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회 베니스 국제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심사위원장인 배우 이자벨 위페르를 비롯해 제임스 그레이 감독, 앤드류 헤이 감독, 클레버 멘돈사 필로,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배우 장쯔이 등 심사위원들이 선택한 수상작들을 살펴보자.
황금사자상
페드로 알모도바르
룸 넥스트 도어 The Room Next Door

올해 황금사자상 수상작은 스페인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룸 넥스트 도어>다. 알모도바르는 1988년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로 처음 베니스 경쟁부문에 초청돼 각본상을 차지했지만, 이후 베니스와는 연이 없었다가 2019년 평생 공로상을 수상하고 2년 뒤 <패러렐 마더스>(2021)가 오랜만에 경쟁 후보에 올랐고, 다음 작품 <룸 넥스트 도어>로 황금사자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알모도바르가 처음 영어로 연출한 (제작은 스페인에서 했다) 장편영화로, 미국 소설가 시그리드 누네즈(Sigrid Nunez)의 『어떻게 지내요』(What Are You Going Through, 2020)를 각색했다. 대배우 줄리안 무어와 틸다 스윈튼이 투톱으로 활약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다. 젊은 시절 패션지에서 일한 절친 잉그리드(줄리안 무어)와 마사(틸다 스윈튼)는 각자 자전 소설을 쓰고 종군 기자로 일하며 떨어져 지내다가 오랜만에 재회한다. 자궁경부암을 앓고 있는 마사는 잉그리드에게 안락사 약을 먹을 때 곁에 있어달라고 청한다. 영화제 기간 경쟁부문 작품 가운데 언론/평론가의 최고 평점을 받았다. 10월 개봉 예정.
심사위원대상
모라 델페로
베르밀리오 Vermiglio

다큐멘터리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2019년 극영화 <모성>(Maternal)을 발표한 이탈리아 감독 모라 델페로의 5년 만의 신작. 2차 세계대전 끝 무렵, 시칠리아 출신의 탈영병 피에트로는 베르밀리오로 와 마을의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엄격한 마을 교사의 장녀 루치아와 사랑에 빠지지만, 둘의 사랑은 이 작은 마을을 뒤흔드는 사건을 일으킨다. 제목 '베르밀리오'는 이탈리아 북방의 산골마을로, 모라 델페로 감독의 아버지가 나고 자란 고향이다. 델페로는 자신의 뿌리를 잃지 않기 위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이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고, 베르밀리오 주민들과 많은 인터뷰를 진행하며 촬영을 준비했다. 2003년 베니스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귀향>의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와 긴밀하게 작업해온 미하일 크리치만이 촬영감독을 맡았다.
감독상
브래디 코베
브루탈리스트 The Brutalist

브래디 코베는 배우로 경력을 시작해 연출작 <더 차일드 오브 어 리더>(2015)와 <복스 룩스>(2018)를 내놓으며 야심찬 필모그래피를 구축하고 있다. 6년 만에 완성한 새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헝가리 태생의 유대인 건축가 라슬로 토스(Laszlo Toth)가 지나온 30년의 시간을 3시간 35분에 담아냈다. 언뜻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처럼 보이지만, 코베가 첫 감독작부터 협업해온 파트너 모나 파스트볼과 함께 쓴 오리지널 시나리오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7년 미국으로 건너온 라슬로 토스(애드리언 브로디)는 가난에 시달리다가 부유한 사업가 해리슨 리 반 뷰렌(가이 피어스)과의 계약을 따내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라슬로가 좋은 취향과 뒤틀린 폭력성을 지닌 해리슨과 관계를 이어가는 과정이 서사의 중심이 되는 것 같다. 오리종티 부문 감독상을 수상한 첫 장편 <더 차일드 오브 어 리더>부터 줄곧 베니스 영화제에서 신작을 선보여온 코베는 35mm 필름으로 촬영한 <브루탈리스트>를 70mm 필름으로 상영했고, 감독상을 차지했다.
심사위원특별상
디 클룸베가쉬빌리
4월 აპრილი

베니스 영화제의 3등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특별상은 조지아 여성 감독 디 클룸베가쉬빌리의 <4월>이 수상했다. 조지아 시골의 산부의과 의사가 법적 금지에도 불구하고 낙태를 원하는 환자에게 수술을 해준다는 혐의로 기소되고, 제 행동과 소신을 변호한다는 이야기. 디 클룸베가쉬빌리는 "존재와 여성성 사이의 갈라지고 수렴하는 것을 탐구하고 분석하고자 <4월> 작업을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탄생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파고들게 됐다"고 밝혔다. 감독의 전작 <비기닝>(2020)의 주연배우였던 이아 수키타쉬빌리(Ia Sukhitashvili)가 <4월>에서도 주인공 니나를 연기했다.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니콜라스 자르가 <비기닝>의 음악감독을 맡은 데 이어, <4월>은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매튜 허버트가 오리지널 스코어를 만들었다.
각본상
무릴로 하우져 & 에이토르 로레가
나는 아직 여기 있어 Ainda estou aqui

각본상은 <중앙역>(1998) <모터사이클 다이어리>(2004)로 잘 알려진 브라질 감독 월터 살레스가 12년 만에 발표하는 신작 <나는 아직 여기 있어>가 받았다. 각본은 브라질 소설가 마르셀로 루벤스 파이바의 소설을 바탕으로, 카림 아이누즈 감독과 작업했던 작가 무릴로 하우져와 에이토르 로레가(Heitor Lorega)가 각색했다. 군부독재의 손아귀에 있던 1971년, 브라질 노동당 의원 루벤스 파이바(이름에서 알 수 있듯 원작 작가의 아버지다)가 실종되고 그의 아내 유니스와 아이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남편을 잃고 다섯 아이들과 함께 생을 버텨내는 주인공 유니스를 연기한 배우 페르난다 토레스에 대한 상찬이 많았다.
여우주연상
니콜 키드먼
베이비걸 Babygirl

버지니아 울프를 연기한 <디 아워스>(2002)로 오스카와 베를린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휩쓴 니콜 키드먼은 올해 베니스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네덜란드 감독 핼리너 레인의 에로틱 스릴러 <베이비걸>에서 키드먼은 훨씬 어린 인턴과 불륜 관계로 커리어와 가정을 잃을 위기에 처한 중년의 CEO 역을 맡아 활약했다. 베니스 영화제 현장에 참석했지만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듣고 돌아가게 돼 핼리너 레인 감독이 트로피를 대리 수상하며 상을 어머니에게 바친다는 키드먼의 메시지를 대신 전했다. <베이비걸>은 올해 크리스마스 시즌 미국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남우주연상
뱅상 랭동
콰이어트 썬 Jouer avec le feu

남우주연상은 2016년 칸 영화제에서 <아버지의 초상>으로 수상한 바 있는 프랑스 배우 뱅상 랭동이 받았다. 베니스에서 수상한 <콰이어트 썬>에서 역시 랭동은 '아버지'를 연기한다. 홀로 두 아들을 키우는 50대의 철도 노동자 피에르가 그 주인공. 작은 아들 루이가 소르본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집을 떠나려는 와중, 그에 위축된 큰아들 퓌스는 극우 극단주의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가정의 평화를 깨트린다. "나의 사상이 자식의 사상과 정반대가 된다면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품고 만들어진 작품인 만큼, 피에르가 커다란 비극을 딛고 퓌스르를 끌어안으려는 의지가 랭동의 육체를 통해 구현됐을 것이다. 내년 초 프랑스 현지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