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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1984」,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를 되살린 영화 〈해피엔드〉

추아영기자
〈해피엔드〉 포스터
〈해피엔드〉 포스터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네오 소라 감독의 영화 <해피엔드>가 4월 30일 개봉한다. <해피엔드>는 대지진의 위협이 드리운 근미래의 일본에서 세상의 균열과 함께 미묘한 우정의 균열을 마주한 두 소년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네오 소라 감독은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예견하며 경고한 조지 오웰의 소설 속 세계관과 빛과 어둠으로 시대의 공기를 포착한 에드워드 양 감독의 미학을 결합해 영화 <해피엔드>를 빚어낸다.

 


〈해피엔드〉 유타와 코우(왼쪽부터)
〈해피엔드〉 유타와 코우(왼쪽부터)

<해피엔드>는 붕괴 중인 근미래의 일본을 배경으로 머지않은 미래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어린 시절부터 절친인 두 소년 유타(쿠리하라 하야토)와 코우(히다카 유키토). 음악에 심취한 둘은 동아리 활동을 같이하며 자유분방한 나날을 보낸다. 어느 날, 그들은 교장의 고급 차량을 교내 한복판에 거꾸로 세워두어 권력과 자본에 아부하는 교장을 우롱한다. 단단히 화가 난 교장은 학교에 AI 감시 체제 ‘판옵티’(Pnopty)를 도입하고,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한다. 학교 안팎에서 일어나는 붕괴는 유타와 코우 사이에 금을 만들고,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둘은 조금씩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경각심을 일깨우는 현실적인 SF

〈해피엔드〉
〈해피엔드〉

“낡은 틀에 사람을 가두는 세력이 술렁인다. 풍화된 건물이 평소보다 더 삐걱댄다. 사람들을 구분 짓는 체계가 붕괴 중인 일본에서 뭔가 크게 달라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해피엔드>는 암울한 사회상을 내다보고 밝지 않을 변화를 예고하며 시작한다. 영화의 세계는 여러모로 보나 붕괴 직전에 처해 있다. 사람들은 예견된 대지진에 대한 불안을 느끼며 살아가고, 총리는 사람들의 불안을 더욱 조장해 독재 정치에 이용한다. 또 부도덕한 우두머리가 이끄는 전체주의 사회에서 재일한국인을 비롯한 재일외국인에 대한 차별은 일상적으로 행해진다. 네오 소라 감독은 영화 속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근미래 일본의 모습을 보여주며 경각심을 일깨운다.

 

〈해피엔드〉
〈해피엔드〉

유타와 코우의 학교는 파시즘에 물든 영화 속 사회의 축소판으로 존재한다. 학교는 일그러진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한다. 내각 총리는 국민들의 안전을 빌미로 국가를 비상사태로 전환하고, 학교 교장 또한 아이들의 안전을 문제 삼아 감시 체제 판옵티를 도입한다. 네오 소라는 영화 속 일본의 사회와 학교의 모습, 총리의 독재 체제와 교장의 관리 체제를 겹치면서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을 이어간다. 이에 더해 교장의 말에 복종하고 그에게 아부하는 선생의 모습으로 일본의 관료주의를 비판한다.

 

〈해피엔드〉
〈해피엔드〉

네오 소라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속 디스토피아를 자신의 영화 속에서 되살린다. CCTV가 곳곳에 설치되고, 거대한 스크린이 교사의 훈육을 대신하는 <해피엔드>의 학교는 빅 브라더의 독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곳곳에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감시하는 텔레스크린이 설치된 「1984」의 전체주의 사회와 같다. <해피엔드>의 아이들은 거대한 감시 체제 아래에서 개인의 생각과 사상을 억압당하는 「1984」의 인물들처럼 자유를 빼앗기고 개성을 억압당한다. 하지만 그들은 「1984」의 윈스턴과 줄리아가 사랑과 연대를 통해 빅 브라더의 통치 체제에 저항하듯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체주의에 저항한다. 유타와 코우의 같은 반 친구인 후미(이노리 키라라)는 급진적인 열혈 운동가로 늘 불의에 맞선다. 재일한국인으로 차별을 받아 온 코우는 그런 후미를 만나 정치적으로 각성하고 시위에 참여한다. 좀처럼 세상살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유타는 여전히 음악을 탐닉하고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일상을 유지한다. 유타는 세상을 바꿀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희망을 포기해 버린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 세대로 그려진다. 영화 속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두 갈래로 갈라진 육교의 이미지는 다른 정치적 입장으로 인해 갈라진 유타와 코우의 관계, 그들이 함께하지 않을 미래의 상징으로 놓여 있다.

 


에드워드 양에게 바치는 오마주

〈해피엔드〉
〈해피엔드〉

밤 장면으로 점철된 영화 <해피엔드>는 어둠 속에 새겨진 빛의 이미지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도시의 밤하늘에서 점멸하는 불빛, 흔들리는 전구 이미지는 불안정한 사회의 모습을 드러낸다. 네오 소라 감독은 점멸하는 빛의 이미지로 빛과 어둠을 가른 미장센으로 시대의 공기를 포착한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에 오마주를 바친다. 시대의 불안 속에서 밤거리를 방황하는 <해피엔드>의 아이들은 갱단을 조직하고 폭력에 물든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아이들과 같다. <해피엔드>는 주요 인물 설정에서도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따른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에서 중국 대륙에서 대만으로 건너온 외성인 샤오쓰는 <해피엔드>에서 4대째 일본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비국민’이라 불리며 멸시를 받는 재일한국인 코우로 이어진다. 코우는 진실을 찾기 위해 밤거리를 헤매는 샤오쓰처럼 멸시와 차별에 맞서고 어둠에 잠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시위에 나선다. 하지만 사회의 배척은 그의 의지를 손쉽게 뒤흔든다. 영화 속 억압된 사회에 짓눌린 개개인의 초상은 시종 안타까움과 비애를 남긴다.

 


씨네플레이 추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