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과를 다 아는데, 이처럼 손에 땀을 쥐고 볼 수 있을까.
우리나라 현대사의 주요한 사건을 바탕으로 하되, 영화적 상상력으로 공백을 빈틈없이 촘촘하게 채웠다. 역사적 사실을 다룬 작품은 ‘적당히’ 사실에 입각하고, ‘유명한’ 배우들을 기용해 관객을 모으고, 신파로 무장해 관객들의 눈물샘을 노릴 것이라는 편견도 잠시. <서울의 봄>은 ‘적당한’ 역사 소재 영화가 아니라는 듯, 장르적 재미와 영화적 완성도를 꽉 잡았다. 141분이라는 2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타임이 무색할 만큼, 영화 내내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12·12 군사반란을 소재로 한 영화 <서울의 봄>은 12월 12일과 꼭 닮은 11월 22일에 개봉 예정이다. 개봉에 앞서, 지난 9일 열린 <서울의 봄> 언론배급시사회와 기자간담회에는 김성수 감독과 배우 황정민, 정우성, 이성민, 김성균이 참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이날 주연배우들 역시 영화의 최종본을 처음 감상해 “기가 쪽쪽 빨렸”다고. 이날 나온 이야기와 영화를 본 소감을 토대로, <서울의 봄> 관람 포인트를 소개한다.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의 훌륭한 배합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서울의 봄’은 1979년 10월 26일부터 1980년 5월 18일까지 벌어진 민주화 운동 시기를 일컫는다. 10월 26일 박정희 사망 이후, 유신 체제가 막을 내리고 민주화의 바람이 불 것이라는 희망도 잠시. 12월 12일,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정권을 장악하고, 이듬해 5월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며 서울의 봄을 짓밟았다.
<비트> <아수라> 등을 연출하며 ‘명장’으로 불리는 김성수 감독은 40여 년 전, 그가 한남동에 살던 19살 때 그날의 총성을 들었다. 다만, 그날의 자세한 내막을 알게 된 것은 그가 삼십 대 중반이 된 후였다. 김성수 감독은 마침내 <서울의 봄>을 연출하며 ‘오래된 숙제’를 풀었다.

영화 <서울의 봄>은 12·12 군사반란의 날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되, 공백은 상상력으로 빼곡하게 채워 빈틈이 느껴지지 않는다. 김성수 감독은 “영화는 창작을 통해 새롭게 점화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화로 출발했지만, 많은 허구가 더해져 있다”라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보다 역사적 사실에 충실해, 마치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키는 각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의 봄>에서 그려진 허구적인 요소가 역사적인 사건을 이해하는 데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와 상상이 조화롭고 끈끈하게 뒤섞인, 훌륭한 역사 교육 영화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
실존 인물의 이름에서 한 글자만 바뀐 캐릭터(전두환은 ‘전두광’, 노태우는 ‘노태건’ 등)들은 그들의 이름만큼이나 역사적 인물과 같기도, 또 다르기도 하다. 그들의 캐릭터는 김성수 감독의 영화적인 상상력과 연출의 힘을 입어, 선명하고 뚜렷한 개성으로 되살아났다.

김성수 감독은 “실제 실존했던 인물(전두환)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다”라며, “’나는 ‘그들(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일원들)이 그들끼리 있을 때는 어떻게 행동할까’를 나름대로 해석해 봤다”라고 전했다. 전두광 역할을 맡은 황정민 역시 “(실존 인물을 연기한다는 부담감보다는) 시나리오 안에 모든 정답이 나와 있기 때문에 철저히 분석해서, 내 나름의 전두광이라는 인물을 만들었다”라고 전두광을 연기했던 마음가짐을 밝히기도 했다.
신군부가 ‘반란군’ 일 수 있었던 이유? 신념을 가진 군인의 시각으로 사건을 재해석

훗날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가 처벌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과 맞섰던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비민주적인 행동에 저항한 시민들과 군인들이 있었기에, 이들의 역사는 ‘승리한 쿠데타’로만 기억되지 않을 수 있었다.
<서울의 봄>은 ‘전두광’(황정민)의 대척점에 있는 존재, ‘이태신’(정우성)의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게끔 유도한다. 극중 이태신은 수도경비사령관으로, 반란군에 맞서는 진압군의 핵심적인 존재다. 영화 속에서 전두광이 탐욕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면, 이태신은 신념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배우 정우성의 표현을 빌리면, 이들은 “불과 물의 대결”과도 같은 양극단의 대립을 보여준다. 전두광을 비롯한 하나회 세력은 ‘감정의 폭주’를 보여주고, 이태신은 ‘감정의 억제’를 원칙으로 행동한다.


실제 12·12 군사반란 중, 당시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과 특전사령관 정병주 등은 반란군에 맞서 끝까지 저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서울의 봄> 속 ‘이태신’은 김성수 감독의 말을 빌리면 “가장 많이 가공된 인물”이다. 이태신 역할을 맡은 배우 정우성 역시 “실제 사건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냈다. 모티브가 되는 인물이 있긴 하지만, 나는 아예 다르게 하려고 했다”라고 연기의 주안점을 밝혔다. 육군참모총장 정상호 역을 맡은 이성민 역시 “감독님께서 (실제 사건에 관한) 책을 두 권 주셨다. 그런데 읽지는 않았다. (일동 웃음) 어차피 내가 연기해야 할 캐릭터는 극 중에 있기 때문에, 감독님께 의지했다”라고 밝혔다.
비중 있는 역할만 60명! 연기의 앙상블

<서울의 봄>이 담아낸 79년 12월 12일 저녁의 시간은 분 단위로 흐름이 변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러닝타임 내내 단 1분의 낭비도 없이 숨 가쁘게 변화하는 상황은 다양한 배우들의 호연 덕분에 혼란스럽기는커녕 흡인력이 짙다. 김성수 감독은 “짧은 등장에도 관객이 각자를 구분해서 기억할 수 있게 하려면 배우 인지도는 물론 얼굴에 굴곡과 개성이 있는 배우분들을 모셔야 했다”라고 캐스팅 비화를 밝혔는데, 영화에는 대사가 있는 배역만 무려 6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당시 상황에 관련한 모든 인물을 조명하는 건 불가능하더라도, 시대상과 캐릭터 모두를 아우르겠다는 <서울의 봄>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영화에서는 배우 정동환이 대통령을, 정만식은 특전사령관을 맡고 김의성은 국방장관을 맡는 등, 인지도와 연기력을 두루 갖춘 배우들이 짧은 등장에도 묵직한 존재감을 낳았다. 그뿐만 아니라 안내상, 최병모, 김성오 등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인상을 지닌 배우들이 훌륭한 앙상블을 펼쳤다. 또, 넷플릭스 <D.P> 시리즈에 이어 다시 한번 군인으로 특별출연한 배우 정해인, 그리고 짧은 분량에도 영화에 함께하고 싶어 총장 경호원으로 특별출연한 이준혁은 영화에 ‘보는 맛’을 더했다.

또, <서울의 봄>은 사건의 특성상 몹 신(mob scene-군중 장면)이 많은데, 이 때문에 배우들은 신 전체를 마치 하나의 연극 공연인 것처럼 생각하고 매 장면마다 리허설을 거쳤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배우들은 가장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는 동선과 합을 찾았고, 촬영감독 역시 최적의 카메라 동선을 찾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인물의 감정과 함께 호흡하는 듯한 카메라 워킹은 영화에 몰입감을 더한다.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