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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를 〈크레이븐 더 헌터〉

씨네플레이
〈크레이븐 더 헌터〉
〈크레이븐 더 헌터〉


마블이 유일하게 회수하지 못한 판권 스파이더맨, 그걸 토대로 어떻게든 뭔가 해보려고 꾸준히 노력하는 소니. 이들의 시도는 제법 흥미로운 아이디어이긴 하나, 근래에 들어서는 솔직히 악전고투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특히 이래저래 불안했던 <마담 웹>이 예상을 뛰어넘지 못하는 걸 목격하면서 더더욱 그렇게 됐다.


소니는 자사가 보유한 스파이더맨 판권을 토대로 자체 유니버스를 수립하고 있는데, 그게 바로 '스파이더맨 소니 유니버스'(SSU)다. 이름은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지만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는 영화들 속에서 스파이더맨은 도통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이상하게 애니메이션은 제법 멋지게 만들었으면서 실사영화는 계속 뭔가 부족한 결과물만 내고 있는 이 유니버스, 연이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예고편을 들고 돌아왔다.


이 많은 스파이더맨이 SSU엔 없다.​
이 많은 스파이더맨이 SSU엔 없다.​


따지고 보면 스파이더맨 소니 유니버스의 기반은 결국 스파이더맨을 필두로 한 빌런 캐릭터까지 포함된 판권 보유에서 온다. 이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겠지만, 스파이더맨과 그의 아치 에너미, 동료를 포함한 모든 스파이더맨 관련 판권을 소니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니는 늘 스파이더맨의 빌런들을 무기 삼아 영화를 만들고자 했고, 한때는 스파이더맨 빌런들의 팀업인 '시니스터 식스'의 실사화를 꿈꾼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흥행에 고전을 겪자 계획은 밀리고 밀리기 시작했고, 그러던 와중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스파이더맨 없는 어벤져스 실사화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판권을 대여하는 형태로 <스파이더맨: 홈커밍>이 나왔고,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이제 소니는 욕심이 생긴 모양이다. 제작 계획 발표는 아주 오래 전이었지만 여전히 포기는 하지 않았던(소니 픽처스는 기회가 될 때마다 이 빌런 무비들에 대해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말해 왔다) 스파이더맨 빌런 캐릭터들의 실사화를 드디어 실행에 옮긴다. 그렇게 나올 수 있었던 영화가 바로 <베놈>이었다.

 

〈베놈〉
〈베놈〉


베놈의 실사화 구현은 나쁘지 않았다. CG나 액션도 제법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주인공 에디 브록(베놈의 대표적인 숙주)과 베놈의 관계에 대한 개연성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고 어쩐지 이해되지 않는 이들의 관계는 결국 심비오트 베놈이 에디를 사랑해서가 아니냐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였는데. 말하자면 다른 건 다 괜찮다 치더라도 스토리 면에서 이래저래 부족했다는 뜻이다. 덕분에 평가는 혹평을 받아야 했지만 강력한 인지도와 스파이더맨 아치 에너미라는 점에 힘입어 어쨌거나 8억 달러 흥행에 성공한 <베놈>은 속편 제작을 확정한다. 이를 통해 자신을 얻었던 건지 소니는 다음 빌런 무비로 계획을 이어나갔다. 

 

헛발질의 시작은 딱 <모비우스>부터였다. 자레드 레토라는 걸출한 배우를 캐스팅하고도 미묘한 연출과 지루한 액션씬은 모비우스라는 캐릭터가 갖고 있는 특수한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히어로든 빌런이든 초인이 나오는 한 이 장르에서 주인공이 '쩌는 실력자'라는 걸 어필 못하면 끝 아닌가.
 

〈모비우스〉
〈모비우스〉


굳이 의미를 찾는다면 스파이더맨 소니 유니버스라는 세계관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이런 정도의 완성도라면 (쿠키 영상처럼) MCU와의 크로스오버를 기대하기는 커녕, 그냥 엮이지 않고 독자노선을 타다가 조용히 사라져 주는 게 낫겠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래저래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도 혹평을 받았던 자레드 레토로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2023년 <마담 웹>이 개봉했다. 마담 웹은 이전에도 소개한 적 있듯이 스파이더맨 유니버스를 다루기 위해서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 중요한 캐릭터일 수 있다. 원작 코믹스에서 스파이더맨 세계관을 좀 더 넓게 확장시켰던 주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영화는 <판타스틱 4>(2015)와 비견될 정도로 대차게 흥행에 실패해 망작 타이틀을 거머쥔(...)다.
 

미래를 예감한 마담 웹의 불안한 눈빛
미래를 예감한 마담 웹의 불안한 눈빛


두 작품이나 말아먹은 시점에서 뭘 더 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자본의 힘인가. 예정되었던 대로 <크레이븐 더 헌터>는 진행 중이다. 최근 2차 예고편을 공개했고 올해 12월에 북미 개봉 예정(국내 개봉일은 미정)이다. 하지만 연달아 두 작품이 흥행과 평가 두 방면에서 완전히 실패했기 때문에 아마 <크레이븐 더 헌터>까지 실패한다면 더 이상 소니에게 기회는 남아 있지 않을 것 같다(물론 돈으로 밀어붙인다면 다른 이야기일지도).

<마담 웹>이 대차게 실낱같은 기대를 저버린 이래 소니에게 기대감은 남아 있지 않은 터라 예고편을 볼 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상하다. 제법 괜찮은 영화 같아 보인다. 아버지의 그늘과 새로운 적, 감당해야 할 숙명과 자신 안에 숨어 있는 야만성과 흉포함을 짧은 예고편 내에서 꽤 효과적으로 보여줬다.

 

크레이븐을 연기한 애런 존슨
크레이븐을 연기한 애런 존슨


여기에 애런 테일러 존슨의 크레이븐은 원작의 크레이븐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코믹스 속에서 조금 유머러스하기도 했던 예전 코스튬(유두빔으로 오인받았던 사자 장식이라든지)이 세련된 느낌으로 재해석된 모습이라 크레이븐이 스크린을 누빌 모습이 꽤나 기대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애런 테일러 존슨은 히어로무비에 꽤 익숙한 배우일 것이다. 그 저명한 시리즈 <킥 애스>의 주인공이었고, 이미지가 확 다르긴 하지만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스칼렛 위치의 쌍둥이 오빠인 퀵실버 역할로 출연하기도 했다(물론 한 편만에 유명을 달리하긴 했으나). 일단 '폼 나는 주인공' 측면에서는 여러 가지로 합격점일 것 같긴 한데, 소니가 늘 잘하지 못했던 스토리 측면에서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가 관건이 아닐까 싶다.


연출을 맡은 J.C. 챈더 감독이 대중영화보다는 보다 작품성 있는 영화 쪽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점을 돌이켜 보면 대중에게 어필하기 쉬운 영화보다는 묵직한 영화에 가까울 것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여기에 비교하기는 많이 부족한 느낌이지만 DC 실사화가 나락으로 가던 그 시점 토드 필립스의 <조커>가 보여준 전환점처럼 다른 자구책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상당히 희망적인 예측이겠지만...

 

원작의 크레이븐
원작의 크레이븐


원작 코믹스에서 크레이븐의 정체는 러시아 상류층 출신의 사냥꾼 세르게이 크라비노프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가족을 죽이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흉포한 인물이다. 사냥꾼으로서의 대의와 신념이 모든 것에 우선하며 이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이복동생인 카멜레온에 의해 스파이더맨이라는 '사냥감'을 눈독 들이게 된 크레이븐은 스파이더맨을 사냥한 사냥꾼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그를 통해 뭔가를 얻기보다는 그저 '스파이더맨을 사냥하기 위해' 악전고투를 계속한다. 결국 그러던 끝에 스파이더맨을 죽이는 데 성공하기도 했으며 완전한 승리를 위해 스파이더맨이 잡지 못했던 빌런을 사냥하기까지 한다.


예고편에서는 원작의 설정이나 관계성을 많이 가져왔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 주인공 세르게이의 가족관계부터 적이었지만 연인이 된 칼립소와의 애정관계 등이 유지된 것처럼 보인다. 또한 아버지와 동생('카멜레온' 드미트리)과 관련하여 사건이 엮인다는 점도 동일한 듯.

‘카멜레온’으로 추정되는 크레이븐의 동생, 드미트리 크라비노프
‘카멜레온’으로 추정되는 크레이븐의 동생, 드미트리 크라비노프


예고편의 흐름과 루머 몇 가지로 미루어 보면 영화의 내용은 세르게이 크라비노프라는 인물이 자신 내부에 있던 야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방식으로 표출하게 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즉 캐릭터의 기원 서사에 꽤나 공을 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갑자기 인간을 사냥하는 러시아 재벌을 갖다 대는 것보다야 훨씬 합리적인 흐름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가족과 대립하고, 결국 그들과 칼끝을 겨누게 된다는 점은 안티 히어로 무비로서는 꽤나 적합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이래저래 BGM부터 내레이션 연출, 캐릭터 비주얼, 예상되는 스토리 흐름에 원작 팬들이라면 한 번쯤은 보았을 일러스트를 그대로 재현한 포스터까지 기대되는 부분이 꽤 많은 영화다. 3개월 남은 시간 동안 부디, 허점이 있다면 잘 덮고 장점은 확대시켜서 좀 좋은 영화로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크레이븐 더 헌터〉
〈크레이븐 더 헌터〉


개인적으로 <크레이븐 더 헌터>는 꼭 살아남아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소니의 스파이더맨 실사화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크레이븐의 마지막 사냥'이라는 전설적인 이슈 실사화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내용상 R등급은 확정이겠으나(크레이븐이 스파이더맨을 생매장하는 것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크레이븐의 눈에 비친 스파이더맨과 스파이더맨 본인의 중첩된 자아(히어로로서, 혹은 피터 파커라는 남자로서)의 격차가 상당히 진중하게 그려진다는 점이 포인트인 작품이다. 

 

코믹스 이슈 「크레이븐의 마지막 사냥」
코믹스 이슈 「크레이븐의 마지막 사냥」


전설적인 코믹스 이슈들이 기대만큼 멋지게 실사화된 적은 거의 없긴 하지만... 어쨌거나 기대는 해볼 수 있는 거니까. 그리고 크레이븐이라는 흉악한 캐릭터도 그만의 서사와 신념을 통해 잘 빚어질 수 있다면 소니가 그토록 바라왔던 빌런 통합 팀업무비도 가능성이 없진 않을 것이다.


이래저래 이들의 꾸준한 시도를 마냥 응원해 주기는 어렵다(코믹스 팬으로서는 제대로 만들지 못할 바에는 좀 참아 줬으면 싶기도 하다). 하지만 기대하는 바가 있는 만큼, 일단 제작 계획이 있고 촬영도 마쳤다면 제대로 된 마무리 작업을 통해 좋은 영화가 나와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다. 이젠 애니메이션 말고 실사화도 잘할 수 있다는 거, 다시 증명할 때가 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