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BIFAN)를 대표하는 섹션 중 하나는 바로 ‘비욘드 리얼리티’다. 올해도 전 세계 XR 콘텐츠의 최신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는 30여 편의 작품을 공개한다. XR은 확장현실(eXtended Reality)의 줄임말로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그리고 혼합현실(MR) 기술을 모두 포괄하는 용어다. VR은 HMD(Head Mounted Display) 디바이스를 착용하여 현실을 완전히 새로운 3D 디지털 공간으로 대체해 새로운 그래픽의 세계로 몰입하게 하고, AR은 현실 세계 위에 디지털 콘텐츠를 겹쳐 보이게 하는 기술로 스마트폰으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MR은 위의 VR과 AR을 합쳐 현실의 물체를 인식해 그 주변에 가상의 공간은 3D로 구성하는 기술이다. XR은 이 모든 기술을 통합하며 더욱 발전된 기술을 접할 수 있게 하며 더욱 실제 같은 가상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여기서 우리는 이야기의 공간으로 직접 들어가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친구가 옆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듯 주인공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는데, 컨트롤러를 활용해 몸을 움직이며 직접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수도 있다.
올해 9번째 전시를 맞은 비욘드 리얼리티는 변화의 최전선에 서서 전통적인 스토리텔링의 경계를 넓히고,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작품들이 가득하다. 그를 통해 관객은 단순한 관람자가 아니라 창작 과정의 일부가 되어 우리의 감성과 인식을 확장하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다. 그중 <상상 속 친구>(The Imaginary Friend, 2023)라는 XR 작품으로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화제를 모은 XR 크리에이터 스테이 할레마를 만났다. 네덜란드의 풀 볼류매트릭 비디오 캡처 스튜디오인 4DR Studios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고 있는 그는, 2017년작 <애쉬스 투 애쉬스>(Ashes to Ashes) 외에도 지난 BIFAN에서도 소개된 <스마트폰 오케스트라> 프로젝트를 창의적으로 이끌고 있는데, 이 오케스트라는 관객들의 휴대폰으로 구성되어 재미있으면서 깊이 있는 그룹 경험을 창조했다는 극찬을 받았다. 한편, 비욘드 리얼리티는 예약제를 운영하지 않고 현장 대기로 관람할 수 있다. 별도의 사전 예약 없이 전시장에 방문해 원하는 작품의 대기 목록에 접수하고 작품을 관람하면 되는데, 오는 14일(일)까지 부천아트벙커B39를 찾으면 된다.

당신에 대한 자료를 찾다 보면, ‘마술사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빠지지 않는다. (웃음) 진짜인지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었다.
사실이다. (웃음) 꽤 많이 알려진 마술사이고 한국에 와서 대학 특강을 하신 적도 있다. 영상 창작자로서 아버지에게 영향받은 게 있냐고 묻는다면, 명백하게 그렇다. 마술의 트릭도 스토리가 필요하다. 그 스토리에 따라 관객의 심리와 피드백은 완전히 다르다. 돌이켜 보면 나와 아버지의 뇌가 비슷했던 것 같다. 정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아버지가 마술사라면 난 마법사가 되고 싶었다. 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냐고 묻는다면, 전자는 기술에 가깝고 후자는 예술에 가깝다. 내가 영상작업을 하기 이전에 음악 활동을 했던 이유도, 음악은 마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뮤직비디오까지 만들게 됐다.
당신이 몸담고 있는 밴드의 뮤직비디오 작업이 인상적이었다. 보통 연상하는 VR을 통해 밴드 멤버들이 있는 공간을 360도로 넓게 보여준다고만 생각했다가, 훌라후프로 장면 전환을 하는 모습 같은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XR 작업을 하면서도 장면 연결에 대해 큰 고민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아마도 그 이전부터 뮤직비디오를 만들려고 시도했기 때문에 나온 장면 같다. 내가 그냥 실시간으로 촬영하건 XR을 고민하건 간에, 뮤직비디오는 다채로운 장면을 보여줘야 한다. 컷을 많이 나눈다고 몰입감이 깨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신 별로 어떻게 컷을 나눌까 고민하던 중 의상 디자이너가 훌라후프를 들고 가는 게 보여서 일단 뺏었다.(웃음) XR은 관객이 함께 참여하는 느낌도 중요한데, 마치 작품 속 누군가가 관람자에게 훌라후프를 씌워주는 효과도 생겼다. 어쩌면 그 뮤직비디오 작업을 통해 <상상 속 친구>의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기도 하다.


<상상 속 친구>의 주인공 다니엘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헤매고 있는 소년이다. 관객은 그런 다니엘의 상상 속에 들어가 친구가 되고 다니엘의 감정을 발견하고 공유하게 된다. 당신 작업의 핵심은 몰입감 그 이상의 감정의 교류가 아닐까 싶다.
<상상 속 친구>에서 주변인들이 다니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목격하고, 다니엘이 현실과 완전히 단절되기 전에 다니엘이 자신의 감정을 먼저 파악하는 것을 도와주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기술 그 자체를 넘어서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맨 처음 VR, AR, XR 작업을 하게 되면 기존 영상 작업과 완전히 다르고 신기하기 때문에 그런 기술적 부분에만 도취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자체도 작업에 있어 중요하지만 결국 사고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나아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 작품 속 플레이어로서 자신을 둘러싼 공간감도 중요하지만, 그 공간을 체험하는 걸 넘어 궁극적으로는 그 이야기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XR 작업의 핵심이 거기 있다고 본다.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거기에는 일정한 시간과 분량이 필요하다. 그 러닝타임에 대한 고민은 어떻게 해결하고자 하나.
이미지와 스토리의 밸런스가 중요하다!라고 누구나 생각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웃음) <상상 속 친구>에서도 마법의 공간을 만든다. 내가 고민하는 건 XR 작업의 스토리라는 것도 층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분량이 짧지만 여러 층위를 넣으려고 한다.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유니버스의 현존감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XR 작업을 하면서 보통 출연자의 연기나 사운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그런 부분도 꼼꼼하게 챙기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상상 속 친구>에 대해서는 창작자로서 자부심이 있다. 많은 분들이 이곳에 와서 전시 기간이 끝나기 전에 꼭 한 번 봐주셨으면 좋겠다.

올해 BIFAN의 중요한 화두는 바로 AI 영화다. 그에 대한 생각도 궁금하다. 현재 당신의 작업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도 고민해 봤을 것 같다.
궁극적으로 내가 꿈꾸는 창작은 내면의 여정이나 잠재의식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AI의 도움을 받아서 스크립트를 써볼까 하고 있고, 물론 영상도 그를 표현하는데 AI 영화가 큰 장점이 있을 것 같다. 이번 BIFAN에서 AI 콘퍼런스 연사로 온 오닉스 스튜디오의 기술 디렉터 매튜 니더하우저의 <툴패맨서>(Tulpamancer, 2023)를 봤는데, AI와 XR 기술의 만남과 한계의 극복이라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여전히 연구하고 체험할 게 많구나, 하고 느낀다.
현재 준비 중인 작업을 소개해 줄 수 있다면.
<조상들>이라는 작품들 준비하고 있다. <스마트폰 오케스트라>처럼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야 가능한데, 일단 무작위로 30명 정도의 출연자만 생각하고 있다. 각자 셀피를 찍고 떠오른 사람을 만나고, 또 다른 사람이 나를 찾고 하면서, 그 과정을 6번 정도 거치면 결국 한 사람의 얼굴로 만나게 된다. 미래의 후손들은 결국 한 뿌리에서 나왔다. 요즘처럼 극심한 양극화와 혐오의 시대에, 몇 다리만 건너면 다 우리 가족이라는 말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보고 싶은 거다. 그렇게 해보니 30명이 한 가족이자 뿌리라는 얘기다. 내년 BIFAN에 가져오는 것이 목표다.

그저 관객으로서 좋아하는 감독이나 영화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테렌스 맬릭의 <씬 레드 라인>(1998)이 내 인생 영화라 할 수 있다. 전쟁영화임에도 꿈같고 철학적인 영화다. 그리하여 역설적으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보여주는 전쟁영화가 됐다. 내게 많은 영감을 줬다. 크리스토퍼 놀란도 좋아하고 특히 <테넷>(2020)을 좋아하는데, 보면 볼수록 더 이해가 안 되는 신기한 영화다. (웃음) 아, 그리고 지브리 스튜디오의 영화들을 빼놓을 수 없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가장 존경하는 영화인 중 한 명이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이 가장 좋다. 언제나 나는 작업에 있어 ‘밸런스’라는 감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동서양의 밸런스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앞서 잠재의식을 따라가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얘기를 했는데, 아마도 내면 깊숙이 동양문화를 좋아하니까 그런 작업을 해보고 싶은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