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한국형 재난 영화의 모든 것을 갖추었다. 무능한 정부와 고립된 시민, 정치계의 방관과 피해 인물들의 연대, 민폐 캐릭터와 코믹 캐릭터, 이기적 인간과 희생하는 인간, 가족애와 복수 등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국내 재난 영화의 역사를 한데 담은 듯하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굿바이 싱글>(2016)의 김태곤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신과 함께>(2018)의 김용화 감독이 제작을 맡았다. 여기에 주지훈, 김희원, 문성근, 예수정, 김태우 등 연기파 배우들이 가세했다.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우여곡절이 많은 작품으로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 5월 제76회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며 호재를 전했지만 불과 7개월 후 주연 배우 이선균이 마약 투약 의혹을 받고 사망하면서 개봉이 여러 차례 밀렸다. 그렇게 2021년 크랭크업한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3년 만에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영화는 오는 12일 개봉한다.
뻔함과 편안함 사이,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가 올여름 텐트폴 영화답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기대해 보며 영화를 미리 본 후기를 전한다.
*이하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뛰어난 정무 감각을 지닌 청와대 안보실 행정관 차정원(이선균)은 자신이 모시는 차기 대권주자 정현백(김태우)이 대통령이 되도록 온 힘을 다한다. 딸 차경민(김수안)이 유학을 떠나는 날, 정원과 경민은 짙은 안개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공항대교에 진입하게 된다. 모두가 긴장 상태로 주행하던 그때 한 난폭 운전자에 의해 연쇄 추돌 사고가 벌어지고 다리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문제는 그 사고 차량 중 군사용 실험견 이송 차가 포함되어 있던 것. 관계자는 보안을 위해 통신을 끊고 차량을 탈출한 실험견을 수습하려 좋지 않은 기상상황에도 무리하게 헬기를 띄운다. 순조롭게 포획에 성공하나 했지만 통제불능이 된 실험견의 반격으로 헬기는 추락하며 그 여파로 대교는 붕괴 위기에 처한다. 반려견 조디와 사고 현장을 찾은 렉카기사 조박(주지훈)과 실험견을 극비리에 이송해야만 하는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주축 양 박사(김희원), 그리고 치매에 걸린 아내 순옥(예수정)과 그를 보살피는 남편 병학(문성근), 골프 선수 유라(박주현)와 그의 언니 미란(박희본) 등은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인다.
영화는 다소 억지스러운 악재를 더하며 인물을 완벽히 고립시킨다. 자욱한 안개로 시야 확보가 되지 않는 기상상황에 연쇄 차량 추돌 사건이 벌어지고 살상 무기와도 같은 실험견이 탈출하며 도로 위를 활보한다. 설상가상 헬기 추락으로 인천 방면의 길이 끊긴다. 통신이 끊긴 상황에서 유일한 통로인 서울 방향 도로는 차량 화재로 인한 유독가스로 가득하다. 여기에 시민을 구조해야 하는 정부 관계자들은 정치적 손익을 따진다. 이들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다리 위에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포악한 실험견의 공격을 피해 보이지도 않는 유해가스 뚫고 서울로 향해야 한다. 이처럼 인물을 위협하는 요소가 많아질수록 각각이 주는 위기감은 약해진다. 일례로 인물들은 유독가스가 가득한 거리를 물에 적신 손수건이나 옷가지 등으로 입을 틀어막는 정도로 무사히 통과해낸다. 너무 간편하고 허무하게 문제를 해결해 괜스레 긴장한 것이 민망할 따름이다.

극악의 재난 속 한데 모인 각 인물들은 전개의 도구로 기능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인물과 심화시키는 인물이 명확히 나누어져 각각의 쓰임이 훤히 보인다. 청와대 직속 라인인 차정원은 사건의 실체인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실체를 밝혀내고, 양 박사는 해당 프로젝트의 관계자로서 11마리의 군견을 조종하고, 렉카 기사 조박은 딸키(만능열쇠)로 운전을 담당하고, 골프 선수 유라는 강력한 스윙을 날리고, 노부부 중 남편 병학은 스스로를 희생해 실험견을 가두며 위기 극복에 기여한다. 반면, 딸 경민은 인정(人情)인지, 반항심인지 모를 행동으로 아빠 정원의 속을 애타게 한다. 극 중 최약체인 치매 노인 순옥은 가장 먼저 실험견의 공격을 받고 남편과 동행을 위험에 빠뜨린다. 유라와 줄곧 말싸움을 벌이던 언니 미란 역시 계속해서 위험에 노출되며 동생 유라의 가족애를 불러일으킨다. 그렇지 않아도 각자의 서사가 충분히 전개되지 않아 관객과의 거리감이 큰 상태에서 인물은 그저 전개를 위한 쓸모로 소비되고 만다.
그러나 ‘아는 맛이 맛있다’고 했던가.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해운대>(2009), <부산행>(2016) 등 기존의 흥행 재난물의 매력을 극대화해 보여준다.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확실한 스펙터클이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약 185억 원의 순제작비를 들여 제작되며 앞서 예시로 든 두 영화의 것을 훌쩍 뛰어넘은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해운대> 129억 원, <부산행> 89억 원) 덕분에 영화는 실감 나는 재난 상황을 구현할 수 있었다. 연쇄 차량 추돌, 헬기 추락과 다리 붕괴 등 최첨단 VFX(시각효과)를 동원해 관객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을 끊임없이 제공한다. 특히 영화의 여러 위기 요소 중 첫 단추를 낀 11마리의 군사용 실험견은 위화감 없이 극에 녹아 현재 국내 VFX의 수준을 짐작게 한다. 더불어 개봉 전부터 전남 광양 컨테이너 선착장에 200m의 도로를 제작하고 1300여 평 규모의 세트장에서 촬영을 했다는 것이 큰 화제를 모았다. 배우 주지훈은 “사고 난 차량이 실제처럼 있어 연기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며 감사함을 전하기도 했다.

불필요한 신파를 배제하고 속도감 있는 전개를 유지한 것은 신의 한 수이다. 지난해 제76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되어 공개된 바 있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영화제 출품 버전보다 짧은 96분의 러닝타임으로 개봉한다. 연출을 맡은 김태곤 감독은 “칸국제영화제 상영 후 ‘조금 더 편집하면 완성도가 높아지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때문에 다시 한번 후반 작업을 하며 감정이 과잉되는 장면을 삭제하고 긴장감을 높였다”고 전했다.
故 이선균은 다원적인 인물 차정원을 매끄럽게 연기하며 극의 중심을 잡는다. 그는 목표 지향적인 행정관에서 딸을 보호하는 아버지, 외면받은 시민으로 변모하는 차정원의 면면을 안정적으로 묘사한다. 한편, 렉카 기사 조박 역의 주지훈과 양 박사 역의 김희원은 납작한 캐릭터의 속성에도 확고한 개성을 부여하며 극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두 배우는 “내 캐릭터는 기능성을 가졌다”는 주지훈의 말에서 예측 가능하듯 자칫 소모적으로 끝날 수 있는 인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