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함께 영화를 봅니다. 멜로물을 보며 연애 시절을 떠올리고, 육아물을 보며 훗날을 걱정합니다. 공포물은 뜸했던 스킨십을 나누게 하는 좋은 핑곗거리이고, 액션물은 부부 싸움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학습서입니다. 똑같은 영화를 봐도 남편과 아내는 생각하는 게 다릅니다. 좋아하는 장르도 다르기 때문에 영화 편식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편집자 주-
‘제왕절개냐, 자연분만이냐’ 출산이 가까워 오며 생겨난 고민. 아마 대부분의 임산부, 그중에서도 초산모라면 한 번쯤 고민했을 법한 문제다. 제왕을 하자니 후고통이 무섭고, 자분(자연분만)을 하자니 선고통이 무섭다. 하지만 자분에는 한 가지 더 무서운 점이 추가된다. 실패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실제 나의 주변에는 자분을 시도하다 제왕으로 간 케이스 꽤나, 아니 아주 많다.
‘날짜는 언제로 하지’ 제왕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할지라도 고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새로운 고민이 또 하나 생성된다. 그도 그럴 것이 병원에서 내어준 출산일 선택지는 장장 14일이다. 38주부터 40주까지 그 언제로 선택해도 무방하다는 말. 이거 참, 제비뽑기라도 해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지끈대던 와중 지인들의 말들이 남산만 해진 나의 배로 날아든다.
사주 보고 날짜 받아서 애 낳는 게 좋지 않나?
과학과 사주 사이. 지인들과 설전을 벌이다 보니 문득 이 영화가 생각났다. 이 영화는 인질극이다. 하지만 여타 인질극과는 조금 다르다. 인질극에 ‘사주’라는 소재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수사에 무슨 점을 치나 황당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영화는 실화 기반이다. 1978년 부산에서 실제로 일어난 정효주(본명) 유괴사건이 영화의 모티브. 부산 효성 초등학교 학생이던 은주(극 중 이름)는 하교를 하다 친구와 함께 모르는 아저씨의 차에 올라탄다. 친구는 집 앞에 내려졌지만 은주는 그 길로 돌아오지 못한다. 은주는 부산에서 손꼽을 정도의 부잣집 딸이었다.
가족들은 유명한 점술집을 돌아다니며 아이의 생사 여부를 확인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이미 아이가 죽었다는 절망적인 답변뿐. 마지막으로 도사 김중산(유해진) 도사를 찾아가는데, 거기서 가족들은 한줄기 희망을 본다. 김 도사는 정확하게 말한다. “은주는 분명히 살아 있습니다.”

한편 은주의 수사도 시작됐다. 해당 사건에는 공길용(김윤식) 형사가 배정됐다. 이 또한 우연은 아니다. 은주 부모의 특별 요청이 있었기 때문. 은주 부모는 말한다. “김 도사님이 예언하셨어요, 아이를 찾으려면 무조건 공 형사님 사주라야 한다고요.”
그런 게 어딨어
나는 그런 거 안 믿어
남편과 나는 비과학적인 영역에 대해 깊은 불신을 가진 사람들이다. 물론 점을 보고, 사주를 보고, 타로를 보는 것에 대한 반발감은 없다. 그저 우리와 맞지 않다고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신년이면 토정비결을 보고, 큰일을 앞두면 도사님께 전화하는 친구들이 여럿이다. 맹신만 하지 않는다면 도사님의 말로 위로를 받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도 해 봤다. 하지만 도사님의 전화번호를 쥐여주는 친구에게는 늘 똑같은 대답을 한다. “나는 안 할래~ 괜히 안 좋은 이야기해주면 신경 쓰일 것 같아.”
사실 솔깃할 때도 많다. 결혼한 지 꽤 됐지만 임신 소식이 없어 스트레스를 받던 친구가 도사님의 말대로 2023년에 아기를 가지게 됐다는 소식을 듣는다던가, 사주팔자로 보면 처 자리가 비었지만 올해 만나는 여성과는 결혼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도사님 말대로 결혼을 하게 된 친구의 오빠라던가. 회사 선배의 이런 말을 들을 때도 솔깃하다. “항상 여행 다니는 친구 셋이 있는데, 우리 성질이 서로를 보완해 주는 성질이더라고. 물, 불, 나무, 이런 거 있잖아. 그런데 우리 셋 중에 ‘나무 목’의 기운을 가진 애는 아무도 없거든? 그런데 생각해 보니 우리가 여행 다녔던 곳들이 나무가 많고 숲이 우거진 곳이더라고. 그래서 항상 즐겁고 무탈하고 행복하고 잘 맞았던 것 같아.”
거기에다 화룡점정은 모성애를 자극하는 이야기들. “태어날 아기에게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사실 없잖아. 뭐 성격을 좋게 해준다던가, 외모를 예쁘게 해준다던가. 그건 다 타고나는 영역이지만 사주로 좋은 날 받아서 아기 태어나게 하는 건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거지 않나?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도 있잖아.”
이거 참 신통하네

공길용(김윤식) 형사도 처음에는 답답하다. 과학적 수사를 해온 수십 년이 부정 받는 느낌이랄까. 사주 때문에 이 사건에 배정됐다는 것 또한 웃기기가 짝이 없다. 어떻게 보면 경찰은 매우 과학적 유형의 사람이다. 증거를 보고 판단을 하고 수사를 진행하는, 그야말로 사주와는 정반대되는 인물이란 것. 하지만 공 형사는 어느 시점에 김 도사를 받아들인다. 바로 김 도사의 영험함 때문이다.
아이의 사주를 풀어보던 김 도사는 아직 아이가 살아있고, 보름째 되는 날 범인으로부터 첫 연락이 온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보름째 되던 날 김 도사의 말대로 연락이 오게 되고, 범인의 단서로 아이가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이에 공 형사는 흠칫한다. “이 정도면.. 같이 아이를 찾아봐도 되지 않을까?"

그에 비해 부산 경찰들은 아이의 생사보다 범인 찾기에 집중한다. 이유는 '실적 올리기' 때문. 서울에 특별 수사본부가 꾸려지고 서울 수사본부에서 회의가 시작되는데, 서울팀과 부산팀은 팽팽히 맞선다. 아이가 유괴된 시간은 흐르고 있는데, 공식적 수사팀은 서로 자신들이라고 말하며 치적 쌓기에 포커스를 맞춘다.
공 형사의 의견 또한 묵살된다. 이번 유괴 사건이 원한 때문이 아니라 급전 때문일 거라고 이야기하며 아이가 위험해질 수 있으니 비공개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를 부산팀과 서울팀이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다. 실적을 쌓으려면 공개 수사가 아무래도 수월하기에, 이들의 주장으로 수사는 결국 공개수사로 전환된다. 이런 한심한 상황 속 마음이 통하는 것은 공 형사와 김 도사 뿐이다. 아이를 살리려는 간절한 진심과 소신을 인정하게 된다.
그 와중에 김 도사는 또 한 번 활약을 한다. 잠결에 환영을 보게 되는데 유괴범은 반드시 밤에 잡아야 하며. 공범이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점괘를 내놓는다. 이에 공 형사와 김 도사는 한 팀이 되어 결국 범인을 잡는다. 은주는 무사히 가족 품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너는 어떡할 건데!
영화를 보고 나니 더 복잡해지는 마음. 김 도사의 활약을 보니 나의 귀는 더더욱 팔랑댄다. 하지만 남편의 한 마디에 또다시 주춤대는 이내 마음.
자, 우리가 날짜를 받았다고 치자!
근데 병원에서 그날 예약이 차있다고 하면 어쩔 거야?
찝찝한 마음으로 차선책을 찾을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