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9년 10월 26일에서 1979년 12월 12일로, 1980년 5월 17일에서 1980년 5월 18일로. 1년이 채 되지 않은 이 짧은 시기에 대한민국의 역사는 격변과 반복, 충격과 비극, 부패와 혼란의 시기를 겪게 된다. 18년을 장기 집권하며 민주주의를 앗아간 독재자는 총탄에 죽음을 맞이했고,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이라는 기대는 다시 군홧발에 의해 짓밟혔으며, 이에 반발하던 무고한 시민들은 새로운 독재자가 지시한 발포 명령과 탱크에 의해 참혹한 희생을 당한다. 유신 독재와 신군부 시절 예술 문화 검열은 정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틀어막았고, 정치적으로 대항하는 시민 영화는 극장에 걸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광주 비디오’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져 갔고, 당대 정권의 만행과 진실을 드디어 일반 시민들도 직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반 세기 가량이 지난 지금은 드라마, 영화, 문학 등 문화 예술 전반에서 1979년과 1980년의 시간은 여전히 중요한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그중 10.26 사건은 10년 주기로 자주 영화화되었다. 1994년 개봉한 신상옥 감독의 <증발>은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 실종 사건을 중심으로 5.16에서 10.26까지 18년간 유신 정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로부터 11년 뒤 임상수 감독은 <그때 그 사람들>(2005)을 통해 10.26이 벌어지는 하룻밤을 그 만의 블랙 코미디로 풀어냈다. 코로나 직전 마지막 흥행작이었던 우민호 감독의 <남산의 부장들>(2020)은 김형욱 실종 사건부터 10.26까지 권력의 암투와 김 부장의 심리 변화를 누아르의 세계 속에서 그려냈다. 하지만 12.12 군사 반란을 직접 영화화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트>(1997), <아수라>(2016) 등을 연출한 김성수 감독의 신작 <서울의 봄>(2023)은 10.26이 일어난 직후 12월 12일 서울 도심 내에서 벌어진 희대의 군사 반란까지 역사상 가장 혼란한 시기를 흥미로운 장르 문법 아래서 써 내려간다. 그동안 한국 영화가 독재 권력이 자행한 폭력의 역사, 정권의 몰락과 민주화 등에 집중했다면, <서울의 봄>은 독재 권력의 반복과 재정립이라는 위압적이고 절망스러운 역사를 다시 쓰는 최초의 시도인 셈이다. 10.26에서 12.12로 한 달 반의 시간 차를 서로 다른 영화들이 묘사한 방식을 톺아본다면, 영화와 역사의 접근법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총탄과 사라진 남자, 암시된 역사의 현행화

10.26에서 핵심적인 인물은 단연 총알을 발포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다. 그는 <그때 그 사람들>에서 김 부장(백윤식)으로 불리고, <남산의 부장들>에서는 김규평(이병헌)으로 불린다. 김규평은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 한 치에 흐트러짐도 없는 동작, 그리고 냉철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마치 네오 누아르의 트렌치코트를 입은 사내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인물이다. 반면 백윤식의 김 부장은 추레하며, 극한의 희화화를 자랑한다. 간 건강이 안 좋아 구취를 풍기고 (실제로 김재규는 간경변을 앓았다고 한다), 구멍 난 양말을 신은 채 코를 골며 이따금 흥분하면 일본어를 뇌까린다. 물론 서로 다른 장르적 접근으로 극화된 두 인물은 어쨌건 대통령의 심장에 총알을 쏘았고, 영화의 동선은 결국 ‘김 부장’들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서울의 봄>에서 등장한 김재규의 모습은 단 한 컷에 불과하다. 그는 이미 체포되어 반죽음 상태로 구타를 당한 채 구금되어 있을 뿐이다. 역사는 이동하고 주변과 중심은 교체된다.

반대로 12.12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군사 반란을 주도한 전두환이다. 그는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체포된 김 부장을 수사하는 데 등장하는 것으로 유추되고 (만약 전두환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가 아니라면, 그는 한순간도 이 영화의 10.26에 등장하지 않는다), <남산의 부장들>에서 아직 김규평과 곽상천(이희준)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보안사령관 전두혁(서현우)로 등장한다. 이미 체포되어 구타당한 김재규와 달리, 여기서 그는 일종의 역사적 잠재태로서 존재한다. 벗겨진 M자 탈모와 보안사령관이라는 설정은 곧장 관객들에게 전두환을 떠올리게 된다. 영화 내내 김규평을 뒤흔든 비밀의 존재 ‘이아고’가 사실 전두혁이었고, 그가 박정희 사망 이후 스위스 비밀 계좌에 돈을 빼돌리는 장면은 7년가량 더 진행될 독재 정권의 등장을 암시한다. 그리고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황정민)은 이미 현행화된 역사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다. 그는 어두운 방 안에서 신군부와 쿠데타를 도모하고, 수도 서울에 탱크와 전방 부대까지 전부 불러들이는 전두광의 모습은 더는 암시된 역사가 아니라, 눈앞에서 벌어졌던 역사의 되풀이인 셈이다.

그리고 10.26과 12.12를 잇는 단 하나의 인물은 바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다. 10.26 당시 궁정동 안가에 머물고 있으면서, 암살 이후 김재규와 함께 같은 차에 탑승하였고, 그 차가 남산이 아니라 육본으로 가게 만든 존재기도 하다. 그는 10.26 이후 계엄사령관이 되었지만, 1개월 반 만에 전두환 일당에게 납치되어 군사 반란의 도화선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남산의 부장들>에서 박통을 연기한 이성민이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에게 납치당한 정상호 계엄사령관이 되었다는 것이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를 언급하는 곽상천 경호 실장의 발언에 부산을 탱크로 밀고 발포한다고 해도 아무도 자신을 사형시킬 수 없다고 말한 그 인물 박통이 오히려 나라의 위태로움을 걱정하지만 무력해진 계엄사령관을 연기하는 셈이다. 동시에 10.26을 그린 두 영화에서 정 총장은 각각 장승호(김민상), 참모총장(정종준)이라는 인물로 그려졌다. 이들은 남산에서 육본으로 차를 돌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안가 속에서 저격을 감지하지 못한다. 영화 속 김재규는 총알을 쏘고 난 뒤 구타와 고문과 함께 감금되었고, 전두환은 암시된 위협에서 실질적인 권력으로 이양되었다면, 유일하게 10.26에서 12.12까지 기지를 발휘해 노력하지만 동시에 무력함을 느끼게 되는 캐릭터가 바로 그인 셈이다.

10.26의 하룻밤을 완벽하게 풍자했던 <그때 그 사람들>의 공개되었을 때, 영화는 유족들로부터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상영금지 소송을 당하게 되었다. 물론 해당 청구는 기각되었지만, 1932년 이래 역사 영화의 오프닝에 담긴 ‘픽션 면책 조항’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던 사건이었다. 10.26과 12.12를 다룬 세 작품은 역사를 있는 그대로 담기보다는 하나의 장르적 문법에 기대어 굴절시키는 방법을 택한다. <그때 그 사람들>은 블랙 코미디라는 전통적인 풍자 방법을 사용했고, <남산의 부장들>은 차가운 질감의 화면과 함께 누아르적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서울의 봄>은 12.12의 9시간을 마치 전장의 한복판으로 옮겨낸다. 부항을 뜨며 엔카가 들리고, 죄다 맞지 않은 세계 각국의 독재 역사와 과장된 일본어로 가득한 궁정동의 풍경(<그때 그 사람들>)은 권력자에 대한 애증과 토사구팽의 불안감을 가득 담은 누아르와 첩보물의 암투로 뒤바뀌고(<남산의 부장들>), 끝내 서울 한복판에 탱크와 공수 부대 그리고 박격포로 가득 찬 전장의 말판이 되고 만 것이다. (<서울의 봄>)

비슷한 소재를 다룬 세 영화가 취한 방법론으로서의 장르를 궤적으로 좇다 보면 매우 흥미로운 결론에 도달한다. 점차 표면으로 역사가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때 그 사람들>의 블랙 코미디는 폐쇄성이 돋보인다. 궁정동에서 열린 술판에는 마담이 대동한 여대생과 음담패설로 가득하다. 이 영화가 견지하는 일종의 과장성은 일반 시민들이 들여다볼 수 없으며, 오로지 독재 정권의 ‘사람들’만이 이 이야기를 알 수 있다. <남산의 부장들>이 드러내는 누아르와 첩보물의 도식에서 한국은 프랑스, 미국과 교차된다. 하지만 여기서 벌이는 모든 비밀 작전들은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김형욱을 모티브로 한 박용각(곽도원)의 실종 사건은 여전히 미제로 남아있으며, 영화는 그중 가장 유력한 설인 ‘모이 분쇄기’를 제시하지만, 누구도 이 실종사건과 첩보 활동에 대해 명확히 묘사하지 않았다. 12.12의 9시간을 담은 <서울의 봄> 역시 전두광으로 비롯된 신군부와 수도 서울을 지키려는 이태신(정우성) 수도경비사령관의 대립 구도가 도드라진다. 이 9시간의 일은 통행금지가 여전히 유지되는 서울에서 벌어진다. 그 때문에 영화는 시민의 얼굴을 드러내는 법이 없지만, 대신 그 자리를 탱크와 소총, 박격포와 장갑차로 대신한다. 그리고 <서울의 봄>의 대립의 끝에서 전두광과 이태신 사이에는 시민이 존재한다. 삶의 터전이 화약고가 되어버린 서울을 바라보는 일반 군중의 모습은 <서울의 봄>이 견지하는 ‘전쟁물’의 작법이 끝내 역사를 표면화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씨네플레이 최현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