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의 유일한 성공작이 되어 버린 <베놈>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 개봉한다. 소니 픽쳐스 CEO 톰 로스먼은 공식적으로 이 영화 <베놈: 라스트 댄스>가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 될 거라고 밝혔는데, 선공개 시사회에서 '드디어 스토리가 볼 만해졌다'는 감상평이 나왔다는 이 와중 제법 아쉬운 얘기다.
<베놈> 시리즈는 참 미묘했다. 정말 재미있으니 강력 추천한다기엔 아쉬운 맛이 한두 개가 아니었고, 그렇다고 별로라고 하기에는 확실히 보는 맛은 좀 있었다. 베놈의 숙주가 되어 정신을 못 차리지만, 그러면서도 끈기 있게 애쓰는 에디 브록의 모습을 생동감 넘치게 연기한 톰 하디의 덕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모르고 보면 그냥 괴물이나 다름없는 이 수상한 심비오트, 베놈의 비주얼을 꽤 멋지게 실사화했다는 점, 그리고 베놈의 자비 없는 전투 액션을 꽤 볼 맛 나게 뽑았다는 점이 크지 않았을까. 시리즈 첫 편 <베놈> 예고편에서 베놈 CG를 처음 봤을 때 걸었던 기대감이란.
다른 시리즈가 될 수도 있겠고, 또 다른 영화로 돌아올 가능성도 없진 않아 보이지만 일단 시리즈의 최종장에 다다른 '베놈', 지난 시리즈와 마지막 영화에 대한 몇 가지 얘기들을 정리해 본다.

베놈의 실사영화는 자그마치 2007년부터 거론되었던 이슈였다. 당시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트릴로지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소니는 스파이더맨과 함께 베놈을 실사화해 저작권을 최대한 잘 써먹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스파이더맨 3>이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던 탓인지 계획이 제대로 진전되지 못했고 결국 취소되었다. 베놈으로서는 다행일지도 모를 일인데, <스파이더맨 3>의 베놈은 여러모로 평가가 좋지 않았기 때문.
톰 하디의 <베놈>으로 각인된 그야말로 괴물 같은 모습의 심비오트, 베놈과는 달리 <스파이더맨 3>에 등장한 베놈은 스파이더맨보다 약간 큰 체구를 가진 정도였고 액션도 극중 원본이라 할 수 있는 스파이더맨과 비슷해서 원작 코믹스의 모습과는 상당히 달랐다. 말하자면 재해석이었지만, 그야말로 '베놈다운' 액션이라기보다는 좀 괴물 같은 스파이더맨에 가까웠다.
사유는 이후에 밝혀졌는데 소니 측에서 갑자기 베놈을 등장시키라고 하는 바람에 이래저래 감독의 의향과는 상관없이 갑자기 끼워넣은 터라 이해도가 높을 수 없었다고. 하지만 심비오트의 영향으로 본능에 충실(!!)해진 오리지널판 피터 파커가 춤추는 장면은 역사에 길이 남았다(일명 불리 맥과이어).

어쨌거나 여차저차 <스파이더맨> 트릴로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물론 완성도 낮다는 3편까지도 여전히 회자되고 있지만)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라는 새로운 스파이더맨 타이틀로 리부트된다.
하지만 이 시리즈도 성과가 좋지 않아 소니의 염원인 스파이더맨 빌런 무비로는 이어지지 못했고, 예상과 달리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대여한 스파이더맨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참 애매한 상황이 된다. 이 와중 희망을 잃지 않았던(...) 소니는 새로운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를 시작하는데, 그 출발점이 바로 2018년에 개봉한 <베놈>이었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뭔가 부족했다. 중국 거대자본이 투자한 덕인지 흥행에는 두말할 것 없이 성공했지만, 평가는 좋지 못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베놈이라는 캐릭터가 그간 코믹스 원작 등에서 보여주었던 설정과는 영 달랐던 데다 바뀐 설정에 맞는 서사적 개연성이 상당히 부족했기 때문이다.
왜 베놈은 동족을 배신하고 에디 브록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변화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이 영화 내에 없다. 대체 베놈은 무슨 생각인 건가...? (결국 이유가 없으니 사랑으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이유는 사실 명확하긴 하다. 원작 코믹스의 '베놈'이 삐뚤어진 이유는, 베놈이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를 마음에 들어했지만 피터가 베놈을 떼어 버리고 돌아가 버렸기 때문.
즉 자신을 배신한(그냥 버린 거지만) 피터에 대해 엄청난 분노를 갖고 있고 그래서 유독 스파이더맨에게만 포악하지만, 원인까지 쭉 보면 마냥 분노라기보다는 애증에 가까운 감정을 품고 있는 셈이다. 말하자면 베놈이 빌런이 된 이유는 다 스파이더맨 때문인 건데, 스파이더맨 없이 베놈을 설명하려고 하니 자가당착의 순간이 오는 걸 어쩔 수는 없는 셈이다.
시리즈 속 베놈은 그래서 좀 부족해 보였다(아님 에디 브록에게 첫눈에 반했다던가). 어쨌거나 그래서 각각 8억, 5억 달러를 벌어들인 시리즈의 흥행 결과에 비해서는 3편에 대한 기대감이 상대적으로 낮은 게 사실이다. 히어로무비에 기대하는 요소들 중 비주얼만은 확실할지도 모르겠지만(그나마도 1편은 너무 어두워서 아쉬운 점이 없진 않았다) 서사적인 완성도에는 큰 기대가 안 되기 때문이다.

관객을 만날 준비를 마친 이 영화 <베놈: 라스트 댄스>가 세 편으로 여정을 마치고 그저 베놈 시리즈로 남을지,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가 늘 꿈꾸었던 것처럼 스파이더맨과의 연결고리를 단단히 이으며 스파이더맨 빌런 무비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무엇보다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의 다른 빌런 무비들이 아직 개봉 전인 <크레이븐 더 헌터>를 제외하고는 평타도 아닌 연이은 혹평을 받았다는 게 제일 문제일 것이다.
솔직히 예전에는 그냥 마블에 저작권을 넘기고 MCU에 통합되는 걸 바란 적도 있긴 있었다. 하지만 마블도 영 힘을 못 쓰고 죽만 쑤고 있는 이 상황에서 그걸 바랄 수도 없으니, 톰 하디의 베놈이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과 대치하는 상황은 이미 서사적으로도 개연성이 부족해 보이고 현실적으로도 영 이뤄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게 참 문제다.

아마 그걸 가장 바라고 있는 사람들은 소니 픽쳐스에 있을 텐데, 과연 그게 히어로무비 팬들과 일반 관객들까지 만족시킬 수 있는 퀄리티로 나올 수 있을까. 팬들은 베놈의 이야기가 잘 마무리되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지만 '스파이더맨 없는 스파이더맨 유니버스'가 과연 어디로 갈지도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멀티버스를 써먹을 생각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사람들은 멀티버스에 그리 흥미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의 시작이었던 베놈이 그냥 그럭저럭 볼만한 시리즈로 최종장을 마무리하는 게 제일 나은 결말일지도 모르겠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선공개 시사회에서 좋은 얘기가 나왔다고 하니 일단은 한번 더 속아 보기로 했다.
프리랜서 에디터 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