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기사 카테고리

Movie & Entertainment Magazine from KOREA
>영화

[2024 BIFF] 부국제가 주목한 한국영화 〈3학년 2학기〉 이란희 감독

“입시 준비 대신 현장실습 가는 고교생 얼굴 보여주고 싶었어요”

씨네플레이
〈3학년 2학기〉 (사진 제공=㈜인디스토리, 작업장 봄)
〈3학년 2학기〉 (사진 제공=㈜인디스토리, 작업장 봄)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국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섹션에서는 뛰어난 작품성을 자랑하는 한국 독립영화를 선보인다. 부국제를 통해 발굴된 재능 있는 감독들의 탁월한 신작, 올해 처음으로 영화제의 문을 두드린 신인 감독들의 독창적인 데뷔작을 상영한다. 선정작들은 부국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된 후, 국내에 정식 개봉되거나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되며 국내외 영화계에서 큰 관심을 받는다.

2021년 <휴가>로 장편 데뷔한 이란희 감독의 두 번째 영화 <3학년 2학기>가 제29회 부국제(부집행위원장 직무대행 박도신)가 주목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섹션에 선정돼 관객을 만났다. 이란희 감독은 1996~2003년 극단 한강에서 배우, 기획자로 활동했고, 2005년부터 영화 연출을 시작했다. 단편 <파마>(2009), <결혼전야>(2014), <천막>(2016)으로 주목받았고, 장편 데뷔작 <휴가>는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 제64회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 등 국내외 주요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3학년 2학기>는 전작 <휴가>의 연장선에 있는 영화다. 직업계 고등학교 3학년 2학기에 접어든 창우가 지원했던 중견기업 현장 실습에서 탈락하고, 담임 선생님이 추천한 중소기업에 실습을 나가며 경험하는 일들을 담았다. 처음 경험하는 노동의 어려움은 참을 수 있지만, 상사들은 일이 익숙하지 않은 창우를 숙련도 높은 다른 실습생과 비교한다. 파스를 붙여 가며 버틴 창구는 첫 실습비로 동생에게 프랜차이즈 치킨도 사주고, 엄마에게 생활비도 보탠다. 중소기업이지만, 병역특례와 대학 입학의 기회를 꿈꾸며 하루를 참아내는 창우는 이 공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영화는 언뜻 <다음 소희>(감독 정주리, 2023)를 떠오르게 한다. 공장에서 일하는 직업계고 현장 실습생들을 보면 고 김용균 군 사건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라인더가 돌아가면 자신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란희 감독의 두 번째 영화는 <다음 소희>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부모를 잘 만나지 못해도, 타고난 재능을 찾지 못해도, 꿈이 없어도, 엄청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빛나는 성취를 이루지 못해도, 운이 좋지 못해도, 성실하게 노동하며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구나 인간으로서 평등한 권리를 인정받으며 살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란희 감독을 부국제 첫 상영 전에 만났다.


〈3학년 2학기〉 이란희 감독. (사진 제공=㈜인디스토리, 작업장 봄)
〈3학년 2학기〉 이란희 감독. (사진 제공=㈜인디스토리, 작업장 봄)

<3학년 2학기>가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섹션에서 관객을 만납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시나리오 쓸 때, 편집할 때 주변에 모니터링을 많이 돌리는 편인데요. 이렇게 관객이 많이 모인 상영은 처음이라 어떤 반응일지 궁금하네요. 영화를 어떻게 읽어내 주실지, 어떤 질문들을 하실지도 궁금합니다. 우리 영화에 출연하는 청소년 배우들이 경력이 많지 않아요. 영화제에 온 것도 처음이고, GV도 처음이에요. 배우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기대되네요. 이렇게 영화제까지 데려오게 되어서 개인적으로 보람도 있고요.(웃음)

데뷔작 <휴가>(2021) 이후 어떻게 지내셨나요?

어떤 감독들은 촬영, 편집 끝나면 바로 다음 작품을 쓰던데, 저는 시간이 좀 걸리는 타입입니다. 이것저것 자료 조사하다가 2022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알겠습니다. <3학년 2학기>는 어떻게 출발한 영화인지 설명해주세요.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태동한 건지도 궁금하더라고요.

배경을 좀 설명해 드리자면, 일단 제가 90년대 중반에 극단 한강에서 연극을 했습니다. 1988년에 ‘문송면’이라는 열다섯 소년 노동자가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죠. 온도계 제조업체에서요. 극단 생활을 하기 전에는 그런 일이 있는지 몰랐죠. 극단 동료들과 이 이야기를 듣고 청소년 노동계약과 관련된 연극을 만들자고 했는데, 결국 실현하진 못했어요.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 인천의 한 공업계 고등학교에서 연극 수업을 몇 번 진행하면서, 학생들 이야기를 글로 기록해 뒀습니다. <휴가> 시나리오를 쓸 무렵에는 한창 현장 실습생 사고들이 뉴스에 계속 보도됐어요. 이 아이들을 어떤 식으로든 <휴가>에 넣고 싶어서, 영화 후반부에 현장 실습생들이 오는 장면을 하나 넣었지요. 그로 인해 청소년 산재 피해자 부모님, 가족들을 만나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분들과 대화하면서 다음 영화는 노동하는 청소년을 담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기획입니다.

〈3학년 2학기〉 (사진 제공=㈜인디스토리, 작업장 봄)
〈3학년 2학기〉 (사진 제공=㈜인디스토리, 작업장 봄)

 

그러면 <3학년 2학기>는 <휴가>의 후속편 성격도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영화를 본 제 개인적인 감상은 <다음 소희>의 남학생 버전 같아서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생각이 안 날 수 없는 고 김용균 군 사건도 있었고요.

<다음 소희>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소식은 제가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알았어요. 다행히도 <다음 소희>와 <3학년 2학기>는 방향성이 다른 영화죠.

오프닝 시퀀스를 쇠를 깎아내는, 정밀하는 컷으로 잡은 게 의미심장하더라고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한 사람을 규격에 맞추는 듯한 은유처럼 느껴지기도 해서요. 어떤 의미를 담으려 하셨나요?

처음에는 사실 그런 생각 없이 아이들이 실습하는 장면을 넣고 싶었어요. 편집하면서는 말씀하신 그런 의미 부여가 되더라고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노동자로 정착하는 삶을 보여주면서 끝나니, 여러 노동자 중 하나라는 느낌이랄까요? <3학년 2학기>는 학생이 노동자가 되고, 청소년이 어른이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런 거 같아요.

영화에서는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착취가 다층적으로 나타나더라고요. 사수에게는 귀찮은 존재, 회사에서는 싼값에 막 부릴 수 있는 노동력인데 겉으로 말만 번지르르하게 해요. 뽑히면 대학 갈 수 있다는 회유책을 주면서요. 피자 한 판을 시켜주면서 퇴근할 시간에 당일 야근, 특근을 지시하고, 산재를 당했지만, ‘병원비 줄 테니 쉬어라, 출근한 걸로 해줄게’ 이런 부분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아이들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는 선생님 역시 “니들이 잘해야 후배들도 여기 들어올 수 있다”고 말하죠. 넓게 보면 창우 엄마도 마찬가지 같아요. 아빠가 부재한 상황에서 이제 겨우 고등학생인 첫째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우니까요. 어른이 부재한 사회로 그린 이유를 설명해주신다면요.

엄마가 주인공 창우를 착취하는 존재라고 생각은 안 했고요.(웃음) 사실 저도 오빠가 여섯 살, 여덟 살 터울이 져요. 오빠들이 저 다 키웠죠, 뭐.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지금도 여전히 못 사는 집에서는 첫째가 지는 부담이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창우에게는 그런 부담이 있을 거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는 어떻게든 알아서 하려고 하긴 하죠. 실습비 받으면 생활비나 조금 내라고 하고요. 그런데 첫째 창우가 현장에 나가면서 생활비도 내고, 막내가 원하는 프랜차이즈 치킨도 사고 하니 여유가 생겨 둘째를 학원에 보내기도 합니다. 음, 생각해보니 저 역시 딸에게 돈을 빌리긴 했네요. 그래도 돌려줬습니다.(웃음)

〈3학년 2학기〉 (사진 제공=㈜인디스토리, 작업장 봄)
〈3학년 2학기〉 (사진 제공=㈜인디스토리, 작업장 봄)

 

​그럼 담임 선생님은요?(웃음)

현장 실습 나가는 학생들을 인터뷰하면 ‘가스라이팅 한다’는 말을 많이 해요. “지금 취업 안 하면 못해”, “내가 알려주지 않으면 너 힘들어져”, “너는 여기서 일 안 하면 뭐 할 거야?”, “아무것도 할 거 없어”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선생님들을 만나보면 그들도 나름대로 아이들에게 진로 가이드를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더라고요. 한국 사회가 고졸 노동자들이 발붙이기 힘든 사회라 그런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대학 진학으로 가이드를 많이 하더라고요.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의 60~70%가 대학을 준비한대요. 나머지 중에 부사관 제도를 통해 군대에 가기도 하고요. 아니면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도제식 현장 실습에서 미리 취업하는 형태로 일한대요. 10~20%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집에만 처박혀 있대요. 인터넷, 웹툰 보면서요. 선생님들 입장에서도 그렇게 살기보다는 어디라도 직장생활 비슷하게 하는 게 좋다고 보니까, 계속 권하는 거겠죠. 영화에서 나오는 맥모닝 사다주는 선생님은 정말 좋은 선생님이에요!(웃음) 현장 방문에서 부식비가 예산에 책정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김밥 정도 사줄까, 저는 그 선생님을 나름 아이들을 꽤 아끼는 선생님으로 설정했습니다. 나쁜 어른이 아니라요.(웃음)

공장에서 만나는 상사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사무직 관리자를 빼면, 현장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나름 소소하게 변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진 사람들로 그리려고 했어요. 영화에서 보면 사수 송 대리(김아석, <휴가>에서 20세 초보 노동자로 출연)가 툴툴대고 아이들에게 뭐라 하기는 하지만, 관리자를 만나면 “앞치마, 팔토시 사줘야 안 다친다”고 말도 하잖아요. 그렇게 노력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싶었어요. 여자 용접사 한 주임(이현지)은 말로는 애들 편을 들고, 현장을 개선하려고 하는 것처럼 하다가도, 교육지원청 노무사가 오는 등 외부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회사 방어에 일조하는 사람으로 그리려고 했죠.

그럼 감독님은 개별 어른 또는 문화적인 문제라기보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보신다는 걸까요?

 

구조적인 이야기를 영화에서 설명할 생각은 없었어요. 보통 뉴스에서 현장 실습생들을 언급하는 경우는 ‘실습을 나가서 일하다가 기계에 끼어 사망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살했다’ 같은 것들이더라고요. 아이들이 뭔가 피해자의 얼굴로만 남아 있는, 불쌍한 얼굴의 어린 피해자 이미지라고 할까요?

저는 그 지점이 아니라 이 어린아이들이 현장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쪽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구조적인 것들이 배경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요. 이 영화를 보고 그런 부분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인터넷에 자료가 수없이 있으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 또래 아이들 중 현장 실습생의 얼굴을 드러내고 싶었던 겁니다.

그 나이 또래 현장 실습생의 얼굴들을 어떻게 보여주고 싶었던 건가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그 나이 또래 청소년의 얼굴은,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이죠. 길거리에서 교복 입은 학생들을 보면 ‘대입 준비하느라 힘들겠구나’하는 마음이 저절로 들잖아요? 수능철만 되면 전 국민이 열광하면서 이들을 보살피고자 하는 거대한 흐름이 있다고 사회 전반적으로 깔려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대학에 가지 않고, 졸업해서 노동 현장으로 나가는 아이들에 대해서 우리는 그 어떤 얼굴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아요. 그 아이들을 좀 더 가깝게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길거리 지나다닐 때 교복 입은 애들 보면 ‘저 중에 몇몇은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아이들도 있겠구나’ 하는 정도의 사회적 시선이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죠.

〈3학년 2학기〉 (사진 제공=㈜인디스토리, 작업장 봄)
〈3학년 2학기〉 (사진 제공=㈜인디스토리, 작업장 봄)

법적으로 미성년자인 현장 실습생들은 현장에서 답답해요. 공장에서는 ‘배운 것도 없는데 쟤들 뭐 시키냐’라고 혹으로 취급하고요,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위험해도 눈치껏 기술을 배우고 성인의 일을 해 인정받으려 하죠. ‘동일노동 동일임금’까지 주장하려는 건 아니지만, 실습생이라는 학생 신분에 노동의 대가는 너무 낮고요. 영화가 작금의 한국 사회 교육 현장과 노동 현장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더라고요.

공장 노동자들 역시 자신의 현장에 온 후배들인데도 아이들을 무시해요. 그런 점이 좀 아쉽더라고요. 영화에서도 창우가 뜨거운 기구 뚜껑을 여니 “야!”하고 바로 소리를 지르는데요. 이 장면을 직업계 고등학교 출신 노동자에게 보여줬더니, “저렇게 착하게 말하지 않아요. ‘죽으려고 환장했냐’라거나 바로 쌍욕이 날아오죠”라고 말하더라고요. 영화 현장의 사수들은 나름 괜찮은 거예요.

굳이 구조적인 면을 첨언하자면, 이 아이들이 노동 현장에서 일하기는 하지만, 성인은 아니죠. 그러니까 일반적인 신입 노동자가 들어올 때랑 현장 실습생들이 들어올 때랑 회사에서 다른 접근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면, 말이라도 좀 곱게 해주고, 애들이 긴장하거나 주눅 들지 않게 대해주면 좋겠어요. 또 성인 노동자와 비교하지 않으면 좋겠고, 또 인문계 학생이 아니라 직업계고 학생이라고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기댈 곳 없고, 조언을 구할 어른이 없는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해야 합니다. ‘어디 가나 똑같다’며 모범생으로 남는 여학생 다혜(김소완), 창우와 함께 며칠 일하다 도망쳐서 아버지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는 우재(양지운), 에이스 실습생이었지만 결국 부당함을 참지 못하고 긱 노동자인 라이더가 되는 성민(김성구)까지요. 실제 취재를 바탕으로 그린 캐릭터일까요? 또 조금이라도 희망적인 캐릭터가 없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네. 전부 제가 취재하며 들은 이야기들을 조합해 만든 캐릭터들입니다. 사실 다혜 전사가 있었는데 촬영 과정에서 없어졌어요. 2년 근로계약을 하면 실습지원금과 취업장려금으로 800만 원을 받아요. 꽤 목돈이잖아요? 다혜는 그걸 받으면 구제옷을 파는 인터넷 쇼핑몰을 차리려고 계획하는 아이였어요. 굳이 희망을 갖는 캐릭터를 생각하자면, 다혜가 그럴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어른들 시선에서는 다혜가 약삭빠르다고 느낄 수 있어요. 회사 입장에서는 혜택만 받고 나간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다혜 입장만 본다면, 좋은 선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요. 그런데 남학생은 그것도 힘들죠. 중간에 군대 문제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희망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들과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일해서 잘 살 수 있나’라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그런데 비단 직업계고 학생만 희망을 찾기 힘든 게 아니더라고요. 인문계 학생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지금은 진짜 열심히 해야 중위권 대학에 간대요. 거길 졸업한다고 이후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요. 계속 일자리는 불안정해지니까요. 노동이라는 키워드를 생각했을 때는 누구도 희망적이지는 않다고 봅니다.

알겠습니다. 창우가 유일하게 자신을 위해 쓰는 시간이자 취미가 기타 연주인 거 같더라고요. 그냥 한 장면만 나오면 그런가 보다 했을 텐데, 헨델의 ‘울게 하소서’ 아리아 맞죠? 영화의 메인 테마곡으로 또 나오더라고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말하자면 창우는 남자 직업계 고등학교에서 ‘초식동물’처럼 사는 아이에요. 나름 자기 혼자 쉬고 충전하는 취미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게 기타라고 설정했습니다. 그러면 기타를 치면 전자기타는 아닐 거 같아서, 클래식 기타로 했어요. 시나리오를 쓰면서 기타 연주곡들을 많이 들었는데요. 그중에 ‘울게 하소서’가 끌렸어요. 그동안 많은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노동 중에 사망했습니다. 그들에 대한 추모곡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3학년 2학기〉 (사진 제공=㈜인디스토리, 작업장 봄)
〈3학년 2학기〉 (사진 제공=㈜인디스토리, 작업장 봄)

 

감독님은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하세요?

일각에서는 현장실습을 없애자는 의견도 있고, 유지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실습을 없애냐, 유지시키느냐의 문제라기보다 일단 이 아이들이 아직은 교육을 받아야 할 학생이라는 점, 예비노동자로서 훈련받는 기간이라 점이 잘 프로그래밍 되면 좋겠습니다. 학생들도 노동자로서 권리가 보장된 실습이어야 하겠고요.

노동 현장이 전반적으로 안전한 현장이 돼야 해요. 안전한 현장에서는 소리도 좀 덜 지를 거 같고요. 노조에서 활동하는 분들도 이야기 들어보면 현장에서 일 가르칠 때는 소리 지르고 무섭게 할 수밖에 없대요. 현장이 안전하지 않으니까, 후배들을 지키기 위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런 분위기가 만연해 있는 거 같아요. 일 가르칠 때 소리 지르고 욕설하는 것들요. 안전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으면 그렇게 안 해도 되잖아요.

저도 영화에서 창우가 그라인더를 잡았을 때 ‘아이고, 곧 다치겠구나, 크게 안 다쳐야 할 텐데’ 하면서 걱정부터 되더라고요.

맞아요. <휴가> 때도 그랬는데, 공장에서 일단 누군가 일을 시작하면 관객은 위축된대요. ‘공장은 위험한 곳’이라는 인식이 관객 모두에게 있다는 거죠. 공장 장면만 나오면 그래요. 다들 젊은 시절에 공장에서 일하는 거 안 좋다고 보니까, 영화에서 공장 장면만 나오면 ‘누군가 크게 다치겠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드는 거죠.

누구에게나 첫 직장생활은 다 힘들어요. 우리나라만 그렇게 신입에게 가혹한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대졸이든 고졸이든 신입이 들어오면 뭐라 소리 지를 생각보다는 잘 좀 대해주면 좋겠습니다. 일자리가 불안정해지다 보니 사실 상사들도 언제 자기 자리가 사라질지 몰라요. 그래서 더 후배들에게 공을 안 들이는 문화가 사회 전반적으로 있는 거 같기도 해요.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공식포스터. (사진 제공=부산국제영화제 홍보팀)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공식포스터. (사진 제공=부산국제영화제 홍보팀)

 

차기작은 뭐로 준비하고 계세요?

이것저것 생각은 하고 있는데, 소재를 노동으로 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노동 영화만 만들겠다고 한 건 아니니까요. 노동 현장을 접하며 단편을 찍다 보니, 그분들 이야기가 장편으로 나온 것이 <휴가>였고, 거기에 나온 아이들로 <3학년 2학기>를 찍었습니다. 저는 <3학년 2학기>가 노동영화라기보다는 ‘성장영화’의 범주에서 읽히면 좋겠어요. 첫 직장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많은 일들을 창우가 겪고 있는 거니까요. 자신이 이렇게까지 일 못하고 멍청한 사람인 줄 몰랐다든가, 동료와 비교당하면서 괴로움을 겪기도 하고요. 또 좋은 상사 덕분에 연습도 하면서 실력을 쌓기도 하듯이요.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많이들 마음 아파할 거 같은데요.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3학년 2학기>를 너무 사회적 이슈로만 국한시켜 보지 않으셨으면 해요. 이미 일을 하고 있는 관객은 자신이 처음으로 일을 시작하던 때, 첫 직장의 경험을 돌아봐도 좋을 거 같아요. 이제는 그 시기를 지나 신입 직원을 받는 입장에 있는 분들이라면, 자신이 그들에게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공장이 배경이라고 해서 직업계고 아이들 이야기로 국한하지 말아주세요. 부산국제영화제 와서 호텔에 들어갔는데요. 숙소 정리하는 분들도 나름 그런 고충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뭔가 상사한테 “내가 이렇게 하지 말라고 몇 번 이야기했니?”라는 말을 들었을 거 같고요. 갑질 같은 데 포커스를 둔 건 아니지만,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에게 자신을 대입해 돌아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