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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타셈 싱, 〈더 폴: 디렉터스 컷〉에 대해 더 알고 싶은 것들

주성철편집장
〈더 폴〉
〈더 폴〉

 

타셈 싱의 데뷔작 <더 셀>(2000)이 개봉했을 때,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 수집이 힘들었다. 인터넷 검색이 지금처럼 수월하지 않던, 아니 그게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꽤 있던, 호랑이가 담배피며 지나가는 아해들 삥 듣던 시절, 이른바 화제작이 개봉했다 해도 해외 매체에서 다뤄지거나 해외 영화제에서 인터뷰 기사를 남기지 않으면, 딱히 기삿거리가 될만한 정보가 존재하지 않았다. 홍보사에서 제공하는 보도자료에 기댈 수밖에 없는 노릇인데, <더 셀>의 타셈 싱에 관해서는 ‘뮤직비디오 출신 감독’이라는 게 가장 인상적인 수식어였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 <세븐>(1995)과 <파이트 클럽>(1999)의 데이빗 핀처, <존 말코비치 되기>(1999)의 스파이크 존즈, <섹시 비스트>(2000)의 조나단 글래이저, <휴먼 네이처>(2001)의 미셸 공드리와 비교하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다음 작품 <더 폴>(The Fall)이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2006)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국내 영화제들이 자리를 잡고, 직접 만나기 힘들었던 해외 영화인들이 속속 내한할 때도 그의 이름을 찾긴 힘들었다. 어쩌면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이 개봉한 이후에도 그의 여러 영화들이 소개됐으나 <신들의 전쟁>(2011)부터 <백설공주>(2012), <셀프/리스>(2015)를 만들며 냉정하게 영화감독으로서는 내리막길을 걸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어떤 식으로든 한국을 찾지 않는 그를 보면서, 지독히 은둔자적인 스타일의 예술가구나,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올해 방한해 무려 20번에 가까운 GV를 진행하는 그를 보면서 완전히 잘못된 추측을 했다 싶었다. 행사장에서 그가 보여준 ‘과도한’ 열정에 모두가 탄복했다.

 

〈더 폴〉
올해 방한한 타셈 싱 감독 (사진=오드시네마)

 

타셈 싱의 작품은 황홀한 이미지로 관객을 매혹한다. 뮤직비디오 감독으로서 처음 두각을 드러낸 R.E.M.의 뮤직비디오 <Losing My Religion>은 물론이고 이후 코카콜라, 나이키, 리바이스 CF에서도 그런 면모가 보였다. 2020년에도 레이디 가가의 뮤직비디오를 성공적으로 작업했다. 매 장면 정성스레 작업한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그런데 <더 셀>에 이은 두 번째 장편영화 <더 폴: 디렉터스 컷>(이하 <더 폴>)은 한 부상당한 스턴트맨과 소녀가 함께 써내려가는 ‘이야기’가 영화의 중심에 놓인다. 오래전, 미국 할리우드의 한 병원에 무성영화를 촬영하다 다리를 다친 배우 로이(리 페이스)와, 오렌지 나무에서 떨어져 팔에 깁스를 한 소녀 알렉산드리아(카틴카 언타루)가 만난다. 무료한 병원 생활 가운데 로이는 모르핀을 얻기 위해, 있는 힘껏 이야기를 짜내 알렉산드리아의 호기심을 끌려고 한다. 그런데 알렉산드리아 역시 그 거대한 서사시에 참여해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더 폴〉의 다섯 영웅
〈더 폴〉의 다섯 영웅

 

‘알렉산드리아의 천일야화’라 할 수 있는 영화 속 이야기는, 악당 ‘오디어스’를 향한 다섯 영웅의 복수다. 오디어스 때문에 쌍둥이 동생을 잃은 마스크 밴디트와 아내를 잃은 인디언, 오디어스의 노예였던 오타 벵가, 오디어스 때문에 나비를 잃은 천재 찰스 다윈, 그리고 오디어스의 추방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폭파 전문가 루이지, 그렇게 다섯 영웅은 전 세계 각지를 돌며 활극과 로맨스, 그리고 현실과 상상이 뒤섞인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처럼 <더 폴>에서 병원의 안과 밖 세계는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로이와 알렉산드리아가 공동 창작하는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병원 내부와, 그 이야기가 펼쳐지는 세계 곳곳의 모습들이 평행하여 진행되다가 결국 하나로 만난다. 로이를 비롯해 알렉산드리아도 그 이야기 안에 들어오고, 병원 사람들도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연기를 펼치며 두 세계가 만난다.

 

 

 

〈더 폴〉
〈더 폴〉

 

20년 전 영화가 어떻게 현재의 새로운 관객과 행복하게 만날 수 있게 된 걸까. 어떤 클래식의 가치의 재발견이라는 느낌이 아니라, 지금의 관객이 마치 최신 개봉 영화를 접한 것처럼 이 이야기에 빠져드는 이유가 뭘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흥미로운 것은, <더 셀>과 <더 폴>이 개봉했을 때 타셈 싱이 ‘이미지는 황홀하지만 스토리는 빈약하다’ 라는 평가를 지겹도록 들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더 폴>에 매혹된 많은 새로운 관객은 화려한 비주얼과 별개로, 입을 모아 ‘이야기 구조가 참신하다’고 얘기한다. 도대체 이런 괴리는 어떻게 발생하게 된 걸까. 가령 현재 병원의 알렉산드리아가 재채기를 해서 픽션 속의 에블린이 부채를 펴다가 재채기를 하는 장면이 있다. 그건 실제로 촬영 도중 알렉산드리아가 재채기를 해서 그렇게 연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병원의 안과 밖 상황이 그렇게 소통한다는 것이 무척 신선하다. AI가 스토리텔링을 하는 시대에, 오히려 두 사람이 한 땀 한 땀 문장을 만들어나가고 영상으로 옮겨지는 구조가 무척 파격적이다. 20년 전에는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봤을 전개 방식이 지금은 오히려 혁신적인 스토리텔링 방식이라 여겨진다.

 

 

〈더 폴〉
〈더 폴〉

 

얼마 전 <미키 17> 홍보차 할리우드 배우 로버트 패틴슨이 방한해 봉준호 감독과 기자회견을 가진 바 있다. 추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봉준호 감독은 무척 흥미로운 답변을 내놓았다. “AI가 쓸 수 없는 시나리오를 매년 한편씩 써내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것. 영화 연출자로서 이런저런 영화를 만들겠다는 작품 구상을 밝힌 게 아니라, 스토리텔러로서 어떤 ‘작가’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한 것이다. 그 기자회견 내용을 들으며 <더 폴>의 두 주인공이 딱 떠올랐다. 영화인이라면 영화인이지만 작가가 아니라 무명의 스턴트맨인 한 남자가 모르핀을 얻기 위해 이야기를 쥐어짜내고, 병원의 일상이 한없이 무료한 소녀는 흘러가는 시간을 재밌게 채우기 위해 그 이야기에 동참하는 구조가 오히려 지금의 현실에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영화가 개봉했을 때는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라는 이유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을지 모르나, 오히려 지금은 완전히 새롭고 말 그대로 힙한 스토리 전개 방식으로 다가온 것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더 폴>이 ‘이야기의 힘’을 믿는 영화라는 점이다. 지금의 씨네필이나 영화인에게 던지는 질문, 바로 우리는 필사적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더 폴〉
〈더 폴〉

 

타셈 싱은 인도 북서부 국경지대의 펀자브 지역에서 태어나 기숙학교를 다녔고, ‘인도의 톰 크루즈’라 불리는 대배우 샤룩 칸이 나온 학교이기도 한 (거칠게 표현해 아마도 ‘인도의 서울대’라 할 수 있는) 델리 한스라즈 컬리지를 졸업한 후 미국 하버드 대학교로 유학을 갔다. 경제학 전공으로 유학을 갔지만 결국 영화로 진로를 틀었고, 부모님은 이를 괘씸히 여겨 지원을 중단했다. 그래서 동생의 지원으로 겨우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말하자면 어려서부터 미국으로 가서 생활한 사람이 아니라, 꽤 오랜 시간 인도에서 성장했다. <더 폴> 메이킹 영상을 보면, 촬영 중간 쉬는 시간이 생겼을 때 인도의 국민 스포츠라 할 수 있는 크리켓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인도계 감독’으로 가장 유명한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태어난 지 채 1살도 되기 전에 미국으로 간 사람이기에, 그는 ‘인도적인 것’ 혹은 ‘모국 인도의 영향’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다소 당황하는 것과 달리 그는 인도와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다. <더 폴>에 등장하는 로케이션만 봐도 알 수 있다.

 

 

〈더 폴〉
〈더 폴〉

 

우연히 본 불가리아 원작 영화 <요호호>(YO HO HO)에 매료돼 판권을 구입하는 데 걸린 시간이 15년이고, 스코틀랜드를 시작으로 인도는 물론 프랑스, 캄보디아, 볼리비아, 나미비아, 아르헨티나, 중국, 이탈리아, 체코 등 총 28개국 로케이션을 위한 장소 섭외에만 17년을 썼으며, 캐스팅 완료 후 실제 촬영 기간만 4년 반이 걸렸다. 주요 공간인 병원의 경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병원이 한 동을 통째로 빌려줘서 아동배우 카틴카 운타루의 감정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 순서대로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영화 도입부에 앞니가 빠져 있던 카틴카 운타루가 말미에 이르러서는 앞니가 자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타셈 싱의 <보이후드>’라고나 할까.

 

 

〈더 폴〉
〈더 폴〉

 

스크린을 통해 보는 <더 폴>의 영상은 압도적으로 세련되고 황홀하지만, 실제 촬영은 무척 힘들었다. 일단 상당한 분량이 촬영된 인도를 예로 들면, 기본적으로 섭씨 50도 안팎 날씨가 매일 이어졌다. 영화의 다섯 영웅들이 입고 있는 의상을 떠올려 보라. 기본적으로 촬영은 더위와의 싸움이었다. 게다가 타지마할 장면을 포함해 거의 모든 유적지 촬영 장면의 프레임 바깥에는 수백, 수천 명의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고 보면 된다. 가령 더없이 고요하고 정제되어 보이는 블루 시티 촬영 장면 같은 경우도, 프레임 바깥의 서로 다른 건물들 옥상에 사람들이 가득 차 촬영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처럼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야 어떻게든 제작팀이 소음 통제를 했건만, 그러지 못한 짐승들은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인도 거리에 개가 많다는 것은 워낙 유명할뿐더러, 더욱이 인도는 해마다 600만 톤 이상의 염소젖을 생산할 정도의 세계 최대 염소젖 생산국이기도 하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것은 아랑곳없이 곳곳에서 개소리와 염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더 폴〉
〈더 폴〉

 

영화 초반 굉장히 매혹적인 이미지 중 하나는, 알렉산드리아가 세계영화사 초창기의 ‘카메라 옵스큐라’처럼 열쇠 구멍으로 병원 바깥의 말이 역전된 이미지로 보는 장면이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카메라의 시초라 할 수 있으며, 안쪽을 어둡게 만든 상자나 방 한 켠에 작은 구멍을 뚫어놓고 바깥에서 어두운 쪽으로 들어오는 빛을 통해 상을 맺히게 하는 방식이다. 그 때문에 상이 거꾸로 굴절되어 보이는 특성을 지닌다. 바로 그 장면을 시작으로 알렉산드리아는 새로운 스토리텔링과 영화의 역사 속으로 입장하게 된다. 그러다 마지막 에필로그를 보면서는, 이 영화가 타셈 싱이 천일야화처럼 써내려간 장구한 영화의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탈리아의 고대 로마 유적지와 아프리카 서부 나미비아 사막이 마술 같은 장면 전환으로 연결되는 장면을 보라. <더 폴>은 그야말로 시공간의 경계를 황홀하게 넘나든다. 그게 바로 영화의 마술이다. 다른 예술과 비교해 ‘육체의 예술’이나 ‘야외의 예술’, 혹은 ‘공동의 예술’이라 할 수 있는 영화의 원초적인 성격이 <더 폴> 안에 그대로 담겨 있다.

 

〈더 폴〉
〈더 폴〉

 

그래서일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세계영화사의 위대한 감독들 중에서 특히 무성영화의 히어로들인, 스턴트맨이자 영화감독이라 할 수 있는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튼, 해롤드 로이드의 아크로바틱한 장면들이 연달아 이어질 때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데이미언 셔젤이 제멋대로 압축한 영화의 역사라 할 수 있는 <바빌론>(2023)의 에필로그를 보면서 찝찝했던 기분을 위로받는 느낌이랄까. 이번 내한 인터뷰에서 타셈 싱은 익히 알려진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튼, 해롤드 로이드 외에 막스 브라더스를 언급했다. 앞서 언급한 세 명에 비하자면 다소 덜 알려졌지만 치코, 하포, 그루초, 제포 네 명의 형제로 이뤄진 막스 브라더스는 미국 코미디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존재 중 하나다.

 

버스터 키튼(왼)과 막스 브라더스
버스터 키튼(왼)과 막스 브라더스


쇼 비즈니스 업계에 종사한 가정환경 덕분에 이들 형제는 어린 시절부터 노래와 춤은 물론 악기 연주도 하는 만능 엔터테이너로 성장할 수 있었다. <코코넛 대소동>(The Cocoanuts, 1929), <덕 수프>(Duck Soup, 1933), <오페라의 밤>(A Night at the Opera, 1935) 등을 통해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과 비교하자면 어딘가 ‘허당’같은 매력을 선보이며 큰 인기를 끌었다. 어쩌면 타셈 싱이 가장 좋아할 만한 <더 폴> 감상평이 ‘<더 폴>을 보고 무성영화를 찾아보게 됐어요’라거나 ‘<더 폴>을 보면서 버스터 키튼이나 막스 브라더스를 알게 되어 기뻐요’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영화의 마지막에, 자료화면의 스턴트맨이 맞고 나서 물에 빠지며 카메라를 올려다보며 손으로 연신 키스를 날리고 웃으며 끝나는데, 희로애락으로 가득 한 <더 폴>의 진짜 마지막 장면이 그렇게 유쾌하게 끝나서 좋았다. 어쩌면 그것이 새로운 관객과 만난 타셈 싱의 마음 같은 게 아니었을까.

 

〈더 폴〉
〈더 폴〉

 

<더 폴>은 장면 전환이 매혹적이다. 병원의 안과 밖을 연결하는 순간을, 마치 완전히 다른 세계나 차원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처리했다. 로이가 손바닥으로 눌러서 피가 배어들며 장면 전환이 이뤄지거나, 공주에게 반지를 건네면서 사제의 얼굴이 흰모래사막으로 바뀌는 장면은 정말 경이롭다. 영화에 CG 같은 특수효과는 없지만 그런 장면 전환이 탁월한 특수효과처럼 다가온다. 서로 다른 공간을 대사 없이 엮는 마술은 오직 영화에서만 가능하다. 그렇게 <더 폴>은 타셈 싱과 함께 떠난 기나긴 여행의 시간이다. <더 폴> 블루레이에 함께 실려 있는 메이킹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방랑자’(Wanderlust)다. 그리고 ‘여행을 하면서 인간의 실존에 다가가는 자들’이라는 부제도 붙어 있는데, 어쩌면 그것이 <더 폴>의 주제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그런 국경을 초월한 방랑을 통해 만들어진 영화가 <더 폴>이기도 하다.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방랑’이라면, 타셈 싱은 진정 위대한 영화적 방랑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