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날선 기운이 가시지 않은 2025년 1월, 기쁘면서도 안타까운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바로 무기수 김신혜 씨가 2025년 1월 6일, 20여 년간의 누명을 벗고 무죄를 선고받은 것이다. 당시 아버지 살해 혐의로 긴급체포된 김신혜 씨는 무죄를 주장했지만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 중 2015년 재심 신청으로 현재의 판결까지 이르게 됐다. 재판부는 무죄 선고 이유 중 "경찰 측의 영장 없는 압수로 위법수집증거"를 거론했다. 기나긴 복역 기간을 누가 온전히 보상해줄 수 있겠느냐마는, 지금이라도 진실이 밝혀지게 돼 다행이기도 하다. 이처럼 수사 단계의 외압, 주변 사람의 편견, 이외의 예상외의 이유로 누명을 쓰고 훗날 재심으로 무죄를 선고받는 사례는 한국뿐만 아니라 나라마다 대표 사례가 있을 정도다. 이번 김신혜 씨의 변호사로 나선 '재심 전문 변호사'의 과거 사건을 비롯해 재심으로 무죄를 선고받은 사건을 그린 영화를 소개해본다.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ㄴ <재심>
김신혜 씨의 변호를 맡아 무죄 판결을 얻어낸 박준영 변호사는 일명 '재심 전문 변호사'로 명성이 자자하다. 2007년 유죄 판결을 받은 수원역 노숙 소녀 살인 사건을 악착같이 파고들어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여러 굵직한 사건의 판결을 뒤집어 주목받았다. 그중 2000년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이끌어낸 과정이 영화 <재심>에 담겼다. 이 사건은 진범을 목격한 10대 소년을 상대로 경찰이 강압적인 폭행 행위로 허위 진술을 유도해 유죄 판결을 받게 한 희대의 사건. 영화는 해당 사건을 영화화하면서 많은 부분에 영화적 각색을 했지만, 변호사 캐릭터에게 '이준영'이란 이름을 줘 박준영 변호사의 공을 다시금 알렸다.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
ㄴ <소년들>
앞선 <재심>처럼 박준영 변호사의 재심 중 영화화된 사건은 1999년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이다. 나라슈퍼에 3인조 강도가 침입해 금품을 훔치던 중 고령의 할머니가 질식사한 강도치사 사건으로, 당시 인근에 있는 청년 3명이 자백 진술을 토대로 징역형을 받았다. 복역 중인 청년들이 강압적인 수사로 거짓 진술을 했다 여러 차례 주장했지만 묵살됐고, 2016년 진범 중 한 명이 누명 쓴 세 사람에게 사죄하겠다며 범행을 자백하며 완전히 뒤집혔다. 박준영 변호사가 이 사건의 재심 변호를 맡았고, 2016년 복역 중인 세 람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을 영화화한 <소년들>은 희한하게도 변호사가 아닌 형사로 초점을 맞춰 수사극 형태로 사건을 전한다. 이 지점에서 <재심>과의 기묘한 공통점이 드러나는데, <재심>이 변호사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당시 수사를 같이 진행한 황상만 반장의 행적을 줄인 것과 달리, <소년들>은 변호사가 아닌 황상만 반장을 모티브로 한 형사 황준철을 중점으로 내세운 것이 묘하다.


웨스트 멤피스 쓰리 사건
ㄴ <데빌스 노트>


미국판 <소년들>이라 할 수 있는 영화 <데빌스 노트>(물론 이쪽이 사건도, 영화도 먼저 나왔지만). 이 영화는 세 소년의 시체가 발견된 후 10대 청년 3명이 용의자로 유죄 판결을 받은 '웨스트 멤피스 쓰리 사건'을 다뤘다. 제목의 '노트'는 글을 쓰는 노트가 아니고 매듭(knot)을 뜻하는데, 용의자가 된 세 청소년이 악마 숭배자라는 오명을 쓰면서 물적 증거 없이 유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변호사나 경찰이 아닌 사설탐정 론 렉스와 피해 소년의 어머니이면서도 용의자 소년들을 범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팸 홉스의 시선으로 사건을 재구성한다. 두 인물은 실제 사건에서 영화 속 행적을 보여주며 세 소년의 무죄 판결을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빠른 사건 종결을 위해 사건의 잔혹함을 앞세우고 엉성한 수사를 진행한 경찰과 좀처럼 이성적이기 힘든 상황에서도 합리적 의심으로 진실에 도달하는 두 사람이 극렬하게 대비된다.
케니 워터스 누명 사건
ㄴ <컨빅션>


2010년 영화 <컨빅션>의 실제 사건은 이런 유의 사건 중에서도 무척 특이한 케이스인데, 무고 피해자의 혈육이 직접 사건의 변호를 나서 무죄 판결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컨빅션>은 1982년 케니 워터스가 살해 죄로 체포, 수감되자 동생 베니 앤 워터스가 직접 변호사가 돼 오빠의 무죄를 입증하려 하는 일련의 과정을 담았다. 그렇다, 이 사건은 이미 프로페셔널한 변호사가 아닌 오직 혈육을 위해 변호사 교육을 받아낸 동생이 끝내 무죄를 이끌어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례로 유명하다. 물론 과정은 쉽지 않았다. 1983년 케니의 유죄 판결 후 2001년 무죄 판결까지 18년이 걸렸다. 수감된 케니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로스쿨을 다니며 변호사 시험을 준비한 베니 앤의 인생 또한 완전히 뒤바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케니를 믿은 베니는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고 사건을 재조사하며 결정적인 단서들을 모았고, 끝내 유죄 판결 취소와 전면 재수사를 받아내 무죄 판결의 단초를 마련했다. 2010년 영화 <컨빅션>은 무엇보다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는데, 힐러리 스웽크가 베리 앤으로, 샘 록웰이 케니로 출연해 연기력으로 정평 난 두 사람의 시너지를 볼 수 있다.
일본 엔자이 현상
ㄴ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일본 사회엔 이렇게 하지 않은 일에 누명을 쓴 사례를 일컫어 '엔자이'(원죄)라고 부른다. 단어가 따로 있을 정도로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된 바 있다. 관료주의적 제도가 수사기관에도 깊게 자리한 데다 재심 기각률이 높아 엔자이 사례가 많았고 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워낙 유명한 영화라서 다른 작품을 소개하고 싶지만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만큼 일본 사회 내 빈번한 엔자이와 부실한 수사, 성급한 판결의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는 없다. 감독 겸 각본을 맡은 수오 마사유키는 엔자이 관련 사건을 다수 조사해 이를 종합하던 중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2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한 가장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했다. 이 영화가 인기를 끌고 해외에서도 화제를 모았지만 2011년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가 3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미타카 버스 사건’이 발생해 해당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이런 이유로 법조인이 등장하는 일본드라마는 엔자이 사례를 한 번씩은 짚고 간다. 2018년 방영한 <99.9 ~형사 전문 변호사~>나 2019년 <이노센스 원죄변호사>는 아예 엔자이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