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 하나 사는 게 쉬운 게 없다. 말 그대로 ‘헬조선’이다. 오는 8월 28일 개봉한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한국에서 살기를 포기하고 뉴질랜드로 삶의 터전을 옮기기로 결심한 20대 여성 '계나'(고아성)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계나는 회사와 가족, 남자친구 등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에 압박감을 느낀다. 숨조차 편하게 쉬기 힘든 사회에서 계나가 자신의 행복과 존엄을 위해 스스로 선택한 것은 도망이 아닌 ‘용기’다.

살아가기 힘든 현대 한국 사회를 빗대어 부르는 ‘헬조선’의 평범한 20대 여성의 삶을 그린 <한국이 싫어서>는 영화적이지만 동시에 지극히 현실적이다. 2015년 발표된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각색된 이 영화는 사회부 기자 출신인 작가 장강명의 시선에서 탄생했다. 예리한 시선과 깊은 고찰로 현대 사회의 문제를 소설에 담아내는 작가 장강명은 올 초 개봉한 영화 <댓글부대>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장강명 작가의 작품뿐만 아니라 <완득이>, <남한산성> 등 수많은 한국 현대 소설은 오랜 시간 꾸준히 영화화 진행되어 온 주요 소재이기도 하다. 이처럼 최근 영화로 제작된, 또는 예정인 소설 바탕의 작품을 모아봤다.


조해진 「로기완을 만났다」
- 영화 <로기완>
올 3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로기완>. 김희진 감독의 장편 연출 데뷔작으로, 낯선 땅 벨기에 브뤼셀에서 ‘난민’의 지위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탈북자 로기완의 이야기를 그렸다. 계속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새 삶을 위한 발버둥을 멈추지 않는 로기완 역에는 배우 송중기가, 로기완과 악연으로 시작해 사랑에 빠지는 마리 역에는 라이징 스타 최성은이 출연했다. 송중기는 <태양의 후예>, <빈센조> 등 그간 작품 속에서 보여주었던 이미지와는 180도 다른 캐릭터로 변신한 모습으로 화제가 되기도.

영화 <로기완>은 2011년 발간된 조해진 작가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를 원작으로 삼은 작품이다. 조해진은 소설집 「빛의 호위」, 「환한 숨」, 장편소설 「단순한 진심」 등 다수의 소설들을 통해 사회에서 소외된 이주민과 입양인, 노동자 등 사회에 가려져 있는 이들의 삶에 주목해온 작가다.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선한 시선만큼 온기가 깃든 문장과 이야기로 국내 소설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대표 소설가이며, 젊은작가상부터 신동엽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 국내 유수 문학상을 수상했다.


장강명 작가 「댓글부대」
- 영화 <댓글부대>
영화 <한국이 싫어서>의 원작자 장강명이 2015년 집필한 「댓글부대」는 모니터 뒤, 한국 사회를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손들의 음모를 그린 여섯 번째 장편 소설이다. ‘국정원 불법 선거개입 사건’을 모티프로 2012년 대통령 선거 이후 인터넷 사이트에 잠입해 악의적 댓글을 달며 여론을 조작한 이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장강명은 11년간 동아일보에서 사회부와 정치부, 산업부를 거친 기자 출신 작가다. 퇴사 후 소설가에 도전, 등단 후 「표백」,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등 다수의 장, 단편 소설들로 국내 문학상을 휩쓸며 한때 문학상 킬러로 불리기도 했다. 기자였을 당시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병폐를 짜임새 있는 이야기와 속도감 있는 전개로 풀어낸 그의 소설은 읽는 모두가 조금씩 불편해지길 바라며 썼다는 작가의 말처럼 덮는 순간 묘한 불편함과 경계심을 자아내게 만든다.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화된 <댓글부대>도 마찬가지다. 허세 가득한 사회부 기자 ‘임상진’(손석구)는 오보 발행으로 정직당하게 되지만 곧 의문의 제보자를 통해 자신의 보도가 오보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파고들게 된 사건의 내부엔 어마어마한 권력의 음모와 거짓이 도사리고 있다. 영화의 오프닝과 결말에 직접적으로 보이는 문구는 관객에게 가시지 않는 의문점을 남기며 찝찝함을 선사하지만, 동시에 온라인을 통한 새로운 파시즘의 도래를 경계하게 만든다.


김혜진 작가 「딸에 대하여」
- 영화 <딸에 대하여>
그 누구보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존재라 생각했지만, 서로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는 틈이 생기는 순간 거리는 순식간에 멀어진다. 영화 <딸에 대하여>는 남편을 잃고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엄마(오민애)의 집에 경제적인 이유로 딸 그린(임세미)이 들어오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문제는 그린의 동성 애인인 레인(하윤경)도 함께 들어오게 된 것. 딸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하고 싶지 않은 엄마와 딸, 그리고 동성 연인의 불편한 동거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

섬세한 시선으로 세 여자의 갈등과 이해, 사랑과 성장을 그린 영화 <딸에 대하여>는 김혜진 작가가 집필, 제36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하기까지 한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소설은 혐오와 배제의 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아 공감을 이끌어내며 두터운 팬층을 만들어 냈다. 영화는 이창동 감독의 <시>와 장률 감독의 <춘몽> 스크립터를 맡은 바 있는 이미랑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소설 특유의 서정적인 문체와 감성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녹여내었다. 이미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다수의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 정식 개봉 전부터 영화 팬들의 입소문을 탄 <딸에 대하여>는 오는 9월 4일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박상영 작가 「대도시의 사랑법」
-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TVING <대도시의 사랑법>
영화와 드라마로 함께 공개되는 소설이 있다. 박상영 작가의 베스트셀러 「대도시의 사랑법」이다. 박상영 작가에게 젊은 작가상 대상을 안겨준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을 포함해 「재회」, 「대도시의 사랑법」, 「늦은 우기의 바캉스」 네 편의 중단편을 모은 연작 소설집으로, 그는 해당 소설집을 통해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퀴어 소설 작가로 자리매김하였다. 가장 먼저 공개되는 작품은 영화다. 10월 2일 개봉하는 <대도시의 사랑법>은 소설집 중 첫 번째 에피소드 「재희」만을 각색하였다. 자유로운 영혼의 재희와 세상과 거리 두기에 익숙한 흥수의 동고동락과 사랑법을 그린다. 재희 역에는 배우 김고은이, 흥수 역에는 <파친코>의 노상현이 출연해 새로운 케미스트리를 선보일 예정이다.

동명의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은 8부작으로 제작돼 10월 21일 티빙을 통해 공개된다. 4개의 에피소드 전반을 드라마화하여 소설을 더욱 가깝게 구현해낼 전망이다. 각각의 에피소드별로 연출자를 달리하였는데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부터 <결혼전야>의 홍지영 감독, 단편영화 <야간비행>으로 주목받은 신예 손태겸 감독,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김세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사랑을 통해 성장하는 주인공 고영 역에는 남윤수가 출연했으며 박상영 원작자가 각본에 참여해 더욱 기대를 모은다.
영화화가 예정된 한국 소설

김초엽, 「지구 끝의 온실」
현시대에 가장 주목받는 한국 SF 작가 김초엽.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비롯해 「행성어 서점」, 「방금 떠나온 세계」 등 마니아층의 소비 위주였던 SF 장르를 대중적으로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녀의 또 다른 대표작 「지구 끝의 온실」 또한 소설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 꾸준히 영상화 제안을 받은 끝에 2022년 국내 최대 드라마 제작사 중 하나인 스튜디오드래곤과 판권 계약을 맺었다. 현재까지 구체화된 소식은 없지만 가까운 시일 내로 영상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되는 작품 중 하나.

편혜영 「홀」
그로테스크한 이야기와 서늘하면서도 날카로운 문장들로 인간의 이면을 탐구하는 편혜영 작가의 「홀」. 2018년 미국 셜리 잭슨 상 장편부문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되며 외신으로부터 “그 해 최고의 스릴러” 등 호평을 받은 「홀」이 김지운 감독과 만난다. ‘데드라인’ 보도에 따르면 김지운 감독은 송강호와 함께 설립한 자신의 제작사 앤솔로지스튜디오와 함께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제작한 할리우드 제작사 K 피리어드 미디어의 손을 잡고 소설을 영화화할 전망이다. <라스트 스탠드>에 이어 김지운의 두 번째 할리우드 진출작이 될 예정이라고. 현재 김지운 감독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각본가 크리스토퍼 첸과 함께 시나리오를 각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구병모 「파과」
「위저드 베이커리」, 「아가미」, 「버드 스크라이크」 등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구병모의 「파과」가 영화화된다. 「파과」는 감정에 빠지기보다 깔끔한 일 처리를 선호했던 60대 여성 청부업자 '조각'이 젊은 남성 킬러 '투우'와 만나며 일어나는 일을 그렸다. 지난해 뮤지컬로 재탄생되어 다수의 관객들을 만난 바 있다. 영화 속 60대 킬러 '조각' 역에는 배우 이혜영이 출연해 파격적인 변신에 도전한다. 투우 역에는 당초 변요한 배우가 캐스팅됐으나, 하차 후 김성철로 캐스팅이 바뀌었다. 최근 조각의 스승인 킬러 '류' 역에 김무열이, 어린 시절 '조각' 역에는 신시아가 캐스팅되어 촬영을 마쳤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간신>,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 <허스토리>, <간호중>을 연출한 민규동 감독의 신작으로, 현재 후반 작업을 거쳐 내년 상반기 개봉 예정이다.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2000년대 초,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카스테라」, 「더블」 등 센세이션한 소재와 스토리를 담은 소설들로 한국 문단에 신선한 돌풍을 일으키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박민규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도 머지않아 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음울하고 어두운 인상으로 존재감 없이 세상에 고립되고자 했던 백화점 직원 미정과 미정을 사랑한 경록의 이야기를 그린 로맨스 성장 소설이다. 2014년부터 영상화 소식이 전해졌지만 10년이 흐른 2024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제작에 박차가 가해졌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연출한 이종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미정 역에는 고아성이 출연해 전작에 이어 두 번째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미정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는 경록 역에는 tvN 드라마 <슈룹>과 <웨딩 임파서블>, 쿠팡플레이 <새벽 2시의 신데렐라>로 주가를 달리고 있는 문상민이 출연해 스크린에 데뷔한다. 소설 속 요한은 배우 변요한이 맡아 특별한 존재감을 선보인다. 지난 5월 크랭크인 해 현재 촬영 중으로 내년 초 공개될 전망이다.

씨네플레이 객원기자 루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