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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웨스 앤더슨의 답 〈페니키안 스킴〉

추아영기자
〈페니키안 스킴〉
〈페니키안 스킴〉 포스터

 

웨스 앤더슨이 첩보 스릴러에 처음으로 도전한 영화 <페니키안 스킴>이 5월 28일 개봉한다. <페니키안 스킴>은 6번째 추락 사고와 숱한 암살 위협에서도 살아 돌아온 거물 사업가 자자 코다가 딸 리즐과 함께 인생 전부를 건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늘 족히 십여 명의 배우 군단을 뽐내 온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이번에도 화려한 캐스팅 군단을 선보인다. 자자 코다 역을 맡은 베니시오 델 토로를 시작으로 톰 행크스, 스칼렛 요한슨, 베네딕트 컴버배치, 윌렘 대포 등 이전에 그와 함께했던 웨스 앤더슨 군단이 출연하고, 케이트 윈슬렛의 딸 미아 트리플턴이 리즐 코다 역을 맡았다. <페니키안 스킴>은 여전히 웨스 앤더슨의 형식주의 미학을 이어가지만, 그가 처음으로 도전한 첩보 스릴러이자 오랜 기간 함께한 촬영 감독 로버트 예오먼(Robert Yeoman)이 아닌 <아멜리에>의 촬영 감독 브루노 델보넬(Bruno Delbonnel)과 호흡을 맞춘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변화를 담고 있다.
 


 

〈페니키안 스킴〉
〈페니키안 스킴〉 자자 코다(왼), 리즐 코다


군수항공분야, 인프라 산업 전반의 거물 사업가이자 유럽 최고의 부자 자자 코다(베니시오 델 토로). 그는 은밀히 비밀협정의 중재 전문가로도 활동하며, 수차례 암살의 위협을 받는다. 6번째 비행기 추락에도 살아 돌아온 그는 일생일대의 프로젝트 ‘페니키안 스킴’을 완수하기 위해 6년간 만나지 않은 외동딸 리즐(미아 트리플턴)을 자신의 은빛 궁전에 불러들인다. 성당에서 수련 수녀로 지내온 리즐은 난데없이 성만 이어받은 아버지 자자의 사업과 전 재산을 이어받을 상속자가 된다. 그녀는 다섯 살 때 마주한 어머니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밝히기 위해, 또 종교적 신앙심에서 시작된 자신만의 계획을 남몰래 수행하기 위해 자자 코다와 동행한다.
 


 

전쟁 군수업자, 올리가르히의 비판적 모자이크
 

〈페니키안 스킴〉
〈페니키안 스킴〉


자자 코다는 오로지 댐, 운하, 터널 건설 등등에 관한 자신의 거대한 계획 ‘페니키안 스킴’을 완수하는 것에 몰두한다. 폭리, 탈세, 담합, 뇌물 수수 혐의에 시달리며 부정한 방법으로 쌓아 올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의 재산도 모두 ‘페니키안 스킴’을 위한 것이다. 자자 코다는 많은 부인을 거치고, 9명의 입양한 아들과 외동딸을 두었지만 가족애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가 아들을 입양한 이유도 핏줄이 아닌 자식이 더 나을 거라고 믿어 보는 확률 게임의 일환이다. 그렇게 그는 오로지 자신이 이기고 지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자신의 사업을 방해하기 위한 사보타주로 금속핀의 가격이 폭등하면서 발생한 갭을 메우기 위해 동업자를 만나러 다니는 과정에서도 비용 부담의 비율을 농구 게임으로 결정한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중요한 사항을 단순한 게임으로 결정하는 재력가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풍자한다.
 

〈페니키안 스킴〉
〈페니키안 스킴〉


웨스 앤더슨 감독은 이야기의 출발점을 “1950년대 유럽 재벌 중 한 명을 상상해 보는 데서 시작했다”고 밝혔다. 자자 코다는 1950년대 선박왕이었던 두 명의 재벌 아리스토틀 오나시스와 스타브로스 니아르코스의 삶의 일부를 가져와서 만든 캐릭터다. 오나시스와 니아르코스는 모두 자자처럼 여성 편력이 심해 이성관계가 복잡했다. 특히 극 중에서 자자와 다투는 그의 이복동생이자 리즐의 삼촌 누바(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자자의 아내와 내연 관계인 설정은 니아르코스가 오나시스의 첫 번째 부인을 다섯 번째 부인으로 맞은 실화와 닮아 있다. 두 재력가는 선박왕의 타이틀을 놓고 자주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감독은 누바를 군수 사업으로 부를 쌓은 재력가로, 자자 역시 군수 사업에 능한 재력가로 그려내며, 전쟁을 경제적 기회로 활용한 올리가르히(소수의 사람이나 특정 계층이 정치, 경제, 사회적 권력을 독점하는 과두정치 체제에서 권력을 쥔 신흥재벌) 집단을 향해 비판의 칼을 겨눈다.
 


 

<시민 케인>에 바치는 오마주
 

〈시민 케인〉
〈시민 케인〉


웨스 앤더슨은 <페니키안 스킴>에서 오슨 웰스의 걸작 <시민 케인>에 대한 오마주를 바친다. 웨스 앤더슨의 형식주의 미학은 현실을 재현하는 대신 스타일리시하고 인공적인 세계를 창조한 <시민 케인>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시민 케인>에서 찰스 포스터 케인이 뉴스와 그의 주변 인물들의 말, 기억에 의해 파편적으로 재구성되듯이 <페니키안 스킴>의 자자 코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말과 뉴스를 통해 그간 살아온 삶의 행적이 소개된다. 또 두 인물의 삶도 비슷하다. 찰스 포스터 케인은 신문왕으로 막대한 부와 권력을 거머쥐었지만, 그 힘에 집착해 점차 가족과 친구, 사랑하는 이들과 멀어진다. 자자 코다도 반복되는 암살 위협과 경쟁자들의 모략 속에서도 의지할 수 있는 가족과 친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페니키안 스킴〉
〈페니키안 스킴〉


하지만 <페니키안 스킴>은 부와 권력의 추구가 진실된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의 상실과 고립으로 이어진다는 <시민케인>의 주제를 이어받으면서도 <시민케인>의 결말을 전복한다. 자자 코다는 암살 위협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일 때마다 자신의 과거에 대한 죄의식과 가족에 대한 미련을 담고 있는 환영을 본다. 그의 환영 혹은 꿈 장면은 <시민케인>의 플래시백 구조와도 닮아 있는데, 그는 환영을 통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회복한다. 결국 자자 코다는 자신의 부와 권력이 가족과의 사랑 앞에서 무의미함을 깨달으며 인간으로서의 구원의 가능성을 엿본다. 자자 코다가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은 그가 딸 리즐에게 부정한 방법으로 쌓아 올린 자산이 아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을 따라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국적이 존재하지 않는 자자 코다는 자본의 세계화 자체로도 유비되며, 부정한 방법으로 쌓아 올린 그의 자산은 전쟁과 침탈로 이권 다툼을 벌인 인류의 역사이기도 하다. 웨스 앤더슨은 이번 영화에서 유산, 책임, 그리고 다음 세대의 미래에 대한 성찰을 깊이 있게 파고든다. <페니키안 스킴>은 “미래의 후손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에 관한 웨스 앤더슨의 답이다.