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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탈주〉 이제훈 배우 “나를 이만큼 한계에 몰아붙이는 작품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추아영기자
배우 이제훈 (사진 제공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영화를 보면서 다시금 꿈을 꾸고 싶고 열정을 불태우고 싶어요”. 배우로 활동한 지 어느덧 20여 년에 접어든 이제훈이 말했다. 그는 오랜 연기 경력이 무색하게 청소년 때부터 품은 꿈과 영화에 대한 사랑을 변함없이 실천해 왔다. 이번 영화 <탈주> 역시 미래가 불투명했던 시절을 기어이 버텨낸 그의 집념에 대한 부끄럽지 않은 응답이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걸고 탈주하는 북한 청년 규남 역을 연기하면서 배우가 되기 위해 꿈꿔온 인간 이제훈으로서의 삶을 투영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무릎 인대가 손상될 정도로 달리고 구르며 혼신의 힘을 다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물과 혼연일체가 되기 위해 고민했던 무수한 순간과 진심은 스크린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전달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 그의 절실한 믿음은 분명 스크린을 뚫고 나와 적어도 한 명의 관객인 나에게는 전달되었다. 오는 7월 3일 개봉하는 영화 <탈주>로 돌아온 이제훈 배우를 만나 인물 ‘규남’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배우 이제훈 (사진 제공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배우 이제훈 (사진 제공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도굴>(2020) 이후 햇수로는 4년 만에 영화로 복귀하셨어요. 오랜만에 관객들을 만난 소감을 들을 수 있을까요.

관객분들을 만날 수 있는 순간이 지금 시점에서 2주 정도 남아 있는데 매우 떨리네요. 언론배급 시사회를 통해서 큰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좋은 사운드로 들으니까 역시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하는 거구나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어요. 저는 많은 분들이 <탈주>라는 작품을 볼 수 있도록 열심히 홍보할 것 같고요. 그리고 무대 인사도 최대한 돌 수 있는 대로 많이 돌아서 관객분들이 어떻게 보셨는지 듣고 싶어요. 또 보시기 전이라면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이번 영화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이 영화의 각본을 권성휘 작가가 썼어요. 예전에 <점쟁이들>(2012)이라는 작품을 같이 했었는데요. 오랜만에 권성휘 작가님의 글을 읽는데, 이 작품이 스크린으로 보이게 된다면 관객들이 ‘영화 잘 봤다’하고 웃으면서 극장을 나오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감독님과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작품은 직선적으로 가는 영화니까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몰입하게 만들자, 관객들이 고통과 절망 속에 있는 규남이라는 인물을 계속 응원하면서 보게 만들자는 마음으로 의기투합했었어요.

 

이제훈(왼쪽)과 구교환. 〈탈주〉 스틸컷

 

우선 소망 이루신 거 축하드려요. 구교환 배우와 함께 연기하게 되면서 현장에서 본 구교환 배우의 이미지와 상상 속 구교환 배우의 이미지의 다른 부분이 있었나요?

구교환 배우는 작품을 통해서 보여지는 부분에서 매력이 너무 큰 사람이에요. 함께 작품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컸었는데요. 이 작품을 통해서 만나게 돼서 너무 신이 났었고요. 같이 작품을 하다 보니 구교환이라는 사람에 대한 매력도 굉장히 어마어마하더라고요. 저보다 형인데 어떻게 저렇게 순수할 수 있는지. (웃음)

영화를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눠 보면, 현상(구교환) 캐릭터의 온도 차이가 되게 극명하게 보여요. 처음에는 여유로우면서도 냉철하고, 어떻게 보면 좀 백조 같은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면, 후반부에 무언가를 쫓아가는 모습에 있어서는 되게 사자 같은 사람으로 보이죠. 구교환 배우가 완전히 다른 연기를 보여주는데, 진짜 배우로서는 구교환이라는 사람에 치일(어떤 대상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다) 수밖에 없죠. (웃음) 한 사람으로서도 형이 너무 재미있고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여주니까 제가 막 형을 따르면서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규남이가 바라보는 현상은 어떤 사람인가요?

현상은 규남을 계속 추격하고 바라보면서 음악을 사랑하고 피아노를 쳤었던 시절, 꿈을 꾸었던 시절을 떠올렸을 것 같아요. 지금은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현실을 살고 있는데, 규남이 목숨을 걸고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을 투영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 둘의 관계는 단순히 쫓고 쫓기는 관계만은 아닌 것 같아요. 서로 더 맞닿아 있고, 끈끈하게 얽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탈주〉 스틸컷

 

규남은 현상의 호의로 인해 사단장의 직속 보좌로 배정되었는데요. 전보다 편하게 살아갈 수도 있었는데, 목숨을 걸고 탈북할 만큼 절박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인간 이제훈으로서의 삶을 투영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배우를 꿈꾼 이유는 영화를 너무 사랑하고, 스크린을 통해 배우들의 좋은 면을 보면서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 일념으로 20대 초반부터 인정받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배우가 될 거야’라는 목표 하나로 삶을 살아간 거예요.

근데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저를 응원하는 사람보다는 걱정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던 것 같아요. 말리기도 했고요. 왜냐하면 보장된 삶도 아니고, 어떤 자격증이 있지도 않고, 누군가가 나를 선택해 줘야지 할 수 있는 일인 거잖아요. 게다가 집안이 풍족하지도 않았고, 가족들은 저를 기다려줘야 했어요. 그런 불확실성이 매우 큰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너무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 과정에 있어서 얼마만큼의 시간이 들지도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그래서 20대 중반에 학교도 다시 가고, 남들은 취업도 하고 군대도 가서 각자의 인생 설계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저는 매우 불투명했었어요.

저의 그런 것들이 규남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의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누군가로부터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는 방법밖에 없는 상황에서 설령 그것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하더라도 그게 과연 진실되게 원하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해봤을 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가 원하는 것을 해볼 기회라도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이라 생각해요. 규남이라는 인물에 충분히 공감했기 때문에 이 작품을 선택했고 그 인물을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탈주〉 스틸컷

 

이번 작품에서 북한말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궁금합니다.

저에게 북한말을 가르쳐준 20대 친구가 있어요. 실제로 함흥에서 태어나서 황해도에서 군 생활을 하고, DMZ를 통해서 탈북한 친구예요. 저는 그 친구에게 북한말에 관한 모든 것을 전수받았어요. 제가 <고지전>이라는 작품도 했었어요.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남북한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은 거의 하나도 빼놓지 않고 봤어요. 그래서 미디어에서 노출된 북한 말에 대해 익숙했고, 평소에도 따라 했었어요. 그렇게 되게 호기롭게 대본 리딩을 했는데, 그 친구가 요즘 북한 젊은 친구들이 하는 말이랑 완전히 다르다고 얘기해서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다시 그 친구가 하는 말투와 디렉션을 온전히 따르려고 했어요.

 

또 그 친구가 규남의 대사뿐만 아니라 모든 대사들의 톤과 뉘앙스, 단어들을 다 고쳐줬었어요. 저는 그 친구에게 규남의 대사들 한 문장, 한 문장을 빠르게 말해주세요. 천천히 해주세요. 조금 흥분된 투로 말해주세요. 좀 냉정하게 해주세요 등 녹음을 다 해달라고 했어요. 촬영할 때는 어떤 순간을 목도할지 모르기 때문에 녹음본을 다 듣고 다양하게 해보려고 했어요.

그리고 컷하면 스태프들이 다 OK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 감독을 보잖아요. 근데 저는 그 친구의 반응을 보고 감독님이 OK를 했어도 그 친구가 OK를 해주지 않으면 다시 했어요. 그만큼 공들여서 했어요. 그 친구가 아니었으면 규남을 잘 표현할 수 있었을까 생각할 정도로 저에게 정말 고마운 존재인 것 같아요.

규남의 북한말이 기존에 알고 있던 북한 말투랑은 좀 다른데요. 이것도 북한말을 가르쳐준 그 친구의 디렉션에 의한 것인가요?

네, 그 친구가 20대 초반이고, 탈북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실상에 대해서 잘 알잖아요. 많은 이야기를 해줬었어요. 저희도 50-60년대 서울 말씨, 80-90년대 말씨, 2000년대 말씨까지 다 다르잖아요. 다큐멘터리 같은 것을 보면 다 다른데요. 북한도 마찬가지인 거죠. 지금 쓰는 말투와 표현들이 다 달라지는 거죠.

그 친구가 완성된 영화를 보고 해준 말이 있을까요?

 

그 친구와 같이 탈북한 친구들이 함께 영화를 봤는데요. 절박한 심정이 잘 표현되어 있고, 너무 그 감정이 잘 느껴졌다고 말해주더라고요. 특히 마지막 순간에 규남의 모습을 보면서 많이 울었다고 했어요. 그렇게 말해주어서 저는 너무 감동이었고 감사했어요. 실제로 그렇게 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절대로 가벼운 마음으로 임할 수가 없었어요. 그분들을 생각하면 그리고 정말 목숨을 걸고 꿈을 꾸고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공감시켜 주기 위해서는 제가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하지 않으면 안 됐던 것 같아요.

〈탈주〉 스틸컷

 

이번 영화를 작업하시면서 특별히 다른 마음가짐으로 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규남이 처한 상황이 힘들고,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식단 조절을 했었어요. 그래서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적은 상황에서 액션씬을 촬영해야 했고, 남은 에너지를 다 쓰다 보니 머리가 어지러워서 핑핑 돌기도 했어요. 그럴 때면 당분을 섭취하면서 다시 정신을 차리게끔 했는데, 이게 과연 맞는 것인가에 대한 부분까지도 고민했었어요. 왜냐하면 규남이는 먹을 게 없잖아요. 이번 작품에서는 극 중의 상황과 연기하는 순간의 괴리감을 없애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것이 분명히 큰 스크린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전달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어느 정도로 식단 조절을 하셨나요?

기본적으로 하루에 단백질 쉐이크 한 팩, 탄수화물도 에너지를 쓸 수 있는 정도의 소량만 섭취했어요. 또 저희 영화가 2박 3일 정도의 짧은 시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보니까 체중을 유지해야 됐어요. 그래서 물을 마시는 것도 규남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서 함부로 마실 수 없었어요. 뭔가를 즐길 수 없더라고요.

액션씬이 많잖아요. 머리가 핑핑 돈 것도 그 영향일 것 같은데, 본인을 그렇게 극단적으로 몰아붙인 이유를 더 들어보고 싶네요.

그게 좀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해요. 뛰는 것도 두 다리로 차를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잖아요. 근데 제가 뛸 때, 차량에 매달린 카메라가 저의 앞모습을 찍었어요. 제가 달리면서 그 차를 따라가야 하는데, '차를 따라가지 않으면 나는 여기서 죽는다’는 상상을 계속하면서 미친 듯이 달렸던 것 같아요. 촬영 전까지 저는 나름대로 체력이 좋고 건강 관리를 매우 잘하면서 산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근데 촬영할 때 너무 힘들고 지치니까 진짜 쓰러지더라고요. 끝나고 나서도 무릎이 성하지 않게 되어버려서 계단을 장시간 내려올 때는 오른쪽 무릎이 아파요. 무릎 인대 쪽에 문제가 생겨서 앞으로 고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속상한데 제가 그만큼 노력하지 않았으면 연기를 하기가 되게 어려웠을 것 같아요.

제가 조금 더 기술적으로 연기를 잘해서 그럴싸하게 보일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스스로를 그렇게 갈아 넣지 않으면 규남이라는 인물을 진실되게 표현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 막 한계에 몰아붙이려고 했어요. 달릴 때도 뒤에서 총알이 빗발치고 내가 여기서 잡히면 끝이라고 장면마다 생각하면서 연기를 했었고요. 그래서 굉장히 지치고 힘들었지만 나를 이만큼 한계에 몰아붙이는 작품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저를 다 내던졌던 것 같아요.

 

 

액션씬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어떤 장면인가요?

다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중에서 특히 제가 늪에 빠져서 가라앉는 장면이 있어요. 근데 기술적으로 늪을 만들 수 없어서 제가 연기로 빠진 척을 해야 했거든요. 그게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실감 나게 표현해야 되니까. 빠지면서 잠기는 몸의 모습을 표현하고, 빠지고 나서도 정말 그 물을 다 마시면서 그 안에서 내가 여기서 죽는구나 상상하면서 연기했어요. 잠겨 있을 때 공포가 이루 말할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만약에 오지를 간다면 반드시 늪은 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그 늪이 CG가 아니었어요. 너무 감사하게도 미술팀과 소품팀이 합작해서 미숫가루를 엄청 많이 만들어서 늪을 만들어주셨어요. 저는 처음에는 실제로 그것을 경험하고 느낄 거라고 했었는데, 그렇게 만들어주시니 감사했죠.

평소 영화를 많이 챙겨보는 씨네필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유튜브 ‘제훈씨네’에서는 지역의 영화관을 직접 찾아가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이제훈 배우에게 있어서 영화란 어떤 의미인가요?

영화가 너무 좋아서 배우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데요. 근데 좋아하는 것이 직업이 된 거잖아요. 처음에는 배우 이제훈으로서의 삶과 인간 이제훈으로서의 삶이 나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간극이 거의 없어졌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제가 일을 안 하고 그냥 인간 이제훈으로 사는데 그 삶에 영화가 없다고 가정한다면, 저를 설명할 수도 없고 행복을 찾기도 좀 어려울 것 같아요. 인간 이제훈으로서의 삶 안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도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거거든요.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영화를 통해서 행복했으면 좋겠고, 영화를 보면서 다시금 꿈을 꾸고 싶고 열정을 불태우고 싶어요.

20여 년 동안 그런 삶을 살면서 현재까지 왔기 때문에 영화가 없는 이제훈의 삶을 상상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영화나 드라마 등의 콘텐츠를 통해서 행복을 느끼고, 저를 표현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씨네플레이 추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