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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딸에 대하여〉 오민애 “용기 내서 씩씩하게 한번 살아보자 말하고 싶다”

성찬얼기자
배우 오민애 (사진 제공=찬란)​
배우 오민애 (사진 제공=찬란)​


보통 인터뷰를 마치면, 어떤 식으로 서두를 열어야겠다 대략의 계획이 세워진다. 이번만큼은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배우 오민애는 너무나도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변화무쌍한 캐릭터들 사이에서 서 있는 인간 오민애 또한 너무나도 선명했다. 그렇다고 이 긴 무명 시절을 견디고 마침내 빛나고 있는 배우를 속단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의 캐릭터를 구구절절 허투루 나열하는 식의 것도 피하고 싶었다. 아무튼, 그럼에도 배우 오민애를 만나온 사람으로서 서문을 써야만 했고 그렇기에 그 마음 그대로를 담아 이렇게 기사를 연다.


<딸에 대하여>는 딸 그린(임세미)과 그의 동성연인 레인(하윤경)을 집에 들인 엄마(오민애)의 이야기를 다룬다. 집에서는 다음 세대를, 직장 요양병원에선 이전 세대 제희(허진)와 함께 하는 엄마는 딸이 언젠가 혼자가 될까 두려워 레인의 존재가 마뜩잖다. 오민애는 이 엄마를 맡아 젊은 딸 그린에 대한 걱정과 제희를 버리다시피 하는 주위 환경에 조금씩 침착돼가는 인물의 얼굴을 투영한다. 근래 <파일럿>과 <돌풍>에서 그를 만났다면, 그와는 또 다른 결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고 이전 그의 얼굴을 몰랐더라도 앞으로 그를 기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배우 오민애 (사진 제공=찬란)
배우 오민애 (사진 제공=찬란)


과장 좀 보태면 요즘 극장이나 TV 어디를 봐도 늘 나오시는 것 같다. 근래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 궁금하다.

​너무 행복하다. 30년 동안 무명 생활을, 이것저것 작은 역할들을 했으니 사람들은 아무도 제가 누군지 몰랐다. 그런 세월을 쭉 겪어왔던 것이다. 그런 시간이 이제 열매를 맺는다 싶어서 성취감이 생기고, 개인적으로는 너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제가 제일 듣고 싶었던 말이 '그 역할을 한 게 이 배우였어?' 이런 거다. 이 반응을 보여줄 때 제일 재밌다, '그게 나야!'.(웃음) 그러면서도 이번 <딸에 대하여>는 진지하고, 인간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성찰할 수 있는 깊이 있는 영화로 관객들을 만나게 돼 또 너무 좋다.


오민애가 답변하던 중, 딸 그린 역으로 출연한 임세미가 잠시 올라와 인사를 건넸다. 오민애가 "그린이 맞춰서 초록색 옷 입고 왔어"라고 말하자, 임세미는 "싸랑합니다!"라고 화답했다.

<파일럿>이 성공해서 이제는 거리에서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아졌을 것 같은데.(오민애는 정우의 엄마 김안자 역으로 출연했다)

​신경 안 쓴다. 그리고 이렇게 (꾸미고) 다녀야 알아보든지 하시는데 보통은 민낯으로 다닌다. 배우는 내 직업일 뿐이고 인간 오민애는 분리돼있다. 그래서 배우라는 직업 때문에 내 실제 모습을 가리고 싶지 않다. 유명해져서 불편해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재밌게 봤어요~"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으면 "재밌게 보셨다니 다행이에요~"라는 정도다.

<윤시내가 돌아왔다> 이후 첫 장편이다. 영화를 이끄는 인물로서 부담감은 없으셨나.

배우라면 섬세하고 그 내면의 심리를 표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꿈일 것이다. 그런 역할을 한 것이니 운이 너무 좋았다. 삶을 살면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아픔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인간이 겪는 그 상처의 스크래치가 모여 그 사람의 결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걸 사실적으로 잘 표현해냈을 때 사람들은 거기서 동일시되고 위안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표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했는지도 궁금하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저를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제가 무명 생활 30년을 편안하게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외롭기도 했고 아파하기도 했고. 실수와 시행착오 그런 것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걸 버티고 견디고 살아왔던 게 제 안에 축적되고 내재되지 않았을까. 그걸 그대로 우러나오게 내버려두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슬픔 덩어리, 아픔 덩어리니까. 전 연기를 할 때 연기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딸에 대하여〉
〈딸에 대하여〉

 
스스로는 좌뇌형 배우라고 자주 얘기했다. 배우마다 면밀하게 분석하는 배우도 있고, 현장의 공기에 좀 더 중점을 두는 배우도 있는데 본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확고하게 알고 계신 것 같다.

​예전에 <싸움의 기술>을 촬영할 때였다. 연기 경력이 얼마 되지 않아 열심히 (연기적인) 설정과 세팅을 했다. 이런 상황이니 이렇게 해야지 하고. 연습하고 현장에 갔는데 내가 연습한 대로 안 나오는구나 그때 깨달았다. 그 작품을 하면서 '왜 생각한 대로 현장에서 안 나오지' 고민했다. 내가 누워서 머리로 생각하는 그 캐릭터의 호흡과 현장에서 살아있는 배우와 만나 주고받는 호흡이 다르다라는 걸 그때 알았다. 그래서 '너무 많은 걸 계산하지 않아도 되겠는데? 현장에서 저 배우가 갖고 있는 에너지를 잘 받고 잘 주는 게 더 중요하겠는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가 왜 이 말을 하는지 그것에 대한 이해만 충분히 하게 되면 연습을 안 한다. 그걸 이해하면 현장에서 배우들의 에너지, 그걸 어떻게 잘 받을까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집중해서 잘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리액션이 나온다. 그래서 '나를 내버려두면 되는구나'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물론 드라마는 힘들다. 보통 대사 하나 틀리면 안 돼서 아무래도 더 긴장된 분위기라서. 영화는 감독님들이 직접 쓴 경우가 많아 대사를 틀리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그 말을 살아있게 만들어주는 걸 더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고, 그래서 내가 느끼는 대로 표현하면 되니까 너무 재밌더라. 내버려두면 되는 것, 그렇지만 나를 내버려두는 게 쉽지 않다. 주위 기운도 있고 스태프도 있고 여러 상황이 있으니까 거기서 나를 내버려둔다는 것. 차라리 흔들리지 않는 그것을 키우는 게 중요하겠다. 그러면 자신감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나를 잘 알아야 하고, 그런 식의 과정들을 쭉 밟아오게 된 것 같다.

감독님이 말하길 엄마가 제희(허진)의 기저귀를 뺏는 부분에서 엄마가 처음 소리를 지르는데, 그게 시나리오에 없었던 거고 현장에서 나온 리액션이라고 그러더라. 그 장면을 찍을 때 어떠셨나.

그게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둔 것이다. 촬영할 때 나는 내가 느껴지는 대로 표현하게 되는대로 내버려두는데, 그게 감독님의 생각과 큰 차이가 있다면 감독이 조절하면 된다. 미처 생각 못 한 부분인데 괜찮구나 허용하면 그대로 가는 거고. 방금 그 장면 말고도 뱀을 쫓아내는 장면도 그냥 생각나는 대로 하게 됐다. 이미랑 감독님은 배우가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내버려두는 편이었는데, 제가 힘들었던 건 제가 에너지가 강하고 표현도 솔직한 사람인데 엄마는 180도 다른 사람이란 것이다. 내가 감정을 표현하는 에너지의 정도와 엄마가 표현하는 에너지의 정도가 너무 다른 거다. 그래서 그 지점을 감독님이 컨트롤하시고. 예를 들어 그린이와 싸울 때 아무리 엄마여도 나라면 좀 따끔하게 딸한테 혼내고 싶은데 했지만 감독님한텐 안 먹혔다.(웃음)
 

배우 오민애 (사진 제공=찬란)
배우 오민애 (사진 제공=찬란)

 

기자간담회 때 이미랑 감독을 여자 나홍진이라고 말한 적 있다. 감독님의 어떤 부분이 특히 그랬는지.

​문에서 나와 걸어가는 길에 선풍기가 있었다. 이 선풍기를 보통 '이쪽으로 옮기세요' 하면 자연스럽게 하면 되는데, 이미랑 감독은 '선배님, 여기서는 오른손으로 잡아서 이렇게 돌려서 이쪽으로 놔주세요'라고 한다. 그러면 그걸 맞추려면 내가 선풍기까지 몇 걸음이 걸리고 어느 발부터 나가서 오른손으로 잡는지 이런 걸 계산해야 한다. 그런 (디테일한) 부분들이 있었다. 그래도 재밌었다. 현장은 어차피 힘들 수밖에 없다. 촬영 당시 다섯 작품을 하고 있었는데, 다른 작품은 자기감정을 수월하게 표현하는 캐릭터들이었다. <더 글로리>, <한국이 싫어서>, <레이스>의 캐릭터들은 즐기면서 하면 된다. 그런데 이 엄마는 도무지 감정 표현을 안 하고 숨기는, 받은 걸(감정) 다시 줘야 편한데 그걸 그대로 안고 누르고 가는 인물이라 너무 힘들더라. 현장에서의 물리적인 피로감은 이 엄마한테 이입시켜버려서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잘 보이지 않는 지점들을 보여줘야만 했다.

​일반인들이 봤을 때는 안 보여준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분명 자기감정을 다 갖고 보여주는 것이다. 그게 매력이다. 배우로서는 안 하는 것 같은데, 수치로 치면 1에서 10까지 있을 때 다른 건 정수로만 보여준다. 그런데 엄마 같은 경우는 소수점으로 얘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 섬세함이 배우로서는 정말 매력 있는 (지점이었다).

이전에 찍은 단편 <굿 마더>(감독 이유진)의 엄마 수미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결이다. 연기한 입장에서 차이점이 있다면?

<굿 마더> 수미는 선생님이란 안정적인 직업이 있다. 존경받으면서 연금이 있으니 노후 걱정을 안 할 수 있다. 자기주장을 뚜렷하게 표현할 줄 아는 진보적인 여성이고. 엄마는 참는 걸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같다. 그렇게 교육을 받아온 온화한 사람. 물론 엄마도 학력이 있지만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인 거다. 유교적인 환경에서 '이런 모습을 지닌 것이 더 여성적인 것, 여자다운 것'이라고. 엄마는 여자다움이나 온화함으로 그 여성성이 더 내재돼있다면 수미는 세상이 열려있고 자기주장을 표현할 줄 아는 것이 차이점이 아닐까.

그러면서도 엄마는 완고하다. 한편으론 딸 그린도 그런 완고한 부분이 있고.

​같은 DNA니까.(웃음) 그래도 수미는 자기가 생각하는 부분을 표현하고 이견이 생기면 부딪히고 갈등을 해결할 줄 아는 능력이 있는데, 엄마는 직면하는 게 아니라 참는다. 그리고 싸우는 걸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게 엄마가 교육받은 여자의 모습이지 않을까. 온화해야 하고, 부드러워야 하고. 그런 것들로 사회적으로 가스라이팅 당한 그런 인물이기에. 그렇게 후천적으로 환경적으로 그렇게 변화한 것 같고, 그럼에도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가치와 신념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제희와 힘든 환경을 견뎌낸다. 그로선 최선을 다해 노력한 부분이라 본다. 그런 부분이 젊은 딸은 세대가 다르니까 직접 부딪힐 줄 아는 것 같다.
 

배우 오민애 (사진 제공=찬란)
배우 오민애 (사진 제공=찬란)
딸 그린 역 임세미(왼쪽), 레인 역 하윤경
딸 그린 역 임세미(왼쪽), 레인 역 하윤경


임세미, 하윤경 배우와 에너지를 주고받을 때는 어떤 차이가 있었나.

​(하)윤경, 그러니까 레인은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다.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그렇지만 딸 그린은 가족이다. 가족은 이미 고착화돼버린 습관이란 게 있어 그게 잘 안되는 거 같다. 극에서 레인이 그러지 않나. "너만 참는 거 아냐".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가족 간엔 객관적으로 메타인지를 못한다. 서로 관계적 습관이랄지, 습관적 관계랄지 그런 것이 있었을 거고 늘 대하듯이 한 것이다. 저 불편한 여성(레인)은 자꾸만 다가오며 부드럽게 제시하고 거기에 엄마가 결국 열린 것이라고 봤다.

극중 요양보호사인데, 실제로 자격증까지 따셨다. 그 이유가 시어머니와 함께 사니까 노인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는데, 뭐든 공부를 하고 보는 편인가?

전 공부를 좋아했던 거 같다. 중졸로 한참 살았다. 30대 중반에 검정고시를 땄는데, 그러다보니 공부에 대한 열망이 컸던 모양이다. 뭔가 배운다는 열망이 남들보다 컸던 것 같다. 그렇다고 억지로 배우는 게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공부하게 됐다.
 

배우 오민애 (사진 제공=찬란)
배우 오민애 (사진 제공=찬란)


관객, 시청자 입장에선 정말 '혜성 같은 등장'인데 원래 에어로빅 강사를 하시다가 인도 배낭여행을 가려던 차에 다른 사람의 제안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30년을 넘게 하고 계신데, 이렇게 용기 내게 된 연기만의 매력은 무엇인가.

​호기심이 병이다.(웃음) 제가 (MBTI 유형) ENFJ다. 혈액형도 O형이다. 호기심이 많고 활동적이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세상에 들어가고 싶으면 그냥 들어간다. 그리고 학습에 대한 흡수력, 그런 것도 좋은 편 같다. 그래서 궁금하면 가서 배워보고, 그 배움이 남들보다 빠른 편이고. '연극해보지 않을래?' 그래서 '그래, 모르겠지만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면 해볼게' 했다. 그리고 무대에서 배우들의 모습에서 자유, 자유로움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젊은 시절을 폐쇄적으로 살아왔기에 뭔가 자유로운 것을 추구했던 것 같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처음 극단에 들어갔을 때 선배들이 처음 한 말이 "먼저 인간이 돼라"였다. 재밌는 건 좋게 말해준 게 아니라, 딴지로 한 말 같은데 (웃음)내겐 그게 훅 들어왔다. 그래서 '인간이 돼라, 그럼 인간이 된다는 건 뭐지? 나는 누구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지?' 이런 식으로 유난히 철학적인 고민을 많이 했다. 배우란 직업이 그렇다. 내가 누군지 잘 알아야 연기를 할 수 있는 존재다. 그래서 철학적인 고민을 많이 했고 그게 지금의 저를 만든 것 같다. 인간에 대한 관심,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 배우는 결국 사람 얘기를 하는 직업이니까, 인간의 아픔과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직업이니까. 제가 아픔 덩어리라서 그런 걸 잘 알고, 그래서 누구보다도 사람들을 볼 때 저 사람만의 아픔이 있겠구나 이런 걸 잘 안다. <딸에 대하여> GV할 때 젊은 친구들이 영화제에 많이 왔는데 이 친구들이 많이 아파하고 외로워하더라. 그래서 힘내라는 말 한마디, 툭하면 거기서 그렇게 위안을 받나 (싶었다). 힘내, 아니면 어깨 토닥토닥해주면 정말 좋아한다. 그게 행복하다. 그래, 이 맛이군.(일동 웃음) 누군가에게 위안과 희망, 용기를 줄 수 있는 존재가 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영화에서 관객이 가장 궁금해할 지점은 엄마가 왜 이렇게 제희를 도와주는가일 것이다.

​여러 가지 감정이 있을 텐데, 자기도 그렇게 존중받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말이 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잘하는 사람은 감사합니다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이해 못 한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무례하다고 느껴지고 싫어지게 된다. 그런 식의 보상심리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하는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안 하지 이런 심정들이 생겨날 것 같다. 아마도 엄마는 내가 이 사람(제희)을 대하는 것만큼 사람들도 내게 (그래주길 바라는) 약간의 보상심리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제가 불순하게 보는 거일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이타적인 행위를 하면서 긍지를 느끼고, 좋은 결과가 나에게 오니까 위안도 되고. 그리고 비록 치매 걸린 분인지만 내 곁에 함께 있어준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수 있고. 돕는다는 게 남을 돕는 게 아니라 결국은 다시 돌아오니까.

〈딸에 대하여〉
〈딸에 대하여〉


관객으로서 봤을 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있다면.

​관객으로서 봤을 때 저는 뱀 장면 되게 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세탁기 돌리는데 사회복지사가 와갖고 매정하게 끄는 장면. 연기를 너무 잘해주셔서,(웃음) '조금만 더 이해하고 살아가면 되는데' 싶었다. 자기가 조금만 불편하면 되는데 자기의 불편함을 잘 용납하지 않으려는 게 있다. 그렇지만 그분들이 틀린 말을 한 건 아니다. 이창훈 배우가 연기한 과장, 전 합리적으로 일을 잘하는 분이라고 봤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 사람들에게 엄마가 과연 잘 적응하면서 일할 수 있는 존재였을까. 아니라고 본다. 전 착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오산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유하고 온화한 사람만이 갖는 고집이다. 내가 착하고 내가 생각한 정답이기에 고집을 안 꺾는다. 그런 분들이 오히려 변화하기 힘들다. 감독님은 그런 부분들을 인지하고 (엄마라는) 인물로서 이렇게 잡아간 게 아닐까 싶다.

딸이 인정해주길 바라는 게 아니라, 엄마의 이해를 바라는 건데 서로 엇나간다. 그랬다가 비로소 이해에 도달하는 과정이 무척 인상적이다.

​우리는 옳다, 그르다, 선과 악 이런 식으로 모든 걸 이분법적 기준으로 정의 내리는 교육을 받아왔기에 어쩔 수 없는 거 같다. 다름을 인정하면, 세상에 정답은 없어,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다라는 걸 생각하면… 이쪽에서 바라보면 선이지만 저쪽에서 바라보면 악이 될 수도 있는 상황들을 이해하고 넘어간다면 (갈등이) 덜할 텐데. 이 세상에 여자와 남자 두 가지로만 분리돼있는데 거기에 뭐가 더 있다고 (하는 식으로 보면 상대가) 이상한 사람들처럼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왜라든지 어떻게라든지 관심을 한 번 가지면 달라질 수 있을 텐데 관심을 안 갖는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나와 다르면,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이면 '피곤해' '됐어' '무슨 소리를 하려고' 이렇게 대하곤 한다. 그런데 왜, 무슨 얘기를 할지, 저 사람이 갖고 있는 세계가 뭘까… 우리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봐' 이런 얘기를 하는데 전 그 나라가 개개인으로 받아들인다. 일반적인 국가의 개념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세계라고. 그래서 저 사람을 이해하는 것, 포용하는 것, 그래서 함께 하는 것. 그게 나라를 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이라고 생각한 적 있다.

<딸에 대하여>는 약자들이 일종의 새로운 가족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번 영화의 인물들이 여성 위주라서 그렇지, 여성들만 약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1인 가구가 많아져서 35%를 차지하고 있다는데 관심 가져야 할 부분이고, 홀로 사는 독거노인 부분도 (영화가) 터치하고 있고,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지 못한 성 소수자, 그리고 치매노인 등 여러 가지로 우리 사회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들, 복지와 관련한 부분도 많다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도 그렇게 돌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감독님은 항상 공동체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우리 모두 하나의 공동체로서 잘 살아갔으면 좋겠어라는 얘기가 이 영화의 메시지라고 본다. 이 영화가 존중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딸에 대하여〉
〈딸에 대하여〉


요즘 중년 여성 배우들이 주목받고 있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중년 여성배우에게 주어진 역할의 폭이 넓어진 것을 실제로 느끼시는지.

​물론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의 시도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고 생각한다. (성평등 지수 도입으로) 여성 인력들이 할 수 있는 마당이 커졌다. 남성 감독도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처음엔 독립영화 쪽에 젊은 감독이 많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나왔는데, 점점 확장하고 싶어지면서 내 엄마, 내 이모, 집안 아주머니 등 영화에 그려졌다. 젊은 세대의 이야기와 중년의 이야기에서 오는 매력이 다 다르니 기회가 많아진 것 같다. 제가 운 좋게도 시대를 잘 타고난 것이다. 덕분에 다양한 캐릭터들을 해볼 수 있었다. 김금순 배우, 김자영 배우, 얼마나 좋나. 좋은 배우들이 많이 발굴됐다. 저도 그 덕에 발굴된 것이고. 더 좋은 중년 배우들이 많이 나와서 더 이야기를 많이 많이 채워줄 수 있었으면. 제 바람은 이게 상업적으로도 확장이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게 (그런 흐름이) 보이고 있다. 이정은 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낮과 밤이 다른 그녀>처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우리 관객들이 기존 전형적인 것을 식상해하고 있으니까.

전성기를 50대에 맞으신 셈인데 스스로도 지금이 전성기라고 생각하는지.

​이제 시작이다. 아직 (전성기) 아니다. 한쪽에서는 늙어갖고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뭐가 있겠어, 절 그렇게 두렵게 만드는 게 있는데 한편에서 아니야, 너 스스로를 속이지 마, 너 앞으로 더 할 수 있어, 네가 이만큼 온 것도 기적인데 너를 믿는다면 만들어낼 수 있어 하면서 스스로 가스라이팅 한다.(웃음) 물론 관계자들이 나이를 찾아보겠지만 그냥 이 물리적 나이 말고 (보이는 모습의) 이걸로 가줬으면 좋겠다. 배우도 바뀌어야 하지만 제작자들도 바뀌어야 한다. 노력하고 있다. 건강 유지하고 체력관리하고 있으니 제작자들이 그런 방식으로 배우를 캐스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웃음)

SNS 보면 춤추는 영상들을 올리곤 하셨는데 이번 영화에 대한 흥행 공약 같은 걸 팀과 얘기한 적 있나?

​뭐 하라는 식으로 들리는데 유도하시는 건가.(일동 웃음) 현장 분위기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저는 노래도 부를 수 있다. 제 성격이 패러다임에 순응하지 않는다. 이때까지 해왔던 방식으로 말고 우리도 다양하게 뭐든지 시도해보자 저는 그렇게 열려 있다. 젊은 세대들의 다양한 아이디어처럼. 저는 관객들이 원하면 다 해줄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인데. 그래서 진짜 이 영화가 한 사람이라도 더 보고 더 위안 받고 그럴 수 있도록 시간이 되는 한 어디라도 다니면서 GV 할 생각이다. 만나고 영화 이야기하고 그리고 "우리 힘들지만 인간은 다 기본적으로 불안을 갖고 있는 존재인데 너무 불안 신경 쓰지 말고 이까이거! 하면서 용기 내서 씩씩하게 한번 살아보자 얘들아!" 후배들한테, 젊은 관객들한테 얘기해 주고 싶다. 미리 겁내지 말자!

* 아래 문답은 <딸에 대하여> 결말과 마지막 장면에 대한 서술이 포함돼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엄마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다 이루었다. (일동 웃음) 엄마가 직장 생활하면서 몸이 얼마나 고됐겠나. 사실 그 나이 되면 관절도 아프고 영양제 먹을 거 다 먹어가면서 아침에 일어날 때와 낮에 활동할 때 목소리도 달라진다. 그 힘듦에도 불구하고 저 어르신을 케어하고 얼마나 불편한 일들이 많이 생겼나. 몸뚱아리 하나가 더 있으면 하고 힘든 노동이다. 근데 그런 것조차 개의치 않고 당신 편안하게 모셔서 편안하게 보내드리려고 그걸 감내하면서 다 한다. 잘 보내드렸구나 이제 난 여한이 없어 다 이루었어 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제 상까지 다 이렇게 해드렸고. 거기다가 혼자가 아니다. 딸의 불편한 연인도 와서 이렇게 같이 함께해 주고 내 자식, 저 말도 안 듣는 딸내미도 그 자리를 채워주고 있고 내 동료들도 오고. 혼자가 아니라는 걸 그때 느꼈을 것 같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으려면 함께 우리가 잘 살아야 되겠구나. 그렇게 조금 문을 열고 그래 사는 게 이런 거지 뭐 별거 있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래서 지나가는 신호등 건너편에 있던 그 두 여자 친구들을 보면서 이해하는 마음으로 미소를 짓지 않았을까. 저렇게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예쁜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사랑을 한다는 건 너무 귀한 일이 돼버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