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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씬드로잉] 괴물은 내 그림자 속에서 눈뜬다 〈맨헌터〉​

씨네플레이
〈맨헌터〉​
〈맨헌터〉​

 

영화 역사상 가장 마력적인 캐릭터라 할 수 있는 한니발 렉터가 전 세계에 알려진 건 조나단 드미 감독의 <양들의 침묵>(1991)을 통해서였다.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이 유명한 작품이다. 이후, 영화는 시리즈로 제작된다. 리들리 스콧이 <한니발>(2001), <레드 드래곤>(2002)을 연이어 연출하고 5년 후 피터 웨버 감독이 시리즈의 프리퀄격인 <한니발 라이징>을 연출했다. 하지만 이후 한동안 렉터는 스크린 뒤로 숨어버린다.


한니발 렉터가 처음 스크린에 등장한 때는?

 

한니발 렉터가 다시 등장한 건 2010년대로 넘어와서다. TV시리즈로 제작되어 다시금 한니발 신드롬을 일으킨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이전인 1986년에 한니발 렉터는 이미 영화에 등장했었다. 마이클 만이 연출한 <맨헌터>였다. 이후 마이클 만은 <히트>(1995), <콜레트럴>(2004) 등의 작품으로 세련되고 역동적인 미장센의 명인으로 평가받게 된다. 하지만 마이클 만의 세 번째 장편 연출작인 <맨헌터>는 저예산으로 제작되었고, 반응도 신통찮았다. 그러다가 40여 년이 지난 최근에야 새삼 주목받고 있다. 재발굴된 ‘소소한 명품’ 같다고나.

 

<맨헌터>의 원작자인 토마스 해리스가 『레드 드래곤』을 발표한 건 1981년이었다. 원작과 같은 제목으로 두 번째 영화화된 건 정확히 21년 후다. 브렛 래트너가 감독하고 에드워드 노튼이 FBI 요원 윌 그레이엄을 연기한 바로 그 <레드 드래곤>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들의 침묵>을 통해 한니발 렉터를 알게 됐지만, 토마스 해리스가 『양들의 침묵』을 처음 출간한 건 1988년이었다. 소설 『레드 드래곤』에서 불가사의한 느낌의 조연이자 어딘가 불완전한 배후로 등장한 렉터 박사가 소설 『양들의 침묵』을 통해 희대의 살인마로 완성되어 영화 <양들의 침묵>을 통해 비로소 자신만의 카리스마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는 셈이다.

〈맨헌터〉​
〈맨헌터〉​

 

 

<맨헌터>는 그런 배경을 알고 봐야 어느 정도 실마리가 잡히는 영화다. 개봉 당시 평가가 나빴던 것도 어쩌면 그런 점에 연유할지도 모른다. 원작 소설을 먼저 접한 다음, <레드 드래곤>을 보고 나서 <맨헌터>를 보게 된 경우가 아니라면, 사뭇 엉성하고 비약이 심한 영화로 여겨질 수도 있다. 비교적 원작에 충실하나 주인공들의 깊은 내면이나 심리적 동인들이 잘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겉핥기식으로 서사만 도려낸 느낌이 강하다. 특히, <맨헌터>에서는 ‘이빨 요정’이라 불리는 살인마 프란시스 달러하이드(톰 누난)가 어떤 연유로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전사(前史)가 전무하다. 그저 한니발 렉터를 체포했던 윌 그레이엄(윌리엄 피터슨)의 심리적 혼란만 아스라이 묻어날 뿐이다.


혼란스러운 주인공, 혼란스러운 서사

 

브렛 래트너의 2002년 작품과 비교해도 이 작품은 여러모로 허술한 측면이 많다. 에드워드 노튼과 안소니 홉킨스가 말고 당기듯 보여줬던 팽팽한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이런 판단에는 소설과 영화가 발표된 시기에 기인한 착종도 한몫한다고 할 수 있다. 다 아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것. 애초에 알고 있던 것을 전혀 다른 시기에 다른 방식으로 전달받는 것 같은 도치된 기시감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을 거다. 이래저래 혼란스러운 영화라 아니할 수 없다.

〈맨헌터〉​
〈맨헌터〉​

 

그래서일까. <맨헌터>는 어째 시대를 잘 알 수 없는 영화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1980년대 할리우드 스릴러의 전형이랄 수 있는 요란스러운 활극은 마지막 그레이엄과 달러하이드의 격투 장면 외엔 거의 없다. 엽기 살인 행각이 보여주는 끔찍하고 잔혹한 시체의 모습도 상징적으로만 처리될 뿐이다. 이 영화는 오히려 다른 측면에서 시각을 자극한다.

 

영화의 전체 톤은 연쇄살인마가 등장하는 스릴러라기엔 지나치게 맑고 세련되다. 잘 손질된 유리 세공품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도 주는데, 그건 결국 영화의 주제와도 상통하는 방식이다. 주인공 그레이엄은 한니발 렉터를 체포할 당시 사람을 쏴 죽인 적 있다. 그러면서 자신도 심한 상처를 입었다. 외상도 심했지만, 내상이 더 컸다. 그가 살인범을 추적하는 방식은 이른바 ‘프로파일링 기법’이다. 지금은 범죄 수사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지만 1980년대 당시만 해도 그리 상용화된 수사 기법은 아니다. 원작 소설의 배경은 1970년대 후반이다. 아직 ‘사이코패스’라는 단어도 공식 용어로 지정되지 않았을 때이다.


‘이빨 요정’은 어쩌다 괴물이 되었나

 

그레이엄은 렉터 박사를 감옥에 집어넣은 후 그레이엄은 아내 몰리(킴 그리스트)와 함께 플로리다의 해변가에서 보트 수리를 하며 살고 있다. 그러다가 보름달이 뜬 밤이면 일가족을 몰살시키는 ‘이빨 요정’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그레이엄의 동료였던 FBI요원 잭 크로포드(데니스 파리나)가 그레이엄에게 도움을 청하러 찾아온다. 고심 끝에 그레이엄은 집을 떠나 수사팀에 합류한다는 스토리. 원작 소설 및 후에 제작되는 <레드 드래곤>과 거의 같은 전개다.

 

영화는 원작 소설의 내용을 핵심만 뽑아내듯 전개되지만, 결말은 거의 완전히 다르다. 소설은 결과적으로 비극으로 끝나지만, 영화는 그레이엄과 몰리가 아들과 함께 해변가의 노을을 바라보는 행복한 장면으로 끝난다. 브렛 래트너의 <레드 드래곤> 역시 그 점에선 <맨헌터>와 유사하다.

〈맨헌터〉​
〈맨헌터〉​

 

그레이엄이 수사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수집된 증거들을 토대로 현장에 직접 들러 살인마가 생각하고 실행했던 방식을 살인자의 입장에서 유추해내는 방식이다. 그 어떤 첨단 수사 도구나 기법도 꿰뚫어내지 못하는 범죄의 단서를 오로지 자신의 감정이입(?)만으로 찾아내는 것인데, 참 별난 재주가 아닐 수 없다. 그레이엄은 바로 그 재주 때문에 스스로 고통받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이빨 요정’의 정체가 묘연해지자 그레이엄은 자신이 체포한 한니발 렉터(브라이언 콕스)를 만나러 감옥을 찾아간다. 일종의 자문(?)인 셈. 렉터 박사와 그레이엄의 심리전이 중대 관건이지만, 원작 소설도 영화도 그 부분엔 큰 공을 들이지 않는다. 소설은 향후 렉터 박사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암시가 마지막에 드러나지만, 영화에서 렉터는 더 이상 마수를 뻗치지 않는다. <맨헌터>의 핵심 인물은 그레이엄이다.


사이코패스의 내면을 추적하는 사이코패스

 

제임스 팰런이라는 미국의 뇌과학자가 있다. 당대 사이코패스 연구계의 권위자라 알려져 있다. 그는 어느 날 여러 범죄자들의 뇌를 스캔한 사진을 검토하다가 충격을 받는다.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뇌 구조를 가진 어떤 이의 사진을 보게 되는데, 사진 수백 장의 주인공들을 조사해 본 결과, 그 사진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걸 알고 충격을 받는다. 이후, 자신의 친족들을 조사해 보니 수백 년 동안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살인자들 일색이다. 그럼에도 제임스 팰런은 단 한 번의 범죄도 저지른 적이 없다. 기나긴 연구 끝에 그는 사이코패스라 해도 여러 환경적 요인과 학습에 따라 범죄자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이후 그는 여러 사이코패스 다큐멘터리 및 범죄 행위에 대한 자문을 맡게 된다. 그는 <맨헌터>가 개봉했을 당시, 아내와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아내가 제임스에게 말했다. “저 주인공 꼭 당신 닮았어.” 그레이엄을 두고 한 말이다.

 

<맨헌터>에서 감옥으로 자신을 찾아온 그레이엄에게 한니발 렉터가 말한다. “당신이 나를 잡을 수 있었던 건 당신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이야.” 그레이엄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의 재능과 갈등은 거기에서 기인한다. 그는 잡는 자이자 스스로 잡히는 자고, 살리는 자이자 스스로 죽이는 자이다. 그런 차원에서 <맨헌터>의 영화적 장점은 기술적으로 분명하다. 그레이엄은 사건 현장을 찾는다. 시체도 증거도 없이 살인이 행해진 공간에서 스스로 살인자가 된다. 일종의 빙의라 할 만하다. 그는 거기에서 범인과 싸우는 동시에 자신과 싸운다. 가족과의 평화로운 일상을 꿈꾸지만, 그에겐 그 어떤 일상적 행복도 가면이거나 위장에 불과하다. 말끔하게 단장된 회백색 공간에서 유령과 싸우는 세련된 미장센이 이 영화의 가장 매력이다. 이미 지워진 핏자국을 살인자의 뇌 속으로 들어가 비로소 되새겨내는 윌 그레이엄.


“당신이 나를 잡을 수 있었던 건 나와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이야”

〈맨헌터〉​ 그는 범인과 싸우는 동시에 자신과 싸운다. 가족과의 평화로운 일상을 꿈꾸지만, 그에겐 그 어떤 일상적 행복도 가면이거나 위장에 불과하다
〈맨헌터〉​ 그는 범인과 싸우는 동시에 자신과 싸운다. 가족과의 평화로운 일상을 꿈꾸지만, 그에겐 그 어떤 일상적 행복도 가면이거나 위장에 불과하다

한니발 렉터는 그레이엄을 교묘히 조종한다. 그러나 <맨헌터>에선 렉터의 흑막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원작 소설에서 렉터는 모든 사건이 끝날 무렵 점점 부풀어오르는 잿더미 위의 안개처럼 흑막을 드러내면서 큰 그림자를 남긴다. 감독은 거기서부터 그레이엄을 억지로 끄집어내고 싶었던 걸까. 5년 후 제작된 <양들의 침묵>에서 한니발 렉터는 훨씬 우람하고 압도적인 존재감을 표출한다. 이후 연작들에서 그레이엄의 후일담이 간혹 전해지곤 한다. 원작 소설에선 술에 찌든 폐인으로 설정돼 있다. 그럴듯하지만, 왠지 믿기지 않는다. 그가 정말 사이코패스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