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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래들의 노래에도 유행가가 있어” 〈극장판 고래와 나〉이큰별 PD·임완호·김동식 촬영감독

씨네플레이
 〈극장판 고래와 나〉 포스터. (사진 제공=썬더필름)

지구를 절반으로 나누면 땅 위에는 인간이 있고, 광대한 바다를 지배하는 것은 고래다. 번식과 출산을 위해 지구 반 바퀴를 헤엄치고, 한 번의 호흡으로 심해까지 잠수해 먹이 활동을 하는,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고래의 모든 비밀이 깨어난다!

10월 30일 극장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극장판 고래와 나>(연출 이큰별)는 대한민국 최초 본격 고래 블록버스터 다큐멘터리다. 지구를 품은 경이로운 고래의 세계를 통해 생명으로 연결된 우리가 지켜야 할 위대한 여정을 그렸다. 7년의 제작 기간 동안 북극, 남극, 프랑스, 아이슬란드, 멕시코, 몽골, 통가, 페루 등 세계 20개국 30개 지역에서 촬영했다.

먼저 희귀한 고래의 삶을 포착한 장면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 이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카메라에 담은 고래의 수유 장면을 비롯해, 캐나다의 흰돌고래와 북극곰의 생존기 등 300테라바이트 분량의 데이터로 기록된 영상들이 스크린 가득 펼쳐진다. <동물농장>, <그것이 알고 싶다>의 이큰별 PD가 연출을 맡았고, 대한민국 수중 촬영계의 일인자이자 40년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 김동식, 임완호 촬영감독이 산소통 없이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들어 진귀한 장면을 건져냈다. 또한 고래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표현해 온 배우 한지민과 박해수가 내레이션을 맡아 다큐멘터리에 한층 더 몰입감을 더한다.

<극장판 고래와 나>는 2024 뉴욕필름페스티벌 본상, 2024 휴스턴국제영화제 금상, 제4회 누벨바그영화제 장편 대상, 제51회 한국방송대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특히 제60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예술상(촬영)을 받으며 커다란 스크린에 펼쳐지는 광활한 바다와 아름다운 고래의 유영 모습을 담아내 ‘필람 무비’로 등극했다. 이큰별 PD와 김동식·임완호 촬영감독을 만나 <극장판 고래와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극장판 고래와 나〉 이큰별 PD, 김동식 촬영감독, 임완호 촬영감독. (사진 제공=로스크)

 

영화를 보니 경이롭다는 말이 가장 먼저 나옵니다. 그리고 사랑스럽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리고 꼭 극장에서 큰 화면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입니다. 개봉을 앞둔 소감 한 말씀씩 부탁드립니다.

임완호 촬영감독 다른 무엇보다도 일단 언젠가는 한 번 해봐야 할 텐데, 언제가 될까 생각만 하고 있었죠. 10년 후가 될 수도 있는 건데, 이큰별 PD가 추진해줘서 고맙습니다. 한국 극장에 내보내는 첫 고래 다큐멘터리라고 상징적으로 기록이 됐고요. 어떻게 볼지는 관객이 결정할 문제죠. 그래도 방송으로 보던 것과 극장에서 보는 화면은 차원이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사랑니 빼서 인상 쓰고 있는 김동식 감독님 한 말씀 해주시죠.(웃음)

김동식 촬영감독 화 안 났다니까요.(웃음) 15년 전쯤인가 프랑스 해양 다큐멘터리 <오션스>(감독 자끄 페렝·자끄 클로드, 2009)를 보면서, 언젠가는 나도 저런 작품을 찍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감독은 아니지만 수중촬영 전문가로서요. 이번에 영화로 소원을 이뤘는데, 앞으로 한 번 더 해보고 싶습니다.

이큰별 PD 일단 별로 실감이 잘 안 나긴 합니다. 박평식 영화평론가가 <극장판 고래와 나>를 보고 “감탄과 탄식을 내뿜는 카메라”라고 한줄평을 남겼더라고요. 대한민국에서 세계적 수준의 수중촬영을 한 두 선배 촬영감독님의 작업으로 큰 스크린에서 볼 수 있게 돼서 너무 행복합니다. 사실 영화로 만들려고 한 게 아니라, 방송 나가고 시청자 분들이 큰 스크린에서 보게 해달라고 방송국으로 연락을 많이 주셨어요. 후기가 3천 개가 넘고, 홈페이지가 다운되기도 했죠. 그 응원을 바탕으로 투자를 받아서 영화로 개봉하게 되니 시청자분들께 정말 감사합니다. 전국 극장 105개 관에서 10월 30일에 개봉합니다. 원래 (상영관 계획은) 70여 개 정도였는데, 시사회 반응이 좋아서 많이 늘었죠. 개봉하고 입소문이 나서 더 많은 분들께서 보시면 좋겠습니다.

극장에서 수익이 나면 좀 돌아가는 게 있나요?(웃음)

이큰별 PD 그런 게…, 없습니다.

김동식 촬영감독 우연의 일치지만, 제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24프레임으로 찍자고 이큰별 PD에게 제안을 했어요. 영화가 24프레임이고 방송은 30프레임인데, 영화를 염두에 둔 거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한 것이 결국 이렇게 됐네요.(웃음)

 

〈극장판 고래와 나〉 스틸컷. (사진 제공=썬더필름)

알겠습니다. 먼저 <극장판 고래와 나>는 어떻게 출발한 영화인지 질문드릴게요.

이큰별 PD 고래는 알고는 있지만, 발견하기가 힘들어요. 마치 네잎클로버 같은 거랄까요? 찾기가 너무 힘드니까 행운이라고 하듯이요. 고래가 있는 바다에 가도 고래를 발견하려면 노하우가 있어야 하고, 행운이 따라야 해요. 다행히 두 분 선배님들이 7년 전부터 촬영한 데이터베이스와 노하우가 있었죠. 고래를 찍고 싶다고 한 건 저지만, 7년 전부터 세상이 알아주든 말든 고래를 쫓아다니던 두 분이 계셨기에 이번 영화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김동식 촬영감독님과는 8년 전 <동물농장> 할 때 물범을 찍으러 백령도에 가면서 알게 됐습니다. 비가 와서 물범은 한 컷도 못 건지고, 일주일 내내 고스톱만 치고 왔죠. 김 촬영감독님이 임완호 촬영감독님을 소개해주셨어요.

이 질문을 드리고 싶었는데요. 하고많은 동물 중에, 왜 고래였습니까?

 

임완호 촬영감독 이건 초반 이야기부터 해야 해요. 우선 고래에 대한 시작은 김동식 선배죠. 경험이 많았고요. 저는 바다를 아는 것도 아니고 고래 다큐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남극을 자주 가요. 남극에서 고래를 만난 독특한 경험이 있고요. 동식이 형한테 카톡으로 자랑했는데, 자꾸만 고래 다큐를 하자는 거예요. 그래볼까 하는 마음이 조금씩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돈이 좀 모일 때마다 고래가 나온다는 곳으로 여행을 가는 거예요. 와이프랑 같이 가서 저는 배를 타고 이틀, 사흘을 바다로 나가고, 와이프는 다른 곳에 구경을 가고요. 제가 종일 배를 빌리는 것보다는 돈이 좀 덜 드니, 그렇게 일주일씩 고래를 찍어보면서 좀 더 이해하게 됐죠. 아, 가능성이 있겠구나 하는 마음도 들었고요. 그래서 제작 지원을 받아서 같이 작업을 하게 된 거죠. 그러다 이큰별 PD를 만나서 SBS와 함께 작업을 하게 된 거죠. 때론 같이, 때론 따로 나눠서 촬영했는데 융합적으로 잘 굴러갔어요. 이 프로젝트의 성공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이큰별 PD 제가 연출도 하지만, 다이버이기도 합니다. 물론 김동식 촬영감독님에 비하면 어디 명함도 못 내밀 경력이지만, 마스터 다이버로 전 세계 다이버 포인트 안 가본 데가 없을 정도예요. 다이빙하면서 거북이나 만타가오리, 돌고래 한 마리만 봐도 대박인데, 바다에서 고래를 본다? 그러면 끝이죠.(웃음) 고래랑 찍은 사진 보여주면 자랑하던 다이버들이 다 입을 다물거든요.

고래를 보고 싶다는 사심을 채운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확신은 분명 있었어요. 지구에서 가장 큰 생명체를 제대로 보여주면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줄 거라는 확신이죠. 게다가 기획을 할 당시에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연출 유인식, ENA, 2022)나 <아바타: 물의 길>(감독 제임스 카메론, 2022) 같은 작품들로 고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올라와 있던 시기였습니다. 윗분들을 설득했죠. 대한민국에서 고래 다큐 제대로 한 게 없으니, 우리가 해보겠다고요. SBS도 코로나 이후로 창사 특집 다큐멘터리는 4년 만이라, 남들이 안 한 걸 해보자는 데 의기투합한 겁니다. 그런데 시작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죠. 남들이 안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걸요.(웃음)

〈극장판 고래와 나〉 스틸컷. (사진 제공=썬더필름)

 

SBS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4부작 방송이 원작이죠. 극장판으로 만들며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혹은 강조하거나 특별히 살리고 싶은 부분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는지 설명해주세요.

이큰별 PD 영화에서는 바다에 사는 고래 이야기에 집중하려고 했습니다. 방송에는 갇혀 있는 고래 이야기도 있거든요. 영화 초반에 관객들이 고래를 좀 사랑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고래에게 벌어지는 안 좋은 일들이 소개되기도 하니까요. 충분히 감정 이입이 안 된 상태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관객들은 ‘아. 고래가 좀 힘든가 보네’라고 반응할 테니까요. 그래서 영화를 크게 두 파트로 나눈 겁니다. 초반에 엄청 사랑스럽게 보이게 하다가, 후반에는 그 사랑스러운 존재가 힘들대, 아마도 그 이유는 인간 때문인 것 같아 하는 스토리로 구성한 거죠.

알겠습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벌판의 문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감독 스탠리 큐브릭, 1968>의 모노리스를 떠올리게 합니다. 오마주인지, 다른 의도가 있었던 건지 궁금해요.

이큰별 PD 고래 다큐멘터리라고 해서 처음부터 고래를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어요. 고민할 때 즈음에 <스즈메의 문단속>(감독 신카이 마코토, 2024)이 개봉했어요. 문을 건너면 다른 공간으로 가더라고요. 그러면 우리도 파란색 문을 만들어 보자! 그 문을 건너면, 한 꺼풀만 벗기면 고래가 있다고 설정해 본 거죠. 김동식 촬영감독님이 기획할 즈음에 “지구 위에는 인간이 있고, 바다 아래에는 고래가 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문제의식을 담고 싶었어요.

임완호 촬영감독 해외 촬영을 갔는데, 바다에 나갈 준비를 하는 게 아니라 현지 팀들을 쪼아서 문을 만들고 있더라고요.(웃음) 도대체 뭐 하는 짓인가 했는데 그런 의도가 있었던 거죠.

모노리스는 아니었던 걸로요.(웃음) 본격적으로 고래 이야기를 해보죠. 화면으로 볼 때도 압도적으로 큰데, 실제로 봤을 때 큰 차이가 났다고요. 수면에서, 바닷속에서 고래를 발견했을 때, 촬영하며 함께 헤엄칠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임완호 촬영감독 동식이 형은 바다 들어가면 맨날 보니까.(웃음) 그 느낌이 익숙해질 거로 생각하는데, 저는 좀 특별하긴 했죠. 저는 바다 한 번도 안 들어갔어요. 수영을 못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사실 수중 촬영은 동식이 형 영역이니 방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죠. 그런데 한 번은, 들어가서 고래와 수영은 해보겠다는, 그런 찬스는 노리겠다는 마음은 있었어요.

그런데 실제로 현장에 가면 잘 안돼요. 드론도 날려야 하고, 주변 상황도 체크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마지막 날은 정말 황홀했습니다. 동식이 형도 바닷속에서 한참 촬영하고 후다닥 배터리 갈러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고요. 저는 정신없이 드론 날리다가, 그만 물에 드론이 빠져버리기도 했죠. 엄청난 장면을 찍은 그 드론을 결국 건지지는 못했지만, 저도 결국 그날 바닷속에서 고래에게 다가갔어요.

네 마리가 있는 모습이었죠. 김동식 촬영감독이 이미 많이 촬영을 했고, 그 영상들을 봐서 아는 장면인데도, 제가 들어간 그날 네 마리 고래가 합창을 하는데 정말 화면과는 다른, 훨씬 넓은 차원이더라고요. 분명 코앞에서 펼쳐지는 장면인데 손에 닿지 않아요. 마치 우주 공간에서 별이 눈에 보이는데 손에 안 잡히는 것처럼요. 처음 듣는 그 합창에 멍해 있는데, 옆에 보니 촬영하는 동식이 형이 얼른 나오라고, 촬영에 방해된다고 손짓했던 게 기억나네요.(웃음)

 

〈극장판 고래와 나〉 스틸컷. (사진 제공=썬더필름)​

방금 말씀하셨던 것처럼 영화 초반에 고래 가족 네 마리가 맑고 고운 목소리로, 마치 합창단처럼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인상적이더라고요. 영화 후반부에는 혹등고래의 노래를 기록한 음반이 있다는 사실도 저는 처음 알게 됐어요. 물속에서 고래의 노래가 실제로 어떻게 들리나요?

임완호 촬영감독 음반으로 듣는 거랑 실제로 듣는 거랑 정말 달라요. 노래 부르는 소리가 고래마다 달라요. 처음 혹등고래 수컷이 부르는 노랫소리를 헤드폰으로 들었죠. 그전에 아무리 테스트해도 안 들렸는데, SBS 촬영팀이 합류하고 같이 나갔던 날이었던 거 같아요. 동식이 형이랑 다른 촬영감독이 물속에 들어갔는데, 고래가 울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마이크를 급히 바닷속으로 넣었죠.

그때 들은 소리는 들판에서 소가 ‘음메~’하는 소리였어요. 그 소리가 마이크에 잡혀서 정말 놀랐어요. 난생처음 듣는 소리였으니까요. 인터넷에서 듣는 소리와는 다른 차원이었죠. 개체마다, 시기에 맞게 음질이 다르더라고요. 전문가들이 연구했는데, 음절마다 비슷한 게 있다고 해요.

그런데 신기한 게, 이 노래들도 유행이 있어요. 호주에서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면, 3년 후에 통가에서 또 비슷한 음절의 노래가 나온대요. 그런 걸 연구했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문화고 유행이래요. 예를 들면 지금 로제의 ‘아파트’가 유행하면 몇 년 지나서 다른 나라에서 유행하게 된다는 건데, 고래로 치면 남반구에서 불렀던 노래를 몇 년 후에는 북반구 고래들이 부를 수도 있다는 거였죠. 믿을 수는 없지만, 그게 맞는 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군요. 노래하는 장면 외에도 놀라운 장면들이 많더라고요. 고래들이 구애하는 장면인 ‘히트런’도 그렇고요. 모성을 느끼게 하는 수유 장면도 그렇고요. 세분은 어떤 모습에서 가장 놀라셨는지,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김동식 촬영감독 고래끼리 키스하는 장면요. 저는 그게 암수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프랑스 감독에게 듣고 보니 수컷끼리 키스하는 거였다고 해서 놀랐어요. 그러나저러나 저는 마음속으로 ‘큰별아, 이거 난리 났다, 제대로 한 컷 건졌다’라는 마음으로 찍었어요.(웃음)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저는 고래가 잠자는 장면을 제일 찍고 싶었는데요. 그건 이미 찍어서 어미 고래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을 꼭 찍고 싶었어요. 그런데 젖물이 흘러나와야 비주얼적으로 어미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거라고 알 수 있잖아요. 그걸 마지막 날 찍었어요. 15m까지 근접해서요.

임완호 촬영감독 마침 스리랑카에서 장렬하게 깨지고(편집자주: 장담했던 고래 장면 촬영에 실패했던 촬영이다), 모리셔스에 간촐하게 장비를 챙겨서 급하게 갔는데, 그런 장면을 건진 거죠. 이큰별 PD는 “괜찮다”고 하는데, 속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러다가 모리셔스에서 그런 장면을 건진 겁니다.

 

〈극장판 고래와 나〉스틸컷. (사진 제공=썬더필름)
〈극장판 고래와 나〉스틸컷. (사진 제공=썬더필름)

 

7년이라는 제작 기간 중에 분명 기적적으로 느껴졌던 순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이 순간이 굉장히 기적적으로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전반적인 촬영 분위기도 반전이 되고요.

이큰별 PD 어미 고래가 새끼고래를 젖먹이는 장면이 정말 촬영이 가능할까 고민이 많았죠. 제가 <동물농장>을 오래 하면서 어미가 새끼에게 수유하는 건 절대 안 보여주는 게 포유류의 특징인 걸 알았거든요. 그런데 화면을 보면서도 너무 신기했어요. 더 대단한 건, 김동식 촬영감독님이 산소통도 안 메고 들어가서 그 장면을 찍었다는 거예요. 장비가 거추장스럽긴 해도 수중촬영을 장시간 할 수 있는데, 고래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스쿠버 장비로, 오로지 맨몸으로 입수해 찍은 거죠. 저는 PD를 떠나 다이버로서 ‘리스펙트!’입니다. 그날 김동식 촬영감독님 카톡에도 “다이버 세계에서 동식 감독님을 넘어설 사람은 없다! 영원한 레전드가 되셨다!”라고 남겼습니다. 그 정도로 감동적인 순간이었죠.

임완호 촬영감독 그런 말 자꾸 하지 마. 진짠 줄 알아!(웃음) 저는 잔소리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자꾸 김동식 촬영감독을 ‘쪼는’ 편이었고요. 더 멋있고, 경이로운 장면 찍어달라고 계속 요구했죠.

알겠습니다. SBS 다큐멘터리 특징이기도 합니다만, 초반에는 신기한 이미지들을 보여주다가 빙하가 녹는 결론을 향해 가죠. 전작인 <최후의 툰드라>에서도 그런 구성이 있었고, MBC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에서도 비슷했어요. 지구 온난화 문제를 거론하니까요. 그런데 후반에 어린 보리고래가 죽은 사건이 나오며 주제가 미세플라스틱, 환경오염으로 확장되죠. 처음부터 계획한 건 아닐 거 같아요.

이큰별 PD 그렇죠.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하진 못했어요. 처음엔 고래의 멋진, 경이로운 모습을 보여주면 되겠지 했죠. 어느 주말이었는지, 출근하는 길에 부안에서 고래 한 마리가 죽었다는 뉴스를 들었어요. 그래서 촬영팀 선배에게 연락해서 부리나케 내려갔죠. 제가 <그것이 알고 싶다>를 오래 해서 그런지, 그런 감이 있어요. 이거 취재 계속 해봐야겠다는? 그렇게 내려가서 5일 동안 못 올라왔죠.

김동식, 임완호 촬영감독님께도 연락을 드렸더니 “큰별아, 잘 찍어봐, 그거 이야깃거리가 될 것 같아”라고 독려하시더라고요. 고래가 밀려 올라와 죽은 곳이 섬이었는데, 그 사체를 트레일러를 사용해 울산으로 옮긴 거예요. 결론적으로 나중에 그 고래 몸속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나올 거라곤 상상도 못했죠. 고래가 인간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자기 몸으로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아이가 이제 막 돌이 지났는데, 그 보리고래도 이제 막 한 살이 됐다는 거예요. 70년 사는 고래가 이렇게 됐다는 걸 보면서 프로젝트의 후반부 주제가 변경된 거죠.

김동식 촬영감독 그 부분이 ‘신의 한수’였던 거 같아요. 그냥 고래의 경이로움만 담았다면 재미가 없었을 것 같거든요.

이큰별 PD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저희가 실패한 적도 많고, 안 되니 걱정도 많았고요. 그런데도 최선을 다하다 보니, 그런 계획에 없던 일들이 생겼던 거 같아요. 도와주시는 분들도 있었고요.

사실 이건 번외편으로 말씀드리는 건데요. 한국에서 10m 짜리 고래를 부검할 수 있는 연구소가 2022년 11월에 처음 생겼어요. 울산의 고래연구소에 대형고래 부검연구소가 생긴 거죠. 완공까지 2년 정도 걸렸대요. 그리고 보리고래가 올라온 게 2023년 3월입니다. 9.8m였어요. 마치 이 모든 게 운명처럼 정해져 있던 게 아닌가 할 정도였어요. 만약 그 보리고래가 10미터가 넘었다면, 운반해서 부검연구소에 가져갈 수도 없었죠. 발견한 곳에서 시료 채취만 하고 끝냈겠죠.

임완호 촬영감독 그 귀하고 귀한 대왕고래가 좌초돼서 나타나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이야깁니다.

김동식 촬영감독 이 프로젝트가 되려니 그렇게 된 거죠.

〈극장판 고래와 나〉스틸컷. (사진 제공=썬더필름)
〈극장판 고래와 나〉스틸컷. (사진 제공=썬더필름)

 

고래와 소통한다고 느껴졌던 순간들도 있었을 거 같습니다. 또는 가장 힘들었던 촬영이 무엇이었는지, 에피소드 하나 소개해주세요.

김동식 촬영감독 통가에서 암컷, 수컷 고래가 함께 유영하는데, 어쩌다 제가 그 둘 사이로 들어가게 됐어요. 그런데 제가 끼어드는 그 자리만큼 딱 공간을 벌려주더라고요. 와, 고래들이 정말 인간에게도 이런 배려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카메라 렌즈에 버블이 묻었는데, 닦을 시간도 없고 그렇게 하다 보면 바로 고래들이 가버릴 거 같아서 그냥 찍었던 기억이 납니다. 또 정면에서 고래가 오는데 저랑 교차하는 그때 가슴지느러미를 접어서 제가 앞으로 나가기 편하게 해주더라고요. 이렇게 이타적인 행동을 할 정도로 영리하단 게 느껴졌죠. 가장 힘들었던 건 뭐 스리랑카였고요.

아까부터 계속 스리랑카 이야기가 나오는데, 도대체 스리랑카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웃음)

이큰별 PD 김동식 촬영감독님이 대왕고래, 향고래 무조건 찍을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 스리랑카에서 촬영 허가가 안 나는데, 큰돈을 들여서 힘들게 촬영 허가를 받고 갔는데….

임완호 촬영감독 동식이 형 말만 믿고 가면 안 돼.(웃음)

김동식 촬영감독 한 사흘쯤 바다에 나가 보니, 고래가 없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런데 우리끼리도 이야기를 못하고 서로 눈치만 보는 거예요.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고요. 자연 다큐멘터리는 발품 팔아야 건진다는 교훈 다시 한번 느낀 거 같아요.

임완호 촬영감독 전체적으로는 만족했던 촬영이었지만, 가장 힘든 건 목표가 불확실할 때죠. 스리랑카가 그랬어요. 선장이 가자는 대로 가는데, 고래가 안 나와요. 사흘쯤 지나니 느낌이 딱 오더라고요. 고래들이 올해 아직 여기 안 왔구나 하는 게요. 배는 계속 타고 바다로 나가죠. 그런데 괴로운 거죠. 나가도 고래가 없으니,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고요. 이큰별 PD는 고래를 담아야 하는데 얼마나 괴롭겠어요. 심정적으로 그럴 때가 힘들었던 거죠.

이큰별 PD 저는 북극에 벨루가를 찍으러 갔을 때가 가장 힘들었고, 또 기억에 남아요. 북극에 세 명이서 2주 가는 데 2억 원이 들었습니다. 저희 총 제작비의 1/6이에요.(웃음) 막상 갔는데 빙하가 다 녹아서 물속 시야가 너무 안 좋은 거예요. 벨루가를 찍으려면 배를 타고 4~5시간은 나가야 하는데요. 14일 중에 실제 촬영이 가능한 날은 5일 정도였어요. 그 와중에 드론이 물에 빠지기도 했고요. 연출자는 주어진 예산과 기한 안에 최대한의 결과물을 내야 하는데,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북극곰을 찍었어요.(웃음) 배를 안 타도 찍을 수 있으니까요. 놀면 뭐 합니까? 물론 괴로웠죠. 돌아갈 날은 얼마 안 남았는데, 벨루가는 안 보이고, 수중 촬영 장면은 하나도 없고요. 문래동 가서 수중촬영 편하게 하도록 거치대도 용접해서 만들어서 페덱스로 보냈는데 말입니다. 너무 괴로워서 제 얼굴이 하얀 벨루가처럼 하얗게 떴다니까요?(웃음)

〈극장판 고래와 나〉스틸컷. (사진 제공=썬더필름)
〈극장판 고래와 나〉스틸컷. (사진 제공=썬더필름)

그래서 고래 영화에서 북극곰이 등장한 거군요!(웃음)

이큰별 PD 그때 현지에서 누군가가 카약을 타고 나가보라고 하더라고요. 드론 촬영감독은 드론으로 찍어야 하니, 제가 카약을 탈 수밖에 없었어요. 테스트한다는 생각에 장비도 제대로 안 채우고 그냥 나갔어요.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 벨루가들이 카약 옆으로 다가왔어요! 10분 정도 저랑 놀아줬습니다. 진짜 숨냄새, 물비린내가 느껴지고 손에 닿는 거리에서요. 10분 만에 배터리가 떨어져서 다시 돌아가서 재정비하고 카약에 고프로도 달고 다시 갔는데, 벨루가가 오지 않더라고요.

저는 그 10분에서 인생의 행복을 배웠습니다. 행복을 누릴 때는 그때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잖아요. 그 10분이 얼마나 귀중한 순간인지 몰랐죠. 나중에 생각하니 정말 좋았어요. 벨루가가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으니까요. 눈이 마주치기도 했고요. 그 좋았던 10분을 못 누렸죠. 빨리 카메라 세팅하고 다시 와야지 하는 생각이었으니까요. 아마 죽을 때 기억날 장면일 거 같아요. 그 10분에 인생을 경험한 것이 <극장판 고래와 나>를 잘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입니다.

김동식 촬영감독 자연 다큐멘터리는 찬스날 때 못 찍으면, 평생 못 찍어요. 그래서 우린 여분 배터리를 늘 챙기죠. 자연을 두고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사실 하나도 없습니다. 자연이 도와주지 않으면요. 고래가 나오면 뭐 하나요? 비 오고 파도치면 숙소에만 있어야 하는 게 인간이잖아요.

〈극장판 고래와 나〉스틸컷. (사진 제공=썬더필름)
〈극장판 고래와 나〉스틸컷. (사진 제공=썬더필름)

‘10분의 행복’, ‘자연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말씀의 여운이 깁니다. 이렇게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세 분께서 “고래는 ○○다!”라고 한마디로 표현해주신다면요?

이큰별 PD “고래는 나다!” 처음 이 기획을 시작할 때 고래와 인간이 이렇게까지 연결된 존재라는 생각을 못 했어요. 그런데 고래를 계속 찍으면서 고래가 사는 바다가 보였죠. 김동식 촬영감독님은 30, 40년 전 바다도 보셨을 테지만, 고작 14년 정도 다이빙을 했던 제가 봐도 바다가 이렇게 망가져 있다는 걸 느꼈거든요. 아까 이야기했던 스리랑카 촬영 첫날에는 몰랐어요. 배가 온통 기름범벅이더라고요. 전날 배가 기름을 버려서 바닷가가 기름범벅이 된 거예요. 아, 바다가 망가지는 속도가 정말 걷잡을 수 없구나 싶었죠. 고래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결국 나의 이야기로 끝나는 영화가 된 거 같아요.

김동식 촬영감독 “고래가 살아야 지구가 산다!” 예전에는 고래를 잡아 기름으로 쓰기도 했죠. 그런데 고래의 변이 플랑크톤이 되기도 하고, 아마존 숲보다 더 많은 산소를 만들어내기도 한대요. 또 죽을 때는 고래 한 마리당 33톤의 산소를 갖고 가라앉는다잖아요. 한마디로 고래가 살아야 지구가 산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임완호 촬영감독 “고래를 보며 겸손함을 느끼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환경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했지만, 고래를 보며 겸손함을 저도 느꼈거든요. 고래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느껴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극장판 고래와 나〉스틸컷. (사진 제공=썬더필름)
〈극장판 고래와 나〉스틸컷. (사진 제공=썬더필름)

영화를 볼 관객들에게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는 꼭 하고 싶다고 하는 게 있을 거 같아요. 어른 관객, 어린이 관객에게 따로 말씀주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이큰별 PD  부산평화영화제에서 10월 27일에 장편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GV에서 어린이 관객들이 “감독님, 고래 고기 먹어봤어요?”라고 묻더라고요.(웃음) 원래 영화제 출품하려면 110~120분으로 러닝타임을 잡는데, 저는 이 영화를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 저학년 대상으로 생각하고 이들이 집중해서 볼 수 있도록 90분대로 줄였습니다. 혹등고래가 16m정도 해요. 스크린 길이가 16m정도 하니까, 꼭 스크린에서 거대한 고래를 느껴보고, 관심을 가진다면, 실제로 바다에 가서 고래를 만나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 더 말씀드리면, 요즘 환경 교육을 많이 하는데, 교육청이나 학교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시면 어떨까 해요. <하츄핑> 만큼 매력적인 ‘벨루가핑’, ‘혹등고래핑’을 사랑해주세요!(웃음)

임완호 촬영감독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임프레시브’(Impressive)한 영화를 보여주면 그게 기준이 됩니다. 저는 <극장판 고래와 나>가 아이들에게 ‘환경의 기준’이 되면 좋겠습니다.

김동식 촬영감독 영화를 보고 돌아갈 때 고래가 바로 자신이란 걸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그렇게 작은 거라도 실천하면서 지구가 오염되는걸,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또 이큰별 PD 말처럼 교육청에서 후원해서 아이들이 단체 극장 관람하면서 환경에 대한 인식을 가진다면 좋겠습니다. 고래는 모든 아이들이 다 좋아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