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액션영화 뉴웨이브의 서막이 될 수 있을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폐막작이자 올해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 초청되며 ‘홍콩 액션영화 전성기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평가와 함께, 올해 상반기 홍콩 박스오피스를 뒤흔들었던 <구룡성채: 무법지대>의 정 바오루이 감독을 만났다. 두기봉 감독이 이끄는 영화사 ‘밀키웨이 이미지’에서 성장해 <엑시던트>(2009), <모터웨이: 분노의 질주>(2012) 등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드러냈고 <몽키킹: 손오공의 탄생>(2014) 등 <몽키킹> 시리즈로 중국 본토 박스오피스도 점령했다. 그처럼 어느새 2000년대 홍콩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성큼 올라선 그가, 1980년대 홍콩의 치외법권 지역이었던 ‘씬 시티’ 구룡성채를 배경으로, 숨돌릴 틈 없이 휘몰아치는 과몰입 액션영화를 만들었다. ‘홍콩 액션영화의 화려한 부활’이라는 평가를 단박에 수긍하게 만드는, 아드레날린 과다 분비 액션영화로 부천을 찾은 정 바오루이 감독을 만났다.

<구룡성채: 무법지대>에 앞서 유덕화, 양조위 주연 <골드핑거>(2023)도 홍콩 박스오피스를 강타했는데, 공교롭게도 두 영화 모두 홍콩의 1980년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골드핑거>와 제작 시기가 거의 겹치는데, 개인적으로도 참 흥미로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전혀 무관하게 출발한 두 프로젝트인데, 똑같이 홍콩의 1980년대를 다루고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완전히 다르다. <골드핑거>는 휘황찬란한 금융의 세계를 그리고 있고, 우리 영화는 이제는 사라져버린 그 시절 어둠의 공간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러면서 거꾸로 내가 성장한 그 시절의 홍콩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됐다. 1980년대의 홍콩은 굉장히 독특하고 매력적인 곳이었다. 작지만 많은 걸 이뤄냈으며 무엇보다 영화의 전성기였다.

<구룡성채: 무법지대>는 리얼리즘에 입각한 액션영화가 아니다. 마치 장풍을 날리는 것처럼 호쾌하게 주먹을 내지르기도 한다. 이전까지 당신 영화의 무술감독을 도맡아온 것이나 마찬가지인 황위량 무술감독이 아니라, 견자단과 주로 호흡을 맞춰온 타니가키 겐지 무술감독과 함께 했다. 당신의 이전 액션영화들과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거기 있는 것 같다.
황위량 무술감독은 리얼한 스트리트 파이팅 안무의 대가다. 언제나 실전처럼 동작을 짠다. 언제나 내게 1순위 무술감독인 것은 변함이 없다. 다만 이번 작품은 조금 더 기교를 부리고 과장되게 액션을 디자인해서 보다 만화적인 액션 연출을 하고 싶었다. 격투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컨셉을 그렇게 가져가고 싶어서 타니가키 겐지와 함께 했다.

당신의 액션영화는 ‘어둠의 액션’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공간 설정 자체가 어두운 경우가 대부분이고 다크한 세계를 그리는 경우가 많다. <구교구>(2006)와 <군계>(2007)가 대표적이다. 구룡성채라는 배경 자체가 그런 묘사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다.
누아르 장르에 매혹됐다고 느끼는 것은 아닌데, 내 세계관이 어두워서 그런지 본질적으로 그런 분위기에 끌리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그게 내 창작의 습관이 됐다고도 할 수 있다. 게다가 어둠을 배경으로 할 때 도주와 도피 등 새로운 ‘맛’을 추가하기 좋다. 아무튼 다음에는 낮에도 한 번 싸워보겠다. (웃음)

클라이맥스 액션신을 거의 20일 동안 찍었다고 들었다. 아마 관객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 액션의 강도가 그대로 느껴진다.
25분 정도로 분량을 잡고 시작했다. 액션 연기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견자단 배우와도 여러 편을 함께 했지만, 이번 영화의 배우들은 견자단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했다. (웃음) 그래서 보다 꼼꼼하고 주의를 들여 액션신을 연출했고, 그러다 보니 굉장히 긴 시간이 들긴 했다. 배우의 상태가 캐릭터의 상태와 최대한 비슷할 때 가장 좋은 연기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배우와 제작진의 합의가 이뤄진 상태에서, 극도로 배우의 피로가 누적된 상태까지 영화에 담아냈다. 최종적으로 액션을 하는 배우와 그를 지켜보는 관객이 일체감을 느끼는 순간까지 가고 싶었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반에 마스터클래스를 가진 두기봉 감독은 당신의 영원한 멘토라 할 수 있다. 가령 이미 장편 데뷔한 뒤에도 당신은 두기봉 감독의 <마약전쟁>(2012) 촬영현장에서 확성기를 들고 연출부, 정확하게는 ‘Second Unit Director’로 뛰어다녔다. 당신에게 두기봉 감독과 밀키웨이 영화사는 남다른 의미일 것 같다.
맞다, 두기봉 감독님은 내 영화 인생의 가장 큰 스승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나는 다른 제작사와도 작업하고 있는데, 종종 영화사를 들른다. 두 감독님이 호출하면 언제든 간다. 그럴 때마다 다시 영화를 공부하러 학교에 가는 것 같고 두 감독님은 교장 선생님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언제나 엄격하셨고 한 번도 ‘합격’이라고 하신 적 없다. 창작자로서 만족을 모르시는 분이다. 밀키웨이는 설립 이념 자체가 창작자를 절대적으로 존중하는 것이었고, 언제나 든든하게 보호받고 지원받으며 영화를 만든다는 느낌이었다. 앞서 <운명>(2022)이라는 영화를 밀키웨이에서 만들었는데,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다면 한 번도 예산 초과에 대해 지적하지 않으셨다.
얼마 전 마스터클래스에서 폐막작 <구룡성채: 무법지대>에 대해 “내가 홍콩에서 먼저 봤는데, 영화가 별로”라고 얘기하며 웃으셨던 기억이 난다. (웃음)
그렇잖아도 요즘 두기봉 감독님이 여기저기서 내 영화에 대해 별로라고 얘기라고 다니신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 번 경고를 드려야 할 것 같다. (웃음)

<구룡성채: 무법지대>의 제작자이기도 한 엽위신 감독(<살파랑> <도화선> <엽문>)과는 어떤 인연이 있나.
엽위신 감독님이 연출한 <줄리엣과 양산백>(2000), <신투차세대>(2000) 등에서 조감독으로 일했다. 내 마지막 조감독 경력과 장편 데뷔 시점이 겹쳐지는데, 창작의 실제적인 많은 것들을 그로부터 배웠다. 함께 시나리오도 많이 썼다. 스스로 영화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가능성이 없다고 절망하고 있을 때 ‘너만의 방법을 찾아낸다면 서극이나 왕정 못지않게 잘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해준 사람이 바로 그였다.

혹시 두기봉, 엽위신 감독을 제외하고 가장 좋아하는 홍콩 감독이 있다면.
어쩌면 나를 영화의 길로 이끈 사람이 바로 임영동 감독님이시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주윤발, 이수현 주연 <용호풍운>(1987)이다. 거기에는 사연이 있다. 당시 내가 살던 집이 몽콕에 있었는데 <용호풍운>의 촬영지가 바로 집 주변의 볼링장과 야시장으로 유명한 레이디스 마켓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렸을 적 실제로 거리에서 촬영하는 그 영화의 제작과정을 직접 지켜볼 수 있었다. 어디에서 촬영하는지 알 수 없는 황비홍은 도저히 만날 수 없지만, 주윤발은 코앞에서 볼 수 있었다. 정말 멋지다, 저게 영화구나, 나도 저런 대단한 사람과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 경험이 나를 영화의 길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나중에 임영동 감독님의 <대모험가>(1995, 국내에 <유덕화의 도망자>로 개봉)에 조감독으로 참여하게 됐을 때 얼마나 가슴이 벅찼는지 모른다. 그런데 2018년에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그 또한 홍콩영화계의 큰 슬픔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