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BIFAN)가 이번 연도의 화두로 AI를 꺼내들었다. 2016년 국내 영화제 중 최초로 VR 영화를 소개해 XR(VR, AR 등 체감형 확장현실) 분야를 조명한 BIFAN은 올해도 ‘비욘드 리얼리티’라는 이름으로 14일까지 XR 콘텐츠 30여 편을 소개한다. 경험형 콘텐츠를 총망라한 비욘드 리얼리티에서 이머시브 공연을 경험하거나, 과학과 SF를 만끽하거나, 윤동주 시인의 삶을 돌아볼 수도 있다. 부천아트벙커 B39에서 상영하는 비욘드 리얼리티가 기존 BIFAN의 연장선이라면, 올해 영화제에서 정식 초청한 AI 영화들은 앞으로 BIFAN이 이어갈 도전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AI가 현재 영화계에 가져올 변화를 누구보다 빠르게 들여다볼 셈이다. 영상 분야에서 AI는 어디까지 왔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AI에 주목해야 하는가. BIFAN의 XR 부문을 총괄하는 김종민 XR큐레이터에게 AI의 현주소를 들어봤다.

올해부터 AI 영화를 선보이게 됐다. AI 영화를 선정하고 상영하는 것에 대해 내부에서 어떻게 의견이 모였는지 궁금하다.
사실 작년부터 관심을 자지고 있었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영화제가 왜 AI 영화를? 하실 수 있다. 이런 질문을 오랫동안 받아왔다. 영화제가 왜 VR를 하는지처럼. 예술과 기술을 분리해서 보는 경향도 있고, 영화제가 영화 작가를 조명하는 데 포커스가 있으니 기술쪽은 스타일이나 후반작업 이런 쪽으로 분류되는 편이다. 전 기술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 스토리텔링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VR를 했듯 AI도 마찬가지로 스토링텔링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의 단초다. 인류가 가진 스토링텔링 자원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영화도 새로운 미디어였다. 그런 맥락에서 작년부터 AI에 관심을 가졌다. 작년엔 제가 조금 반대했다. 초창기이고 스토리텔링의 본질과 동떨어진 형태여서 테키(조잡하다)하게 볼 것 같았다. 그러다 작년 말 뉴욕AI영화제가 시작됐고 기술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졌다. 이제는 영화제를 1년에 한 번씩 한다는 것이 도리어 답답하게 느껴졌다. AI 발전이 너무 빠르니까. 전 영화제 역할이 계단이라고 생각한다. 정보나 경험이 부족한 분들에게 적절한 지점에 다다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래서 이 계단을 만들어줘야 한다 싶어서 올 초부터 AI를 (영화제에서) 얘기해보자 싶었다. 올초부터 영상쪽에서 속도가 더 났다. 언급이 아니라 메인으로 들어와야 했다. AI를 얘기할 수 있는 좋은 시점에 부천영화제가 타이밍을 받게 됐다. 너무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상황이라 행운이다.
오픈AI의 ‘소라’가 등장한 것처럼 굉장히 발전이 빠른 것은 알고 있다. 현재 AI를 개인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접근할 수 있는지.
조금만 관심을 주면 누구라도 가능하다, 전 그렇게 생각한다. 저 또한 영화감독 지망생이었다. 어려서부터 수많은 영화를 보고 영화감독이 되기 위한 준비들을 열심히 했다. 그렇게 무언가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학습 과정이 상당히 길다. 어디까지 해야 충분한지 알 수 없을 정도로. AI가 주는 혁신은 그 학습 부분의 시간 단축이라 할 수 있다. AI는 학습하는 도구다. 우리가 AI워크숍의 메인 강사로 데려온 큐리어스 레퓨지(Curious Refuge)를 작년 11월에 봤다. 그때 저 정도 수준이면 누구나 따라할 수 있겠는데 싶었다. 올 2월에 <원 모어 펌킨>으로 상을 받은 권한슬 감독은 그 11월쯤에 (AI 영화 제작을) 시작했다고 하더라. 물론 스토리텔링이라는 기본적인 내공이 쌓여있었겠지만, 그때 시작해서 며칠 만에 콘텐츠를 만드는 것으로 이제는 광고도 찍고 있다. 제가 콘텐츠진흥원에서 강의도 하는데, 처음 하는 친구들도 많다. 그래도 짧은 시간에 워크숍을 마쳐야 하니 '어떻게 만들지, 할 줄 모르는데' 하다가도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아는 것으로) 응용해서 만들어온다. 물어보면 AI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걸 만드는 방법은 인터넷에 다 나와있다. 집단지성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사방에서 노하우를 공유하며 가속화하고 있다. 조금만 관심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학습적인 면에서 그것이 큰 장점이다. 물론 그래픽 파워가 좀 되는 장비가 필요해서 이렇게 워크숍을 연 것도 있다.
다만 AI는 코딩 언어가 아닌 자연어 기반의 커뮤니케이션 툴이다. 언어 모델을 갖춘 얘가 학습해서 자연어로 대화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끄집어낸다. 어떻게 보면 숙련된 조연출 같은 것이다. 영화도 마찬가지지 않나. 연출이라도 촬영하는 친구, 편집 잘하는 친구, 그리고 배우와 소통하면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학습의 양은 줄고 소통이 커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예전에 영화 감독이 되려면 세 가지를 해야 했다. 학습하고, 표현력을 다지고, 관객과 소통하고. 여기서 학습의 양이 줄고 소통이 커진다. 사람 간의 소통 기계와의 소통, 창작자와 관객의 소통. 이게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는데, (그것들이 바뀌니) 커뮤니티 혹은 워크프로세스가 혁명적으로 바뀌는 시점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영화 혹은 스토리텔링 주제로 어떤 커뮤니티를 만들지 다시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지 않을까. 우리가 과거 만들어놓은 문화적 자원을 여기에 어떻게 융합시킬 것인가, 이게 단절되면 안된다. 스토리텔링 자체도 인류가 수천 년간 쌓은 보고니까, AI 시대라고 이것과 단절하는 건 아니다. 그 다리를 놓는 것이 중요하겠다. 그게 우리 영화제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방금 워크숍 개회식을 보고 고무적인 건 젊은 친구들뿐만 아니라 영화 제작하신 PD님, 촬영감독님 등 연차가 있으신 분들도 섞여있단 거였다. AI가 기득권을 한 번에 무너뜨릴 수 있으니 재앙처럼 비치지만, 한편으론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시대를 확 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영화는 각 분야 기술자가 모여 하는 협업 예술이란 것이 특징이다. 대중이 가진 통념에서 AI는 혼자 제작할 수 있는 작업인데.
기술의 초창기에 가질 수 있는 선입견이나 편견일 수 있다. 디지털 촬영이 나왔을 때도 그런 얘기했다. 영화 혼자서 만들 수 있겠다고. 하지만 우리가 협업하는 건 기술때문만이 아니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현대적인 가치에선 만드는 사람만이 아니라 보는 사람들과의 실시간 교류도 중요하다.
예전엔 이 교류가 어려워 중간에 평론가나 교수 등이 필요했다. 영화 자체도 극장에서 놓치면 언제 다시 볼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것들이 사라졌다. 거의 모든 부분에서 실시간으로 다양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고 있다. AI도 혼자 하는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인류 전체와 소통하며 창작하는 과정일 수 있다. 그렇게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해진 형태의 창작 과정이니 대중과 교류하며 스토리텔렝을 하는 시대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겠나. 우리가 XR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경험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경험을 하려면 이게 실제 세계처럼 느껴져야 한다. 그렇지만 기존 작품은 모든 게 다 미리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상호작용이 제한돼 있다. 그런데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늘 어떤 변수가 있다. 비가 온다거나 상대방이 약속 시간에 안온다거나. 그래서 (XR 콘텐츠가) 실시간 시뮬레이션처럼 가기 위해서 인터넷을 포함한 컴퓨팅 파워, 그 다음에 AI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렌더를 하는데 3분이 걸린다, 이러면 실제라고 안 느껴진다. 실시간성을 보장하고 거기에 변수를 주고 생성되고 하는 것들을 AI가 할 수 있다.


이번에 경쟁 부문 '부천초이스'에도 AI 영화가 신설됐다. 어떻게 작품을 선정했는지와 특히 눈여겨볼 부분을 설명 부탁한다.
공식 경쟁 부문 신설은 어렵지 않겠냐, 이런 격론 끝에 우리 영화제는 방향성과 계단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에 더 필요하다고 결정됐다. 그럼에도 걱정은 있다. 아무도 응모를 안하면, 쓸만한 작품이 없으면 어떡하지 싶었다. 그러나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어서 고무적이었다. 우리가 난제라고 생각하는 건 영화제에 상이 하나밖에 없어, 하면 어렵다는 것이다. 영화로 치면 다큐도 있고 단편도 있고 장르도 있고 다양한 접근 방식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제일 좋다고 어떻게 얘기하겠나. AI 영화도 마찬가지로 굉장히 다양하다. 사람마다 관심사가 다르고 표현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니까. 영화도 점차 규모가 커졌듯 그런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AI 영화를 만들 때 기존의 영화라고 했던 것과 유사한 게 베스트일까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영화 이전에 연극이 있었어도 그걸 그대로 영상으로 만든 게 베스트인가 하듯 주도적인 미디어를 복제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VR도 그랬다. 처음엔 영화를 360도로 보는 게 핵심인가 했지만 지금은 다양해졌다. 다큐나 공연 등으로 확장했다. 이렇게 미디어가 변화하는 것처럼 AI도 영화와 다른 형태로 발전 할 것 같다. 카테고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다.

BIFAN이 VR부터 이번 AI까지 도전적인 선택을 지속하고 있다.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 분위기 같은 것이 형성된 이유가 있을까.
부천이 영화제 하기 어려운 곳이다. 바다도 없고, 휴양지도 아니고. 결국 콘텐츠가 좋지 않으면 관객들이 오기 쉽지 않다. 반면 산업적인 것, 제작 시설 등이 가까이 있다. 차세대 창작자, 산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영화제 테마가 장르영화제 아닌가. 그래서 메이저라기보다 언더독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뭐가 첨단일까, 뭐가 더 새로울까 끊임없이 탐구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흥행보다 다음 세대에 대한 관심이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XR도 그래서 도전을 받곤 한다. VR은 막 200명씩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예산은 많이 들었는데 관객은 몇 명?' 이런 질문도 받고.(웃음) 그렇지만 이 트렌드를 부천이 아니면 볼 수 있는 데가 없다. (산업이)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그것을 자료로 남길 수 있는 공적인 부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