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 영화 <위키드>가 20일 개봉했다. 전 세계 6000만 명이 관람하고 50억 달러(약 7조 원)의 흥행 수익을 올린 뮤지컬 ‘위키드’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토니상, 그래미상 등 100여 개의 시상식을 휩쓸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은 뮤지컬 ‘위키드’는 2003년 10월 브로드웨이에서 초연을 한 이후 꾸준히 영화 제작 논의가 이루어져왔지만 실질적인 진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뮤지컬 초연 후 13년이 지난 2016년,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영화 <위키드>를 제작하기로 하며 뮤지컬 팬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심지어 두 편으로 나누어 담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현재 개봉한 영화 <위키드>는 뮤지컬 1막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그 이후의 이야기가 담긴 파트 2는 내년에 개봉할 예정이다.
<위키드>는 먼치킨 랜드 영주의 첫째 딸인 엘파바(신시아 에리보)와 천상천하 유아독존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의 우정과 성장 이야기를 담는다. 녹색 피부와 알 수 없는 힘을 타고난 탓에 어릴 적부터 외롭게 자라 온 엘파바는 동생의 대학 입학식에 따라갔다가 그곳의 총장인 마담 모리블(양자경)의 눈에 띄어 학교에 다니게 된다. 마담 모리블은 엘파바의 힘을 눈치채고 직접 마법 강습에 나서고 글린다와 같은 방을 쓸 수 있도록 해준다. 본의 아니게 한 방을 쓰며 서로를 반목하던 엘파바와 글린다는 점점 마음을 열게 된다. 그러다 딜라몬드 교수를 포함한 말하는 동물들에 대한 탄압이 벌어지고 엘파바는 이들을 돕기 위해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간다.
<나우 유 씨 미 2>(2016),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2018) 등 화려한 영상미를 바탕으로 한 독보적인 연출력으로 주목받은 감독 존 추가 연출을 맡았고 2016년 토니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뮤지컬 배우 신시아 에리보가 엘파바를, 세계적인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가 글린다를 연기한다.


지난 14일 오후,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영화 <위키드>의 언론배급시사회가 진행되었다. 이번 시사회는 독특하게 영화 상영 전 한국 라이선스 뮤지컬 ‘위키드’와 영화 <위키드>의 공식 더빙판에 참여한 배우 정선아와 박혜나의 가창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정선아와 박혜나는 각각 글린다와 엘파바 역으로 2013년 뮤지컬 ‘위키드’ 초연과 2016년 재연에서 이미 합을 맞춘 바 있다.
정선아는 “뮤지컬 ‘위키드’는 나에게 ‘정글린다’라는 수식어를 붙여준 정말 고마운 작품이다”라며 “영화 더빙에 참여하게 되어 큰 영광이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박혜나는 뮤지컬 ‘위키드’에 대해 “감사한 기회를 준 작품”이라 전하며 “더빙 작업을 하면서 ‘내가 정말 좋은 작품을 했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정선아는 글린다의 대표곡 ‘Popular’를, 박혜나는 엘파바의 대표곡 ‘Defying Gravity’를 매력적으로 선보이며 큰 박수를 받았다.

영화 <위키드>는 ‘서쪽 마녀’ 엘파바의 죽음을 공식 선포하는 ‘남쪽 마녀’ 글린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오즈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글린다는 ‘애도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노래 “No One Mourns the Wicked”를 열창한다. 그러던 중 글린다는 엘파바와의 과거에 대해 털어놓고 일순간 분위기는 급변한다.
이후 영화는 엘파바의 탄생과 성장, 고난의 과정을 차근히 짚어나간다. 영화의 관객은 뮤지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엘파바의 어린 시절을 통해 성장과정에서 생겼을 엘파바의 상처에 더욱 깊게 공감할 수 있게 된다. 타고난 조건으로 인해 소외되고 핍박받던 엘파바는 결국 악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당위성을 획득하게 되며 선입견 뒤에 감추어진 한 인물의 입체성이 드러난다.

한편, 영화 <위키드>는 흔치 않은 여성 투톱 작품이자 독보적인 캐릭터 설정으로 잘 알려진 뮤지컬 ‘위키드’를 재탄생시킨 작품인 만큼 엘파바와 글린다의 관계성에 집중하며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펼친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지속적으로 직간접적 교류를 하며 각자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이를 바탕으로 ‘What is This Feeling’, ‘One Short Day’ 등의 듀엣곡에서 완벽한 합을 이루며 균형 잡힌 장면을 만들어낸다. 새로운 얼굴인 신시아 에리보와 아리아나 그란데의 매력을 적극 활용하면서도 역으로 배가시켜주는 장치를 곳곳에 심어놓은 것이다.
영화 <위키드>는 원작 뮤지컬의 색채를 최대한 살려내고자 하는 의지가 돋보인다. 기본적인 서사 구조부터 넘버(노래)뿐 아니라 주변 인물까지 있는 그대로 차용했고 원작이 선사하는 화려한 비주얼과 탄탄한 음악성 등을 극대화해 제공한다. 먼치킨 랜드, 쉬즈대학교와 에메랄드 시티까지 무대가 제공하지 못하는 오즈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구현해 내며 압도감을 선사한다. 이를 위해 존 추 감독은 영국 동부지역에 900만 송이의 튤립을 실제로 심고 58톤에 육박하는 에메랄드 행 기차를 제작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실제 뮤지컬을 보는 듯 촘촘히 구성된 앙상블(합창과 군무를 담당하는 뮤지컬 조연 배우)의 합이 인상적이다. 피예로의 대표곡인 ‘Dancing Through Life’는 도서관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진행함에도 장면의 다이내믹이 크게 느껴지는 것은 앙상블이 한몫을 톡톡히 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시계처럼 돌아가는 책장이 있는 쉬즈 대학교의 독특한 도서관에서 화려하게 펼쳐지는 ‘Dancing Through Life’는 뮤지컬 <위키드>의 히든카드이다.
원작 팬들의 환호성을 유발할 이 지점은 영화적 해석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게는 아쉬움을 남길 만한 부분이다. ‘뮤지컬’은 음악성을 강조하는 특성으로 인해 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핍진성이 떨어지곤 한다. 영화 <위키드>는 약 160분의 긴 러닝타임 안에서 뮤지컬 ‘위키드’의 거대한 세계관과 인물의 내적 동기 등을 관객에게 이해시킬 충분한 기회가 있었음에도 원작의 특성을 강화하는 선택을 했다. 때문에 영화의 중반 이후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염소 딜라몬드 교수의 실종 등 주요 사건들이 그 중요도에 비해 흐릿하게 다루어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때문에 뮤지컬 영화에 익숙하지 않거나 원작 뮤지컬의 팬이 아닌 관객들은 다소 난해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