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언맨....아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복귀한다.
솔직히 이 글의 내용을 생각할 때까지만 해도 그냥 정말 루머일 줄 알았다. 복귀를 하더라도 그냥 회상씬이나 과거씬 일부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고, 아이언맨으로서의 복귀가 아닌 다른 역할로의 복귀일 거라는 이야기를 봤을 때도 그저 루머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몇 차례에 걸쳐 반복적으로 MCU 복귀가 없을 거라고 언급해 왔었으므로.
하지만 코믹콘 자리에서 제법 인상적인 방식으로, 케빈 파이기는 여러 가지 사유로 다시 써야만 하는 MCU의 미래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다시금 등장시켰다. 인피니티 사가의 화려한 마무리였던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비롯해 MCU의 주요 작품을 연출한 루소 형제도 MCU에 돌아오는 이 시점, 과연 MCU는 이들이 가장 빛났던 시절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인가.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아이언맨>부터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까지) 인피니티 사가가 진행되던 11년간은 화려하기 그지없었으나, 이후 이렇다할 성공 작품 찾기가 어려웠다. 플랫폼은 확장되고 작품이 많아지면서 캐릭터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이전의 MCU처럼 캐릭터 자체의 개성이나 매력은 부족했다.
아마도 '멀티버스'의 도입으로 거침없이 확장된 무대와 세계관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계관과 설정에 대한 지리한 설명이 작품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런 점은 작품에 대한 진입장벽이 되었는데, 안 그래도 이 장르가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더 많은 영화를 봐야만 했던 장르였기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피로를 느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히어로무비라는 게 즐거우려고 보는 오락영화인데, 어지간한 책 한 권은 족히 될 '공부'를 해야 이해할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숙제의 영역이 아닌가.

뭐, 공부라고 해도 그만큼 재미있으면 또 모를까. 일단 재미가 있어야 공부했을 텐데 그조차도 아니었다. 새로운 캐릭터는 매력 어필에 실패했고, 기존 캐릭터는 팬들이 기대한 것을 주지 못했다. 별개 시리즈로서 나름의 흥미로운 지점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미즈 마블도, 문 나이트도 기대한 만큼의 파급력은 없었다. 심지어 늘 무난한 재미와 소소한 매력으로 어필했던 <앤트맨> 시리즈는 스케일 확장에 도리어 역대급으로 흥행에 참패하고 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교적 잠잠했던 이 프랜차이즈에 배우 리스크가 터졌으니, 무려 어벤져스 다음 시리즈의 주역 빌런 캉을 맡은 배우, 조나단 메이저스의 폭행 혐의였다. 갑론을박도 있었지만 결국 유죄 판결을 받았고, 이와 동시에 마블은 그를 해고했다.

아무래도 희망 사항이 반영된 것 같았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복귀를 비롯해 원년 멤버 모두의 복귀, 페이즈 4 이후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의 폐기, (옆 동네 DCEU가 그렇듯이) 페이즈 4와 5의 전면 리런치, 예정된 영화의 취소 등 MCU를 둘러싼 수많은 루머들이 오갔던 데에는 결국 MCU가 다시금 재미있는 콘텐츠를 선보이길 기다리는 팬들의 염원에서 비롯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아이언맨의 죽음 후부터 팬들의 희망 사항이었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복귀 루머가 나오기 시작한 건 아주 오래전부터였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건 조나단 메이저스의 위기 시점쯤이었다. 물론 그때만 해도 캉 대신 어벤져스를 위협할 슈퍼빌런으로 낙점된 닥터 둠으로 돌아올 거라는 확신은 불가능했으나, 난파선 같아 보였던 MCU 프랜차이즈를 다시 살릴 방법은 멀티버스의 재해석을 불사하고서라도 '어벤져스' 원년 멤버들을 오랜 무대로 돌려놓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상당히 퍼져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MCU의 팬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캐릭터는 단연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였을 것이다. MCU는 애초에 토니 스타크로부터 시작되었고, 그의 대사로부터 MCU의 확장성이 출발했으며, 지금까지 직간접적으로 수많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케빈 파이기라고 그걸 몰랐을 리 없을 테고, 결론적으로 그는 MCU가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었던 그 알 수 없고 공부가 필요한 '무언가'보다는 팬덤이 보고 싶어하는 걸 보여주기로 결정한 것 같다.
실로 오랜만에 MCU의 다음 영화에 다시금 기대감을 갖게 하는 소식이었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실제로 코믹콘 현장에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가면을 벗고 얼굴을 드러냈을 때 좌중은 환호성을 내질렀고, 아마 상당수의 팬층은 물론 MCU를 한 편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최소한 호기심은 갖게 했을 것이다. 거기에 닥터 둠은 마블 코믹스에서 가장 상징적인 캐릭터 중 하나고, <어벤져스> 시리즈의 6편이 될 '시크릿 워즈' 이슈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캐릭터이기도 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복귀작으로는 제법 훌륭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2020년에 출간된 이슈 「인퍼머스 아이언 맨」(국내도 정식 발간됐다)은 마블의 퍼스트 패밀리인 판타스틱 포가 현역이던 시절부터 상징적 빌런이었던 닥터 둠이 아이언 맨의 빈자리를 이어가기로 마음먹는다는 내용이다. 물론 판타스틱 포의 리더인 리드 리처즈가 악당이 되는 바람에 닥터 둠이 영웅이 될 만한 서사적 당위성이 있기는 했으나 제법 흥미로워지는 지점이기는 하다.
대표적인 어벤져스이자, 뭔가 까칠하고 껄렁하지만 그래도 늘 우리 편이었던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가 닥터 둠이라는 마블 대표 악당 캐릭터로 돌아온다니 어쩐지 좀 어색하긴 하다. 하지만 둠이 은근 개그캐(!!) 면모도 있고 작중에서 1, 2위를 다룰 만큼 지능 면에서도 압도적인 스탯인 데다, 사실상 어떤 면도 크게 뒤지지 않는 최강자 중 하나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토니 스타크’의 재기용은 어쩌면 영전일 수도 있겠다. 누가 알겠나, 인퍼머스 아이언 맨처럼 갑자기 우리 편이 되어줄지(물론 희망 사항이다).
아주 새삼스럽지만… 씁쓸하기도 하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재기용은 결국 마블의 새로운 10년 계획 실패의 인정인 데다 이런 기획이 초심처럼 참신할지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마블에게 필요한 건 장대한 세계관이나 스릴 넘치는 사건이라기보다는, 매력 있는 캐릭터 그 자체이고 그 때문에 그걸 잘 해낼 수 있는 검증된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돌아오는 것 아닌가. 하지만 루소 형제가 '일관적인 캐릭터 빌딩'에 재능이 있냐고 하면 솔직히 그건 잘 모르겠는 부분이기는 하기에.

정말 아주 오랜만에 성공적인 흥행을 기록하고 있는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의 데드풀, 라이언 레이놀즈가 모 인터뷰에서 했던 말처럼, 팬들은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맨임을 자기 입으로 밝히던 그 순간을 몇십 년간 기억할 것이다. 저예산으로 출발한 <데드풀> 시리즈에 참여하며 스펙터클한 액션씬보다는 매력 있는 캐릭터가 더 의미 있다는 걸 배웠다는 그로부터 마블 스튜디오가 뭔가를 얻어 갔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