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키 17>이 개봉한다. 개봉한지 벌써 일주일 된 영화인데, 시제를 헷갈리는 것 아니냐 싶을 수 있겠다. <미키 17>은 한국에서 가장 빨리 개봉한 영화다. 해외는 3월 7일 개봉이라 이제 막 개봉한다고 할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이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와 작업한 첫 작품 <미키 17>은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익스펜더블) 미키가 죽을 뻔한 위기를 겪고 살아돌아왔지만 이미 18번째 미키가 리프린트(복제) 돼있다는 상황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한국에선 이미 150만 명(3월 7일 기준)을 돌파한 이 영화, 해외에서도 과연 ‘먹힐’ 수 있을까. 씨네플레이 기자들이 해외 흥행에서 킥이 될 포인트를 짚어봤다.

-이진주-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한 지 한 달, 미국 관객들은 바다 건너 작은 나라의 한 감독이 자국의 정치적 판도를 영화로 완벽하게 예언할 줄 알았을까? 단순히 ‘붉은 야구 모자’를 두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은 2022년에 촬영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미국 정치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기막히게 담아냈다. 특히 극 중 잔혹한 지도자인 마샬(마크 러팔로)은 최근 또다시 취임하며 논란의 중심에 선 제47대 미 대통령 트럼프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거친 제스처, 막무가내식 행정 조치, 듣는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 폭언까지—이쯤 되면 “트럼프의 영화적 재해석”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이와 관련해 마크 러팔로는 최근 한 토크쇼에서 “당시에는 꽤나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었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오는 7일 북미 개봉을 앞둔 <미키 17>이 한국발 ‘짝퉁 트럼프’ 열풍을 타고 입소문을 탄다면, 흥행 가도에 오르는 건 시간문제다.

-추아영-
다 제쳐두고 북미 A급 배우 로버트 패틴슨의 (실상) 1인 2역 연기만으로도 북미 관객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듯하다. 영화 <미키 17> 이전에 로버트 패틴슨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최신작 <더 배트맨>은 북미 수익 3억 6,500만 달러를 기록하면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현지 인기에 더해 영화 <기생충>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이어서 아카데미 작품상을 포함한 4관왕을 달성하면서 달라진 봉준호 감독의 세계적인 위상 또한 한몫할 것으로 보인다. 로버트 패틴슨의 북미 박스오피스 성적과 봉준호 감독의 글로벌 인지도를 고려해 본다면, 이것만으로도 북미 흥행을 점쳐볼 수 있지 않을까. 워너브라더스가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또 선한 역할을 주로 맡아왔던 마크 러팔로가 악역으로 등장한다는 점도 북미 관객들의 호기심을 끌 수 있을 것 같다.

-성찬얼-
우리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볼 때면 ‘한국적 풍경’을 얼마나 정확하게 그리는가에 초점이 맞춰지곤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의 영화에서 가장 감탄하는 부분은 희망과 절망을 오가는 태도이다. 그의 영화는 인물들이 항상 극단의 상황에 놓이는데(연쇄 살인 사건, 지구에 남은 최후의 인류 등) 그럼에도 그곳에선 조금이라도 웃음의 여지가 있고, 반대로 웃을 수 있는 상황에도 그 특유의 음울한 향취가 곳곳에 묻어나곤 한다. 그리고 이런 부분이 어떤 지역색을 뛰어넘어 관객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주어진 상황 자체가 유머와 우울을 맘껏 오갈 수 있는 <미키 17>이 그의 특색을 더욱 잘 살려줄 것이라 본다. 거듭 죽음을 맞이하는 남자, 간신히 살아난 기쁨이 도리어 위기가 되는 전개, 이런 요소는 블랙코미디 장르가 좀 더 입맛에 맞는 북미에서 흥미를 갖기 충분하다. 이런 포인트는 뚜껑을 까야 알 수 있는 것이라, 아마도 개봉 직후 폭발적인 실적을 내는 것보다 계속 입소문이 퍼지면서 점차 성적이 좋아질 것이라고 추측한다. 거기에 ‘트럼프 밈’까지 더해져 바이럴이 된다면, 궁금증을 못 참는 북미 관객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주성철-
<기생충>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까지 수상하는 전대미문의 업적을 이뤘지만 북미 지역에서 봉준호 감독은 여전히 ‘아는 사람만 아는’ 영화감독일 것이다. 그런데 ‘로버트 패틴슨의 신작’이라 접근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게다가 <설국열차>나 <기생충>과 비교해 와이드릴리즈 개봉이기에 앞선 두 작품보다 더 잘 될 것은 너무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봉준호 감독이 인터뷰에서 직접 밝힌 제작비인 1억 1,800만 달러(한화 1,700억)의 손익분기점 달성이 북미 흥행만으로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이미 시기적으로 전체적인 박스오피스 규모가 줄어든 때이기도 하고, 앞서 개봉 시기를 두고 갈팡질팡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불안 요소이긴 했다. 물론 본격적인 홍보 활동이 시작되어 평점의 수혜를 받는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어쨌건 워너브러더스는 북미 흥행 외의 특수까지 예상하고 플랜을 짰을 것이다. 바로 미국과 같은 날, 예상을 깨고 중국에서도 (포스터 문구에 따르자면) ‘오스카 최우수 감독 봉준호의 최신 역작’ <미키 17>이 중국에서도 개봉하는 것. 한한령 이후 한국 감독의 영화가 중국에서 개봉하는 게 처음이다. 즉, 손익분기점은 글로벌하게 무조건 넘길 거라는 얘기.

-김지연-
베를린영화제에서 호평 일색이던 상황과는 사뭇 달라졌다. <미키 17>는 미국 개봉을 앞두고 현지 기자들에게 먼저 공개된 가운데, 반응이 다소 엇갈리고 있다. ‘베니티 페어’의 수석 평론가 리처드 로슨은 <미키 17>이 “<설국열차>의 나쁜 복제품이다”라고 평하며 “트럼프식 국수주의를 서투르게 풍자한다”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평론가는 “영화는 거장의 새로운 선언이라기보다는, 무의미한 틱톡을 끊임없이 스크롤하는 것 같다”라고까지 평했다. <미키 17>에 대한 외신의 반응이 복합적이라는 말은, 대중들에게도 강하게 호불호를 부르는 작품임이 분명하다는 것인데, 문제는 <미키 17>가 호불호 없이 모두에게 무난하게 ‘호’ 여야만 약 1억 1,800만 달러의 제작비를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관객들 역시 분명 <미키 17>이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임을 알지만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니 일단 보고 판단하려는 움직임이 다수라면, 봉준호의 이전 작품들에 대한 인지도가 높지 않은 북미에서는 관객들의 입소문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전 세계 개봉이니, 어떻게든 상업적인 성공은 거두겠지만, 북미 내에서의 흥행은 미지수다. 더불어, 아무리 정치 풍자와 스탠드업 코미디가 활발한 나라일지언정, 누가 뽑나 싶어도 트럼프가 두 번이나 대통령이 된 나라에서, 최근의 할리우드는 다소 잠잠하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만 봐도 정치에 대한 언급이 확연히 줄어든 것을 볼 수 있었다. <미키 17>은 <어프렌티스>만큼이나 대놓고 트럼프를 겨냥한 영화다. 다만, 트럼프가 또 직접 <미키 17>을 두고 “고소하겠다”라고 말한다면 흥행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