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일(현지시각) 미국 LA에서 2025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열렸다. 이번이 82회째인 골든글로브는 영화와 TV 작품 모두를 아우르는 시상식이다. 국내에서는 이번 골든글로브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2가 TV 작품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황동혁 감독과 배우 이정재가 미국으로 출국해 제8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참석한 가운데, 아쉽게도 작품상 수상은 불발됐다. 그 대신, 이번 골든글로브에서는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가 4관왕, <브루탈리스트>가 3관왕, 드라마 <쇼군>이 4관왕을 달성하며 이목을 차지했다.
골든글로브는 한 해의 가장 이른 시기에 수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총집결하는 자리인 만큼, 수많은 에피소드와 밈을 낳는 시상식이기도 하다. 2025 골든글로브 시상식 속 최고의 순간들을 모아봤다.
“이번 주는 내 차례잖아. 네가 왜 있는 거야?”
데미 무어&마가렛 퀄리

영화 <서브스턴스>에서 데미 무어와 마가렛 퀄리는 2인 1역을 연기한다. 영화 속에서 그들은 분명 하나지만, 한 주씩 번갈아가며 세상에 등장하는 것이 그들의 규칙이다. TV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 시상자로 나선 데미 무어와 마가렛 퀄리는 그들의 영화 속 세계관을 따라 짧은 만담을 선보였다. “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이번 주는 내 차례잖아. 밸런스를 지켜야지.” “알아. 근데 내가 후보가 됐어” “나도야” “그래, 우리는 하나니까, 같이 해야지”라며 <서브스턴스> ‘과몰입러’들에게 선물과도 같은 순간을 선사했다.
“30년 전, 나는 ‘팝콘 배우’라고 불렸다”
데미 무어

데미 무어는 <서브스턴스>로 영화 -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45년이 넘게 연기를 했는데, 연기로 상을 받은 건 처음이다”라며 떨떠름하게 트로피를 든 데미 무어의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은 그 자체로 <서브스턴스>의 연장선처럼 보이기도 했다. 데미 무어는 30년 전, 한 프로듀서가 자신을 두곤 ‘팝콘 배우’(‘팝콘 무비’에 걸맞은, 가십으로 소비되는 배우)라고 말했다며, “시상식에서의 상은 나에게 허락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아무리 영화가 성공을 거두고, 돈을 벌지언정, 인정받지 못한다는 의미로 들렸다. 그래서 나는 점차 부식되어 갔고, 어느 순간 나는 끝이라는 걸 직감했다. 그러다 <서브스턴스>의 각본이 찾아왔다. 마치 우주가 ‘당신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듯했다”라고 당시의 경험을 회상했다. <서브스턴스>는 데미 무어 내면의 자기혐오를 떨쳐내는 과정이기도 했는데, 그는 “나 자신을 믿지 못할 때, 나를 믿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라며 코랄리 파르쟈 감독, 배우 마가렛 퀄리 등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데미 무어는 여우주연상을 두곤 “이 상은 나의 완전함을 뜻하는 표식과도 같다”라며, “자신이 충분히 똑똑하지 않다고, 혹은 충분히 예쁘거나 마르지 않다고, 혹은 충분히 성공적이지 못하다고, 그냥 충분하지 못하다고 여길 때가 있다. 그러나 당신은 스스로에게 잣대를 들이밀지 않을 때 비로소 자신의 가치를 알게 된다”라는 감동적인 메시지로 수상소감을 마무리했다.
“비관주의가 지배하는 시대, 그럼에도, 급진적인 낙관으로 예술을 할 수 있다”
존 추

2025 골든글로브의 흥행상(Cinematic And Box Office Achievement)은 영화 <위키드>가 차지했다. <위키드>의 감독 존 추는 “비관주의와 냉소주의가 지구를 지배하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예술을 할 수 있다. 예술은 낙관주의의 가장 급진적인 행동이며, 우리에게 용기와 기쁨이 된다”라며 순수한 재미로 가득 찬 영화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더불어 존 추 감독은 “우리는 세상이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수 있지만, 모두의 내면에는 ‘엘파바’가 조금씩은 있다. 포기하지 않고 일어서서 노란 벽돌길을 벗어날 수 있는 용기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다”라며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전했다.
수상 소감을 말 그대로 ‘찢어버린’ 케시 베이츠

TV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은 <쇼군>의 안나 사웨이가 수상했다. 안나 사웨이가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호명되자 또 다른 여우주연상 후보인 <매트록>의 케시 베이츠는 그가 준비해 온 수상소감이 적힌 종이를 장난스레 찢었는데, 안나 사웨이는 수상소감을 통해 “저에게 투표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저 같으면 바로 케시 베이츠에게 투표할 텐데”라며 좌중에 웃음을 안겼다.
“이사벨라 로셀리니의 집에서 점심을 먹곤, ‘성공했다’라고 생각했다”
조 샐다나

2025 골든글로브 수상자 중 가장 감정에 북받친 수상소감을 전한 인물이 있다면, 바로 조 샐다나가 아닐까. 조 샐다나는 <에밀리아 페레즈>로 영화 부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조 샐다나는 무대에 오르자마자 “오 마이 갓”이라는 감격의 표현과 함께 격한 눈물을 흘렸다. <아바타> 시리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 등 주로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활약해온 조 샐다나는 <에밀리아 페레즈>로 생애 처음 골든글로브 후보로 지명됐고, 수상까지 해냈다. 조 샐다나는 수상소감에서 함께 자리한 여우조연상 후보들을 모두 언급하며 그들에게 감사와 축복을 전했는데, 특히나 “이사벨라 로셀리니의 집에서 점심을 먹은 적이 있는데, 그때 이미 ‘성공했다’라고 생각했다”라며 ‘성덕’의 면모를 보여 좌중에 웃음을 안겼다. <에밀리아 페레즈>는 총 10개 부문의 후보로 올라 2025 골든글로브에서 최다 노미네이트됐으며,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 외국어영화상, 여우조연상(조 샐다나), 주제가상(El Mal)을 수상하는 등 총 4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최종 편집권은 당연히 감독에게 돌아가야”
브래디 코베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드라마 영화 부문 작품상, 드라마 영화 부문 남우주연상(애드리언 브로디), 드라마 영화 부문 감독상(브래디 코베) 등을 수상하며 3관왕을 차지했다. 따라서 <브루탈리스트>의 감독 브래디 코베는 두 번 무대에 올랐는데, 두 번째로 무대에 올라서는 “수상 소감을 한 개만 준비했다”라며 즉석에서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그는 영화 스튜디오가 영화 제작자에게 더욱 많은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며, “파이널 컷(최종 상영본)의 권한은 감독에게 돌아가야 한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발언이지만, 논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논란의 여지가 전혀 없는 말이어야만 한다”라고 강력하게 호소했다. “나는 <브루탈리스트>가 배급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무도 보지 않을 거라고,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수많은 영화 제작자들을 격려하고 싶다. 영화 제작자 없이는 영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동료 감독들을 격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