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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한국영화 기대작③] 〈1승〉 배구계도 발 벗고 도와준 한국영화 최초의 배구영화

성찬얼기자
〈1승〉
〈1승〉


사면초가. 여자배구팀 핑크 스톰은 이제 기대하는 사람도, 도망칠 곳도 없다. 돈 많은 거 말고는 뭐 하나 결과물 남긴 적 없는 재벌집 아들이 구단을 사들이더니 선수 출신이긴 하나 제대로 된 커리어 하나 없는 감독이 낙하산으로 앉았다. 거기에 팀 에이스는 다른 구단으로 이적했다. 안그래도 약팀 소리 듣던 핑크 스톰은 해당 시즌 꼴찌 따논 당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와중 구단주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스포츠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리 팀이 1승이라도 거두면, 시즌권 구매자 중 100명에게 200만 원씩 뿌리겠다'는 공약으로.

스포츠영화에서 언더독(승률이 낮게 점쳐지는 약팀) 서사는 흔하다. 하지만 <1승>은 흔하지 않다. 일단 한국영화 최초로 배구, 그것도 여자배구를 그리고 있단 점. 그리고 언더독 서사치고는 의기투합하는 계기가 무척 특이하단 점. 일반적으로 '팀을 떠난 선수에게 복수'라던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팬들에게 보답'이라던가 같은 흔한 이유가 아니다. 패배주의에 젖어있던 감독 및 선수들, 그들이 1승을 꿈꾸기까지는 각자의 이유가 있다. <1승>의 의기투합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보여질지 궁금해지는 건 바로 그 지점이다. 12월 4일 개봉을 앞둔 <1승>을 언론시사회와 기자간담회로 미리 만난 후기를 전한다.


 

스포츠영화를 만들고 싶은 감독과 배구광 배우의 만남

먼저 <1승>은 신연식 감독과 배우 송강호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두 사람은 이번 작품까지 벌써 세 번째 만남이다. 첫 만남은 <거미집>(각본-주연), 두 번째 만남은 드라마 <삼식이 삼촌>(연출·각본-주연), 그리고 <1승>. 사실 촬영은 이 <1승>이 먼저다. "그동안 해왔던 작품과 캐릭터가 진지하고 무겁고 어딘가에 짓눌려있는 것들의 연속"임을 느낀 송강호는 신연식 감독을 만나 <1승> 프로젝트 얘기를 듣고 마음이 동했다. 평소 배구를 챙겨보는 팬이기도 했지만, 신연식 감독이 시나리오를 쓴 영화 <동주>를 보고 '이런 작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1승>을 시작으로 연이은 협업을 하게 됐다. 그렇다, 세 작품 중 가장 늦게 공개되는 <1승>이 사실은 이 모든 연대기의 선두에 서있다.
 

〈1승〉 신연식 감독(왼)과 배우 송강호(사진출처=(주)키다리스튜디오, (주)아티스트유나이티드)
〈1승〉 신연식 감독(왼)과 배우 송강호(사진출처=(주)키다리스튜디오, (주)아티스트유나이티드)


신연식 감독은 배구를 "실내종목 중 살 부대끼지 않는" 스포츠라는 것과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면서 살을 맞댄 듯한 경쟁과 네트 사이의 긴장감이 영화의 오버 더 숄더 같"아 보여 배구라는 스포츠와 <1승>의 아이디어를 결합했다. 거기에 상대적으로 랠리가 긴 여자배구에 주목해 영화적 시도까지 곁들였다. <1승>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던 송강호는 "관객들에게 시원시원하고 밝으면서도 경쾌한 마음을 줄 수 있는 작품"이란 확신이 들어 김우진 역에 자원했고, 평소 배구 경기를 즐겨 관람하는 팬의 시선에서 배구팀 감독의 디테일을 작품에 녹였다.

앞서 핑크 스톰이 의기투합하는 과정이 '흔한 이유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는데, 그건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프로의 세계를 그리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1승을 간절히 원하는 김우진 감독도, 핑크 스톰의 선수들도 1승을 하지 못할 뿐 당연히 승리를 꿈꾸고 있다. 엄밀히 따져 그들은 모두 프로의 세계를 밟고 있는 이들이고, 그건 그들이 적어도 다른 팀들과 '비벼볼' 수 있는 가능성은 이미 깔려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이들에게 엄청난 동기를 부여하는 극적인 순간을 주는 것이 아니라 '팀이기에' 서로를 조금씩 당겨주고 밀어줄 수 있는 순간들을 꾸준히 제시한다. 그 과정에서 어느 순간 이들은 팀으로 기능하게 되고, '1승'이란 최소한의 여건만 재차 강조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이끈다.

(왼쪽부터)〈1승〉 박정민, 장윤주, 송강호 (사진출처=(주)키다리스튜디오, (주)아티스트유나이티드)
(왼쪽부터)〈1승〉 박정민, 장윤주, 송강호 (사진출처=(주)키다리스튜디오, (주)아티스트유나이티드)


이 지점에서 <1승>의 장단점이 확연해진다. 영화는 이들이 이미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갈망에 불을 지피면 언제든 움직일 수 있는 프로로 그린다. 그러다보니 관객 입장에선 도리어 그 동기들이 빈약하게 느껴질 수 있다. 특히 선수들을 이끄는 김우진의 개인적인 서사가 영화의 가장 강력한 동기로 작용하면서부턴, 영화는 '팀 스포츠'를 그리는데 반대로 팀을 구성하는 개개인은 도리어 희박해지기 때문. 물론 그 지점을 화려한 연출과 팀웍으로 채운 랠리 장면으로 대신하며 스포츠영화의 쾌감을 선사하긴 하나, 그럼에도 흔히 팀 스포츠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개성적인 캐릭터가 쉽게 소비되는 것처럼 보여 조금 아쉽다.

어떤 면에선 이렇게 각 캐릭터를 어느 정도만 제시하고 파고들 지점이 있다는 것이 <1승>의 팬이 될 관객에겐 더욱 즐거울 수 있다. 흔히 말하는 '덕질할 구석'이 남겨져 있기 때문. 그러나 일반적인 관객이라면 서사에는 동의할지라도, 어느 순간 팀과 김우진만 보이는 영화가 다소 야속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인간의 가장 다른 점 생존욕구, 스포츠 만나면 숭고해져

신연식 감독

〈1승〉김우진 역 송강호
〈1승〉김우진 역 송강호


처음으로 스포츠영화에 도전한 신연식 감독은 스포츠영화를 하고 싶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인간과 다른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인정욕구"라며 그것이 인간의 가장 추악한 면과 숭고한 면을 모두 유발한다고 말했다. 그의 생각에 스포츠와 인정욕구가 만났을 때 "(인간의) 숭고한 면이 많이 나온"다고 생각한다고. 다만 그는 스포츠영화를 고민할 때 일반적인 패넌트 레이스(리그 형식)과 토너먼트, 두 가지 모두 벗어난 방식을 고민했고 그 결과 <록키>처럼 이벤트 매치를 그리는 걸 떠올렸다. 그것을 배구와 결합시키기가 어려웠는데 '1승을 하면 현상금'이란 아이디어를 더하면서 지금의 <1승>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다고 밝혔다.

 

박정민, 자신만의 표현으로 관객 사로잡는 괴력의 배우

장윤주, 전형적인 틀을 자신의 개성과 매력으로 넘나드는 배우

송강호

구단주 강정원 역 박정민
구단주 강정원 역 박정민
핑크 스톰의 주장 방수지 역 장윤주
핑크 스톰의 주장 방수지 역 장윤주


송강호는 이번 영화에서 김우진을 연기하면서 구단주 강정원 역의 박정민, 핑크 스톰의 주장 방수지 역의 장윤주와 기막힌 케미스트리를 발했다. 두 배우만의 장점을 묻는 질문에 송강호는 "두 사람 다 오래 전부터 팬이고 좋아하는 배우"라고 운을 떼고 "박정민은 어떤 영화, 어떤 역을 해도 자신만의 표현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괴력의 배우"라고 말을 이었다. 또 장윤주에 대해선 "배우들의 전형적인 틀을 자신만의 개성과 매력으로 수시로 넘나다는 것이 매력적이고 강점"이라며 "두 사람 다 이상한 배우들이다. 좋은 의미다"라고 덧붙였다. 더불어 신연식 감독은 방수지 역을 처음부터 장윤주로 염두에 두고 썼다고 밝혔다, 그는 "장윤주를 사석에서 안 지 좀 됐는데, 모델 후배분들에게 독특한 리더십을 보일 때, 그게 핑크 스톰을 살릴 리더십이라고 생각했다. 김우진 감독이 장점을 어떻게 쓰냐로 팀을 이끌 듯, 핑크 스톰을 이끌 중요한 상징적 역할로 방수지를 떠올렸고 장윤주 배우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캐스팅 비화를 전했다.

 

누가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고 하면 송강호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박정민

〈1승〉
〈1승〉


강정원 역의 박정민에겐 <1승>은 기회였다. 그는 시나리오도 무척 좋았지만 무엇보다 송강호와 같은 작품을 한다는 것에 출연을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고 하면 롤모델이란 표현에 거부감이 있었고, '네가 무슨' 이런 반응을 받을까 말은 안했지만, 처음 그 질문을 받았을 때 송강호 선배님처럼 되고 싶었다"며 "(그 질문을 받은 지) 10년이 지나 현장에서 만나니 모든 게 신기했고 모든 순간이 배움이었다"고 진심어린 존경심을 표현했다. 송강호는 "예전에도 이런 얘기를 했어서 기사로 읽은 적이 있다. 그러니 거짓말은 아닐 거다"라는 너스레로 화답했다. 또 장윤주는 수첩에 송강호에게 배운 것을 적었다는 박정민의 말에 "수첩 적는 걸 본 적 없다"고 증언했지만, 박정민이 "선배님 앞에서 적을 수는 없지 않냐"라고 받아치며 유쾌한 티키타카를 보여줬다.

 

김연경 선수, 대사도 하고 싶어해… 미리 알지 못해 아쉬웠다.

신연식 감독

〈1승〉에 깜짝출연한 김연경 선수
〈1승〉에 깜짝출연한 김연경 선수


신연식 감독은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배구계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영화엔 현역 배구선수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영화 말미에 김연경 선수가 깜짝출연으로 관객들을 놀라게 했는데, 신연식 감독은 "(김연경 선수는) '내가 김연경인데 안 나올 수 없지'라고 생각하셨다. 당연하단 듯이 출연해주셨다"며 감사를 표했다. 더불어 "(촬영 시기가) 시즌 중이라서 분량을 조절해 부탁드렸는데, 나중에 현장에선 대사도 하고 싶다고 하셨다. 미처 대사를 준비하지 못해서 저와 송강호 선배님이 아쉬워 했다"며 비하인드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