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커: 폴리 아 되
감독 토드 필립스
출연 호아킨 피닉스, 레이디 가가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문제적 페르소나를 내려놓은 자의 분열적 내면
★★★
두 편의 실험에 걸쳐 토드 필립스가 보여주려 했던 조커는 우스꽝스러운 반영웅이나 위력적인 빌런이 아닌, 자기 망상에 사로잡힌 가련한 범죄자의 가면임이 확실해졌다. 조커라는 문제적 페르소나를 내려놓고 가장 취약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간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의 분열적 내면을 탐험하기에 뮤지컬 형식은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보인다. 이는 자신들의 범죄를 일종의 연극적 활약으로 바라보는 주인공들의 상황과 적절히 조응할 뿐 아니라, 심지어 내내 음울한 이 영화에 꼭 필요한 활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인상마저 든다. 다만 리(레이디 가가)의 캐릭터적 동기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부족한 계기만을 지니며, 나아가 아서와의 케미는 미온적이거나 때론 타당성을 잃는다는 단점이 적지 않다. 훌륭하게 파괴적인 연기이지만, 그 결과로 여전히 조커 혹은 아서 플렉보다 그를 연기하는 배우 호아킨 피닉스의 존재감만이 두드러진다는 점도 찬사를 주저하게 되는 요인이다.
이지혜 영화 저널리스트
조커의 팬들은 원치 않을 길고 긴 반성문
★★★
1편의 완성도와 폭발력에는 영 따라가지 못하는 속편이지만, 애초에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은 <조커: 폴리 아 되>가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길고 긴 반성문을 써내려간다. 공유 정신병적 장애를 뜻하는 제목 ‘폴리 아 되’가 암시하듯 영화는 조커에 열광한 이들에게 주목한다. 불우와 차별, 정신질환으로 인해 저지른 살인으로 범죄자가 된 아서 플렉을 영웅으로 추앙하는 이들의 폭력과 망상은 점점 더 번져가고 그 중심에 리 퀸젤(레이디 가가)이 있다. 밖의 열성적인 추종자들과 달리 감옥 안의 아서 플렉은 무기력과 환상을 오가며 방황하고, 리 퀸젤에게 끌려다닌다. 폭력에 목말랐던 이들이 열광했던 조커는 없다. 조커라는 화장을 지우면 비겁하고 불안한 아서 플렉이 남을 뿐이다. 전작에 열광했던 관객이라면 토드 필립스 감독을 원망할 정도로 허무가 짙은 결말이지만 <조커> 개봉 이후 일어났던 일련의 소요를 보면 감독의 현실 인식을 반영한 변명인 듯.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아이고, 되다
★★☆
조커가 아닌 아서 플렉을 그리고 싶었던 감독의 선택도, 뮤지컬 형식을 취한 전략에도 큰 불만은 없다. 다만 연출적인 야심이든, (범죄를 미화하고 정신질환에 대한 오해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비판받은) 전편에 대한 새로고침이든 그것을 펼치는 과정에서 장르적 재미를 챙기지 않은 건 불만이다. 그러니까, 호아킨 피닉스라는 무시무시한 배우와 레이디 가가라는 세계적인 팝스타가 함께 부르는 미친 사랑의 노래가 이토록 지루할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랄까.
대도시의 사랑법
감독 이언희
출연 김고은, 노상현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내가 나인 것, 네가 너인 것을 포기하지 않기를
★★★☆
청춘의 한가운데에 있는 이들과는 충분히 링크되면서도, 이미 그 시간을 지나온 이들에게는 한 시절에 보내는 뜨거운 안녕. 주인공들과 그들의 긴 시간을 바라보는 이 애수는 내내 영화를 인상적으로 감싸 안는다. 원작 텍스트의 배경이던 대도시의 풍경 역시 중요한 주인공이다. 익명성에 어쩔 수 없이 숨고, 모두가 조금씩은 고독하고, 다른 사람과 쉽게 연결되지만 그렇기에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도시의 공간성이 탁월하게 감지된다. 무엇보다 동시대의 보편적 주인공으로서 퀴어를 전면에 내세운 시도는 한국 상업영화에서 가장 의미 있는 시도 중 하나로 기억될 만하다. 그것은 관객 각자에게 내가 나 자신이기를 포기하고 싶어졌던 순간으로 치환되기도 한다. 그리고 끝내 ‘내가 나인 것이 단점일 순 없음’을 알게 해 준 사람들의 이름을 야밤에 하나 둘 불 켜진 집들의 풍경처럼 떠오르게 만든다. 이 복잡다단한 대도시를 살아가는 고단한 얼굴들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될 것 같은 예감. 김고은과 노상현의 재능과 사랑스러움은 한도 초과의 영역이다.
이지혜 영화 저널리스트
미친X와 게이의 흑역사? 우행시!
★★★
박상영 작가의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 중 ‘재희’를 원작으로 삼은 영화는 영리한 각색을 보여준다. 단편의 화자가 영(영화에서는 흥수)이었던 만큼 상대적으로 다소 거리가 있었던 재희(김고은)에게 여성 관객들이 좀 더 몰입할 수 있는 사연을 부여한 것. 영화 속 재희는 ‘미친X’로 불릴 정도로 거침없고 당당하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에서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성차별, 데이트 폭력 등 현재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고민들로 재희를 더 가깝게 느끼게 했다. 성소수자로서 겪는 흥수(노상현)의 고민 역시 결코 가볍지 않지만 청춘이라는 큰 틀 안에서 비교적 산뜻하게 그려진다. 영화는 부딪치고 깨지고 실수도 많이 하기에 흑역사로 기억되곤 하는 20대가 알고보니 가장 반짝였던 시간이었다는 것을 두 사람의 성장통을 통해 보여준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네가 너인 게 네 약점이 될 순 없어.”
★★★
과거 <섹스 앤 더 시티> 인기와 함께 ‘게이 남자친구’ 판타지가 유행한 적이 있다. 그때 얼마나 많은 미디어가 폭력적인 시선으로 맥락 없이 이 설정을 소비했는지. 다시 생각해도 화끈거린다. 이성애자 재희(김고은)와 동성애자 흥수(노상현)의 우정을 그린 <대도시의 사랑법>은 상업 영화/드라마 안에서 얄팍하게 다뤄져 온 게이 남자친구 판타지를 부수고 현실을 덧입힌다. 남들과 다르면 비정상으로 낙인찍는 사회 속에서 “네가 너인 게 네 약점이 될 순 없다”고 다독이는 청춘들의 우정을 응원하게 한다. 극적 긴장을 위해 몇몇 인물을 ‘악인’으로 만든 건 걸리지만, 김고은의 매혹과 노상현의 매력으로 돌파한다. 무엇보다 21년 전 <...ing>로 주목받은 이언희 감독의 감각이 현재진행형으로 시대와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이 반갑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사랑할 수밖에 없는 영화
★★★☆
동명의 인기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시대가 원하는 청춘 영화를 완성했다. 로맨틱 코미디, 퀴어 영화, 가족 영화를 두루 걸치면서도 위화감 없는 전개로 러닝타임 내내 관객을 즐겁게 만든다. 원작에 대한 기대치에 부응하면서 대중 영화 안에서 청춘들이 끌어안은 고민을 풀어내고자 한 노력이 엿보인다. 무엇보다 영화가 재밌다. <파묘>(2023)에 이어 연달아 대표작을 경신한 김고은, 글로벌 드라마 <파친코>로 스타덤에 오른 노상현은 엄청난 케미스트리로 두 배우와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와일드 로봇
감독 크리스 샌더스
출연 루피타 뇽, 페드로 파스칼, 캐서린 오하라, 키트 코너
이지혜 영화 저널리스트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함께의 가치
★★★☆
가사보조 로봇 로즈(루피타 뇽)는 불시착한 섬에서 아기 기러기 브라이트빌(키트 코너)을 돌보게 된다. 로봇에게조차 어려운 육아를 주변 동물들의 도움으로 해나가는 동안 성장한 브라이트빌이 기러기 무리를 따라 따뜻한 곳으로 이동해야 할 때가 온다. 로즈와 브라이트빌에게서 부모 자식 관계가 가지는 필연적인 이별을, 로즈와 동물 친구들에게서 서로 다른 이들이 우정을 나누게 되는 과정을, 섬의 동물 사회를 통해 차이를 인정하는 방식 등 다양한 가치를 읽어낼 수 있다. 무엇보다 로봇의 프로그래밍과 동물의 본능을 등치시킨 영화는 공존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공생이라는 가치가 희미해져가는 시대에 로봇과 동물의 우화를 통해 결국 인간을 이야기하는 것. 곁에 있는 사람에게 다정하라고, 모르는 사람에게도 친절하라고. 본능과 프로그래밍을 거스른 공존으로 인해 생존율을 높인 동물사회를 통해 인류의 역사에서 다정함은 언제나 생존에 유리한 전략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로봇 애니메이션의 신흥강자가 나타났다
★★★★
역시 크리스 샌더스 감독이다. 한동안 주춤했던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에 <드래곤 길들이기>(2010) 크리스 샌더스 감독이 다시 날개를 달았다. 피터 브라운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야생에 떨어진 로봇과 아기 기러기의 특별한 가족애, 야생 동물들과 나누는 우정을 따뜻한 감동 이야기로 그렸다. 어쩌면 익숙해 보이는 설정과 이야기를 캐릭터와 연출력으로 변주해 색다른 재미를 만들어낸다. 초반부는 완성도 높은 작화로 예술성을 끌어올리고, 전력투구하는 중후반부는 감동과 눈물이 몰아친다.
위국일기
감독 세타 나츠키
출연 아라가키 유이, 하야세 이코이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엄마 없는 하늘 아래
★★★☆
사고로 엄마를 잃은 소녀 아사(하야세 이코이)는 이모인 소설가 마키오(아라가키 유이)와 살아가게 된다. 언니(아사의 엄마)와 사이가 안 좋아 절연했던 마키오. 그들의 다소 우발적이며 불편한 동거가 이어지면서, 그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다. 예상치 못했던 불행 속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십 대 소녀의 성장 영화. 절제된 톤 속에서 차곡차곡 감정을 쌓아간다. 아사 역을 맡은 하야세 이코이의 연기가 인상적. 슬픔 속에서 애써 밝은 느낌을 잃지 않으려는 내면 연기를 보여준다.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어른, 새롭게 써 내려가야 하는 페이지의 이름
★★★
타인이나 다름없었던 이모와 조카가 서로 한 집에 모여 살게 된다. 이들은 각자의 세계에 속했다가 함께 써 내려가야 하는 새로운 페이지의 세상으로 이제 막 떨어졌다. 그 안에서 두 사람의 일상은 위국일기(違国日記), 즉 어긋나고 다른 매일의 일기가 된다. 따로 또 함께, 나 자신의 기억과 화해하며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어른은 모두에게 어려운 개념이다. 이미 어른에게는 ‘진짜 어른'의 영역에 영원히 도달하지 못할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이, 청소년기에는 무한한 호기심과 더불어 결국에는 시시하게 나이들 수밖에 없다는 체념 섞인 냉소가 존재한다. 그 두 마음이 서로를 통해서 각자의 자리를 다시 잘 보듬어 가도록 만드는 이 영화적 여정의 온기는 뭉근하다. 자극적이지 않은 섬세함이 매력적. 조금은 길게 늘어진 듯한 러닝타임은 아쉽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슴슴하게 스며드는
★★★
언니와 절연한 소설가 미카오(아라가키 유이)가 언니의 죽음으로 혼자가 된, 한 번도 본 적 없는, 조카 아사(하야세 이코이)와 함께 동거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가족이 돼 가는 서사. 일견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연상되는 영화엔 인공적인 갈등이나 극적인 반전은 없다. 마카오와 아사의 관계, 그리고 두 사람을 둘러싼 다양한 관계를 느리게 지켜보며 삶을 긍정할 뿐이다.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는 호흡이지만, 그럼에도 지켜보게 하는 슴슴함의 매력이 나쁘지 않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기
★★★
야마시타 토모코의 동명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일본 영화. 소설가 이모와 중학생 조카의 서먹한 동거 생활은 서로를 조금씩 성장시킨다. 두 주인공이 이모와 조카, 어른과 청소년이라는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동등한 ‘별개의 인간’임을 인정하는 과정을 담담하고 차분하게 그렸다. 연기 폭을 넓혀나가는 아라가키 유이도 인상적이지만 신인 배우 하야세 이코이의 신선한 마스크와 출중한 연기에 기분 좋은 안도감이 생긴다.
바넬과 아다마
감독 라마타-툴레 시
출연 카디 만, 마마두 디알로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모래 폭풍처럼 부서지는 사랑
★★★☆
신화적인 동시에 미학적이고, 다큐적인 동시에 문학적이다. 개인의 욕망이 사회 규범과 마찰을 일으키는 상황에서 개인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 멀어져 가는 꿈 앞에서, 서서히 황폐해져 가는 바넬(카디 만)의 심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영상이 그야말로 그림처럼 펼쳐진다. 세네갈 출신 프랑스 감독 라마타-툴레 시의 작품으로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분 초청작.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아프리카 영화의 신선한 자극
★★★☆
세네갈 출신의 프랑스 감독 라마타-툴레 시의 주목할 만한 장편 데뷔작. 세네갈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전통과 관습에 맞서는 두 연인의 이야기를 그렸다. 아프리카 사막과 자연 풍경을 활용해 이들의 사랑 이야기에 신화적 이미지를 덧입힌다. 열렬히 사랑하고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바넬은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여서 눈길을 끈다. 아프리카 여성들의 삶뿐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모든 여성에게 힘을 주는 영화다.
톤비
감독 제제 타카히사
출연 아베 히로시, 키타무라 타쿠미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정통 가족 드라마의 저력
★★★☆
「아빠는 우주 최강 울보쟁이」라는 제목으로 국내 출간된 시게마츠 기요시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가족 드라마. 아들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로, 우치노 세이요와 사토 타케루 주연의 2013년 드라마에 이어 이번 영화에선 아베 히로시와 키타무라 타쿠미가 주인공 부자를 연기했다. 탄탄한 스토리에 거칠고 무뚝뚝한 아버지로 분한 아베 히로시의 열연과 조연 캐릭터들의 연기가 어우러져 정통 가족 드라마의 감흥을 전달한다.
명탐정 코난: 시한장치의 마천루
감독 코다마 켄지
출연 타카야마 미나미, 야마구치 캇페이, 야마자키 와카나, 카이야 아키라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명탐정 코난> 극장판 명작 중의 명작
★★★☆
<명탐정 코난> 극장판의 성대한 시작을 알린 1997년 작. 27년 동안 27편의 <명탐정 코난> 극장판이 나올 수 있었던 건 첫 극장판의 성공과 영향력에 기인한다. 오프닝 에피소드로 추리 열기를 달구고, 연쇄폭탄테러범에 맞서는 코난(신이치)의 활약이 박진감 넘치게 전개된다. 주요 캐릭터들이 추억을 부르는 가운데, 후반부의 폭탄 제거 장면은 다시 봐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명장면이다. 추리와 액션, 로맨스까지 <명탐정 코난>의 트레이드마크를 제대로 살린 명작이다.
극장판 엉덩이 탐정: 안녕, 나의 영원한 친구
감독 세토 켄지
출연 김은아, 소연, 김사라, 사성웅, 남도형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블록버스터급으로 진화하는 시리즈
★★★
1년 만에 돌아온 <엉덩이 탐정> 다섯 번째 극장판. 본편 상영에 앞서 스페셜 에피소드에선 엉덩이 탐정의 조수 브라운과 ‘무엇이든 해결하는 탐정단‘ 멤버들의 앙증맞은 활약상이 펼쳐진다. 본편에선 엉덩이 탐정의 옛파트너 수선화가 새로운 캐릭터로 등장하고 엉덩이 탐정의 10년 전 대학 시절 모습까지 만날 수 있다. 미술품 관련 사건을 파헤치는 엉덩이 탐정의 수사 과정이 범죄 오락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와 흡사하게 진행되어 흡족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