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옛말이 있지만 지금처럼 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대엔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으려다 놓치는 수가 있다. 지금의 AI 시장이 그렇다. 텍스트를 쓰면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취합해 새로운 결론을 도출해 주거나 새로운 데이터로 만들어주는 생성형 AI가 등장한 이후 몇 달 사이에 텍스트 투 이미지(Text-to-image)가 나오더니 이제는 텍스트 투 비디오(Text-to-video)까지 도달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BIFAN)는 영화 산업 속 AI의 영향력을 대비하고 준비하고자 AI 섹션과 관련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경쟁 부문부터 AI 산업을 짚어보는 콘퍼런스, 새로운 AI 창작자들을 양성할 워크숍까지. 언제나 도발적인 행보를 걸어오던 BIFAN이 올해 주목한 AI 시장을 콘퍼런스 현장과 인사들의 인터뷰로 만나보자.

창작자를 자유롭게 할 도구 AI
BIFAN+ AI 국제 콘퍼런스
7월 5일 금요일부터 7일까지 열린 BIFAN+ AI 국제 콘퍼런스(이하 콘퍼런스)는 단순히 AI라는 신기술을 찬양하는 자리가 아니라 창작자들에게 AI가 어떤 도구가 될 수 있는지 의견을 나누고 고심하는 자리였다. AI 자체를 다루는 연사부터 BIFAN이 이전부터 소개한 XR(VR, AR 등 몰입형 기술의 총칭)과의 결합으로 새로운 길을 나아가는 창작자까지, 각자의 고민과 도달한 결론을 청중과 함께 나누며 갑자기 도래한 AI와의 공존을 짚어보는 시간이었다.
콘퍼런스에는 미디어 아티스트 겸 카이스트 교수 이준진, AI 콘텐츠 플랫폼 큐리어스 레퓨지의 케일럽 워드 대표와 최고운영책임자 셸비 워드, <원 모어 펌킨>을 제작한 권한슬 감독, <어나더>로 BIFAN의 초청을 받은 데이브 클락, AI와 XR를 접목한 <기억의 경로>를 발표한 매튜 니더하우저 등 AI 산업에 먼저 발을 내디딘 인사들이 참석해 AI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나눴다.
AI 콘텐츠를 만드는 연사들은 대체로 ‘AI는 도구이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AI 영상 플랫폼 큐리어스 레퓨지의 대표는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 포토샵이 출시됐을 때 방송을 보여주며 신기술이 불러오는 우려는 과거에도 마찬가지였음을 내비쳤다. 그들은 AI가 유년기의 창의성을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하며, ‘Have fun, Stay curious’(즐겁게, 호기심을 가진 채로)라고 전했다.
AI를 사용해 창작에 도전한 이들도 비슷한 의견을 전했다. 데이브 클락 감독은 “인간적 경험이 결합해야”만 AI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며 자신 또한 AI 툴뿐 아니라 전통적인 영상 프로그램을 병행 사용한다고 밝혔다. 권한슬 감독은 “AI가 실사의 하위 호환이 되는 것이 싫었다"라며 AI 생성 이미지만이 줄 수 있는 기괴함에 주목했고 그로써 <원 모어 펌킨>을 만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매튜 니더하우저는 관객이 입력한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생성해 보여주는 AI와 VR을 접목한 <기억의 경로>를 예시로 들며 “개인화된 큐레이션”이 대중화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렇게 7월 5일 AI 전문가이자 창작자들의 이야기로 시작한 콘퍼런스는 AI, XR, 이머시브(몰입형 콘텐츠) 등 뉴미디어 전체를 아우르는 대담과 발표로 이어졌다. 또한 비디오나 이미지를 만드는 생성형 AI 외에도 창작 플랫폼 루이스, 시나리오를 웹툰화하는 딥툰, 음향공학에서 주목하는 AI 기술, XR를 접목한 공간 연출 등 AI의 광범위한 영향력을 훑었다. 7월 7일 부천 초이스 AI 부문 수상작 발표와 이어진 강연, 패널 토론까지 참석자들이 끊이지 않으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BIFAN이 산업을 흔들 새로운 미디어를 도입한 건 AI가 처음이 아니다. 2016년 VR, AR 등 XR(몰입형 경험 콘텐츠)를 초청하고 대중에게 소개한 BIFAN은 전 세계 뉴미디어 아티스트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이번 AI 경쟁 부문 신설에 AI를 접목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혹은 이런 뉴미디어를 소개하고 있는 인사들이 BIFAN에 함께해 힘을 보탰다. AI 영화의 선두주자로 이번 BIFAN에서 강사로도 활약한 데이브 클락 감독, 그리고 칸 넥스트 전략고문으로 활동 중인 스텐 크리스티앙 살루비어, 뉴미디어 아트 스튜디오 아우치(Ouchhh) 대표 페르디 알리치를 만나 AI와 뉴미디어 최전방의 이야기를 들었다.

데이브 클락
AI 영화 플랫폼 ‘큐리어스 레퓨지’에서 활동 중인 영화감독 겸 강사. 제28회 BIFAN 경쟁 섹션 부천 초이스의 AI 부문 초청작 <어나더> 연출자이자 AI 필름 메이킹 워크숍 강사.
초청작 <어나더>는 실사와 생성형 AI 작업물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영화이다. 어떻게 기획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어나더>는 원래 장편 시나리오다. 시나리오만 가지고 어떤 스타일이 될 것이다 보여드리기 위해 짧은 버전을 제작해 보자 싶어서 제작했다. <어나더>에서 AI는 시각효과의 툴로 사용됐다. 시나리오는 있었으니까. 이번 영화로 저와 협업한 로버트 네더호스트(Robert Nederhorst)는 <존 윅 3> <컨저링> 등 할리우드에서 활동 중인 시각효과 전문가다. 그와 함께 스테이블 디퓨전, 컴파이UI(Comfyui) 등을 사용해 괴물 같은 것을 만드는 시각효과로 썼다. 제가 알기로 <어나더>가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만든 최초의 호러영화다.

생성형 AI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할리우드에서 일하는 감독으로서 정말 많은 피칭 프로젝트에 지원하게 된다. 그런 피칭 현장엔 저 말고도 지원자가 정말 많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눈에 더 띌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생성형 AI로 제 영화의 예고편을 제작하게 됐다. 규모가 큰 미팅에서도 영상으로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고 프로듀서 및 스튜디오에서 미팅 제안을 받게 됐다. 제 영화를 소개하는 툴로써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AI의 한계는 여전히 존재한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현재 AI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돼야 할 점이 있다면?
이미지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그다음은 현실이 아니라 환상처럼 보이는 이미지 왜곡이고. 이걸 해결해 주는 보조 툴들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AI와 실사를 결합한 하이브리드를 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조합을 통해 AI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제가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이 생기기 때문이다. 다만 몇 달 동안 괄목할 만한 AI 기술이 등장해 이런 일관성의 문제를 바로잡아줄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카메라의 움직임 개선이 기대되는데, 1년 내로 출시할 미드저니(Midjourney) 비디오 버전이 그런 부분을 많이 개선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 툴들이 2D, 혹은 2D에 3D 느낌을 가미한 작업물을 만든다면 미드저니 비디오 버전은 완전히 3D 환경으로 이미지를 제어할 수 있게 해준다.
현재 AI의 한계를 넘어 더 뛰어난 AI가 나온다면 꼭 만들고 싶은 작품이 있는가?
가까운 미래에 이루고 싶은 꿈이라면 이번 워크숍에서 공개한 <봉화 밑에>(Below Bonghwa)를 한국에서, 혹은 한미합작으로 하이브리드(실사+AI) 장편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영화는 파운드푸티지 장르로 만들었는데, 그걸 실제로 촬영한 것과 그린 스크린과 AI 이미지와 필터 등을 합쳐서 장편으로 완성하고 싶다. (함께 작업하고 싶은 한국 배우를 묻자 김수현과 현빈의 사진을 보여줬다)
창작자들 사이에서 AI 분야의 화두는 도용이나 라이센스 문제다. 현재 AI 창작자들 중심으로 이런 것에 대한 논의 중인 것이 있나.
그 부분도 할리우드의 영화인들과 얘기를 나눴다. 그중 몇 가지 아이디어라면 고유 IP에 제한을 두고 소유하는 방식이겠다. 아니면 릴리즈하는 플랫폼을 제한함으로써 통제를 한다거나. 물론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법적으로 알맞은 제도들이 업데이트될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 현행법을 만들 때는 AI 같은 기술이 나올 것이라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으니, 이런 새로운 현상에 걸맞은 제도로 빠르게 업데이트될 것이다. 음악 업계에서 아티스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저작권을 보완하고 있듯 영화계에서도 그런 진전이 빠르게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저는 이런 생각도 한다. 예술학교에 다니는 동안 피카소, 달리 등 여러 아티스트의 그림을 배우고 모작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AI가 그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AI를 모두가 쓰지만 자신만의 프롬프트를 넣어 연습하며 영감을 주는 차원에서 가치가 있다.

지금까지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본업은 영화감독이시다. 혹시 처음으로 영화를 해야겠다 결심하게 한 영화가 있는가?
딱 두 편을 말씀드릴 수 있다. 미국영화 한 편, 한국영화 한 편. 미국영화는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인데, 운 좋게도 리들리 스콧 감독과 두 번 만났다. 그분이 제 <디즈멀 스웜프>(Dismal Swamp)의 팬이라고 해주셔서 영광이었다. 예산도 없이 기술로만 만든 영화인데 높이 평가해 주셨다. 한국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다. 제가 대학에 들어갈 때쯤 그 영화가 나왔는데 이렇게 하나의 영화에서 장르가 혼합하는 게 가능하구나 느꼈다. 어두운 분위기와 스토리, 반전, 드라마, 스릴러 등등. 이 영화들이 저를 감독이 돼야겠다 결심하도록 했다.
이 분야에 아직 뛰어들지 않은, 혹은 고심 중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단 빨리 뛰어들어라,라고 말하고 싶다. 저 또한 AI 작업을 1년 반 전에 시작했다. 초기에 접근한 사람이기에 지금 시작해도 이르게 시작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충고 드리고 싶은 건 원하는 것의 최신판을 배우라는 것이다. 6개월 전만 해도 지금과 비교하면 기술 차이가 있다. 이 6개월간의 진보가 마치 지난 10년의 기술적 진보를 한 번에 이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니 지금으로부터 1년 후 AI 기술은 어떤 것이 있을지 상상도 할 수 없다. 이미 실사와 구별할 수 없는 포토 리얼리티를 구현할 수 있기에 가급적 최신판의 기술을 배우라고 말씀드리겠다.

스텐 크리스티앙 살루비어
칸 넥스트 책임자, 전략고문으로 활동 중인 살루비어는 에스토니아 최초의 장르 영화제인 합살루 호러 판타지 영화제(HÕFF) 창립자이며 미디어 테크 혁신 허브 Storytek의 대표이다. 제28회 BIFAN 경쟁 부문 부천 초이스의 AI 부문 심사위원.
부천 초이스 AI 부문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심사하는 과정은 어땠는지, 고충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먼저 AI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을 기획한 신철 집행위원장과 프로그래머들, BIFAN에 존경을 전하고 싶다. AI의 사용은 점점 증가하지만 여전히 논쟁적인 문제다. 1년 전 할리우드에서 관련한 파업도 있었고, 전 세계 영화계를 잠시 멈추게 할 정도였다. AI를 사용한 영화나 예술 작품 제작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앞으로도 증가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 세계 국제영화제 중 이렇게 경쟁 섹션에 AI 부문을 만들었다는 건 선구자적이다. 경쟁작들을 보면 모두 완성도가 좋다. 영화 수준이 높을수록 심사위원들이 고생하기 마련이다. 수상을 위해 수시간 얘기를 했지만 결정이 쉽지 않았다. 이렇게 쉽지 않았기에 AI 영화가 하나의 예술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BIFAN에 상영하는 다른 영화들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봐야 했다.
BIFAN에서 이런 분야를 공유하는 동료들과도 시간을 보냈을 텐데, 어땠나.
AI와 영화의 접목은 산업의 변화뿐만 아니라 정치적 이슈로도 이어진다. IP, 저작권, 직업의 변동 등등. 기술은 AI가 영화 산업에 미칠 영향 중 하나에 불과하다. 콘퍼런스에서 다양한 인사들을 만났는데, 재밌게도 제가 유럽에서 받았던 질문들이 비슷한 맥락에서 한국 산업에서도 오갔더라. 비슷한 주제로 고민하는 동료들을 만나 기뻤고, 그렇기에 이런 문제를 전 세계적으로 함께 고민해 봐야겠다 싶었다.
칸 넥스트(칸 영화제의 엔터테인먼트의 미래를 탐구하는 플랫폼)의 일원으로 최근 뉴미디어 시장에 대한 견해가 궁금하다.
지난 25년 동안 영화, 연예산업에 종사했다. 미디어로 전 세계 관객에게 창의성을 전한다는 점은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보면 우리만의 어떤 상자에 갇혀 앞만 보고 가는 경향도 있다. 특히 기술이 수반하는 변화에 거부가 심한데, 사실 기술은 영화산업의 DNA에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기술적 혁신이 영화적 혁신을 추동했다. 예를 들면 무성에서 유성으로, 16mm의 등장, VHS나 DVD, 인터넷 스트리밍까지. 그러나 기술이 가져올 미래를 두려워하는 성향이 있고 그래서 기술을 피하거나 무시하곤 하는데, 칸 넥스트에서 저의 역할은 중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담론을 활성화하고 만들어가고 있다.
2024년의 영화, 콘텐츠는 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겪고 있고 그 한가운데에 우리가 있다. AI 툴은 누구나 감독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영화 제작은 일종의 돈과 관련된 정치이기도 하다. 누가 언제 영화를 만들 기회를 잡느냐가 중요하니까. 그래서 지금은 전례 없는 시대다. 좋은 이야기가 있는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전 세계에 펼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일생일대의 기회로 볼 수도, 두려운 시간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AI 기술은 플랫폼이든 알고리즘이든 절대 사라지지 않고 우리 곁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변화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 제 영웅 중 한 사람이 한국의 아티스트 백남준이다. 그는 아티스트이자 일종의 혁명가다. 기술을 길들였다고 할 수 있는데, 텔레비전이란 매체가 갖는 힘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지금 우리는 다음 세대의 백남준을 기다리는 것 같다. AI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나 방식을 길들여줄 누군가가 나타나면 좋겠다.

뉴미디어를 기술 분야로 생각해 일반 영화 산업과 분리해서 보는 경향이 있다.
미디어라는 건 스튜디오의 통제 하에 있었다. 그들이 감독을 고용하고 영화를 만들고 개봉하는. 그래서 올드미디어는 관객과의 연결고리가 취약했다. 지금의 미디어 학자, 연구자들은 이런 알고리즘과 플랫폼의 성장과 도구의 민주화가 사용자 중심 세계를 불러오고 있다고 말한다. 스튜디오 중심의 활동과 반대인 것이다. 여기엔 스튜디오의 개입이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오징어 게임>이나 유튜브 크리에이터이자 콘텐츠 창작자 ‘미스터 비스트’가 그렇다. 각각 1억 4천만 명, 6억 4200만 명이 시청했다. 그래서 미디어의 혁신은 더 이상 스튜디오의 누군가의 독단적 결정에 달려있지 않다. 플랫폼의 젊은 사람들이 혁신을 이끌고 그걸 따라가는 추이가 될 것이다. 이 부분이 굉장히 흥미진진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AI 시대가 도래한 지금, AI 분야에 도전하길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독려의 메시지를 보낸다면.
두 가지 은유, 혹은 예시를 들고 싶다. 멜빈 크란츠버그는 ‘기술의 6원칙’에서 “기술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중립적이지도 않다"라고 주장한다. AI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AI 자체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중립적이지도 않다. 또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가 떠오른다. 그는 타이탄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한다. 그리고 신들에게 벌을 받게 된다. 이 불이 AI와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 불을 만질 수 있게 됐다. 그것으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난방을 하든 요리를 하든 빛으로 쓰든. 다양한 유용성이 있지만 오용한다면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현재 우리에게 큰 도전과제가 주어졌다. 몇몇 대기업은 이 불, AI를 독점하려 한다. 너희에게 불을 줄 수 있는 건 우리밖에 없어라고 말하듯. 표현의 문화를 통제하려는 것이다. 그건 진화적으로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창작자들에게 AI를 최대한 사용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실리콘밸리의, 중국의, 러시아의 비전이 아닌 전 세계 아티스트들의 비전을 구현할 수 있도록. 그래서 AI를 수동적으로 접근하거나 무시하려는 것은 가장 최악의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반응하면 결국 다른 사람이 이 불에 대한 결정을 내리게 될 테니까. 그래서 우리 모두가 직접 이러한 변화와 사용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 세계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다양성을 보존할 가장 중요하고도 올바른 방식이다.

페르디 알리치
뉴미디어 아트 스튜디오 아우치 스튜디오(Ouchhh studio)의 대표이자 AI, 뉴미디어 아티스트로 활동 중이다. 제28회 BIFAN 경쟁 부문 부천 초이스의 AI 부문 심사위원.
부천 초이스 AI 부문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심사하는 과정은 어땠는지, 고충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올해 칸에서 만난 김종민 XR큐레이터가 제안해 줘 심사위원으로 합류했다. 어제 15편을 보고 거의 자정까지 심사가 진행됐다. 후보작들 모두 상을 받을 만했다. AI 툴이 신진 감독들에게 좋은 도구가 될 것이라는 관점에서 5개 부문에서 점수를 매겼다. 연출, 촬영, 시나리오, 사운드, AI 퀄리티. 점수를 매겼더니 장르마다 제 맘에 드는 영화가 많았다. 그 부분이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AI의 퀄리티보다 연출과 스토리가 가진 힘에 중점을 주고 선정했다. 이렇게 다양한 장르로 다양한 작품이 창작되고 있구나 싶었고, 특히 한국의 신진 영화감독들의 다양성에 놀라며 미래가 밝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한국 자체가 정말 많은 내러티브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단 생각도 들었다. 영감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작업이었다.
BIFAN에 와서 시간을 보내면서 어떤 것을 느꼈나.
전 영화 분야로 활동한 사람이 아니지만, 시네마틱한 작업을 많이 하고 있다. 특히 장르영화를 좋아해서 SF나 호러영화가 나오면 그 영화를 응원하기 위해 무조건 예매하곤 한다. 여기에 와서 이 다양한 상상력과 신진감독, 기성감독들이 협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스튜디오도 파라마운트와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으로 협력을 했었는데, 영화와 우리 같은 예술 분야 협력이 훨씬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에서 포에틱 AI로 공간 연출을 했다고 들었다. 혹시 앞으로 예정된 콜라보레이션이 있다면.
NDA(비밀유지계약) 때문에 말해줄 수 없다.(웃음) 말할 수 있는 건 예술 분야 관련 다큐멘터리가 하나 있다. 또 ‘문 프로젝트’라고 우주 관련 작업이 하나 있다. 칸 넥스트의 스텐과 함께 내년 칸을 목표로 준비 중인 것이 하나 있다. 우리는 그게 칸에서 선보이게 된다면 엄청난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우치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내외적으로 반대 의견이 많을 것 같은데.
작품의 창작은 저와 제 파트너가 모든 결정을 내린다. 지난 14년간 그랬다. 민주주의는 아니다.(일동 웃음) 현재 40~45명 정도 일하고 있다. 팀이 북적이긴 하지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다양하게 모였다. 이 모든 프로젝트는 책 형식으로 만들어 PDF 파일로 공유한다. 핵심 아이디어, 작업 파이프라인, 최종 시각화 등. 이 모든 걸 나와 파트너가 결정하는데, 그게 우리의 성공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외부에서 작업을 의뢰받아도 어떤 요구사항이 충돌하면 “우리는 아티스트지 에이전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물론 그 요구사항이 논리적이거나 우리의 예술적 지향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고려해 본다. 대개 우리에게 오는 고객은 우리의 이전 작품을 보고 오기 때문에 전권을 주고 디테일까지 요구하지 않는다.

최근 뇌파를 이용해 AI로 공간 연출을 하는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평소 작품도 공간 연출이 많은데, 이것으로 관객들에게 어떤 것을 유발하고 싶었나.
우리가 추구하는 건 기본적으로 새로운 방식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발명되고 100년 동안 카메라와 영상기, 스크린은 그 기술만 달라졌지 그대로 존재했다. 저는 공간과 건축물도 영화적 경험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몰입형 경험, 영화적 경험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상호작용을 무척 중요시한다. 최근 연 새로운 전시는 모든 방문객들에게 스마트워치를 착용시켰다. 그래서 이들이 공간을 돌아보는 동안의 심장박동 수, 위치 등을 파악하고 이를 실시간으로 작품에 반영한다. 방문객이 곧 창작의 주체가 되는, 집단 창작의 상황인 것이다. 그렇게 예술작품으로 상호작용하고 함께 만드는 경험을 하고 있다.
창작자로서 AI의 가장 핵심적인 장점과 치명적인 단점을 뽑는다면.
장점은 너무 많다. 우리는 예전부터 데이터는 물감이고 알고리즘은 붓이라고 생각하며 일하고 있다. AI는 콜라보레이터다. AI가 우리를 디렉팅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AI를 디렉팅하고 있다. 이 관계가 뒤집어지면 역사가 바뀌겠지만.(웃음) 이제 테라바이트를 넘어 페타바이트급 데이터가 있는데 AI가 없으면 안 된다. AI가 파이프라인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AI를 이용하면 그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놀 수 있는 창작적인 놀이터가 될 수 있다. 산술적인 데이터들이 시각예술 되기도 하고. 단점이 당연히 있는데, 단점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면 정말 단점이 된다고 생각한다. AI 안에 함몰돼 자신만의 안전지대에 안주하려고 한다면 자신의 재능과 상상력이 죽는 꼴이다. 그럼 AI가 중심이 된다. 그게 단점이 되는 것이다.
AI 시대가 도래한 지금, AI 분야에 도전하길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독려의 메시지를 보낸다면.
우리는 새로운 디지털 르네상스 시대에 살고 있다고, 그리고 이게 인류의 운명을 바꿀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건 언어의 탄생이나 불의 발견 같은 것이고, 여러 가지 많은 기회가 오고 있는데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현재 AI는 팝 컬처에서만 소구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각종 정보, 헬스 시스템, 그 외 많은 것에서 이것들이 우리 삶과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 빵과 물처럼. 스마트폰에조차 쓰이는데 쓰지 않을 수 없다. 여러분의 분야에서 어떤 AI를 활용해서 어떻게 하면 나의 일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