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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감독&각본 확정한 〈스파이더맨4〉이모저모

씨네플레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수익은 19억 달러였다. 한화 약 2조 원에 이르는 수익을 낸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이런저런 문제로 미뤄진다 하더라도, 그게 소위 어른들의 사정(이라고 읽고 소니와 마블의 저작권 협상 테이블이라고 부른다) 때문이라 하더라도 결국에는 영화를 스크린에 개봉시켜 큰 수익을 거두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이 이 시리즈를 포기할 리는 없다.

아니나 다를까, 네 번째 스파이더맨 영화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개봉과 거의 동시에 제작을 확정했다. 전 세계 19억 달러의 흥행을 올리며 대단한 스코어를 기록한 만큼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정작 24년 하반기가 된 현재까지도 개봉까지 1년 넘게 남아 있는 상태다.

그래도 최근 각본은 그대로 유지하고 <샹치와 텐 링스의 전설>의 데스틴 크리튼으로 감독을 확정하며 본격적인 시동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엄청난 흥행을 했던 것치고는(... 혹은 그래서..)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볼만한 히어로영화라고는 참 찾기 힘든 요즘, 스파이더맨 소식이 단비처럼 느껴지는 건 솔직히 기분 탓은 아니다.

MCU 스파이더맨은 성공했다.
MCU 스파이더맨은 성공했다.

MCU <스파이더맨 4>(가제)의 본격적인 제작이 미뤄진 데에는 여전히 어른의 사정이 끼어 있었던 것 같다. 2021년 12월, 거의 개봉하자마자 다음 시리즈 제작을 확정했던 이 영화가 이듬해 말까지 루머만 무성했던 이유는 소니와 마블의 협상이 아무래도 순탄치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 보인다.

소니 픽처스는 계속해서 스파이더맨 주변 캐릭터들을 토대로 한 멀티버스를 실사화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베놈> 시리즈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하게 성공한 영화가 아직도 없긴 하지만(<모비우스>, <마담 웹>...) 소니의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SSU)'에 대한 열망은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다.

SSU를 연 〈베놈〉​
SSU를 연 〈베놈〉​

하지만 마블 스튜디오의 입장은 좀 다른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는 인피니티 사가 종료 후 야심차게 시작된 멀티버스 사가에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기록적인 성공을 거두기는 했지만, 이런저런 문제로 번번이 실패하면서 멀티버스에 대한 욕심을 (이제야) 좀 접어가는 상태였던 것.

이 때문에 소니와 마블의 입장이 달라 협상 진전 속도가 빠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소니 입장에서는 계속 영화를 만들지 않으면 판권이 마블로 복귀해 버릴 테니 흥행에 성공한 바 있는 SSU를 계속 유지해 나가고 싶었을 테고, 이를 위해서는 '스파이더맨 없는 스파이더맨 유니버스'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MCU 스파이더맨이 유지되기를 바랐을지도. 자기들이 만드는 게 여러모로 좋기야 하겠으나 영화적인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데다, 많은 대중 관객들이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에게 호응을 보인 상황에서 이전의 시리즈(<어메이징 스파이더맨>)를 다시금 꺼내들기도 애매했을 것 같아 보이긴 한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케빈 파이기는 <스파이더맨 4>에 대해서 거리에서 벌어지는 전투 위주의 액션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감독으로 샹치 2편을 담당할 것으로 보였던 데스틴 크리튼을 낙점한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을 것 같아 보인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서 데스틴 크리튼 감독이 보여준 액션 연출은 상당히 퀄리티가 높았고, 홍콩의 유명 배우들이 등장해 옛 홍콩영화에서 보던 무협 액션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했다. 이런 점이 거미줄을 이용해 맨손 격투 위주로 전투하는 스파이더맨에게 지금까지의 트릴로지에 없었던 고퀄리티 액션씬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거기에 지금 스파이더맨은 상당히 불안한 상황이기에 빌런의 존재가 더 위협적일 수 있는데, 주인공인 샹치보다 빌런인 웬우가 더 강력한 매력을 갖고 있었던(아마, 양조위이기 때문에..)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스토리라인을 떠올려 본다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상태의 '영원히 고통받는 피터 파커'를 그려낼 수 있다. 그게 작중의 피터에겐 고된 일이긴 하겠지만, '스파이더맨' 서사로서는 상당히 유의미하고 원작의 스파이더맨과 더 흡사해지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간 MCU의 서사는 어린 피터 파커에겐 가혹한 전개이긴 하다. 본인의 실수도 컸지만 이제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에게 '큰 힘에 따르는 큰 책임'을 오롯이 홀로 감당해야 했으니 말이다. 책임을 지기 위해 이제 든든한 우군이었던 친구들과 가족은 물론이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스파이더맨을 잊어버리게 되었으니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는 정말 홀로서기를 시작해야만 한다.

피터가 혼자 좁은 아파트에서 삶을 꾸려가기 위해 슬픈 표정으로 눈을 뜨는 마지막 장면은... 이제야말로 장장 3편의 트릴로지를 거쳐 성인이 된 피터 파커가 진정한 히어로로 거듭난 모습이었달까.

홀로서기를 해야만 하는 MCU의 피터 파커(톰 홀랜드)
홀로서기를 해야만 하는 MCU의 피터 파커(톰 홀랜드)

말하자면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정말 어린애 같기만 했던 MCU판 피터 파커가 토니로부터의 가차없는 교육(그리고 가차없는 지원)은 물론이고 인피니티 워와 블립을 거쳐 '노 웨이 홈' 상태가 된 현시점까지 정말 가혹한 과정을 거쳐 히어로가 된 셈이다.

생각해 보면 히어로로서는 의미 있는 서사다. 일반인이라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강력한 힘과 능력을 갖춘 히어로들이지만, 그들이 그런 힘을 갖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큰 힘에 따르는 큰 책임'도 감당해야 한다. 캡틴 아메리카가 슈퍼 솔저 혈청을 맞기 전부터 정의로웠듯이, 아이언맨이 아프간 현지의 테러범들을 보고 천문학적인 액수의 무기 판매를 포기했듯이, 히어로가 히어로로서 관객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만한 당위성도 필요하다.

MCU의 <스파이더맨> 트릴로지가 인기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파이더맨'으로서는 호불호가 갈렸던 이유가 아마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MCU의 피터 파커는 어벤져스에 합류해 활약하며 멤버로서 대우받기에는 여전히 어린 구석이 많았고, 솔로무비에서는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것 같은 전개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 '노 웨이 홈' 이전과는 사뭇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피터 파커를 만나볼 수 있게 됐다.

<스파이더맨 4>의 각본으로 삼부작을 담당한 크리스 메케나와 에릭 서머스가 그대로 기용된 데에는 아마도 이런 서사를 공들여 빌딩해 온 이 두 사람이 드디어 히어로가 된 피터가 새로운 서사를 이어가는 과정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스크린 밖에서까지 이어졌던 MJ(젠데이아)와의 로맨스는 과연.
스크린 밖에서까지 이어졌던 MJ(젠데이아)와의 로맨스는 과연.

미국 작가협회의 파업과 마블 내부의 문제, 여러 번 교체된 감독과 각본 담당자 등으로 인해 <스파이더맨 4>의 촬영은 내년 초에나 시작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개봉은 2026년으로 예정되어 있어 아직 톰 홀랜드가 연기하는 피터 파커를 만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소니의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실사화가 계속 고배를 마시면서 시니스터 식스와 스파이더맨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큰 그림이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드는 건 사실이다. 다만 예고편만큼은 꽤 멋지게 뽑힌 <크레이븐 더 헌터>가 희망이라면 희망일 듯.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참 예전 같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나마 세계관 연계보다는 개별 작품의 퀄리티에 집중하겠다는 방향성으로 선회했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오랜 시간 동안 성장해 온 MCU판 피터 파커가 새로운 트릴로지에서는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조금 간절하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