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
감독 김성제
출연 송중기, 이희준, 권해효, 박지환, 조현철, 김종수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배신의 디아스포라
★★★
1997년 IMF 시기 콜롬비아의 보고타로 삶의 터전을 바꾼 한 가족의 이야기. 국희(송중기)의 10대 시절부터 30대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에 걸쳐 한 인물이 겪는 풍상을 보여준다. 바닥부터 시작한 주인공이 성공에 이르기까지 악전고투하는 전형적 스토리로, 욕망과 배신과 갈등 등의 극적 요소가 뒤엉킨다. 송중기와 함께 권해효, 이희준, 김종수, 박지환, 조현철 등의 배우들이 선보이는 캐릭터 연기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 범죄 영화나 액션 혹은 스릴러 같은 장르적 요소를 지니지만 강조되진 않으며, 대신 끊임없는 배신의 드라마가 영화의 허무한 톤을 만들어낸다.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조금은 미지근한 명분의 누아르
★★★
기본적으로는 범죄 누아르 장르 안에서 어두운 성공을 일궈가는 청년의 이야기다. “되는 일도 없지만 안 되는 것도 없는 나라”에 맨몸으로 부딪쳐야 했던 국희(송중기)를 비롯해 낯선 국가에서 살아남으려는 이민자들의 생존기가 내내 펼쳐진다. 해당 국가의 카르텔에 인물이 얽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한인들이 만든 커뮤니티 내 알력다툼을 다뤘다는 것이 특이점. 연출의 밀도와 연기는 두루 무난하지만, 결정적으로 동시대와의 호환성은 부족하게 느껴진다. 왜 지금 외환위기 직후 콜롬비아에 정착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필요했는가. 이국적 풍광을 담아낼 수 있었다는 장점을 제외하곤, 이 물음에 대한 또렷한 답을 영화 내에서 분명하게 찾아내긴 쉽지 않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중간에서 길을 잃은, 보고타
★★☆
서사 완결성이 매우 헐겁다. 결과는 있는데 인물들 동기가 빠져 있고, 해결돼야 할 갈등이 대사 하나로 퉁 치고 생략돼 버리니, 종종 뜬금없고 자주 헷갈린다. 호형호제하던 인물들이 등을 돌리는 과정, 국희(송중기)가 ‘빈센조(?)’ 향기 품은 존재가 되는 빌드업 등이 허약한 각본 안에서 설득력 없이 그려지니, 긴장이나 밀도가 쌓이지 못한다. 각본-연출뿐 아니라 편집에서도 문제가 여럿 발견된다. 신과 신을 제대로 잇지 못할 뿐 아니라, 음악이 치고 빠지는 부분도 치밀하지 못하다. 연출은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처음 세운 계획을 일관성 있게 통제하지 못하고 중간에서 길을 잃은 듯한 인상이 짙다.
시빌 워: 분열의 시대
감독 알렉스 가랜드
출연 커스틴 던스트, 케일리 스패니, 와그너 모라, 스티븐 헨더슨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분열과 극단주의가 낳은 폭력이 하는 일
★★★☆
정확히 어떤 정치적 상황이 내전으로까지 이어졌는지는 끝까지 함구된다. 이것이 <시빌 워: 분열의 시대>의 가장 독특하고도 영리한 지점이다. 비단 특정한 정치 언어 안에 가두지 않고도, 오늘날 민주주의가 마주하는 가장 큰 위협은 분열 그리고 극단주의라는 점을 이 영화는 명확하게 짚어낸다. 누군가를 구하는 용기와 전우애 등 전쟁영화들이 쉽게 강조하는 일종의 낭만성을 제거한 연출은 극영화라기보다 다큐멘터리적인 순간들을 종종 만들어내는데, 이는 종군 사진기자가 주인공이 된 목적이기도 하다. 카메라의 셔터가 눌리는 타이밍이 대부분 인간성은 잠시 뒤로 물러나야 하는 순간이라는 점에서 발생하는 아이러니가 극의 독특한 긴장을 만들고, 넓게는 보도 윤리의 영역을 향한 질문으로까지 확대된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정의 따윈 없다. ‘네 편’과 ‘내 팬’이 있을 뿐
★★★☆
정치 성향에 따라 두 쪽으로 갈라진 미국의 내전을 그린 작품, 근미래가 배경이지만, 2024년 ‘서울 계엄의 밤’을 경험한 국내 관객으로선 아슬아슬하게 비껴간 과거가 함께 재생되는 묘한 감각을 느낄 것이다. 총을 든 민병대가 묻는다. “당신들은 어느 쪽 미국인이지?” 정의나 진실이 아닌, 내 편이냐 네 편이냐에 따라 방아쇠 누르기의 향방이 갈리는 모습을 통해 편 가르기와 분열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영화는 종군 기자의 렌즈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흑백 사진으로 기록하고 보여준다. “묻지 않고 기록할 뿐”이라는 종군 기자 캐릭터를 두고 양비론이 아니냐는 비판도 미국 내에선 일었다는데, 덕분에 영화는 저널리즘 정신에 대한 논의도 끌어안는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분열이 불러오는 것들을 똑똑히 보라
★★★☆
마블 영화가 아니다. 내란이 벌어진 가상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지만 전쟁을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는 영화도 아니다. 독특하고 차별화된 작품을 만들어온 제작사 A24의 첫 블록버스터답게 다름으로 승부수를 던진다. 총 대신 칼을 든 종군 기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는 이들이 내전을 일으킨 대통령을 인터뷰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향하는 로드무비 형식으로 진행된다. 기자들의 여정에 담긴 내전의 참상은 영화 속 남의 나라 일이 아니라 현실 공포로 다가온다. 커스틴 던스트, 케일리 스패니 등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의 주제에 힘을 싣고, 긴장감과 몰입도를 극대화한 후반부의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수퍼 소닉3
감독 제프 파울러
출연 짐 캐리, 벤 슈와츠 , 제임스 마스던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소닉의 거침없는 속력전
★★★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캐릭터도, 규모도 배가되는 <수퍼 소닉>. 이번엔 소닉과 테일즈, 너클즈가 ‘팀 소닉’이 되어 새로운 라이벌 섀도우에 맞선다. 도쿄, 런던, 우주까지 종횡무진 누비는 추격전이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수퍼소닉> 시리즈가 선사하는 속도의 쾌감은 이번 3편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미워할 수 없는 코믹 악당 로보트닉 역의 짐 캐리도 1인 2역을 맡아 두 배의 웃음과 감동까지 안긴다. 4편을 예고하는 쿠키 영상과 3편을 마무리하는 쿠키 영상이 나오니 끝까지 봐야 한다.
총을 든 스님
감독 파우 초이닝 도르지
출연 탄딘 왕추크, 데키 라모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국왕이 다스리던 나라였지만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고 민주주의를 시도하던 2006년 부탄의 이야기. 처음으로 선거를 경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민주주의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한다. <교실 안의 야크>(2019)처럼 <총을 든 스님>도 기교 없는 이야기를 통해 단순하게 관객에게 다가가는데, 달라진 점이 있다면 ‘총’에 대한 서브플롯을 통해 전작과 다른 스토리의 텐션을 만들어낸다는 점. 정치의 본질은 국민의 행복이며, 우리는 미래를 위해 투표를 하는 것이고,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는 그것이 실현되는 과정에 있다는, ‘상식’에 대한 영화. 그 소박한 메시지가 울림을 준다.
뽀로로 극장판 바닷속 대모험
감독 윤제완
목소리출연 이선, 이미자, 함수정, 홍소영, 정미숙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이야기의 다양한 재미들
★★★
뽀로로 프랜차이즈의 아홉 번째 극장판. 이번 무대는 바닷속 세계이며, 어드벤처 장르의 재미와 함께 환경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함께 전한다. 뽀로로 극장판의 가장 큰 매력은 이야기가 줄 수 있는 다양한 재미를 총망라한다는 점인데, 박진감을 기본으로 스펙터클한 설정과 유머 그리고 반전과 교훈까지 70여 분의 러닝타임이 지루할 틈 없이 전개된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뽀로로는 해저 모험도 잘하네
★★★☆
<뽀로로> 극장판 9번째 영화. 2022년 6번째 영화부터 매년 극장판을 공개하며 완성도를 높여가는 <뽀로로> 시리즈의 현재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블록버스터 모험극 구조에 히어로 선장 캐릭터, 해양 생물, 잠수함과 어뢰가 등장해 아이들의 호기심을 키운다. 하이라이트인 해저 장면은 박진감 넘치는 재미와 함께 K애니메이션의 기술력과 수준을 가늠하게 한다.
밀레니엄 맘보
감독 허우 샤오시엔
출연 서기, 고첩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깊고 푸른 청춘의 시간
★★★★
영화가 시작되면 푸른 화면 속의 비키(서기)가 슬로 모션으로 걷는다. 그 시점은 10년 후의 미래. 그는 10년 전, 2001년의 방황하는 청춘이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역사를 바라보는 깊은 시선으로 주목받던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1996년 <남국재견>부터 새로운 필모그래피를 그려 나가는데, <밀레니엄 맘보>는 감독의 가장 감각적이며 스타일리시한 작품일 것이다. 공간적 구성도 인상적인데 어둡고 폐쇄적인 클럽부터 흰 눈으로 가득 찬 홋카이도의 유바리까지 품고 있으며, 사운드와 음악의 구성은 이 영화를 끌고 가는 중요한 동력이다. 서기의 몰입감 강한 연기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 여기에 생생한 현장성을 강조한 촬영이 더해진다.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청춘의 시간에 대한 거장의 연민 어린 시선.
색, 계
감독 이안
출연 양조위, 탕웨이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볼수록 넓고 깊은 세계
★★★★
이안 감독의 2007년 작으로 64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수위 높은 정사 장면 때문에 진면목이 가려진 영화이기도 한데 볼수록 새로운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수작이다. 거장 이안 감독의 철두철미한 연출, 양조위와 탕웨이의 명연기가 작품 수준을 드높인다. 첩보 스릴러, 멜로의 외피 안에 겹겹이 쌓은 시대 분위기와 개인의 욕망이 충돌하고 작용하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넓고 깊은 세계에 다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