 받았다-편집자 주)

“아니, 포상금은 또 왜 안 줬데?” 4개월간 돈을 못 받았을 때의 답답함. 그 무엇과 맞닿아 있는 <시민 덕희>남편은 덕희의 심정에 또 한 번 빙의한다.

나쁜 놈 잡는다고 끝이 아니야

이런 인간들은 계속 있을 텐데

세상은 언제 변하는 걸까

참 답답하다 갑갑해


 매일신문 임소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