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해보는 것은 다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필자는 생성형 AI를 적극 활용하는 편이다. 대표적인 생성형 AI 챗 지피티부터 한국형 AI 클로바X와 뤼튼, 최근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중국발 AI 딥시크까지 한 번씩은 찍먹(?)해본다. 덕분에 업무는 보다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시야는 넓어졌지만 부지불식간에 밀려오는 생존에 대한 두려움은 어쩔 수 없다.
인공지능의 비약적인 발전에 AI는 늘 ‘충격’이라는 단어와 함께한다. 영화계도 AI 쇼크를 피할 수 없었다. 배우의 얼굴과 연기를 대체하는 것도 모자라 이미 세상을 떠난 배우를 살려내는 기적과 같은 기술력을 선보이고 있다. 이에 반발한 할리우드 영화계 배우와 작가들은 2023년 7월부터 대규모 파업이 진행하기도 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오스카 시상식 유력 후보작들이 AI로 배우의 발음을 보정하고,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딥페이크로 배우의 얼굴을 바꾸며, 프랜차이즈 영화가 AI로 작고한 배우를 되살리는 등 그 활용 범위가 예상보다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화제의 영화들을 통해 할리우드가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둘러싼 논란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AI, 배우의 연기를 대신하다’

오는 3월 개최되는 오스카 시상식의 쌍두마차, 영화 <브루탈리스트>와 <에밀리아 페레즈>가 제작 과정에서 AI 기술을 활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무엇보다 배우의 연기에 인공지능이 활용되었다는 점에 그 파장이 커지고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헝가리 출신 유대인 건축가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제81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과 제8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감독상 등 수많은 상을 휩쓸며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은 주연배우 에이드리언 브로디와 펠리시티 존스의 헝가리어 발음을 보정하기 위해 AI 기술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에서는 AI 사용이 오스카 후보 자격 요건을 위반했다며 경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브래디 코베 감독은 "AI는 헝가리어 대사 중 특정 모음과 발음을 정밀하게 수정하는 데만 초점을 맞췄다"라며 "에이드리언과 펠리시티의 연기는 완전히 그들 자신의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프랑스의 자크 오디아르 감독이 연출한 뮤지컬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도 마찬가지이다. 주연배우 칼라 소피아 가스콘의 노래 목소리를 수정하기 위해 AI 음성 강화 기술을 사용한 것이다. 제작진은 "가스콘의 보컬 범위를 확장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설명했지만, 이 역시 작품의 진정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AI, 배우의 얼굴을 대신하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얼굴 합성 기술인 딥페이크 기술을 적용해 성인 배우와 아역배우의 싱크로율을 높였다. 주연배우 안야 테일러-조이는 한 토크쇼에 출연해 "아역배우 알리야 브라운의 얼굴에 내 얼굴을 AI로 섞었다"라고 밝혔다. 영화 초반에는 35%, 후반부에는 80%까지 자신의 얼굴을 합성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AI기술로 배우의 얼굴을 대체하는 경우는 국내에도 종종 있다. 지난해 공개된 넷플릭스 <살인자ㅇ난감>은 딥페이크 기술로 아역 배우에 주연 배우 손석구의 어린 시절 사진에서 얼굴을 구현해 덧씌웠다. 시청자들을 감쪽같이 속인 이 기술에 이창희 감독은 제작사들이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했지만 리얼리티를 위해 했다"라고 전했다.
‘AI, 죽은 사람도 살리다’

지난 8월 개봉한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이미 고인이 된 배우 이안 홈을 스크린에 부활시켜 화제를 모았다. <반지의 제왕>의 빌보 역으로 유명한 이안 홈은 1979년 <에이리언>에서 인조인간 '애쉬'를 연기했지만, 2020년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제작진은 실제 배우 대니얼 베츠의 연기를 바탕으로 AI 기술과 컴퓨터 모델링을 통해 이안 홈의 모습과 목소리를 완벽히 재현했다. 페데 알바레즈 감독은 "에이리언 시리즈 역사에서 이안 홈의 위치를 기리고자 하는 진정한 열망"이라고 설명했지만, 일각에서는 "디지털 강령술이 아니냐"라며 윤리적 문제를 제기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안 홈의 부인이 이 시도를 적극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생전에 할리우드가 등을 돌린 것 같다고 느꼈던 남편이라면 이 작품에 참여하고 싶어 했을 것"이라는 부인의 말은, AI 기술을 둘러싼 윤리적 논쟁에 또 다른 시사점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