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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에게 차이고 전 세계 로케이션 촬영 강행” 〈더 폴: 디렉터스 컷〉 타셈 싱 감독 간담회

성찬얼기자
〈더 폴: 디렉터스 컷〉 타셈 싱 감독 내한 간담회 현장 (사진 제공= 영화사 오드)
〈더 폴: 디렉터스 컷〉 타셈 싱 감독 내한 간담회 현장 (사진 제공= 영화사 오드)

 

10만 명. 세 배를 넘었다. 2024년 개봉한 <더 폴: 디렉터스 컷>은 근래 침체기에 가까웠던 극장가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이란 2008년 개봉했던 당시 약 28,000여 명을 모은 영화는 세계 각지 영화 팬들의 재개봉 요구에 맞춰 각지에서 재개봉해 기존 팬들과 신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병원에 만난 한 소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턴트맨의 이야기를 그린 <더 폴: 디렉터스 컷>. 한국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들은 감독 타셈 싱은 2025년 2월 한국을 찾아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2월 6일, CGV용산아이파크몰점에서 진행된 간담회에서 타셈 싱 감독이 전하는 <더 폴: 디렉터스 컷>(이하 <더 폴>) 이야기를 옮긴다.


〈더 폴: 디렉터스 컷〉
〈더 폴: 디렉터스 컷〉

 

<더 폴>은 18년 만에 리마스터링되었다. 이렇게 리마스터링을 진행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그리고 이번에 ‘디렉터스 컷’이라 명명됐는데, 기존 개봉 버전과의 차이가 궁금하다.

 

영화를 만들 때 4K로 작업했다. 영화를 만들 때는 오래 갈 영화다라는 생각에 최신 기술로 만들고 싶었다. 다만 당시만 해도 상영관에서 4K를 상영하기 힘들었다. 세월이 흘러 리마스터링 하게 됐는데, 제가 찍은 4K 버전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원래 상영한, 몇몇 효과가 빠진 오리지널 버전을 가지고 몬트리올에서 완성했다. 4K를 선택한 이유는 비주얼을 매우 중시했기 때문이다. 제가 어릴 때 히말라야에 있는 기숙학교를 다녔는데 아버지는 이란에서 엔지니어로 일하셨다. 어릴 때부터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된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봤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비주얼 스토리텔링이 제겐 중요했다. 한국에서 보니까 의도한 4K를 잘 살려서 볼 수 있었다.(웃음)

 

제가 토론토 영화제에서 첫 공개했을 때 (개봉 버전에 없는) 두 장면이 더 있었다. 그리고 당시 데이빗 핀처와 스파이크 존즈 두 분이 도와주었는데 첫 버전에서 이름이 빠져있었다. 영화가 토론토에서 공개한 후 비판을 많이 받아서 돈을 많이 벌어 사비를 들여 개봉했다. 그 과정에서 비평가들이 싫어했던 장면을 자르고 편집하게 됐다. 두 장면을 잘랐는데 하나는 절대 빼면 안 되는 것이었다. 파리에서 편집할 때 스태프가 ‘빼면 안 된다, 캐릭터신이니까 있어야 한다’ 했다. 그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편집을 했었다. 이번에 MUBI(OTT플랫폼이자 제작사 겸 배급사)에서 4K 작업을 하면서 다시 넣었다. 그리고 바꾸고 싶은 부분도 바꾸었다. 이 영화가 어른을 위한 동화, 우화라는 것을 넣고 싶었다. 그래서 맨 처음 화면에 ‘Once Upon a Time in L.A.’(옛날 옛적 LA에서)를 넣었다. 토론토 상영 이후 ‘A long time age’(오래전)로 바꿨는데, 미국인들에게 의미 있는 변화였다. 그래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2019) 제목을 보고 ‘내 본능이 맞았구나’ 확신을 가져서 다시 ‘원스 어폰 어 타임’으로 바꾸었다.

 

〈더 폴: 디렉터스 컷〉 타셈 싱 감독 내한 간담회 현장 (사진 제공= 영화사 오드)
〈더 폴: 디렉터스 컷〉 타셈 싱 감독 내한 간담회 현장 (사진 제공= 영화사 오드)

 

비주얼이 특징인 영화다. CG를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데 CG 빼고 만들기로 결심한 이유는 있는가. 또 앞서 말한 데이빗 핀처와 스파이크 존즈 두 감독이 어떤 단계에서 도움을 주셨는지도 궁금하다.

아무리 훌륭한 특수효과를 써도 시간이 지나면 구식으로 보인다. 반세기가 지나면 또 레트로해서 멋지게 보이지만.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마치 (스탠리) 큐브릭 같은 감독의 영화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이분들의 작품은 처음 보면 옛날영화같은 느낌이 나지만, 훗날 보면 동시대적인 영화 같은 느낌이다. 왜냐하면 당시의 자연주의를 추구하는 영화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제작할 때 제가 선택한 로케이션들은 마법 같은 공간이었다. 이런 공간에 CG를 쓰면 모자 위에 또 모자를 쓴 것 같은 느낌이라 쓰고 싶지 않았다.(웃음) CG 매우 좋아하는 편인데 이 작품엔 맞지 않았다. <지옥의 묵시록>(1979,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도 그렇다. <더 폴: 디렉터스 컷>은 28개국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했는데, 제 다음 작품은 로케이션 없이 세트장에서만 촬영했다. 저는 극단(極端)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더 폴: 디렉터스 컷〉 알렉산드리아를 연기한 카틴카 언타루
〈더 폴: 디렉터스 컷〉 알렉산드리아를 연기한 카틴카 언타루

 

스파이크 존즈와 데이빗 핀처는 제 오랜 친구이다. 이 영화는 제작비를 구하기 정말 어려웠다. 당시 시나리오라고 할 만한 것 없이 가이드에 불과했다. 프로듀서가 “시나리오 있나요?” 하면 “아뇨, (주인공) 아이를 찾으면 그 아이가 만들 거예요”라고 말하곤 했다. ‘몇 개국에서 촬영할 거냐’고 하면 ‘나도 모르겠다’라고 했다. 영화에서 알렉산드리아(카틴카 언타루)가 박스를 들고 다니듯 저도 박스를 들고 다니며 ‘이 안에 아이가 훔친 여러 가지가 있고, 그게 이야기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투자를 받을 수 없다. 어떤 박스인지는 다음 한국 방문 때 가져오겠다.(웃음) 그래서 핀처 덕분에 투자자들과 많은 미팅을 했는데 거절당했다. 8년 정도 (알렉산드리아를 맡을) 아이를 찾다가 루마니아에서 카틴카를 만났다. 이 아이를 찾자마자 ‘이 아이다, 당장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28년 동안 영화를 구상하고 17년간 로케이션을 하다가 아이를 만나자마자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했다. 핀처가 “광고일을 하는 사람은 언젠가 영화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당신만이 그걸 해낸 유일한 사람이다”라고 했었어서 제가 “그 유일한 멍청이가 나다”라고 답했다.(웃음) 광고 덕에 많은 돈을 벌었지만 당시 여자친구에게 차였다. 그래서 형에게 “전부 팔고 영화 만들자” 했다. 핀처랑 존즈가 영화를 정말 마음에 들어 했다. 비평가들의 반이 공격하는 상황에서 두 사람에게 크레딧에 넣어도 될지 물어봤고, 두 사람은 금전적 보상 없이 이름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줬다. 투자자를 찾도록 도와주긴 했지만 실질적인 성사되진 않았고, 그렇지만 영화를 위해 전폭적으로 지지해주고 이름을 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해줬다.

 

〈더 폴: 디렉터스 컷〉
〈더 폴: 디렉터스 컷〉
〈더 폴: 디렉터스 컷〉
〈더 폴: 디렉터스 컷〉

 

특유의 스타일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팬들은 스타일리시하다고 하는데,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그런 특징은 제 배경 때문이다. 저는 대사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된 영화를 많이 봤다. 그래서 그런 차원에서 무성영화에 익숙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론 비주얼적이라 할 수 없는 영화들도 좋아한다. 비주얼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만약 10년 뒤라면 제가 <더 폴>의 새로운 디렉터스컷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제가 이 작품을 가지고 2명의 배우와 병원에서 촬영할 당시, 편집자와 같이 작업했다. 그 당시엔 판타지 장면이 없었다. 제가 촬영하는 동안 편집자에게 ‘어딘가서 상을 받으려면 병원에서 두 명으로만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이별하고 모든 걸 판 뒤라서 판타지 파트까지 다 찍게 된 거다. 말한 것처럼 전 극단을 정말 좋아한다. 두 사람에게만 집중하는 극단적인 버전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프로듀서는 홍보를 위해 판타지가 들어간 걸 원한다. 그래서 이후 세 편의 영화는 비주얼적이다. 유일하게 비평가가 좋아한 제 작품은 작년 작품이다. 판타지가 없고 인간관계에 집중한 작품이다. 근데 <더 폴>은 아무도 이 영화를 원하지 않았다. 이 작품 같은 경우도 또 다른 차원의 극단이라서. (<더 폴>처럼) 20년 걸려서 인정을 받은 것과 같은 일은 전작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웃음) 앞서 말한 작년 영화도 제가 좋아하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색깔을 가진 영화니 그것도 봐주셨으면 좋겠다. 제가 비주얼과 스타일적인 부분을 보여주는 건 제가 인도 사람이라 그렇다.

 

〈더 폴: 디렉터스 컷〉
〈더 폴: 디렉터스 컷〉

 

개봉 당시보다 많은 관객이 들었다. 재개봉으로 이렇게 흥행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한국 관객들이 이렇게 열광하는 그 소감이 듣고 싶다. 또 한국에서 작업하고 싶은 배우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제게 <더 폴>은 부활한 것 같은 같은 느낌이다.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아이가, 겨우 기어다닐 수 있는 그런 아기가 20년이 지나 다시 보니 달리고 있더라. 이렇게 재조명 받는 것이 놀라운 것 같다. 당시 영화를 만들 때만 해도 여차친구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실감이 컸는데, 20년이 지나 다시 보니 그 당시 어렸고 야심 찼구나 생각된다. 오늘이라면 다시는 못 만들 것 같고, 누구도 못 만들 것 같다.

 

배우 같은 경우 염두에 두고 작업하진 않는다. 보통은 프로듀서들이 원하는 배우를 캐스팅해서 투자자를 구하려 한다. 저는 반대로 접근한다. 뮤직비디오가 그렇다. 제 친구들, 존즈나 핀처나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뮤직비디오를 만든다. 곡을 듣고 그 곡에 대한 콘셉트를 정한다. 저는 반대다. 말 앞에 수레를 세우는 스타일이다. 일단 아이디어가 있고 그에 맞는 노래가 있으면 만든다. 그렇기에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28년이 걸린 후에 레이디 가가의 뮤직비디오(‘911’)를 만들게 됐다. 그렇게 작업한다. 만약 제 흥미를 끄는 소재가 있다면 한국에서도 만들고 싶다. 다른 문화를 가진 곳을 보면 전혀 다른 행성을 보는 것 같다. 한국은 다른 행성을 넘어 다른 우주인 것 같다.

 

〈더 폴: 디렉터스 컷〉 타셈 싱 감독 내한 간담회 현장 (사진 제공= 영화사 오드)
〈더 폴: 디렉터스 컷〉 타셈 싱 감독 내한 간담회 현장 (사진 제공= 영화사 오드)
〈더 폴: 디렉터스 컷〉 이야기 속 투영된 로이(리 페이스, 왼)와 알렉산드리아(카틴카 언타루)
〈더 폴: 디렉터스 컷〉 이야기 속 투영된 로이(리 페이스, 왼)와 알렉산드리아(카틴카 언타루)

 

<더 폴>은 알렉산드리아와 로이(리 페이스)의 이야기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공감하는 과정의 서사가 관객들에게 위로가 됐다고 생각한다. 혹시 감독님도 앞서 말한 이별 말고 제목처럼 추락한 순간이 있는지. 그리고 본인 영화에서 구원받았다 싶은 순간과 이 영화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그걸 히말라야 학교 친구들에게 해준 적이 많다. 근데 제가 이런 기억을 가지고 <더 폴>을 만든 건 아다. 학교에서 토요일마다 한 명이 앞에 나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았다. 저도 이란에 자주 갔어서 거기서 본 영화 얘기를 많이 했다. 또 아난이란 선생님이 로이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보통 수업 시간에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주에 들려줄게” 하면서 이야기를 끝내셨다. 예를 들어 인디언 로빈훗과 007 제임스 본드를 섞어 워터게이트 사건을 얘기하셨다. 선생님은 그렇게 얘기하며 우리가 어떻게 따라오는지 우리의 신체 반응을 보고 이야기를 조절하셨다. 다음 주가 오면 “내가 어디까지 말했지?” 하셨지만 우리는 선생님이 지어서 한 얘기란 걸 전혀 몰랐다. 이 영화도 비슷하다. 누군가의 반응에 따라 이야기를 만든다면 그 저자는 누구인가. 만약 상대가 힘을 가진 스튜디오의 중역이라면. 아이라고 한다면 아이들은 보통 투명하다. 스튜디오 중역은 폰을 보거나 문자를 보내거나 할 수 있고. 지금 와 생각한다면 <더 폴> 이야기의 아이디어는 과거로부터 왔구나 싶다. 근데 제가 영화를 만든 이유는 오래 남는 스타일의 비주얼을 가진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남자와 아이 두 명으로만 하든지 아니면 무수히 많은 로케이션을 가진 영화를 만들든지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만약 제가 모든 돈과 비주얼을 가지고 두 명에게만 집중했다면 더 성공했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친구에게 차이면서 전 비틀스를 전 세계를 떠나듯 전 세계 투어를 떠나게 됐다.

 

〈더 폴: 디렉터스 컷〉 타셈 싱 감독 내한 간담회 현장 (사진 제공= 영화사 오드)
〈더 폴: 디렉터스 컷〉 타셈 싱 감독 내한 간담회 현장 (사진 제공= 영화사 오드)

 

이전에 안 좋은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영화와 관련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의 고집 센 성격을 갖는 데 영향을 주었다. 제가 15살 때 오토바이 타다가 사고가 나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었다. 저는 12살 정도부터 무신론자였다. 근데 사고 났을 때 기도해야 될까 싶었고 기도를 했다. 저랑 친구가 여자들에게 잘 보이려다가, 그렇게 멍청했기에 사고가 난 사고였다. 발가락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기절했다. 그때 제가 더 간절하게 기도했다면 신앙심 좋은 사람이 됐을 것이다. 영화감독이 아니라 개연성과 가능성을 믿는 사람이 됐을 것이다. 또 이태리 있을 때 작업을 같이 한 니코라는 분이 있다. 저희가 로케이션 헌팅으로 20개국 이상을 같이 다녔지만, 뭔가 (영화에 대한 글을) 쓰진 않았다. 그러다 대리석 계단에서 넘어져 움직일 수 없게 됐다. 그때 니코가 저에게 종이를 가져와서 “영화에 대해 써봐”해서 쓰게 됐다. 그런 사고가 없었다면 미뤘을 텐데 움직일 수가 없어서 영화를 쓰고 완성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장애인이 될 뻔하고 여자친구와도 헤어지고, 그런데 교통사고가 난 것보다 여친과 헤어진 것이 더 큰 고통이었다. 촬영 2주 전 영화의 악당을 바꿨다. 원래는 병실에 같이 있는 노인이 악역이었는데,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에게 갔다는 걸 안다면 주인공에게 상심이 크겠다 싶었다. 그래서 오디어스 역할을 병실의 노인이 아니라 극중 영화배우로 바꾸었다.

 

영화가 처음 공개됐을 땐 왜 반응이 안 좋았는지 모르겠다. 이게 무엇 과도 같은 게 없는 영화인데, 어떤 패턴을 벗어났을 때 그만의 장점이나 가치가 있다. <기생충>이나 <올드보이> 같은 경우 기존과 다른 것을 보여줘 사람들이 열광했다. <더 폴>은 아마 기대했던 것과 좀 달라서였던 것 같다. 패션도 20년 뒤 레트로로 유행하는 경우가 있다. 제 영화가 그런 것 아닐까. 공개 당시 비평가들이 지지했다면 다른 결과가 있었을 것이다. 영화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영화다. 환상적이다 라고 해도, 거지 같다 해도 좋다. 근데 모두가 ‘이 영화 괜찮다’고 하면 겁이 난다. <더 폴>은 인터넷 덕분에 누군가에게 재발견된 게 아닐까 싶다. 사비를 들여서 개봉했었는데, 이후 만나는 사람들이 ‘왜 다시 공개하지 않냐, 개봉하지 않냐’ 묻곤 했다. 제가 SNS를 안 한다. 그래서 <더 폴>을 보고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몰랐다. 작년 토론토영화제에 갔더니 비평가들이 ‘이 영화를 왜 못 보냐’ 했다. 그래서 ‘20년 전에 그렇게 알리고 싶을 때 어디 계셨냐’ 했더니 그때 10살이었다고 하더라.(웃음) 그렇게 전혀 다른 세대가 이 영화를 원하는 걸 알았다. 그래서 형에게 돈을 털어 넣어서 영화를 다시 공개해야겠다 했다. 모두가 놀랐다. 한국에서 개봉했듯 미국에선 MUBI가 딱 하루 몇 개 극장에서 개봉했는데 모두 매진됐다. 인기가 많으니 8주 정도 확대개봉했다. 이런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고, 더 많은 곳에서 이뤄지길 바란다. 한국에서 성공을 거두는 게 자랑스러운데 영화관이 정말 좋다. 제 영화는 이 스타일과 비주얼 때문에 제대로 된 스크린에서 봐야 한다. 본인의 영화는 큰 화면에서 봐야 한다, 스마트폰으로 보면 안 된다 데이빗 린치가 말했었다. 제 영화를 런던 아이맥스보다 한국에서 본 게 훨씬 좋았다. 제가 10번 넘게 한국말로 ‘땡큐’를 배웠는데 까먹었다. (통역가에게 다시 한번 전해 듣고 한국말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