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스턴스>가 연일 화제다. 영화 <서브스턴스>도, 영화 속 그 이름을 쓰는 ‘약’ 둘 다. 12월 11일 개봉한 <서브스턴스>는 한때 잘나가는 배우였으나 이제는 본인이 진행하던 TV 에어로빅 쇼에서도 하차 당한 엘리자베스(데미 무어)가 더 젊고 나은 나를 만들어준다는 약물 ‘서브스턴스’를 접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사실상 현실에선 인간을 중독시켜 나락으로 밀어넣는 약물이 영화에선 가끔 초현실적인 능력이라도 쥐여주며 약물의 위험성에 따른 자아 붕괴를 형상화하기도 한다. <서브스턴스>처럼 파격적인 능력을 주되 주인공의 인생을 뒤흔든 영화 속 약물들을 정리한다.
<서브스턴스> ‘서브스턴스’


앞서 말했으니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서브스턴스는 일단 복용이 아니고 주사하는 약물이다. 특히 꾸준히 척추(!)에 주사해 척수를 채취하는 비주얼이 여타 영화에선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파격적인 광경을 보여준다. 주사하는 순간 (광고처럼) 더 젊고 더 나은 내가 사용자의 육체에서 분열되듯 탄생하며, 그것이 이 서브스턴스 사용자의 딜레마로 직결된다. 나와 나'는 ‘하나’이지만 서로 욕망하는 것이 다르기에 각자에게 주어진 ‘7일’이란 기한을 지키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결국 이 갈등은 세상의 시선에 나를 맞추려는 과정에서 폭발하며 참극을 불러온다. 사실 더 젊고 나은 나를 만들어준다는 조건은 혹하는데, 영화 속 약 복용 과정이 워낙 날것이라서 관객 중엔 이 약을 탐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마…도?

<리미트리스> ‘NZT-48’

인터넷 발달로 검색만 해도 뇌과학의 요점을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인간은 두뇌를 10%밖에 안 쓴다더라’ 하는 과학적 괴담은 (낭설임이 증명됐지만) 호기심을 자극한다. <리미트리스>는 바로 그 지점을 SF적 상상력으로 극대화한다. 극중 에디가 복용하게 되는 신약 NZT-48은 두뇌활동을 최대한으로 끌어내 인간의 잠재력을 끌어올린다. 기억력과 사고력이 좋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두뇌회전이 빠르니 찰나의 판단력도 좋아져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런 우수한 ‘약’들이 늘 그렇듯 부작용이 뒤따르는데, 효능이 다한 후 복용자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이 신약의 효과를 노리는 세력의 위협까지 더해진다. 약은 점점 떨어지는데 위기는 점점 다가오는 상황. 평범했던 에디 모라는 어떻게 이 위기를 타개할 것인가. <리미트리스>는 이 상상력을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로 구성해 이후 드라마로도 재탄생했다.

<저지 드레드> '슬로모'


바쁜 일상이 연이어지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늘어지게 자고 싶다고. 만화 「드래곤볼」에 나오는 정신과 시간의 방은, 현실의 하루를 1년처럼 보낼 수 있게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이다. 영화 <저지 드레드>(2012)에도 이처럼 시간감각을 느리게 하는 가상의 약물이 나온다. 이름도 슬로모(SLO-MO, 슬로우모션의 약자와 같다)인 이 약은 입으로 흡입하면 복용자의 시간 감각을 왜곡시켜 꼭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특히 극중 묘사하는 복용자의 시선에 따르면 이 시간 감각의 변화뿐만 아니라 시각까지 예민해져 평소보다 세상을 더 화려하게 보게 되니, 마약 특유의 고양감에 무시무시한 중독성을 더한다. 과장된 색감이 다소 유치해보이긴 하지만, ‘성인용 B급 SF‘를 표방한 이 영화의 특성을 부각시켜준다. 그럴싸해보이지만 그렇다고 사용자의 신체 능력까지 좋아지는 건 아니란 점이, 고양감을 주지만 실제로는 복용자의 인생을 무너뜨리는 마약의 위험성을 보는 것 같다.
<존은 끝에 가서 죽는다> ‘간장’

이름이나 모양이나 심상치 않은 약들 사이에서 이 약은 약인지도 못 알아볼 가능성이 크다. 이름부터가 ‘간장’인 이 약은 이름처럼 간장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약효는 앞서 설명한 약들과 ‘차원’이 다르다. 간장을 맞고 나면 급격히 두뇌 회전이 빨라져 감각이 날카로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시간을 다소 앞서가는 느낌마저 받는다. 이렇게만 들으면 혹할 수 있지만, 영화를 보면 절대 맞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 약이 사실은 액체 모양을 한 ‘생물’이라는 것이 영화에서 주는 힌트다. 주인공 데이빗은 절친한 친구 존이 다급하게 건 전화를 받고 그를 만나러 갔다가, 온갖 이상한 일에 휘말린다. 존은 보이지도 않은 괴물을 보며 살려달라 하고, 데이빗에게 스무 통의 전화를 걸었다며 앞으로 몇 년 간 자신에게 전화가 올 거라고 말하는 등 이상행동을 보이는데 데이빗 본인도 사고로 약을 주사 맞으며 지구를 구해야 하는 운명에 빠진다. 영화는 B급영화의 대명사 <환타즘> 시리즈의 돈 코스카렐리가 만든 작품답게 뭐랄까, <패컬티>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와 <갤럭시 퀘스트>를 한데 섞은 뒤 가장 ‘쌈마이’로 만든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폴 지아마티, 할리우드 대표 크리처 배우 더그 존스가 출연한다는 점이 눈여겨볼 만한 포인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