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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청설〉 홍경, "온전히 마음을 다해 사랑해보고싶다"

이진주기자

‘청춘 멜로 영화’하면 자연스럽게 대만을 떠올리게 된다. <나의 소녀시대>(2016), <장난스런 키스>(2019), <남색대문>(2021) 등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하는 어린 날의 사랑 이야기에 관객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그중 <청설>(2010)도 있다.

 

대만의 대표적인 청춘 멜로 <청설>이 2024년 한국에서 재탄생했다. 오는 6일 개봉하는 영화 <청설>은 사랑을 향해 직진하는 스물여섯 살의 용준(홍경)과 청각장애를 앓는 동생을 위해 인생을 바친 여름(노윤서), 이들을 응원하는 동생 가을(김민주)의 이야기를 담는다.

 

지난 30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만난 홍경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에 다가가는 것은 불변의 가치를 가진다’며 ‘<청설>을 통해 이러한 순수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청설>을 통해 모두의 첫사랑 조작에 나선 배우 홍경과 나눈 이야기를 공유한다.


〈청설〉
〈청설〉 배우 홍경(사진=매니지먼트mmm)

<청설>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소감을 말해달라.

작년 여름에 <청설>을 준비하고 촬영했다. 그리고 얼마 전 언론배급 시 사회 때 처음 봤는데 너무 좋았다. 나를 포함 노윤서, 김민주 배우 모두 20대에 극장에서 개봉하는 첫 영화이다. 20대 배우들이 주된 영화가 극장 개봉한다는 점에서 <청설>은 매우 각별하고 특별하다. 이 마음이 잘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청설〉
원작 영화 〈청설〉(2010)

 

원작 <청설>은 이미 알고 있는 작품이었나.

아주 어릴 때 원작 <청설>을 보았다. 내 기억에 원작은 조금 더 밝고 통통 튀는 이야기라고 느꼈다.

 

리메이크 소식을 들었을 때는 어땠나.

솔직히 리메이크를 하는 것을 그리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한번 만들어진 이야기를 다시금 한다는 것이 크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감독님이 써주신 각본을 보고 다시 원작을 보면서 ‘해야겠다’고 생각한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청설>은 시기와 상관없이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을 담아냈다. 모든 것이 빠르고 종이를 태우듯 휘발되는 세상 속에서 불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다가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쏟지 않으면 절대로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청설>에서 그러한 순수함을 느꼈다. 솔직해야 하고 온전히 내 마음을 비쳐야 하는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청설〉
〈청설〉

노윤서, 김민주 배우와의 합이 좋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배우들 간의 케미스트리가 이 작품의 큰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함께 연기를 준비한 과정에 대해 전해준다면?

케미스트리라는 게 갑작스럽게 튀어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제작분들께 감사한 것은 저희가 두 달 반 정도 수어를 같이 배우면서 만날 기회가 주셨다. 주 3회 정도 만나서 수어를 배우면서 가까워졌다. 그 시간을 나는 온전히 즐겼다. 서로 빨리 알아가려 하지 말고 처음에는 좀 어색해하다가도 시간이 흐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게 되었다. 이런 시간들이 작품에 드러나지 않았나 싶다.

〈청설〉
〈청설〉

 

​수어가 주된 소통 수단이다 보니 손짓과 눈빛, 표정 등으로 감정을 표현해야 했다. 쉽지 않았을 듯한데 수어로 연기를 하는 과정은 어땠나.

수어는 어려움보다 재미를 더 주었다. 수어로 대화를 한다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닌 상대에게 훨씬 집중을 요하는 작업이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상대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주는 경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는 경험.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다.

또 감정을 육성이 아니라 수어로 표현하면서 이것이 단순히 손짓, 몸짓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표정과 다른 제스처 등으로 전달해야 했다. 몸으로 언어를 표현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제스처와 표정들을 발견했다. 전혀 계획해두지 않은 연기들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재밌더라. 예를 들어 '이력서를 넣었는데 다 떨어졌어'라고 말을 하고 싶을 때 (몸을 기울이며) 이렇게 몸이 내려가더라.

〈청설〉
배우 홍경(사진=매니지먼트mmm)

 

용준은 여름에게 첫눈에 반한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이 사실 거의 판타지에 가까운 일인데... (웃음) 용준은 왜 여름에게 빠졌을까?

누군가를 보고 사랑에 빠지는 것은 굉장히 감정적인 것이다. ‘여름이의 어떤 모습이 좋아서’라고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운명적인 것 아니겠나. 이후에는 여름이가 용준이는 경험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사랑이 더 깊어지는 것 같다. 여름이가 아니면 알 수 없었던 세계를 여름이를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이다.

​영화 작업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서로에게 계속 영향을 받지 않나. 이런 것이 너무 재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고 그 이상을 하려면 감독님과 다른 배우들, 크루들이 필요하다. 이들의 연쇄작용으로 작품이 만들어진다.

스피커에 손을 대는 장면, 수영장 고백 장면 등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큰 울림을 주는 장면이 많은 영화이다.

스피커 신은 극장에서 보면서 되게 좋았다. 요즘 많은 작품들이 '관객들이 지루해하지 않을까', '이탈하지 않을까'를 걱정하며 모든 장면을 꽉 채워 넣기 바쁘다. 그런데 나는 그런 데서 피로감을 느끼기도 한다. 사람을 집중시키는 데에 필요한 것은 큰 자극이 아니라 심장을 때리는 고요이다. 스피커 신이 시작되니 극장이 조용해졌다. 그때 오는 기분 좋은 텐션을 느꼈다. '되게 시네마틱하다'고 생각했다.

​수영장 신을 촬영할 때 '오로지 용준의 순도 100% 진심으로만 이루어지겠다' 싶었다. 때문에 그 진심에 집중했다. 용준이가 여름이를 용감하게 찾아와서는 먼저 말로 고백을 해본다. 왜 그렇겠나. 용준의 마음속에 쌓아놨던 것을 '어떻게 전할까'가 중요한 것이다.

<청설> 속 ‘용준’은 사랑에 굉장히 적극적이고 솔직한 편이다. 용준이라는 인물과 홍경 자신을 비교하자면?

저는 용준처럼 솔직하고 용감하지 못했다. 내 마음과 상대의 마음이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한발 다가서다가도 상대의 작은 몸짓 때문에 두세 발 멀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용준이가 여름이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그 마음을 전하는 과정을 함께 하면서 가장 많이 배웠다. 수많은 고민을 하고 상대가 부담스럽지 않게 온전히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스스로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많았다. 누군가를 그냥 사랑하는 것, 상대의 마음과 같지 않더라도 마음을 내비쳐 보는 것을 하고 싶다. 막상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또 망설이겠지만 온전히 내 마음을 다해서 누군가를 사랑해 보고 싶다.

그렇다면 홍경이 용준과 비슷한 지점도 있나.

자기만의 주관과 삶의 방식이 확실하다는 점, 쫓는 것이 분명히 있다는 점 등이 비슷하다.

 

필자가 인터뷰한 이들 중 가장 의외의 면모를 보여준 배우가 아닐까. 수줍고 부끄럼 많던 홍경의 여타 모습에 그가 말하는 것을 즐기지 않거나 어려워할 것이라 예상했다. 배우의 말을 글로 전달해야 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난감한 노릇.

하지만 실제 만나 본 홍경은 필자의 추측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모든 질문을 그냥 넘기는 법이 없었다. 그가 작품과 캐릭터, 나아가 함께하는 사람에게까지도 허투루 하지 않는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냥’에도 그 의미와 가치를 찾아내는 배우 홍경이다.

 

〈청설〉
〈청설〉 배우 홍경(사진=매니지먼트mmm)

연기를 하면서 완벽하게 용준과 하나가 되었다고 느끼는 장면도 있었나.

엄마에게 고백하는 씬이다. 촬영하면서 이상하게 유난히 마음이 아팠던 날이다.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아픈 것이다. 영화에는 짧게 나왔지만 촬영할 때는 조금 더 호흡이 길었다. 그런 시기를 지났을 나이인데 위로를 받는 대상이 부모님이라는 것이 특별했다. 연기를 하면서 정혜영 선배님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생생하다.

 

맞다. 노윤서, 김민주 등의 젊은 배우와의 합도 좋았지만 특히 부모님 역할을 맡은 정혜영, 현봉식과의 장면이 인상 깊다.

원래 나는 현장에서 ‘또 갈래요’하면서 여러 번 연기를 하는 편이다. 그때도 정혜영 선배님과 다양한 시도들을 해봤다. 담담하게 고백을 하기도 하고 엄마가 머리를 쓰다듬거나 어깨를 두들겨 주시기도 했다. 정말 좋았다.

캐릭터를 설명하는 것은 한 개인이 아니다. 그 캐릭터를 만드는 요소들은 주변인이다. 용준에게는 부모님. 부모님과 용준의 관계에서 드디어 용준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용준은 부모님을 통해서 설명이 된다.

부모님의 역할을 한 정혜영, 현봉식 선배님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선배님들은 내가 발버둥 치지 않아도 이미 그 상황 자체를 믿게 만들어주신다. 그럼 나는 그 속에서 춤추면 된다. 개인적으로 계획하는 것보다 상대가 뭘 던질지 모를 때를 좋아한다. 선배님들이랑 하면 믿고 들어가면 된다.

〈청설〉
〈청설〉

여름 역의 노윤서 배우와 가을 역의 김민주 배우와의 합은 어떠했나.

노윤서 배우는 굉장히 총명하고 영민하고 똑똑한 배우이다. 본인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배우들이 연기 외에 해야 하는 요소들이 있는데 그럴 때 리더십이 굉장히 출중하다. 많이 배웠다.

​김민주 배우는 정말 깊다. 우리 영화에서 잔잔하고 큰 파동을 만드는 것이 누구냐 하면 특정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서 일어나는 민주 배우의 레이어라고 생각한다. 그런 감정의 깊이가 남다르다. 같이 연기를 하면 집중도가 굉장하다고 느낀다. 무엇을 던지든 간에 유연하게 받아친다.

 

용준은 대학을 졸업하고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스물여섯의 취준생이다. 홍경에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을 듯한데...

나는 지금도 고민을 많이 한다. ‘이게 마지막이면 어쩌지’, ‘다음에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경험이 많이 없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웃기기도 하지만 이런 고민들을 오랫동안 해왔다. 나는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나’하는 의심을 했다. 우려나 걱정은 늘 따라다녔다.

〈청설〉
〈청설〉

그럼 20대의 끝자락에 있는 홍경은 고민이 몰려올 때 어떻게 대응하는가.

주변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특히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시대에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용준이는 자신의 아픔을 엄마에게 위로받을 수 있을 정도로 용감하다. 나의 삶을 이루는 것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내 삶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가족과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속마음을 숨기는 것보다 마음을 더 열려고 노력한다. “너 요즘 어떻게 사니” 같은 이야기들을 거리낌 없이 나누려고 한다.

유명한 영화 마니아이다. 노윤서 배우는 ‘영화과 교수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본인의 영화 철학이 있다면 무엇인가.

영화가 줄 수 있는 것이 진짜 여러 개인 듯하다. 내가 보지 못했던 세계를 경험시켜주거나 시각적, 청각적으로 자극해 주거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나에게 굉장히 시네마틱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영화는 찰나의 순간을 현미경으로 보듯 쫙 펼쳐 보이는 것이다. 찰나여서 놓칠 수밖에 없는 것을 영화가 가지고 와서, 8초짜리면 80분으로 만들어 보여주는 것이다. <청설>에서 영준이 여름에게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그러하다.

 

그렇다면 지금 생각나는 오늘의 영화 3개를 추천해달라.

임상수 감독님 영화를 좋아한다. <바람난 가족>(2003), <하녀>(2010). 마지막 하나는 뭐가 좋을까. 마이크 밀스의 <컴온 컴온>(2022). 최근에 다시 봤는데 좋았다.

 

<청설>과 같은 청춘 멜로물이 극장에서 개봉을 한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듯하다. 현재 극장에 포진하고 있는 영화의 대부분은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거나 장르 색이 짙은 경우가 많다. 그 사이에서 관객들이 <청설>을 선택해야 할 지점은 무엇인가. 홍경이 생각하는 <청설>의 매력은?

요즘 ‘도파민’이라는 단어를 많이 거론한다. 보통 집중하지 않아도 눈길을 사로잡는, 자극을 극대화하는 콘텐츠에 매료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것들이 이렇게 해결되는 것 같지는 않다. 바라봐야만 하는 것이 있고 들여다봐야지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청설>에는 그런 것이 있다.

<청설> 속 인물들의 시기는 누구나 경험한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거나 첫사랑을 앓는다거나, 말랑말랑한 감정들과 속이 뒤집히는 감정들까지 모두 응축되어서 담겨있는 영화이다. 그리고 이맘때 사랑이 고파지고 그런 시기이지 않나. (웃음)

〈청설〉
〈청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는가.

30대에는 금기는 넘나드는 지독한 사랑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그런 글을 쓰시고 있는 분이 있다면 연락 부탁드린다. (웃음)

 

홍경은 ‘첫사랑이 있느냐’, ‘누구였느냐’라는 짓궂은 장난에 “엄마한테 얘기할 것이다”며 능청스러운 면모를 보이기도 ‘<청설>로 첫사랑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겠다’는 칭찬에는 “불가능하다. 그건 잘생긴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며 겸연쩍은 미소를 띠기도 했다. 홍경과의 짧은 대화에서 홍경은 미세하지만 끊임없이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궁금했다. 홍경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