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친영화' <서브스턴스>(2024)가 개봉 33일차인 지난 12일 20만 관객 고지를 돌파했다. 13일에는 관객 20만 7121명을 달성해 <존 오브 인터레스트>(2023)의 누적 관객수를 넘어서며 2024년 개봉한 독립예술영화 외화 1위에 등극했다. 하지만 아직 놀라긴 이르다. 개봉 5주차임에도 불구하고 신작들을 제치고 독립예술영화 1위를 탈환한 영화는 뒷심을 발휘하며 장기 흥행을 예고하고 있다.
관객과 평단의 호평, 그리고 흥행까지 거머쥔 <서브스턴스>는 그 어떤 영화보다 창작의 과정이 궁금했던 영화이기도 하다. 배급사 MUBI가 시기적절하게 영화의 비하인드 영상을 공개했다. 오늘은 <서브스턴스> 탄생에 얽힌 비하인드를 따라가며 코랄리 파르쟈 감독의 광기 어린 창작의 여정을 정리했다.
50대 여성들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코렐리 파르쟈 감독은 첫 장편 <리벤지>(2017)를 끝내고 차기작을 준비 중이었다. 두 번째 영화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테마는 자연스레 떠올랐다. 평생 감독을 옭아매온 그 이야기. 끊임없이 판단되고, 분석되며, 성적 대상화되어 자신들의 몸을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맞춰야 하는 상황에 놓인 여성에 관한 질문들. 마침 1976년생인 감독은 40대를 넘어 50대를 향해가고 있었다. 50대에 여성의 삶은 끝나는 듯 보였다. 영화, 광고, TV에서 그들은 자취를 감췄다. 50대 여성은 어디로 사라졌는가?라는 질문이 '여성의 몸'이라는 주제와 만나자 여성의 몸에 대해 사회가 얼마나 강력하면서 멍청한 지배를 구축했는지에 대한 비전이 그려졌다. 그렇게 <서브스턴스>가 시작됐다.
강력한 확신을 가지고 시작한 영화 작업

코랄리 파르쟈 감독은 영화에 대한 강력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싶은지 정확히 알고 있던 감독의 스토리보드는 완벽할 수밖에 없었다. 각각의 샷을 포함한 모든 세부 사항은 사전에 기획되었고 스토리보드와 구현된 샷은 완벽히 일치했다. <프라미싱 영 우먼>을 촬영하기도 한 촬영감독 벤저민 크라춘(Benjamin Kračun)은 <서브스턴스>를 촬영하며 '이 영화 미쳤다'라 말하기도 했다고. 코랄리 파르쟈 감독은 자신의 의도를 100% 구현한 벤저민 크라춘 촬영감독에게 영화 완성의 공을 돌리기도 했다.
실물 제작 특수분장만이 줄 수 있는 현실감

감독은 데미 무어와 마거릿 퀄리가 직접 입고 연기할 수 있는 라텍스 슈트를 만들고, 실리콘 특수분장을 배우의 얼굴에 붙여 배우들이 충실히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왔다. 특히 코렐리 파르쟈 감독이 영화를 찍으며 주지한 대원칙은 ‘절대 VFX는 없다’였다고.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엘리자베스(데미 무어)의 등에서 수(마가렛 퀄리)가 탄생하는 장면도 CG가 없는 실물 제작 특수분장만으로 촬영됐다. 등이 꿀렁이며 갈라지는 그로테스크한 장면은 영화 세트 아래에서 공기펌프를 열심히 눌러댄 스태프들의 노동으로 탄생했다. 피대포를 쏘며 처절한 피날레를 장식하는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 장면 또한 피를 제작해 소방호스에 넣고 감독과 스태프가 직접 분사해 완성했다. VFX로는 구현할 수 없는 강렬한 혐오감이 실물 제작 특수분장에만 존재한다고 믿은 감독의 광기로 5개의 머리, 두벌의 괴물 슈트와 현장에서 ‘골룸’이라 불린 엘리자베스의 머리 몰드가 탄생했고 그 선택은 옳았다. CG가 아닌 카메라로 완성된 장면들은 영화에 날것의 에너지를 부여해 관객에게 독특한 감각을 선사한다.
데미 무어와의 협업, 어쩌면 운명적 만남!

데미 무어와의 협업 비하인드도 빼놓을 수 없다. 감독은 영화의 스토리를 이해시키는 것은 5분이면 충분했다고 회상한다. 여성이라면 몸과 관련해 각자 내면화된 감옥에 살아온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새로운 영화의 방식을 이해시키는 것이었다. 할리우드 영화가 아닌 인디 영화에 가까운 <서브스턴스>는 데미 무어에게 새로운 장르의 영화였고, 무엇보다 제작비도 한정적이었다. 처음 감독은 데미 무어가 출연 승낙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그를 캐스팅 보드에도 올리지 않았다고. 하지만 오히려 데미 무어가 적극적이었다. 코랄리 파르쟈 감독은 데미무어를 “이미 모든 두려움과 공포증, 모든 폭력에 맞선 삶의 단계에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정말이지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을 발견했다”라고 상찬하며 캐스팅의 변을 밝혔고, 데미 무어 역시 “이 역할이 날 찾아왔다"라며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한땀 한땀 스태프들의 정성이 들어간 장면들

주연인 데미 무어와 마가렛 퀄리가 등장하는 씬은 촬영 초반 100일 동안 완성했고, 배우가 필요 없는 초근접샷과 실물처럼 제작된 가짜 장기, 팔, 다리 등을 비추는 샷은 촬영 후반 한꺼번에 작업했다. 비하인드 영상은 미친 교수의 작은 과학실험실 같은 곳에서 실감 나는 샷을 위해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스태프들을 포착한다. 촬영 비용 절감을 위해 바디 모형을 제작할 때는 화면에 잡히는 허벅지까지만 만들었다. 신고 끝에 피규어로 구현해낸 오토바이와 카메라의 충돌 장면은 실재보다 더 리얼하다. 머리만 남은 크리처 '엘리자 수'가 산화하는 장면도 CG가 아니다. 뜨거운 바람에 녹는 물질로 만들어진 인형에 스태프들이 뜨거운 바람을 쏘아 '진짜' 녹여버렸다.
영화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찍지 않았다.

쇼비즈니스의 중심지인 로스엔젤레스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실제 촬영은 프랑스에서 이뤄졌다. 엘리자베스의 아파트도 연핑크톤 할리우드 스트리트도 모두 프랑스에서 촬영한 것이라고. 감독은 모국에서 영화를 찍어서 더 자유롭게 창작을 할 수 있었다 밝히며 “프랑스는 영화를 위한 나라예요. 영화와 관련된 일이라면 어떤 스태프이든 일을 넘어서 예술을 만들어낼 정도로 진심이니까요. 그런 이들에게 둘러싸여 일하는 것은 큰 축복이죠”라 말했다.
자신의 팔에 직접 주사기를 꽂는 감독의 광기!


비하인드 영상은 광기와 완벽주의는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감독의 다양한 모습을 비춘다. 소품 병이 잘 깨지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머리에 병을 내리꽂는 감독은 차라리 귀엽다. 주사기 끝에 피가 맺히는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자신의 팔뚝을 진짜 주사기에 양보하는 장면에 이르면 집착인지 장인정신인지 모를 감독의 열정에 존경심마저 인다. 비하인드 영상의 마지막은 감독이 영화를 통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여성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존재할 권리가 있다'. 이 당연한 말을 여전히 알아듣지 못하는 세상에 감독은 신체를 절단하고 비틀고 종국에는 폭파시킴으로 돌직구를 날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