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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17〉에 담긴 사랑과 공존의 선율, 정재일 음악감독에게 듣다

데일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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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키 17〉 정재일 음악감독 [LMTH 제공]
영화 〈미키 17〉 정재일 음악감독 [LMTH 제공]

"음악감독은 통역자입니다. 감독이 몇 년 동안 생각했던 음악적인 언어를 통역해준다는 생각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저는 봉준호의 음악을 만들고자 했어요."

〈옥자〉, 〈기생충〉에 이어 〈미키 17〉까지 봉준호 감독 작품의 음악을 연속해서 담당해오며 봉준호 감독의 '통역자' 역할을 자처해온 정재일 음악감독은 지난 5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미키 17〉의 음악 창작 과정에 관한 심층적인 이야기를 전했다.

정재일 음악감독이 〈미키 17〉의 각본을 처음 접한 것은 4~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봉 감독이 한번 읽어보라며 각본을 건네주었다"고 회상했다. "봉 감독님이 이렇게 따뜻한 영화를 만드는구나라고 생각했다"며 정재일 음악감독은 처음 각본을 읽었을 당시의 인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흥미롭게도 전체적인 음악 콘셉트에 관한 봉 감독의 구체적인 지시는 없었다고 한다. 정 음악감독은 〈미키 17〉의 음악 작업이 "맨땅에 헤딩하는 식의 작업이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는 영화에서 느낀 중요한 테마를 중심으로 음악의 방향성을 설정해 나갔다.

"나샤와 미키의 사랑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봉 감독님이 사랑 이야기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또 저한테 제일 중요했던 것은 인간과 크리퍼의 관계였습니다" 라고 정 음악감독은 설명했다.

죽으면 프린트돼 다시 살아나 위험한 임무에 투입되는 '익스펜더블' 미키와 연인 나샤(나오미 애키)의 사랑, 그리고 새로운 행성 니플하임에 도달한 인간과 이미 그곳에 살고 있던 크리퍼라는 존재 간의 관계가 음악 창작의 핵심 모티프가 된 것이다.

정 음악감독은 특히 "크리퍼는 미키를 해할 생각이 없었다는 점이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을 담을 수 있었던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영화 '미키 17' 속 장면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미키 17〉 속 장면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영화의 서사는 미키 17이 예상치 못하게 크리퍼로부터 살아 돌아와 미키 18과 마주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이러한 영감을 바탕으로 탄생한 첫 곡이 바로 '나샤'(Nasha)다. 나샤와 미키가 처음 만나는 순간을 보고 작곡한 이 곡은 이후 '본 아페티'(Bon Appetit) 등 다른 곡의 변주로도 활용되었다. '나샤'는 〈미키 17〉 음악의 근간이 되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사랑 외에도 다양한 문화적 요소가 정 음악감독의 작곡에 영감을 주었다. 영화 속 크리퍼의 소리를 연상케 하는 '카오스'(Chaos)와 '와이 킬 루코?'(Why Kill Luco?)는 몽골의 전통 창법인 '흐미'와 알제리 고유의 발성 기법 '울룰레이션'(Ululation)을 창의적으로 활용했다.

영화 속 독재자 마셜(마크 러팔로)과 그의 일파(토니 콜렛)가 부르는 '주 안에서 기뻐하라'(Rejoice in the Lord)는 한국의 트로트 풍으로 작곡되었다. 마크 러팔로가 촬영장에서 이 노래를 자주 부르는 등 현장의 호응이 상당했으며,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에도 배우들이 직접 부른 이 노래가 수록되었다.

'봉테일'로 불리는 봉준호 감독의 섬세하고 계획적인 연출 스타일은 영화 음악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OST '메이헴'(Mayhem)의 초반 팀파니 연주를 레드제플린의 드러머 존 본햄 스타일로 요청하는 등 봉 감독의 음악적 안목은 상당한 수준이다. 정재일 작곡가에 따르면, 〈기생충〉에 이어 〈미키 17〉까지 모든 OST 곡명을 직접 짓는 봉 감독의 음악에 대한 관심은 각별하다.

"봉 감독님은 평범한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정재일 작곡가는 전했다. "정석적인 음악을 싫어하시니, 어떻게 하면 재밌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괴상한 울음소리의 노래, 한국 찬송가 느낌의 곡 등 봉준호 영화만큼 독특한 '봉준호의 음악'은 정재일의 해석을 통해 탄생했다. 이 음악들은 어딘가 모르게 엉뚱하고 기존 음악과는 차별화된 감성을 자아내며, 〈미키 17〉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정재일 작곡가가 정의하는 〈미키 17〉은 사랑과 평화의 영화다. "지금 평화가 너무 없죠.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서로에게 따뜻한 얘기를 건네고 서로를 안아줄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봉 감독님도 이런 얘기를 하는 것 같아요"라고 그는 말했다.

영화 〈미키 17〉 정재일 음악감독 [LMTH 제공]
영화 〈미키 17〉 정재일 음악감독 [LMTH 제공]

정재일은 봉준호 감독의 작품 외에도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게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 등 다양한 작품의 음악을 담당했다. 그의 작업에는 몽골 창법(〈미키 17〉), 337박수(<오징어게임>), 발칸반도 집시 음악(<옥자>) 등 다양한 음악적 원천이 활용됐다.

음악적 영감에 관해 정재일은 "제가 고등학교, 대학교를 안 나와서 학습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그렇다 보니 전통적인 것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됐다"며 "제가 모자란 게 많으니 어떻게든 채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한 "사실은 안개 속을 걷는 느낌이 더 많다"면서 "'대학교 나왔으면 더 잘했을까'라는 생각이 아직도 들 때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음악 작업을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고민할 때가 있지만, 먹고는 살아야 하니 음악은 계속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최근 정재일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으로부터 위촉받은 곡의 작업을 완료했다. "저 같은 음악을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소개하며 신작은 오는 9월 서울시향의 연주로 공개될 예정이다.

정재일 작곡가 [LMTH 제공]
정재일 작곡가 [LMTH 제공]

영화와 드라마 OST 작업 외에도 정재일은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오고 있다. 세계적인 음악 레이블 '데카'와 계약을 맺은 그는 2023년 데뷔 앨범 '리슨'(LISTEN)을 발매했다.

"저는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음악만 쭉 해왔어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싱어송라이터에 대한 꿈이 컸는데 실패하고 난 뒤 그냥 사람들이 써달라는 대로 써주면서 살아왔습니다"라고 정재일은 밝혔다. 그는 "음악만을 위한 음악을 제가 너무 신경 쓰지 않았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마침 감사하게도 데카에서 저만의 음악을 해보라는 제안이 왔어요. 제가 계속해서 가져가고 싶은 꿈이 됐습니다"라며 앞으로도 본인만의 음악 세계를 확장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