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객들을 다시 로마의 콜로세움으로 소환하는 영화가 개봉한다. <글래디에이터 Ⅱ>(이하 편의상 2로 표기한다)는 리들리 스콧의 2000년 개봉작 <글래디에이터>의 속편이자 그가 다시 메가폰을 잡은 정식 후일담이다. 가족을 잃은 로마군 장군 막시무스(러셀 크로우)의 복수극을 다룬 1편처럼 <글래디에이터 2> 또한 가족을 잃은 한 사내의 복수를 중점으로 영화를 이끌어간다. 당시 과감한 전투 및 검투 묘사, 숭고한 인물을 뒤흔드는 위기, 배우들의 열연으로 흥행과 비평 모두 성공한 <글래디에이터>, 그 후대엔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까. 11월 5일 언론배급시사회로 <글래디에이터 2>를 미리 본 후기를 전한다.
확실한 2편

<글래디에이터 2>는 자그마치 24년 만의 속편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1편의 엔딩을 기억하는 관객에겐 정말 속편인가 의심할 수 있지만, 오프닝부터 1편을 요약하는 장면으로 구성해 진정한 속편임을 천명한다. 리들리 스콧의 제작사 '스콧 프리 프로덕션'의 시그니처를 연상시키는 유화풍 애니메이션으로 1편을 요약한다(실제로 회사 로고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오프닝에 이질감이 없다). 예고편이나 기타 사전 공개 정보를 접한 관객이라면 알겠지만 2편의 주인공이 1편의 주인공 막시무스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부터가 정통 속편의 필수 요건을 충족한다.

그렇기에 이번 2편에선 주인공 루시우스(폴 메스칼)뿐만 아니라 막시무스와 관계있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루실라(코니 닐슨)와 그라쿠스(데릭 제이코비)이다. 전작에서 막시무스의 제안대로 역모를 꾀하다 간신히 살아남은 그라쿠스는 비중이 많지 않으나 전작과 이번 작품의 관계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코니 닐슨의 루실라는 전작의 '네가 남자였다면 훌륭한 황제가 됐을 텐데'라는 아버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처럼 다시 한번 로마의 권력과 마주하는 운명에 놓이는데 그 과정에서 관객들에게 다양한 감정을 유발한다. 사실상 <글래디에이터>의 진주인공이라 불러도 될 정도다.

더 화려해진 볼거리, 일장일단
전편 <글래디에이터>는 정말 보는 사람마저 숨이 턱 막히게 하는 액션을 선보였다. 특히 '검투사'라는 콘셉트에 맞춰 오직 신체와 무기 하나에 의존해 매번 사선을 넘나드는 순간으로 프레임을 채웠다. 거기에 필름으로 촬영하고 채도를 낮춘, 자글거리는 필름룩은 비정한 콜로세움의 경기와 이 복수극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담아냈다.


<글래디에이터 2>는 그보다 스케일을 좀 더 키운다. 1편의 게르만족 정벌처럼 오프닝을 로마 해군과 누미디아의 공성전으로 연다. 리들리 스콧 감독 사극 만의 정교한 묘사가 곁들여진 공성전을 잠깐이나마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이어진 액션 장면들은 1편과 비교하면 다소 아쉽다. 분명 스케일은 더 커지고, 이 영화가 아니면 못 볼 장면들로 가득하지만 몸과 몸이 부딪히며 위압감을 발생시키는 1편의 액션과는 다르다. 무기나 신체가 맞닿은 순간을 잘게 쪼개 액션신의 박진감을 더했던 1편과 달리 2편은 전체적으로 그보다 큰 사이즈의 샷이 많아 그만큼의 현장감이 발생하지 않는다. 1편이 보다 촬영이 까다로운 필름 촬영이었음에도 그만한 액션을 건진 걸 생각하면, 2편의 액션 연출이 다소 아쉽다.
단점부터 말했으나 <글래디에이터 2>만 놓고 본다면 근래 어디서도 기대하기 어려운 독창적인 지점으로 액션 시퀀스를 채웠다. 예고편에 나온 코뿔소와 싸우는 장면, 콜로세움을 물로 채우고 재현하는 살라미스 해전 등은 분명 극장의 환경으로 맛볼 수 있는 스펙터클의 극한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2편 역시 신체 훼손에 대한 상한선이 없는 듯 여기저기 피가 흩뿌려지는 '매운맛'으로 채워진 건 1편과 마찬가지. 앞서 말했듯 1편 대비 몸과 몸을 맞대는 장면이 적고 영상의 전체적인 톤 변화로 그 날카로운 느낌이 덜해서 그렇지, 이른바 '칼푹찍'했을 때의 선혈 효과는 요즘 영화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디테일하다.
문제는 캐릭터

다만 이번 속편의 전작 대비 빈약한 지점은 캐릭터의 묘사라고 할 수 있다. 1편은 주인공 막시무스 외에도 코모두스의 존재감도 상당했다. 극중 코모두스의 관점을 자세히 묘사하며 막시무스와의 관계, 아비에게 인정받지 못한 열등감 등을 드러내 캐릭터의 성격을 적확히 보여줬다. 반면 이번 영화는 그 과정이 마땅치 않다. 페드로 파스칼이란 걸출한 배우가 맡은 아카시우스는 루시우스와 딱 한 번 전장에서 마주했을 뿐(물론 그 만남에서 아내를 죽인 철천지원수지만), 그의 캐릭터에 대한 묘사는 쌍둥이 황제의 횡포에 시달리는 로마 시민을 걱정하는 장군 정도에서 그친다. 물론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한 역할일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그 대척점에 서있는 루시우스의 캐릭터도 상대적으로 빈약해지는 것이 문제이다. 이는 이야기 구조 때문이기도 한데, 엄밀히 말하면 이 영화는 전편과 달리 주인공 vs 복수의 대상 구도에서 그치지 않고 1편에서 못다 한 사명을 이어지는 것으로 확장한다. 실제로 영화는 아카시우스 외에도 쌍둥이 황제-마크리누스로 적대적 세력이 확장하며 루시우스를 압박한다. 그럼에도 루시우스와 아카시우스의 관계가 얕다보니 둘의 대결에서 루시우스가 변화하는 것이 다소 기능적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 후 루시우스와 대적하는 캐릭터들은 어떤가 싶은데, 쌍둥이 황제는 비주얼을 제외하면 우리가 상상하는 폭군 그 이상의 포스를 보여주지 못하고 마크리누스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대를 쥐락펴락하는 포스가 있지만 전편 코모두스와 달리 처음부터 전면에 드러나는 악역이 아닌 데다 두 사람의 관계가 일단락되는 부분도 다소 밋밋하다. 전편 <글래디에이터>는 막시무스의 복수극임과 동시에 자신이 평생 모신 선왕의 뜻을 이루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과정은 흉악하지만 한편으론 그 누구보다 유약한 인간 코모두스라는 캐릭터의 입체성으로 더욱 각별해진다. 그런 점에서 2편은 루시우스의 서사가 굉장히 풍부함에도 호각세를 보이는 인물이 없어 도리어 1편과 2편 모두 수모를 감당해야만 하는 루실라의 역할이 더욱 부각된다. 아마도 이번 영화에 볼거리나 액션의 퀄리티와 별개로 1편처럼, 정말 고전적인 영웅담이나 설화를 듣는 것 같은 가슴 벅참이 없는 건 이런 이유일 것이다.

24년 만에 돌아온 영화는 목표 달성에 성공한다. 막시무스로부터 이어진, 비인간적인 권력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서사를 온전히 이룩한다. 그러나 1편의 연장선에서의 성공과 별개로 2편 만의 성과가 있었는지 돌이켜보면 아쉽다는 생각이 앞선다. 캐릭터도, 서사도, 액션도 모두 1편에 빚진 것이 상당하다는 느낌이다. 그나마 리들리 스콧은 이번 작품만큼은 정말 '디렉터스컷'으로 개봉했다고 밝혔는데, 그가 꿈꾼 비전을 본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해야 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