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무수히 많은 작품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구교환 배우가 <탈주>로 돌아온다. 그가 <탈주>를 선택한 이유는 “현상의 첫 얼굴과 마지막 얼굴이 달라서”다. 입체적인 인물, 감정의 진폭이 큰 인물의 내면은 구교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영화 <반도>와 <모가디슈>, 드라마 <킹덤: 아신전>과 <D.P.>에 이어 이번 작품 <탈주>로 (시대를 초월한) 밀리터리 5부작을 완성한 그에게 그가 맡았던 인물들은 저마다 완전히 다른 캐릭터였다. ‘군인’이라는 직업은 인물을 둘러싼 외적 요소에 불과하고, 중요한 건 “그 사람” 자체라고. 구교환 배우를 만나 <탈주>의 인물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제훈 배우랑 같이 작업하는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두 분이 함께 작업하시면서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제훈 씨가 저의 작품들을 보고 같이 연기하고 싶다고 하셨지만,(이제훈은 2021년 청룡영화제 무대에서 구교환에게 공개 러브콜을 보냈다) 저는 제훈 씨의 더 많은 작품을 보면서 영화를 공부했어요. 그래서 재훈 씨에 대한 내적 친밀감이 있었어요. 혼자서 있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렇게 서로 간의 마음은 확인했지만, 처음에는 친해지는 과정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촬영 첫 회차부터 낯설지가 않더라고요. 차 안에서 규남과 현상이 처음 만나는데, 둘이 과거에 우정을 나눴던 사이라는 정보를 플래시백 없이 대사로 관객들에게 설명해 줘야 했어요. 그 장면을 찍는데 서로 거침없이 잘 나오는 거예요.
그때 제가 차 뒷좌석에 앉아 있었고, 제 블로킹(디자인된 극 공간 속에서의 움직임을 결정하고 연습하는 일)이 저의 상체를 운전석 쪽으로 기울였다가 다시 뒤로 가기를 반복하는 거였어요. 그러면 어떤 관계가 보이잖아요. 현상이 상하관계를 만들려고 하는 것도 있고, 장난을 치려고 하는 거기도 하고요. 제가 장난 섞인 액션을 취하는 데도 전혀 낯설지 않고 되게 자연스러웠어요. 마치 그런 기분인 거죠. 이미 같이 두세 작품 한 것 같았어요. 또 촬영 20~30회차를 먼저 하고 난 후에 만난 기분이었어요.
이제훈 배우도 배우로서 구교환 배우와의 작업에 너무 만족했지만, 감독 구교환과 다시 만나고 싶다고 러브콜을 보냈는데요. 아직 답을 주시지 않았어요.
들었어요. 땡큐!!! 진짜 박제해 주세요. 저 진심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웃음)

많은 러브콜이 오고 계실 텐데, 작품 선택할 때 주로 고려하는 요소가 무엇인가요?
맞아요. 엄청 많아요. 근데 저를 지켜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저한테 분량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선택의 기준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감독님일 때가 있고요. 선택 이유가 감독님일 때는 시나리오를 다 이해하지 못하고, 그 너머의 어떤 감정들이 잘 설득되지 않더라도 이 감독님은 충분한 동기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고 들어갈 때가 있어요. 또 그 영화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곡이 쓰인다면 그 영화를 선택할 수도 있겠죠. 그 시나리오가 저를 하나만 매혹시켜도 약간 꽂히는 것 같아요.
어떨 때는 상대 배우를 믿어요. 지금의 케이스죠. <탈주>는 이제훈 배우님과 이종필 감독님 때문에 선택했죠. 또 하나는 시나리오상에서 인물 현상이 등장할 때 첫 얼굴과 마지막의 얼굴이 달랐어요. 처음에 현상은 가짜 박력, 기세가 있었는데, 후반부로 왔을 때는 진짜 얼굴을 드러내죠. 그 모습이 아주 궁금했어요. 그리고 그런 얼굴을 제가 한번 보여주고 싶었어요.
말씀하신 대로 현상은 처음과 마지막의 얼굴이 다른 인물이기도 하고, 극 중간중간에 감정이 소용돌이치기도 하는데요. 그런 감정선의 변화를 어떻게 보여주려고 했나요?
그거는 이종필 감독님이 만들어 주시죠. 제훈 씨가 만들어 주는 경우도 있고요. 제훈 씨가 저를 보는 눈이 달라질 때도 있잖아요. 연기라는 게 너무 신기한 게 제 감정을 제훈 씨가 만들어줄 수도 있고 제가 제훈 씨의 감정을 만들어줄 수도 있어요. 제가 무표정인데 제훈 씨의 무드가 바뀌면 저도 바뀌고, 혹은 그다음 컷에서 제 앞에 갑자기 총이 있다? 그러면 제 표정이 더 무서워질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영화 작업이 너무 재밌는 것 같아요. 영상 작업은 혼자 이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가 없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에 있어서는 사실 믿고 가죠. 제가 해내야 하는 지점들도 있지만 너무 많은 것을 저 혼자 해낼 수는 없는 거거든요.

사실 현상은 그의 전사가 캐릭터성을 만들어낸 인물이기도 하잖아요. 이런 전사나 감정선의 변화와 관련해서 궁금할 수 있는 부분들을 이종필 감독님이 매일매일 길게 써서 줬다고 알고 있는데요. 이종필 감독님과의 작업은 어떠셨나요.
이종필 감독님은 이 영화의 첫 번째 팬이에요. 그게 너무 멋있었어요. 이 영화의 보이지 않는 설정까지 계속 창작하고 계시더라고요. 누구보다 인물들을 애정하고 있었어요. 그런 기운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인물 현상을 연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현상을 연기할 때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장면마다 컨티뉴어티(연속성)를 이어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현상은 지금 굉장히 복잡한 상황이에요. 처음에는 정말 강렬하게 규남을 잡으려 했지만 그 과정에서 계속 마음이 움직이고 있는 상태거든요. 어떤 장면에서는 굉장히 미치도록 잡고 싶어 하고 어떤 장면에서는 일부러 놓아줄 수도 있겠죠. 만약에 현상이 끝까지 처음의 태도를 유지했으면, 아마 제가 현상을 연기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이 시나리오를 선택하지 않았겠죠.
현상은 립밤과 핸드크림을 바르는 등 보습 관리를 철저히 하는데요. 시나리오로 보셨을 때, 이 부분이 인물의 어떤 점을 설명해 주는 걸로 보고 연기를 하셨나요?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실제로 외적인 면을 꾸미는 친구일 수도 있겠지만, 포마드 헤어나 재킷 등 겉을 계속 꾸미잖아요. 롤렉스 시계도 차고 있고요. 현상이 거기 뒤에 숨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마음속의 불안을 외형으로 숨기는 거죠.


규남과 현상은 서로 얼굴을 맞대는 장면이 많은데요. 이를 두고 관객들 사이에서는 규남과 현상의 관계를 두고 퀴어 서사로 해석하기도 하는데요. 작업하실 때 의도하신 건지 아니면 전혀 관계가 없는 건지 궁금합니다.
각자의 감상은 다 달라서요. 저는 그냥 그만큼 친밀한 존재로 해석했어요. 현상이 처음에는 강렬한 모습으로 등장하잖아요. 근데 그걸 풀어주는 건 사실 규남이에요. 규남의 앞에서는 예전에 피아노를 쳤을 때 현상의 모습에 가장 가까워지는 거죠. 현상이 제일 사랑하는 건 피아노 아닐까요? 현상은 피아노를 가장 사랑해요.
현상이 규남이를 집착해서 잡으려 하는 이유도 규남이 탈북을 하게 되면 현상이 한 모든 것들이 부정되기 때문이에요. 중후반에 엄청난 힌트가 나오잖아요. 현상이 동료 군인에게 “너는 군인이 맞지 않는 것 같아. 지금 현재 너의 선택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말을 해요. 근데 그거 자기한테 하는 얘기거든요. 현상은 자기가 못하는 걸 남한테 강요해요. 그래서 뒤에 숨어 있어요. 근데 마지막에 군사 분계선에 도착했을 때는 규남에게 “가서 마음껏 실패해라”고 정말 오랜만에 진실을 얘기하죠.
조금 더 넓은 의미로 봐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물론 그렇게 접근하시는 것도 흥미롭지만, 저는 그냥 이렇게 정리해요. 선우민은 러시아에 두고 온 현상의 꿈이에요. 유령 같잖아요. 실제로 그렇게 멀리서만 있고 만질 수 없는 물리적인 존재일 수도, 아닐 수도 있어요. 그래서 유령 같은 존재이자 지금의 내 모습을 보여주기 굉장히 창피하고 부끄러운 존재죠. 규남은 자기가 제거해야 할 대상인데 현재 꿔야 할 꿈인 거예요. 그렇게 접근하니까 더 이야기가 확장되더라고요.
평소 촬영 현장에서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자처하신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이번 현장의 분위기는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감탄도 많이 하고 농담도 많이 해요. 그리고 저의 기질이 유머를 좋아해요. 유머만큼 서로의 긴장을 풀어주는 게 없거든요. 꼭 웃기지 않더라도 그냥 실없는 농담들을 현장에서 많이 해요. 그게 집중력을 해치지 않는 한해서요. 감독님이랑도 그런 얘기를 많이 하고, 제훈 씨도 농담을 좋아하시고요. 저는 유머가 가지고 있는 힘을 믿어요.


이전에 <모가디슈>에서 북한 군인 태준기 역할을 맡으셨고, 드라마 <DP>에서도 군인 역을, 이번 영화에서 다시 북한 장교 역할을 맡으셨는데, 비슷한 역을 어떻게 다르게 표현하려고 하셨는지 궁금해요.
군인은 직업일 뿐이지, 사실 저는 군인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한 적이 없어요. 저는 어떻게 접근했냐면 <반도>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미쳐버린 남자고, <DP>는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불만인 청춘이고, <탈주>의 현상은 시스템 안에 갇혀 있는 남자예요. 제가 직업으로 접근하지는 않아요. <모가디슈>는 탈출기로 봤죠. 그리고 ‘태준기’라는 인물이 되게 흥미로웠어요. 군인은 그 사람을 둘러싼 어떤 요소일 뿐이고, 그 인물들의 내면, 그냥 그 인간이 궁금한 거예요.
<모가디슈>에서 태준기 역으로 북한말을 구사했었는데요. 이전에 경험이 있었던 게 이번 작품을 할 때도 도움이 되었나요?
아니요. 새로 배웠어요. 그 질문이 자주 있는데, 사실 그거는 저한테 영향을 안 미쳐요. 앞에 한 작품들이 저한테 영향을 주지는 않아요. 그걸 신경 써서도 안 되고요. 북한말을 가르쳐주신 선생님도 다른 선생님이었고, 인물의 정서가 아예 달라요. 태준기는 굳은 심지가 있었어요. 되게 직선적인 캐릭터고, 현상이는 곡선, 좀 변화가 있어요. 그리고 저는 북한말의 정해진 리듬감과 정석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게 좀 더 저를 더 편하게 했어요. 선생님에게 계속 지도를 받고 대화를 나누었지만, 내가 감정을 담아 말하기 유연한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이번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규남이 별빛 아래서 달리고 있는 장면을 좋아해요. 규남이 막 에너지를 분출하면서 달리는데, 밤하늘에서도 별이 쏟아질 것 같았어요. 그 방향성이 재밌었어요. 수평과 수직 방향 모두에서 쏟아질 것 같은 에너지가 느껴져서 멋있더라고요. 저는 누군가가 뭔가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끼거든요. 다 그렇잖아요. 근데 규남이는 그랬어요. 규남의 달리는 모습에서 쾌감이 느껴졌어요.

많은 분이 사랑해 주고 계시는데 본인이 생각하시기에 연기자로서 본인의 강점과 약점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저의 강점은 약점을 모른다는 거고, 약점은 강점을 모른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저는 제가 기준이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관객한테 전달하는 거예요. 관객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고, 저에게 1순위는 언제나 관객이지만, 제가 좋아하는 취향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어요. 그걸로 관객분들이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어요. 영화를 연출할 때도 똑같아요. 그래서 만들 때는 제 거고, 공개가 되면 관객의 것이죠.
이옥섭 감독님과 함께 영화를 꾸준히 만들고 있는데, 감독으로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배우로서 연기할 때도 도움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아니요. 영향을 안 끼쳐요. 왜냐하면 감독님마다 세계관이 다 다르고, 취향이 다르고, 좋아하는 스타일이 다 달라요. 그건 저 또한 그렇고요. 그래서 좀 더 재밌어요. 매번 새로워서 매번 이직하는 기분이어서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지난해 인터뷰에서 감독 준비 중이라고 말하신 바 있는데요. 감독 구교환으로서의 대중적인 활동을 기대해 봐도 될까요?
지금 하고 있는 모습 정도일 것 같아요. 연출은 계속하고 있거든요. 거창한 거 아니고 그냥 했던 작업하는 거예요. 갑자기 제가 엄청 큰 거를 한다고 생각하셔서 좀 부담스러운데 저는 언제나 연출을 하고 있었고 언제나 사람들이 제 영화를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연출자로서 첫 장편 영화를 준비 중이긴 한데요. 아직 시나리오 수정 단계입니다.

관객과 영화계에 종사하는 영화인들이 배우 구교환에게 매혹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많이 물어보셔서 더 이상 피할 수가 없네요. 아마 좋아하는 게 보일 거예요. 저한테 현장에서 연기하는 건 너무 즐겁고 재밌는데, 그런 거는 사진을 찍더라도 그 사람이 그 공간에서 얼마나 좋아하는지 보일 거예요. 또 제 연기에서 제가 현장을 얼마나 좋아하고 즐기는지 드러나지 않았을까요?
이제훈 배우 못지않게 구교환 배우도 씨네필로 알려져 있는데요. 구교환 배우님께 영화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합니다.
영화요? 수단이 되지 않았으면 해요. 영화를 통해서 뭔가를 얻으려고 하기보다는 계속 즐겼으면 좋겠어요. 저에게 스트레스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 씨네필 아니에요.(소곤) 저 <대부>도 안 봤어요. 타이밍을 놓쳤어요. 저는 <동방불패>(1992) 굉장히 좋아해요. 제가 모든 영화를 사랑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거는 확실히 좋아하죠. 저한테 항상 씨네필이라고 얘기들 하시는데, 그럴 때 전 얘기하죠. 저는 <대부> 안 봤습니다. (웃음) 저는 폴 토마스 앤더슨 영화 중에서도 <펀치 드렁크 러브>(2002)를 제일 좋아해요. <팬텀 스레드>(2017)도 좋아하고요.
마지막으로 <탈주> 예비 관객분들한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보시는 분의 시간이 잘 갔으면 좋겠어요. 재밌으셨으면 좋겠어요. 저한테는 재미가 1순위인 것 같아요. 재미가 있어야 그다음에 본인의 감상도 얘기할 수가 있어서요. 굉장히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후에 감상도 듣고 싶네요.
씨네플레이 추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