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한민 감독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할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이하 <노량>, 12월 20일 개봉)가 개봉 일주일 전 이미 사전 예매량 10만 장을 가볍게 넘겼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측은 이전작들인 <명량>과 <한산: 용의 출현>(이하 <한산>)보다 빠른 속도라고 밝혔다. 한국영화로서는 2023년 겨울 최고 기대작인 <노량>을 기다리며, 이전 2편을 되돌려보고자 한다.
옥포해전 – 당포해전 – 한산해전
– 부산포해전 – 명량해전 – 노량해전
<명량>

개봉일: 2014년 7월 30일
상영시간: 128분
흥행: 1,761만 관객 (10년째 한국영화 역대 박스오피스 1위)
명량대첩 : 1597년(선조 30년) 음력 9월 16일
당시 이순신 장군 나이 53세
전법: 진도 울돌목 일자진(一字陣)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그 용기는 백 배, 천 배 큰 용기로 배가 되어 나타날 것이다.” - <명량> 명대사

명량은 전남 진도군 군내면에 위치한 목이다. 명량 해전은 1597년 음력 9월 16일 정유재란 때 명량에서 이순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의 함선 12척이 일본 수군 함선 133여 척을 거의 전멸에 가깝게 격퇴했던 해전이다. 그리고 노량해전 1년 전의 대첩이다. 정유재란 때 조선 수군이 크게 패하고 원균이 전사한 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된 이순신(최민식)은 1597년 8월 어란포에서 왜선을 격파한 후 왜군과의 전면적인 일전을 준비했다. 전선 및 병력의 부족으로 수군 본부를 진도군 고군면에 우수영으로 옮긴 조선 수군은 일본군의 공격에 대비했다. 왜군이 133척의 배로 공세를 취하자 조선 수군은 불과 12척의 배로 울돌목의 좁은 수로에서 일자진을 치고 적의 수로 통과를 저지했다. 조류의 방향이 바뀌면서 서로의 진영이 뒤엉키기 시작하자 조선군은 적장 구루시마의 목을 베어 사기를 높이며 총공격을 감행했다. 이에 당황한 왜군은 30여 척의 배를 잃고 퇴각했다. 이 싸움으로 조선군은 다시 제해권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왜군은 수군을 이용해 전라도로 침입하려던 계획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량>을 들여다보기 전에 김한민 감독의 전작이자, 역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삼았던 <최종병기 활>(2011)과 비교해보는 것은 흥미롭다. <최종병기 활>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라는 신궁 남이(박해일)의 대사다. 자연의 힘에 기대어 현실의 열세를 극복한다는 점에서 <최종병기 활>과 <명량>은 통하는 바가 있다. 김한민 감독이 주목한 것은 전투에서 절망적인 수적 열세를 뒤집은 기적 그 자체가 아니라, 울돌목의 회오리바다를 이용한 것을 통해 드러나는 이순신의 초월적 면모일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치밀한 사전 준비와 오랜 자신감이 바탕에 깔려 있다. 부하 장수 안위(이승준)와 함께 밤에 울돌목을 찾은 것은 물론 이후에도 혼자 울돌목을 찾아 회오리치는 그 좁은 바다의 조류를 유심히 쳐다보고 상념에 잠긴다. 한편, 당시 <명량: 회오리바다>라는 제목으로 개봉할 계획도 있었으나, 같은 해 있었던 세월호 참사로 인해 부제 없이 <명량>으로 개봉하게 됐다. 이후 2015년 <명량> 제작 관련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명량: 회오리 바다를 향하여>를 만들며 뒤늦게 ‘회오리 바다’라는 표현을 쓰게 됐다.
게다가 이순신은 자신의 의지대로 나선 왜군과의 해전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 그가 ‘독버섯처럼 퍼진 두려움’을 실감하면서도 끝까지 승리를 확신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압도적인 군사력만 믿고 의기양양한 왜군이라도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그 패배의 두려움이 살짝 엄습하는 순간 속절없이 무너질 것이라는 믿음이다. 영화 속에서는 이순신이 “그들도 언제나 내게 졌던 두려움이 있다” 정도로 묘사되는데, 실제로 역사적 기록 속의 이순신은 비상용 전투식량을 비축하며 “내가 죽지 않는 동안에는 적이 감히 침범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거나, 수군을 해산시키고 육군과 합세하라는 임금 선조에게 “이제 제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있으니 죽을힘을 다해 항거해 싸운다면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비록 전선의 수는 적지만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장계를 올리기도 했다. <명량>의 이순신이 전에 없이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언제나 연전연승해온 자신감에는 전혀 흔들림이 없다.

명량해전으로 들어오면, 익히 알려진 일화 중 하나가 바로 TV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묘사된 것처럼 울돌목에 철쇄(쇠사슬)를 설치해 무수한 왜선을 격침시킨 일이다. 거의 정설처럼 굳어져서 전해온 이야기인데, 이순신을 오래도록 연구해온 해군 장교 임원빈 대령이 ‘철쇄설치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적 있다. 이순신을 신격화하는 분위기 속에서 ‘설화’와 ‘사실’이 혼재된 내용이라는 것. 그것이 대승의 결정적 요인이었다면 오래전부터 준비했어야 하는데, 영화에서처럼 벽파진에 머무는 동안 「난중일기」에 그런 내용은 단 한 줄도 기록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그런 비현실적 내용이 설득력을 얻은 이유는 12척 대 330척의 대결이라는 절대 열세를 극복한 요인을 어떤 식으로든 합리적으로 분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명량>은 울돌목처럼 회오리치는 그 의문의 명량해전으로 들어가는 영화이자, 미흡하게 시작한 전투를 완벽한 승리로 마무리한 이순신의 초인적 면모를 비로소 전투에 들어가서야 완성하는 영화다. 김한민 감독에게 명량해전은 이순신의 혁혁한 전과임과 동시에, 비로소 ‘완전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그의 인간성을 완성하는 극적 무대였던 셈이다. 하지만 명량대첩으로 선조는 이순신에게 숭정대부(崇政大夫)로 서훈하려 했으나 중신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렇게 그의 비극은 계속됐다. 말하자면 <명량>은 끝나지 않은 싸움이었다.
<한산: 용의 출현>

개봉일: 2022년 7월 79일
상영시간: 129분
흥행: 726만 관객
한산대첩 : 1592년(선조 25년) 음력 7월 8일
당시 이순신 장군 나이 48세
전법: 한산 앞바다 학익진(鶴翼陣
“이 싸움은 의(義)와 불의(不義)의 싸움이다.” - <한산> 명대사

<한산: 용의 출현>(이하 <한산>, 2021)은 <명량> 이전의 이야기다. 즉, 박해일이 연기하는 이순신 장군은 ‘이순신 3부작’ 안에서 가장 젊은 나이의 이순신 장군이다. 한산대첩은 1592년(선조 25년) 음력 7월 8일 통영 한산도 앞바다에서 조선 수군이 왜군을 크게 무찌른 해전으로, 이 전투에서 육전에서 사용하던 포위 섬멸 전술 형태인 학익진을 처음으로 해전에서 펼쳤다.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 발발 후 15일 만에 한양을 빼앗기며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반면 왜군은 명나라로 향하는 야망을 꿈꾸며 연승에 힘입어 한산도 앞바다까지 파죽지세로 당도한다. 앞선 전투로 손상된 거북선의 출정 불가, 왜군의 연합을 통한 절대적인 군사적 열세인 상황, 조선 장수들의 의견 또한 첨예하게 맞서며 이순신 장군(박해일)의 고뇌 또한 깊어진다.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 속, 이순신 장군은 조선의 운명을 건 압도적 승리를 꿈꾼다. 임진왜란의 전세가 바뀌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전투 중 하나로 일본 수군의 수륙병진을 완전히 박살 낸 대첩이며, 이 한산해전에서 승리하면서 평양까지 승승장구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이 추가 보급 및 병력 지원을 받지 못하여 평양성에 눌러앉게 됐다. 수군의 도움을 받지 못하니 전라도를 공격하는 왜군의 움직임도 둔화될 수밖에 없었다.

7월 27일 개봉하며 726만 관객을 동원했던 <한산>은 몇 달 뒤인 11월 16일, 이보다 21분 15초 추가된 감독 확장판인 <한산 리덕스>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다양한 인물들의 서사들과 함께 더욱 풍부한 한산해전 시퀀스들이 추가됐다.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인 모습은 물론, 왜군 진영의 연합 계기와 더불어 의병들의 이야기 등 각 캐릭터의 이야기가 더욱 풍부해졌다. 본편에 등장하지 않았던 이순신 장군과 그의 어머니가 출정 전 대화를 나누는 장면, 왜군 진영의 연합 계기와 더불어 의병들의 이야기, 그리고 권율 장군으로 분한 김한민 감독의 모습도 만나볼 수 있다(<명량>과 <노량>에서는 남경읍 배우가 권율을 연기한다).
당시 김한민 감독은 <한산 리덕스>에 대해 “오리지널 시나리오에서 내가 그렸던 이 작품의 느낌을 충실히 반영하려 노력했다. 관객들의 이해도와 몰입도를 높이고, 조금 더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여름 극장 개봉 당시에는 러닝타임에 대한 스스로 압박이 있어서 압축적으로 준비했다”는 말과 함께 “앞선 여름 극장판은 러닝타임 때문에 회상하는 식의 구성이었다면, 이번엔 원래 시나리오대로 서사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타임라인을 변경했다. 해전 CG 추가 신도 상당하다. 극장판에 다소 미진했던 CG 완성도도 높였다”고 했다. 더불어 권율 장군으로 직접 출연한 것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내가 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면서 “이번 작품에서 권율 장군은 한 씬 정도 나온다. 감독인 내가 출연하는 것도 관객들에게 재미를 줄 수 있겠다 싶었다. 사전에 헤어, 분장, 카메라 테스트도 해보고 나름 스스로 오디션을 해봤다. 다행히 괜찮겠다는 주변 반응도 있어서 하게 됐고 관객들에게 소소한 기쁨을 드렸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 장군이 직접 쓴 「난중일기」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다고 종종 얘기해왔다. 그런데 명량해전은 「난중일기」에서 상세하게 묘사되지만, 한산해전은 「난중일기」에 나오지 않는다. 1592년 들어서는 “6월 10일 맑음”이라는 짧은 한 줄 일기 이후, 6월 11일부터 8월 23일까지는 아예 빠져있다. 여러 추측을 할 수 있겠으나, 그 70여 일 동안 온전히 전투에만 집중했다고 볼 수 있다. 일기를 쓸 시간이 없을 정도로 전투가 치열했다는 증거다. 그리고 실제로 상대적으로 그나마 젊은(?) 시절에는 일기 분량이 많지 않다. 당시 <한산>이 개봉했을 때 ‘이순신 장군이 말이 별로 없다’라는 평도 많았는데, 「난중일기」로만 놓고 봐도 실제로 별로 말과 글이 별로 없었던 때라 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을 연기한 박해일은 그해 앞서 6월 29일 개봉한 <헤어질 결심>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그래서 “조선이 그렇게 만만합니까?”, “왜구를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트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왜군이 완전히 붕괴되었어요”처럼 <헤어질 결심>의 대사를 패러디하여 <한산>에 적용한 무수한 짤들이 생성되기도 했다. 그처럼 전혀 다른 결의 두 한국영화가 절묘하게 만났다. 최근 <노량>이 앞서 개봉해 천만 관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서울의 봄>과 이순신 장군의 존재를 통해 한데 엮이는 것처럼(<서울의 봄>에서 정우성이 연기한 이태신 장군의 이름은 이순신에서 왔다고 할 수 있고, 그가 광화문으로 향할 때 이순신 장군 동상을 우러러보는 장면이 있다), 반갑게도 다시 극장가에 활기가 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