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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오컬트의 대부, 〈퇴마록〉애니메이션

씨네플레이
〈퇴마록〉
〈퇴마록〉

한국의 장르소설을 이야기할 때 이우혁의 「퇴마록」을 빼놓기는 어렵다. 텍스트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PC통신 시절의 인터넷에서 '퇴마'를 소재로 한 판타지 소설은 「퇴마록」이 유일했고, 지금까지도 퇴마 소재의 장르소설 대표작으로 꼽힐 만큼 흥행에 성공했다. 여전히 그 시절의 독자들에게 「퇴마록」은 추억의 명작이고, 1,000만 부를 판매한 인기작이자 지금도 외전이 연재되고 있을 만큼 유명한 작품이지만 안타깝게도 명성에 비해 미디어믹스는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

한국에는 꽤 많은 오컬트 & 공포 영화가 있고 그중에는 성공한 작품들도 많다. 하지만 이 장르의 원형이 된 작품이자, 이 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이야기가 바로 「퇴마록」이다. 장르영화 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은 들어봤을 이 이야기가 드디어 3D 애니메이션으로 개봉한다. 공개된 예고편은 꽤 짧은 분량이지만 일단 상당한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고, 작품의 팬이라면 모두 기억하고 있을 1권의 에피소드인 '하늘이 불타던 날'을 소재로 삼은 듯하다.

〈퇴마록〉
〈퇴마록〉

<퇴마록>의 애니메이션 소식은 좀 새롭기도 하고, 기대를 걸어볼 만한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작중에 등장했던 퇴마사들의 싸움이 2025년의 3D 애니메이션을 통해, 그것도 4DX로 개봉한다니. 장르영화 씬에서는 꽤 새로운 도전일 수도 있겠다. 성공하지 못했던 슬픈 히스토리를 거쳐 오늘의 예고편에 이르기까지, 눈물 나는 과거를 딛고 걸출한 예고편을 선보인 <퇴마록>의 그간 이야기. 

원작 「퇴마록」 연재 30주년 기념 한정판
원작 「퇴마록」 연재 30주년 기념 한정판

이우혁 작가는 1993년부터 하이텔 공포/SF 게시판에 취미 삼아 연재를 시작했다. 작가 본인도 미처 예상치 못했던 일이겠지만 20세기 말의 사회 분위기와 작품의 오컬트 분위기가 맞물려 높은 인기를 얻기 시작했는데, 전 세계의 각종 종교적 미신과 오컬트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야기가 담긴 이 이야기는 문장 그 자체로 엄청난 작품성을 갖추었다기보다는 젊은 세대가 받아들이기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쉬운 문장과 극적인 전개를 갖춘 장르소설로서 큰 족적을 남겼다.

이야기는 한국을 무대로, 다양한 퇴마사들의 활약을 다룬다. 주요 등장인물은 이현암과 박윤규 신부, 현승희, 장준후 네 사람인데 이 중 현암이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현암은 어린 시절에 부모님을 잃고 하나뿐인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여동생 현아가 물귀신에게 이끌려 죽자 복수를 위해 대학을 그만두고 수련을 시작한다.

〈퇴마록〉이현암
〈퇴마록〉이현암

하지만 수련 중 내공이 쌓이지 않는 체질임이 드러나 수련하던 선원에서 파문당하고, 포기할 수 없었던 현암은 비기를 훔치지만 주화입마(무협 소설에 등장하는 용어로 내공이 폭주하는 현상을 의미, 죽을 수도 있음)로 인해 죽을 고비에 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목숨을 건지고 능력을 얻는데, 적게나마 내공을 얻게 된 현암은 동생의 복수를 하러 물귀신에게 돌아가지만 그 귀신 역시 억울함을 안고 죽은 것을 알게 되어 복수를 포기하고 수행을 계속하게 된다. 떠돌던 중 치료를 위해 밀교를 찾아가게 되고, 이 과정에서 현암은 다른 주인공들을 만난다. 

〈퇴마록〉박 신부
〈퇴마록〉박 신부

박 신부는 원래 의사였지만 절친한 친구의 딸이었던 차미라가 귀신에 들려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자 무력감을 느껴 의사를 그만두고 가톨릭에 입문해 엑소시스트가 되고자 한다. 고행 끝에 박 신부는 녹색 아우라로 표현되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갖게 되는데, 하지만 바티칸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서 악마 퇴치를 계속하면서 결국 파문당한다. 신부로서는 파문당했지만 계속해서 퇴마를 해 오던 박 신부는 밀교로부터 요청을 받아 그들을 방문하게 되고, 밀교의 영재 영능력자로서 수행하고 있던 준후와 밀교를 방문한 현암과 만나게 된다. 

〈퇴마록〉
〈퇴마록〉

밀교에서 자란 준후를 비롯, 이후 투시 능력과 염동력을 갖고 있는 여성 캐릭터인 현승희까지 중반 이후에 합류하면서 퇴마록의 주역인 네 명이 모인다. 현승희는 알고 보면 힌두교의 신 중 하나인 애염명왕의 화신인데, 감정이 격해지는 등 분노하면 온몸이 붉게 변하면서 능력을 발휘하는 타입의 능력자다. 무엇보다 승희는 서포트 역할인데, 나머지 셋이 공력이 부족하거나 힘을 다했을 경우 애염명왕의 힘을 불어넣어 다시 싸울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들이 펼쳐 가는 이야기가 바로 「퇴마록」이다. 

〈퇴마록〉장준후
〈퇴마록〉장준후

재미있는 건 각각의 주인공이 서로 다른 종교를 대표한다는 점인데, 박 신부는 천주교, 현암은 불교, 준후는 일본 밀교 혹은 무가(巫), 승희는 힌두교다. 따지고 보면 전 세계 오컬트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는 셈이며, 한국을 무대로 하고 있지만 이우혁 작가의 세심한 자료 조사를 기반으로 전 세계의 다양한 신앙들이 속속들이 숨어 있어 이런 류의 어반 판타지(현대 도시 배경의 판타지 장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꽤나 즐겁게 읽을 수 있을 듯. 물론 90년대 작품이기에 원문을 처음 읽는 사람은 좀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최근 완결된 웹툰도 있고, 이제 곧 공개될 애니메이션도 있다. 

〈퇴마록〉제작 발표 당시 현승희 컨셉아트
〈퇴마록〉제작 발표 당시 현승희 컨셉아트

사실 「퇴마록」은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영상 콘텐츠보다는 게임이 더 많았다. MMORPG도 있었고 모바일 게임도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게임을 기억하지 못하는데(해본 팬들이라면 다른 의미로 기억하겠지만...) 원작의 명성에 비해서는 아쉬운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PC통신 시절의 텍스트 기반 머드 게임으로 만들어진 ‘퇴마요새’라는 게임이 더 의미가 있는 흥행을 했는데, 아무래도 퇴마록 특유의 오컬트한 표현을 게임적 연출로 소화시키기에는 당시의 IP 기반 게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1998년 영화 〈퇴마록〉
1998년 영화 〈퇴마록〉

영상 콘텐츠도 없지는 않았는데, 지금 봐도 제법 화려한 캐스팅인 안성기, 신현준, 추상미를 주역으로 기용한 1998년 영화가 있었다. 원작의 팬이라면 그냥 잊고 싶은 기억일 수도 있겠지만… 원작 작가인 이우혁조차도 영화에 대해서는 혀를 내둘렀을 정도니 할 말이 없을 것. 원작자인 이우혁 작가를 제작에서 완전 배제했음은 물론 작가가 보낸 자료를 참고하기는커녕 그냥 버렸다는 얘기도 나오니 당시까지만 해도 원작 기반 영화에 대한 이해도는 상당히 부족했던 모양이다. 

웹툰 ‘퇴마록’
웹툰 ‘퇴마록’

이후에는 2011년에 <로스트 사가>의 콜라보 이벤트로 잠시 등장한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진행이 없다가, 2021년에 네이버를 통해 웹툰이 공개된다. 원작과는 다소간의 차이점이 있으나 전체적인 흐름은 소설의 흐름을 대체로 따라가는 편이다. 이외의 요소로는 90년대에서 2020년대로 바뀐 세월의 흐름에 맞추어 보다 현대적인 배경을 갖추었다는 점이 다른데, 「퇴마록」의 매력 요소는 적절히 구현되어 근래 독자들에게도 퇴마록의 명성을 알리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웹툰의 성공 덕인지 90년대부터 말만 무성했던 애니메이션 제작이 드디어 진행되기 시작했고, 보다 원작의 묘사에 근접한 캐릭터 외형은 물론이고 퀄리티 있는 예고편을 공개하기에 이른다. 제작은 싸이더스 애니메이션(로커스 스튜디오)이 맡았는데, 네이버 웹툰 원작의 애니메이션을 주로 제작하고 있는 스튜디오로 <레드슈즈>로 대통령상을 수상한 적도 있는 곳이다.

〈퇴마록〉포스터들
〈퇴마록〉포스터들

개인적으로 한국 장르소설의 시작점을 생각하게 하는, 이 작품 <퇴마록>의 애니메이션은 꽤나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예전과 달리 소설이나 만화,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상물 제작이 흔해진 상황이고, 장르에 대한 이해도도 훨씬 높아져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관객의 수준과 기준도 올라갔다는 건 제작자 입장에선 우려점일지도 모르겠지만... 원작 팬에겐 즐거운 기대감을 갖게 하는 이야기인 건 확실하다.

애니메이션이 다루는 이야기가 첫 시리즈인 국내편의 에피소드라는 점은 어쩐지 더 큰 기대를 갖게 하는데... 애니메이션이 성공적인 흥행을 하고, 이를 계기로 시리즈가 이어져 21세기에 다시 올라온 '퇴마록 붐'을 보는 날이 와줄지도 모른다. 장르문학과 장르영화를 사랑하는 조금 특별한 사람들에게 이번 애니메이션이 예고편의 퀄리티만큼 좋은 작품으로 남아주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